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3화 바다를 너머
“헐?”
김창진의 말에 고빈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말 일본에서요?”
“당장 내부 문제를 처리하는 것도 힘이 버거운 상황이 맞아. 차라리 실리를 가지겠다는 거지.”
“그건 그렇지만…….”
“거기다가 미국에서도 이쪽 손을 들어줬고 말이야. 사실 남북으로 있는 큰 섬들이 마물의 땅으로 되어있는 지금 대마도 같은 작은 땅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을 거다.”
“뭐, 저도 번역 댓글 보니까, 그쪽에서 생사를 모르는 이들이 꽤 많다고는 들었어요.”
“그렇지. 대마도에서도 생존자가 있는데, 그 넓은 땅이라면 더 있으면 모를까 적지는 않겠지.”
“결국 선택의 문제네요.”
창진의 말에 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뭐 이래 복잡하니?”
을지부루가 둘의 대화를 듣다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그런 부루를 보며 창진은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창진의 한숨을 알아챘는지 빈이 먼저 나서 주었다.
“그냥 몸 풀러 가자고요.”
“빈아…….”
창진은 빈의 도움에 울상을 지었다. 자세한 설명을 통해 설득을 해도 모자랄 판이다.
“기래? 안 그래도 몸이 쿡쿡 쑤시던 판에 잘됐다야.”
“응?”
순간 창진은 부루의 반응에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그때 빈의 말이 이어졌다.
“대마도에 아직 살아 있는 사람도 좀 있다니까 구할 겸 해서 다녀오는 거죠. 땅도 준다는데요?”
빈의 말에 부루가 버럭 화를 내었다.
“거 뭔 개소리간!”
“아!”
부루가 화를 내자 창진은 탄식을 흘렸다. 뭔가 잘 풀려가다가 삐딱선을 타는 느낌이었다.
역시 쉽게 되는 일은 없었다.
그때 부루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가 점령했으니 당연히 우리땅이디. 주고 말고가 어디 있는 거간?”
“뭐, 그렇긴 한데. 요즘은 옛날하고 달라서 좀 복잡해요.”
“지랄 말라우. 거기 정리하고 마물들 정리하는 대로 북으로 밀고 올라갈 거이니까네.”
“예?”
부루의 말에 창진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이 무슨 쌍팔년도 북진통일론 같은 이야기란 말인가.
“우리 땅 되찾아야디 않갔어? 너른 땅 놔두고 이거이 뭔 지랄이네!”
“아저씨 말 타고 달려가는 순간 전차부대가 밀고 내려올걸요?”
“마물들에겐 소용없디.”
“이번에 개발한 거 있잖아요. 대마물 병기들.”
빈의 말에 부루가 입꼬릴 끌어 올리며 말했다.
“내게는 소용없디.”
“제 머리통에 빨간불 비추는 순간 끝날건데요?”
“기거이 뭐이간?”
“영화 봤잖아요. 반딧불 같은 거 뻘건 불 몸에 비춰지면…….”
“아! 기억난다야. 저격 말이디? 쏜다고 기걸 처맞고 있는 거이 병신 아이간? 기런 건 피해야디.”
둘의 대화를 듣던 창진은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그게 피한다고 피해지는 게…….’
창진의 생각은 이어지지 않았다. 왠지 지금의 부루라면 피할 것 같았다.
그가 점점 괴물이 되어가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걸 제가 어떻게 피하냐고요!”
“단련이 필요하구만 기래.”
“말이 왜 또 그렇게 돌아가냐고요!”
“닥치라! 무기들고 따라 나오라우!”
부루가 버럭 소릴 내지른 뒤에 대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울상을 지은 빈이 창진을 보며 바락 소릴 내질렀다.
“아저씨 때문에 망했잖아요!”
“왜 나 때문에…….”
“아우 씨! 부기도 안 빠졌는데!”
끌려나가는 빈의 뒤를 향해 창진이 잽싸게 외쳤다.
“그럼 준비한다!”
“방송허락해 주면요!”
“…….”
저 와중에도 방송 타령하는 빈의 대답에 창진은 할 말을 잃었다.
* * *
박용우 총리는 김창진의 이야기에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아니 문제가 될 만한 부분만 조심해 주면 방송이야 허가해 줄 수 있다지만, 대체 고빈 씨는 왜 방송타령인 겁니까?”
물론 일인 미디어를 무시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솔직히 더한 것을 요구해도 될 일에 그저 방송을 건다는 게 도무지 이해가 안 갔던 것이다.
돈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꽤 많은 돈이 빈에게 쌓이고 있었다.
원정을 갔을 때도 꽤 많은 돈이 빈에게 갔고, 국가에서 빈에게 대가로 지불한 금액도 컸다.
물론 방송으로 번 돈도 무시는 못하지만 말이다.
거기에 이번에 대마물 병기를 개발하는 데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주었기에 해당 로열티도 천문학적이다.
물론 모든 나라가 솔직하게 지불하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즉 빈은 이미 부자란 것이다.
“그게 어떻게 보면 단순한 이유기도 합니다만…….”
언젠가 그 이유를 들은 창진은 어색하게 웃으며 운을 떼기 시작했다.
“단순한 이유요?”
박 총리의 의문에 창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대답을 이어나갔다.
“고빈 그 친구에게는 그게 배수진 같은 거랍니다.”
“배수진요?”
배수진이라는 말에 박 총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관종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것 자체를 부담으로 만든다더군요.”
“그게 부담이 되면 차라리…….”
“지면 쪽팔리고, 무너지면 쪽팔린다고…….”
“허?”
이유가 어이없었다.
하지만, 나름 이해가 가기도 한다. 폼생폼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행위라 보시면 됩니다.”
창진의 말에 박 총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개떡 같은 이유도 찰떡처럼 알아듣는 박 총리의 표정에 창진은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다 말하지 않은 게 있었다.
‘그런 것도 있는데, 기왕이면 자료화면은 많은 게 좋잖아요.’
‘자료화면?’
‘세상을 구한 영웅! 캬! 나중에 늙어서도 방송에 나올 만한 많은 장면들을 미리 확보하는 거죠.’
‘…….’
‘거기다가 영상 저작료는 계속 나올 거 아니에요? 뭐 용돈 벌이라 치고.’
차마 이것까지는 말하지 못했다.
그가 보기엔 빈은 관종이 더 맞았다.
* * *
대마도 상륙부대의 목표가 얼결에 탈환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보니 물자 이송을 최우선으로 했던 교두보 건설도 목적이 바뀌었다.
처음으로 구출을 해 온 이들도 이제 볼만해졌다.
그동안 못 먹어서 마치 처음 북한 땅에 발을 디뎠을 때 본 사람들 같았던 모습이 이제는 제법 살이 올라 있었던 것이다.
“최인철 씨?”
“아, 예.”
“좀 어떻습니까?”
그를 구해 온 유원일 중사가 막사 안으로 들어오자 최인철이 그를 반겼다.
“다들 좋습니다. 마물 걱정 안 해도 된다는 것만 해도 어딥니까.”
“그런데, 그…….”
최인철의 대답을 들은 유원일 중사가 잠시 말을 흐렸다.
그러자 최인철이 쓰게 웃음을 흘리며 물었다.
“대충 귀동냥한 게 있습니다.”
“아…….”
“자위대는 오지 않는다죠?”
“일단, 생환자가 있다는 말에 일본에서도 정말 고맙다고 사의 표명이 왔습니다.”
유원일의 말에 최인철의 표정은 별반 바뀌지 않았다.
“애쓰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 일본의 상황에 대해 들었으니까요. 아마 다른 섬에도 생존자들이 있으리라 생각했겠지요.”
“예. 그래서 일단 이곳은 우리가 장악하기로 했습니다.”
유원일 중사의 말에 최인철 뒤에 있던 이들의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그 모습에 유원일 중사는 오히려 심장이 서늘해졌다.
지금은 우방이라 할 수 있다지만, 타국군대가 장악한다는 말에 오히려 표정이 밝아진다는 것에 힘이 없는 나라의 국민이 이런 것이구나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광복 후에 미군이 땅을 밟았을 때 그들을 환영하던 조상님들의 심정이 이러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일단 선택지가 있습니다. 이곳 대마도는 탈환이 끝나더라도 언제 회복이 될지 모르기에 여기 분들은 각자의 나라로 송환될 것입니다.”
그때 최인철의 뒤에 있던 일본인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이전에 구할 때 뒤에서 통역역할을 하던 이였다.
“그러므, 회복이 되곤 이곳으로 되돌아올 수는 이쓰무니카?”
그의 질문에 유원일 중사가 쓴웃음을 머금었다.
왜 안 나오나 했었다.
“그건 아닙니다. 여러 복잡한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이제 이곳은 한국 땅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러므, 우린 퇴출되는 거무니까?”
“그건 아니고 선택의 기회 정도는 드리는 쪽으로 가닥은 잡힐 것 같습니다. 일단 이곳이 회복되면 부동산의 경우…….”
“나라가 국민을 버려쓰무니다. 우리도 나라를 버릴 수 이쓰무니다.”
그의 대답에 유 중사는 할 말을 잃고 그의 뒤를 돌아보았다.
다들 비슷한 표정이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었다.
그들을 구해 오던 날 표정을 기억했기에.
“우리는 버리지 않겠습니다.”
유원일 중사의 대답에 최인철과 뒤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에 미소가 서렸다.
유원일 중사가 최인철을 바라보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너무 늦게 구해 드려 죄송합니다.”
“이제라도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최인철은 이해한다는 듯 마주 고개를 숙이며 유원일의 사과에 오히려 감사하다는 인사로 답했다.
그때 최인철이 분위기를 돌리려는 듯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곳을 탈환할 수 있겠습니까? 사방에 마물이 가득입니다.”
그의 질문에 유 중사가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가능합니다. 지금 세계최강의 전력이 이곳으로 향하고 있으니까요.”
“예?”
* * *
“이야아아아아!”
고빈이 미친 듯이 외치며 뛰고 있었다. 그걸 흡족한 미소로 바라보던 을지부루가 흡족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넓으니 됴구만.
“뭐, 여러 용도로 쓸 수 있으니까요.”
부루의 감탄에 김창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웨에엑!”
“퀘에엑!”
함성을 내지르며 뛰는 빈의 뒤쪽에서는 연신 먹었던 음식들을 확인하며 따르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광호와 이승배였다.
뒤늦게 각성이라는 영광 덕에 부루에게 붙잡혀 개고생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런 만큼 빠르게 실력이 느는 건 다행이었다.
“달다!”
“…….”
한쪽에는 쭈그리고 앉아 곰방대를 짚는 자세로 막대사탕을 빠는 임꺽정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굳이 사탕을 빨 필요까지는…….”
강림자들에게까지 금연을 강요할 이유는 없었다.
죽기 전의 생활을 기억하기에 곰방대를 활용하는 강림자들이 없던 것은 아니니까.
그럼에도 임꺽정은 곰방대 대신 사탕을 물었다.
“빈이가 안 된다더라.”
“저기 그건 촬영할 때나 그렇고 지금은 상관없을 겁니다.”
“저기 아니다. 꺽정이라 불러라.
“…….”
뭔가 모자란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건지 임꺽정의 화술은 오늘도 이상했다.
“처음 봤을 땐 섬이 떠당기는 줄 알았디.”
“대형 상륙함이니까요.”
지금 그들이 타고 가는 함정은 바로 독도함이었다.
대한민국 해군에서 처음 만들어진 상륙함이기도 했다. 지금은 이보다 큰 함정들이 있었지만, 아직도 독도는 큰 함정에 속하고 있었다.
“저기구만. 확실히 가깝구만 기래.”
“예. 일단 기존에 구조된 이들 중 강림자를 다루는 분들이 안내를 협조하기로 했습니다.”
“그 고생하던 사람들 부려서 쓰갔네?”
“스스로 자원하신 겁니다.”
“실력은 쓸 만한 거간?”
“지난 몇 년을 생존해 온 분들입니다. 거기에 그 기간 동안 쌓아 온 경험은 무시 못 하고 말입니다.”
자주는 아니지만 생존자 그룹끼리 가끔 만나 거래도 하고 했다고 했다.
그렇기에 인근에 한해서이지만, 안내를 자청했던 것이다.
다른 그룹도 구하는 데 손을 거들겠다는 의미다.
“빠릿하면 좋갔구만. 실전이 되는 병사 하나하나가 귀한 법이디.”
“저, 협조만 하신다고.”
“기래. 전쟁에 협조.”
“…….”
쓸 만한 이들을 보면 무조건 부리려 하는 부루를 보며 창진은 할 말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