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64화 (164/305)

제164화 생존자들

* * *

“와…….”

어느 한 병사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독도함에서 쏟아지는 건 상륙정이나 전차가 아니라 기동대에서 쓰는 아날로그 기반 특수 차량들이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늑대형상을 한 마수들과 그 등에 올라탄 기동대원들이었다. 그 중에도 압권은 선두에 있는 기마군단이었다.

선두에는 기마군단, 후미에는 마수에 탄 기동군단.

갑판 위에서는 헬기 대신 하늘을 나는 마수들이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오르고 있었다.

물론 이곳 전초기지에도 정찰용도의 공중형 마수가 있긴 했지만, 열댓 마리씩 때지어 날아오르는 건 처음 보는 장관이었다.

당연히 처음 보는 군인들로써는 입이 떡 벌어질 만했다.

적일 때는 질릴 만한 광경이겠지만, 그간 가끔이지만 공중형 마수들을 목격해서인지 감탄과 든든한 감정이 가슴을 메웠다.

“쥑이네.”

“그러게.”

“마물보다 쎄다며?”

“그렇다대? 저분인가?”

이번에는 시선이 선두에서 거대한 대부를 비끄러매고 퓨켈을 타고 나오는 을지부루를 향했다.

그를 본 군인의 입이 열렸다.

“마블리 분위긴데?”

“분위기로 따지면 비슷하긴 한데 키는 훨씬 작고 좌우로는 반 배는 더 벌어졌습니다.”

“팔 봤냐? 아우씨, 한 방 맞으면 대가리 박살 나겠다.”

“분대장님 영상 못 보셨습니까? 정말 주먹에 마물들 대가리 막 박살 나고 그랬잖습니까.”

“영상으로 보는 거랑 같냐?”

분대원들끼리 주고 받는 이야기에는 흥분감이 서려 있었다.

마치 영화에서나 나오는 배우를 실제로 보는 일반인들 분위기를 군인들이 보여 주고 있었다.

그때 장교들이 달려가 인사를 했다.

그러자 그쪽에서도 누군가가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강문호다!”

“새꺄, 니 친구냐? 중위님이잖아.”

강문호 중령을 본 군인들이 또다시 눈을 반짝이며 말을 주고 받았다.

“특진했으니 중령님이시지.”

“어떻게 하면 중위가 중령으로 특진하지?”

“한직에 있어서 그렇지 국화 달았어도 진작에 달으실 수 있었을걸?”

“게다가 이번에 공을 세웠으니까.”

강문호 중령은 군인들에게 있어서 또 다른 이슈였다. 대침식 당시의 영웅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 대마도에서 사투를 벌이다가 이제는 구조대원 자격을 얻어 작전에 참가하게 된 소환자와 강림자가 그들을 바라보며 입을 떡 벌렸다.

“정말이었다니…….”

최인철이 입을 떡 벌렸다.

그 역시 소환자였다. 그뿐 아니라 그들 무리에는 소환자가 둘 더 있었다.

그런 그들이었지만, 눈앞의 전력에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 없었다.

마수들이 줄지어 나오고 강림자들로 보이는 이들이 부대단위로 말을 타고 나오는 모습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헉!”

그때 누군가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뒤이어 모습을 드러낸 것은 거대한 크기의 마족이었기 때문이었다.

바로 마룡족이자 군단장인 카르탈마니어였다.

[경배하라! 이 땅에 군주가 강림했으니!]

“시끄럽게 떠들디 말라!”

[죄, 죄송합니다.]

나름 선언과 같은 포효소리를 내비쳤던 카르탈마니어가 재빠르게 몸통을 줄이며 허리를 굽실거렸다.

짧지만 그의 경험상 몸뚱이가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이 죄를 사함받기에 유리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점령전을 맡은 을지부루의 병력이 이 땅에 발을 디뎠다.

* * *

콰콰쾅!

쾅!

“저, 저건 뭐지?”

“마물들끼리 싸우는 건가?”

꾀죄죄한 몰골의 사람들이 거의 다 무너져 가는 건물의 틈새로 굉음이 울려 퍼지는 곳을 향해 시선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은 대마도에 있던 또 다른 생존자들이었다.

“강림자 같은데?”

“마물 아니야?”

“마물들이 뒤섞인 것 같기는 한데 분명 강림자가 맞아. 저쪽 봐 봐!”

한 사내가 쌍안경을 건네며 가리키자 뒤에 있던 이가 그것을 받아들며 눈에 가져갔다.

“마, 맞는 거 같은데? 백제계인가?”

“그런가?”

일본은 특이하게도 강림자들 중에는 백제의 무사들도 존재했었다.

간혹 가다 고조선 당시의 병사가 나오기도 했다.

일부는 그런 현상을 보곤 임나일본부설에 대해 떠들기도 했지만, 상당수는 백제계 도래설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실제 왕실과 일부 지역에서는 백제의 후손이라 칭하기도 했으니까.

물론 자세히 보면 백제계의 무인들이나 무장들과는 다른 복색임을 알 수 있겠지만, 그것까지 구분할 수 있는 이들은 드물었다.

일단 일본 특유의 복식이 아니니 그렇게 예상할 뿐이었다.

“군인? 군인이 있어!”

“정말? 그럼 자위대가 온 거야?”

“사, 살았다아아!”

사람들이 일제히 주먹을 불끈 쥐며 조그맣게 소리없는 환호성을 터트렸다.

“나가이상이 있어! 나가이상이야!”

“정말? 있어! 정말 있어! 나가이상이 맞아!”

아는 얼굴마저 보이자 다들 희망에 찬 얼굴을 했다.

그들의 눈에 비친 구원자들은 압도적인 힘으로 마물들을 그야말로 쓸어버리며 그들이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빠, 빨리 깃발을 올려! 우리 표식을 올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이들이 위로 올라가 그들의 표식을 허공에 휘날렸다.

사실 각자 생존자 그룹끼리는 간혹 만남을 이어 오기는 했지만, 자세한 위치는 공유하지 않았었다.

지금은 그러기도 힘들었지만, 초기에는 물자를 노리고 다른 생존자 그룹을 기습하기도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출부대가 온 이상 그럴 필요는 없어져 버렸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깃발을 휘두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출부대가 그들을 향해 내달려왔다.

“나가이상!”

“겐죠상? 다들 괜찮습니까?”

“우린 산 겁니까? 자위대가 온…….”

밝은 표정으로 구조대를 반기던 이가 말 꼬리를 흐렸다.

“한국?”

“그렇습니다. 한국군입니다.”

“자위대는 어디 있습니까?”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자위대를 찾는 이들을 보며 나가이는 쓴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설명이 좀 길어질 것 같지만, 우선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자위대는 여기 없습니다.”

“하…….”

순간 겐죠의 얼굴에서 허탈함이 번져나갔다. 그 얼굴을 보며 나가이는 자신들이 지었던 표정이 이랬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지체 말라우!”

“하잇!”

“겐죠상 뒤에 통역을 맡은 병력이 올 겁니다! 안전한 곳으로 피해 계십시오! 전 야마모토 상이 이끄는 그룹을 구조하러 바로 가야 합니다!”

“아! 몸조심하십시오!”

“나가이상! 그쪽 길은 내가 안내하겠습니다!”

그때 뒤쪽에서 강림자와 함께 달려온 사내가 외쳤다.

“사토상! 부탁해! 그쪽에는 임산부도 있으니까!”

그들도 지금 막 구출되었지만, 또다른 생존자를 구하겠다는 의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무엇보다 한국군이라고 하지만, 더없이 든든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나가이가 옆에 있는 군인에게 말을 했다.

잠시 뒤 사토는 잔뜩 얼어붙은 모습으로 마수가 이끄는 짐마차 위에 올라타 있었다.

“사또 아저씨 이거 드실래요?”

옆에 있던 군인이 초코바를 건네자 그걸 받아들며 사토는 어색하게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정정해 주었다.

“……사토 데스.”

“미친, 어, 언제 멈추는 거야!”

“아우, 신물이 난다…….”

그야말로 그들은 지금 섬을 관통하고 있었다.

그들의 앞을 가로막을 수 있는 마물들은 없다고 봐야 했다.

이렇게 요란하게 달린 덕인지 그들의 앞을 가로막기 위에 튀어나오는 마물들의 수는 적지 않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많다뿐이지 막을 수 있는 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들이 지나간 뒤로는 온갖 마물의 사체가 바닥을 뒹굴 뿐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따라 붙던 치중대가 마물 사체를 수집하며 퀭한 얼굴로 투덜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뭔가 밥을 먹기 위해 멈추는 것도 없었다.

강림자야 그렇다 치지만, 기동대원들 역시 멈추고 식사를 하는 법이 없었다. 이동하는 사이에 전투식량을 먹는 게 전부였다.

잠시 멈추는 건 마물들을 쓸어 버리고 난 뒤에 다시 대열을 정돈할 때가 전부다.

도착한 뒤로 며칠 동안 계속 같은 행위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날이 저물기 시작하면 그제야 발길을 멈추었다.

그러다 보니 뒤따르며 마물의 사체를 수습하는 이들의 피로도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직접 싸우는 이들은 따로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래도 한 이백 명은 넘었지 벌써?”

“그렇지.”

“씨파, 왜케 불쌍하냐.”

“그러게 말이다.”

구원을 받은 이들의 행색은 하나같이 문명의 혜택과 거리가 먼 이들이었다.

위생 상태는 둘째치고 동남아나 아프리카 난민과 같은 체형과 행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몇 년간을 마물들을 피해 숨어 살며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식재료를 구해 먹거나, 버려진 농지등에서 구한 농산물 같은 것으로 연명한 탓이었다.

심지어 한 무리는 구하러 도착했을 때 애들 서넛만 남고 어른 들은 죄 굶어 죽어 있었기도 했다.

심지어 사망 추정시각이 하루가 채 안 되어 보였다.

그나마 아이들이 살아남은 건 어른들이 최후까지 아끼던 식량을 아이들에게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애들이 뭔 죄야. 차라리 이렇게 내달리는 게 속은 편하지. 게다가 그 미친놈들을 봐도 그렇고.”

물론 그런 이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미친 듯이 공격을 해 온 이들도 있었다.

당연히 제정신은 아니었다.

반쯤 미쳐 있었고, 또 인근에서 구출된 이들의 증언을 들어보니 인간 사냥을 통해 연명해 오던 집단이라고 했다.

인간 사냥을 했다는 건 노동력 확보 개념이 아닌 식량 확보 개념이었던 것이다.

인육을 먹다가 그 영향으로 미쳐 버린 것이다.

그들에게까지 구원의 자비는 없었다.

살아도 문제였고 또 회유를 거절하고 덤벼드는 적을 그냥 놔둘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그들을 처리하고 아지트를 덥쳤을 때, 그득한 인간의 뼈와 또 지하에 매달려 있는 반쯤 잘라먹다 남은 아이들의 시체는 그나마 마음 한구석에 있던 연민마저 사라지게 만들었으니까.

이 비극을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키기에는 무리를 하더라도 이 길이 맞았던 것이다.

“수습 끝났으면 빨리 출발하자고!”

앞쪽에서 다시 출발을 종용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그렇게 마물사체를 수습하던 이들은 다시 먼지구름을 따라 뒤를 쫓기 시작했다.

* * *

“와아아!”

사람들은 고빈의 주도로 보내지는 생생한 구출현장을 보며 탄성을 터트렸다.

그리고 한발 늦은 덕에 구하지 못한 이들을 보았을 때에는 안타까운 마음을 지우지 못했다.

“벌서 오백 명이 넘었다며? 많이도 살았네.”

“많은 게 아니지. 당시 대마도에서 탈출에 성공한 인구가 만 조금 넘었으니까.”

“만? 겨우?”

“그래. 삼분의 일만 겨우 탈출하고 남은 건 이만 명? 그 정도였다더라.”

대마도 인구 삼만 중 삼분지 이가 탈출에 실패했다는 이야기였다.

아직은 구출작업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이만 명이 남았다는 사실을 봤을 때 지난 5일 동안 500명을 구한 건 많은 숫자가 아니기는 했다.

그러나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으리라 생각했던 덕분인지 이 숫자라도 살아남았다는 게 천만 다행이었다.

“일본은 그나마 절반이지만, 나라 자체가 망한 곳도 꽤 되잖아.”

“그렇지. 그렇게 따지면 그곳에도…….”

말을 주고받던 이들이 입을 다물었다.

특히 국가단위로 망국의 길을 걸은 곳에도 생존자가 있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었다.

아직 어딘가에는 누군지 모를 생존자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절로 숙연해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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