제166화 위기의 전조
* * *
“뭐야 갑자기 왜이래?”
장웨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강림자인 여포 봉선은 이미 전장으로 나아가 싸우고 있었다.
그가 당황한 이유는 바로 마물들이 미친 듯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이전과는 달랐다.
침식지가 아닌 사방에서 마물들이 출몰하면서 생겨났던 혼란이 이제 적당히 잦아들 때 즈음이었다.
사방에서 마물들이 쏟아진다 해도 이제는 어느정도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 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디펜스 게임의 마지막 러쉬라도 하듯 지금과 달리 많은 숫자의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결국 기존의 방어선에서 병력을 빼내기를 반복할 즈음 일이 터진 것이다.
바로 침식균열의 재활성화였다.
원래도 감당하기 어려운 숫자의 마물들이 쏟아져 나왔었다.
그런데 이번은 더했다.
심지어 소형마물은 구경도 하기 힘들었다.
최소한 중형 마물이었다.
문제는 숫자였다.
“빌어먹을 침식 균열은 한계가 있다고 하지 않았어?”
장웨이는 신경질적으로 외쳤다.
상식이 무너지고 있었다.
“그, 그건 아직 모르겠습니다! 일단 한국 쪽 연구원들에게 연락은 넣고 있는데…….”
“빌어먹을 우리 연구원들은 대체 뭘하고!”
장웨이가 다시 버럭 외쳤다.
하지만, 그들을 탓하기에는 이미 마물연구와 관련된 것은 한국을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을 그도 알았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제 한국에 마족들이 합류하며 그 차이는 더욱 벌어져 버렸다.
“지금 우리만 이런 거야?”
장웨이의 질문에 중국인민군 군관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건 아닙니다! 미국쪽은 탑이 재활성화 되었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이 갑주라도 좀 더 공수할 수 없어?”
장웨이는 자신이 입고 있는 마갑주를 보며 질문했다.
“그게 그쪽도 최선을 다한다고는 하지만…….”
생산속도의 한계.
그것도 있었지만, 서로 워낙에 간을 보던 사이였기도 했다.
“빌어먹을 위에선 뭐래! 다 내주더라도 필요한 것을 받아와야 하잖아!”
“그것까지는…….”
그가 아무리 화를 내 봐야 일개 군관이 어떤 대답을 하겠는가.
“젠자아앙!”
장웨이는 버럭 소릴 내지르며 다시 전장을 향해 달려 나갔다.
지금은 그라도 몸을 던져야 할 때였다.
이전이라면 뒤에서 구경이나 하면서 있겠지만, 한국에 다녀온 뒤로는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그때 느낀 것은 만족은 곧 도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또 알게 된 것은 소환자가 강해지면서 강림자 역시 조금씩 강해진다는 것.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생겼다.
“빌어먹을!”
장웨이의 입에서 답답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 * *
마족 마법사인 헤게루이안의 얼굴 안색이 어두워졌다.
전세계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상황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각국에서 보내온 영상이었다.
그것이 수많은 스크린이 가득한 상황실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이런 상황까지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 하지 않았소?”
구은태 박사가 창백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목적이 달라진 듯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인가?”
[에너지원을 흡수하기 위함이 아니라…….]
헤게루이안의 말에 구 박사는 물론이고 상황실에 있는 이들이 모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을 식민지화 하겠다는 의미입니다.]
식민지라는 말에 다들 소스라치게 놀랐다.
[즉. 마계화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헤게루이안의 말에 다들 당혹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게 가능하다면 왜 처음부터 그렇게 하지 않았나 하는 얼굴들 이었다.
[마계에서는 식민지가 의미 없습니다. 그저 힘을 흡수하는 것이 더 이득이니까요.]
“이유를 알 수 있는가? 두고 두고 뽑아먹을 수 있는 식민지화를 왜 염두에 두지 않았는지.”
구 박사의 질문에 헤게루이안이 씁쓸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마족은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종족입니다. 즉 세력이 어떻게 되든지 간에 홀로 강해질 수 있다면 그만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습성이었다.
하지만, 힘이 곧 권력 그 자체인 마족들 사이에서는 이게 정답이었다.
식민지화 한다 해도 그저 마물의 숫자나 권속만 늘이고 마는 정도다.
권속이 많아지고 마물이 늘어나 봐야 다른 정복 대상을 공략할 때 이번처럼 처음에 투입할 수 있는 마물의 숫자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는 것은 마물의 숫자를 늘려봐야 이득이 없다는 것이다.
적당히 침식화 시켜서 식민지화, 즉 일체화 되기 전에 적절하게 별의 힘을 흡수하는 정도가 최고였다.
물론 그렇게 되면 해당 별은 수명을 다한다.
먼지가 되어 바스라지는 것이다.
폭발 같은 화려함도 없다.
그저 바스라진다.
우주의 먼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마물의 피가 과도하게 쏟아지는 상황이 벌어지면 단순하게 침식지를 늘리는 것을 벗어나게 된다.
고착화 된다.
고착화 되면 식민지화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별의 에너지를 뽑아먹을 수 없다. 이미 변형되어버린 별의 생명력은 에너지가 될 수 없으니까.
거기에 변형된 별의 생명력은 이곳의 인간들에게도 영향을 끼칠 수 있었다.
마족화가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법칙에 원주민이 동화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군주들 입장에서는 알 수 없는 경쟁자들이 생겨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굴복 시킨 것이 아니니까.
그렇기에 굳이 그런 짓을 하지 않고 별의 생명력을 흡수하고 또 소모된 마물을 보충하는 정도만 회수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그러나 지금 행위를 보면 아예 이곳을 식민지화 하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유가 뭘 것 같은가.”
구 박사의 질문에 헤게루이안이 맥이 풀린 듯 입이 열렸다.
[아마도 이미 군주위를 거의 하나로 만든 것에 대한 자신감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거기에 이곳에 남은 마지막 군주위를 가져가게 되면…….]
“그게 의미가 있는가?”
[의미가 있습니다. 그동안 소멸되어 없던 마신의 지위가 다시 생기는 일이니까요. 당분간은 새로운 별을 찾아다닐 힘은 없겠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이득이라 판단한 모양입니다.]
그때 강문호 중령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잠깐 마신의 지위를 노린다는 것은?”
[휘하의 마족을 통해 군주위를 찬탈하는 것도 방법이기는 하지만……. 식민지화를 한다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겁니다.]
헤게루이안의 말에 강 중령은 물론이고 상황실 안의 모든이들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 그럼?”
[여섯 군주의 힘을 하나로 한 최강의 마계 군주가 강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허…….”
헤게루이안의 말에 모두 할 말을 잃었다.
우려했던 일이 기어이 벌어진다는 말에 그 누구도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이다.
* * *
대마도 구출작전을 마무리하던 시점에서 급하게 복귀한 을지부루와 그의 일행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이미 현 상황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뭐가 이래 복잡한 거네?”
투덜거리듯 한마디 던진 부루였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투덜거림에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앞으로 벌어질 상황에 걱정이 앞섰던 것이다.
그렇게 침묵 속에서 공항에 도착한 그들의 시야에 수많은 마물들의 시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재료는 넘쳐 나겠네.”
그때까지 입을 다물고 있던 고빈이 피식 웃으며 운을 떼었다.
“그건 그렇네.”
빈과 함께하던 기동대원들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침식지들의 상황은?”
부루의 질문에 마중을 나온 강 중령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다행히 잘 막고 있습니다. 중급 마물을 비롯해 대형 마물들까지 쏟아져 나왔지만, 대마도에 고안된 방어시설이 이곳에도 만들어졌던 덕에…….”
“대형마물도 막아요? 설마 그것도 만들었어요?”
“뭐 엄청난 힘이 필요하기는 하지만.”
강 중령의 말에 빈이 피식하고 웃었다.
“일단 상황부터 정리해야디. 날래 움직이자우.”
부루의 말에 다들 피곤함을 뒤로 하고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 * *
“다, 당겨어어어!”
“으아아아아!”
마치 노예들이 일을 하듯 마갑주를 입은 소환자들이 달라붙어 거대한 바퀴를 밀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거대한 활대가 휘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대형 마물이 걱정된 그들이었다.
공기 압축식의 병기를 생각하기도 했지만, 가장 단순한 것이 때론 가장 빠른 대응을 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만든 초대형 석궁이었다.
물론 나름 기계식이었다.
장전이 완료되자 그 위에 길이만도 오륙미터는 넘어가는 대형 화살이 올라갔다.
아니 화살이라기에는 전신주에 가까웠다.
그 역시 소환자들과 강림자들이 어깨에 들쳐 매고 날랐다.
그렇게 장전이 끝나자 달라붙었던 이들이 무도 자리에서 벗어났다.
“발사 준비 끝!”
“한방에 맞춰라! 빗나가면 널 여기다 올려놓고 쓸 거다!”
여기저기서 사람 긴장케 하는 외침이 들려왔지만, 조준을 하고 있는 이의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집중에 집중을 더한 것이다.
“아래로 십밀!”
십밀이라는 말에 한 소환자가 마차 바퀴처럼 생긴 것을 돌리자 거대 화살촉이 조금 내려갔다.
그때 조준경에서 눈을 때고 있지 않던 이가 주먹을 쥐었다.
동시에 지체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투우우웅!
탄성이 넘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기둥이 날아갔다.
후우웅!
동시에 사방으로 바람이 몰아쳤다. 쏘아지면서 만들어진 바람이었다.
날아가는 것을 보며 조준하고 있던 이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저걸 못 맞추면 병신이지.”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과녁이 커도 너무 컸다.
퍼어억!
크워어어어!
사방에 울리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한발 한발 내딛으며, 나아가던 십여미터 크기의 고릴라를 닮은 마물이 뒤로 나자빠졌다.
그 가슴 한 복판에는 전신주와 같은 크기의 거대 화살을 매달고 있었다.
쿠우웅!
덩치가 큰 만큼 소리도 컸다.
꾸워억!
찢어지는 비명을 지르며 몸통을 이리저리 비틀어 대었다.
그러자 주변에 있다가 휩쓸린 중형 마물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졌다.
중형이라 해봐야 다수는 크기가 대형 마물의 삼분지 일 정도였으니 버둥거리는 손발에 맞아 나뒹굴 수밖에 없었다.
“저거이 꽤 아프겠구나야!”
“아프기만 하겠습니까.”
비행형 마물 위에 타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부루의 뒤에 앉아있던 김창진이 창백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기럼 꼭 잡으라우. 내래 좀 거들러 가야갔어.”
“어!”
갑자기 비행형 마물의 고삐를 넘겨준 부루가 대부를 부여잡고 뛰어내리자 창진이 헛바람을 집어삼키며 짧은 비명을 터트렸다.
무어라 하기도 전에 이미 뛰어 내린 부루는 방금 전까지 버둥거리던 대형 마물의 머리통을 대부로 쪼개버렸다.
그리고는 옆으로 펄쩍 뛰며 또 다른 마물의 머리통을 쪼갰다.
그 뒤로 수많은 가우리 병사들이 뛰어내리며 마물들을 처리해 나갔다.
“와, 왔다!”
그 모습을 본 장벽의 군인들은 물론이고 이쪽을 담당하고 있던 임병화와 전신길드원들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후와. 이제 숨 좀 돌리겠네.”
그들은 다들 마갑주를 입고 있었다.
이전처럼 다급함은 없었지만, 쉴 틈 없는 전투로 인한 피로도가 극에 달해 있었던 것이다.
“뭐해! 교대병력 투입!”
숨을 돌릴 시간을 얻은 전신길드원들이 교대병력 투입을 요청하는 깃발을 흔들며 뒤로 빠지기 시작했다.
저들이 왔으니 일단은 상황이 종료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