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0화 질량보존의 법칙
옛날 1992년 로드니 킹이라는 젊은 흑인의 억울한 죽음으로 촉발된 LA 폭동.
당시 한인들은 미국 경찰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폭도들을 한인타운 쪽으로 유도했다는 설이 유력할 정도였다.
그때 한인들이 마치 군대와 같은 조직을 만들어 스스로를 지킨 역사가 있었다.
당시 폭동이 끝난 이후에도 한인들 사이에서는 비상체제가 유지되어 오고 있었다.
언제든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게 대침식 때에도 발동했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문제는 공권력과 유사한 위력을 행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이었다.
물론 할 말은 있었다.
자존.
지켜 주지 않을 것이라면 스스로 지키겠다는 외침.
“한국계 미국인 병력을 배치시키고 필요 물자를 지원하는 게 더 낫습니다.”
스미스 국장의 이야기를 듣던 레너드 대통령이 조심스럽게 살을 붙여 보았다.
“그럼 차라리 해당 모델을 활용해서 다른 지역도 도입을 하는 건 어떤가. 솔직히 그들처럼만 하면 머리는 덜 아프겠더군.”
“불가능합니다. 그들은 총 좀 쏘아 본 카우보이가 아니라 제대로 훈련 받았던 군인 출신들이니까요. 다른 지역은 그게 불가능합니다. 또 한인들은 위기가 오면 서로 뭉치는 특성이 있지만…….”
스미스 국장이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뒤의 생략된 말을 이해할 수 있었던 레너드 대통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나도 기억하지. 예전 코로나 19 사태 때도 그랬으니까.”
“그럼 그때 도움을 요청하던 국가들에게 대한민국이 어떻게 대응했는지 기억하시겠군요.”
“당연히 우리가 최고의 동맹이기에 먼저…….”
“그때의 미국과 지금의 미국은 좀 다릅니다. 그리고…… 한국인들은 도움을 준 일에 대한 피드백도 확실하지만, 원한에 대한 피드백도 확실한 나랍니다.”
“젠장. 결국 피해는 우리가 봤잖은가!”
“안 받아도 될 피해였지요.”
스미스 국장의 한마디 한마디가 얄미웠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말을 해 줄 이가 필요하다는 것을 레너드 대통령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역대 미 대통령들과 달리 정보국장들은 오로지 미국중심인 인사들이 많았다.
스미스 국장도 마찬가지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런 인물이 계속 같은 노선만을 말한다는 것은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마찬가지로 외교부 장관은 하루가 멀다 하고 당장에 때려치우겠다고 아우성이었다.
왜 버튼이 싼 똥을 자신이 치워야 하냐며 말이다.
“주는 거 확실히 주자고. 필요한 물자 다 주겠다고 하고, 자치권도 인정한다고 하게.”
“알겠습니다.”
“다만 군 지휘권은 넘기지 않지만 최대한 협조하는 것으로 하고 배치하는 쪽으로 하지. 협조 범위는 한국군에 준하는 것으로.”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스미스 국장이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이렇게까지 파격적인 결정을 내릴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의 시선을 받은 레너드 대통령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줄 거라면 언더팬츠까지 다 벗어 주란 말이 있더군.”
“그건 또 어디에 있는 말입니까?”
“한국.”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스미스 국장은 쓴 웃음을 머금었다.
* * *
“이산화탄소 캔은 비싸지 않은가?”
요구 목록을 바라보던 서준모 경위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것도 압니까?”
“아, 예전에 국회에서 쌩 난리치고 그래서 좀 민감했던 때가 있었지. 젠장, 그때 일로 직구하기가 더 힘들었지만.”
“이런 취미도 있었습니까?”
김창진의 질문에 서 경위가 히죽 웃었다.
“맘 같아선 나라에서 주는 걸로 놀고 싶지만…….”
“그건 맞으면 죽잖습니까.”
“맞아. 그러니까 대리만족? 뭐 잠깐일 뿐이고. 오히려 그쪽 사람들은 더 철저하지. 하도 기자들이 자극적으로만 표현해서 말이야.”
“그런데 그 자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기자들만 있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서 경위의 말에 창진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했다.
“그건 무슨 말이야?”
“국회에서 딴지를 걸고 나왔답니다.”
“웬 딴지?”
“불법 총기류를 만드는 범죄자에게 나라의 안전을 맡기는 무능한 정부라더군.”
“이 시국에?”
서 경위가 어이없다는 듯 되묻자 창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예, 이 시국에.”
“대단하다. 정말. 정말 질량 보존의 법칙같은 게 국회에도 있는가 보다.”
“그러게 말입니다.”
서 경위의 말에 창진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 * *
“말이나 됩니까! 게다가 그 장난감으로 뭘 하겠다는 겁니까!”
한 의원의 질타에 국무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여기가 어디라고 한숨을 내쉬는 거야! 엉!”
“유 의원! 반말은 하지 마! 지금 시국이 어떤데!”
“내 말이 틀려!”
다시 고성이 오가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겨우 발언을 할 준비가 끝난 국방부의 연구원이 입을 열었다.
“가장 빠르게 무기를 확보하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는 것뿐입니다. 거기에 이 부분이 고려되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충분한 개수를 통해 마물에게도 통할 수 있는 것을…….”
“그건 또 위험한 것 아닙니까!”
“안전한 관리와…….”
변명을 하면 한다고, 비난이 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그때 민간인 동호회원이 자리에 섰다.
아니나 다를까 또다시 집중포화가 이어졌다.
“불법개조총기를 평소에도 만들고 다녔습니까?”
“아뇨. 그 정도쯤은 기본적으로 아는 사실일 뿐입니다.”
“이런 위험한 것을 알고 있었다면 평소에도 활용할 생각이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럼 의원님은 칼로 사람을 찌르면 죽는다는 것을 안다고 다 찌르고 다닐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지금 비꼬는 겁니까! 여기가 어디라고!”
“국회요.”
따박따박 답하는 동호회원의 대답에 순간 질문을 던지던 의원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그때 의장이 입을 열었다.
“그런 것까지는 대답 안 하셔도 됩니다.”
“아니 의장님!”
“목소리 좀 낮추세요. 지금 범죄자 심문하는 것도 아니고.”
“여당이라고 편드는 겁니까?”
“의장은 여당도 야당도 아닙니다. 계속 하세요.”
약간의 소란이 다시 이어졌지만 의원은 더욱 성난 표정으로 질문을 이어 갔다.
“그래도 평소 그런 행위들이 문제가 되어 왔던 것 아닙니까! 거 자료화면에서 보면 쇠구슬을 넣어 발사하면 흉흉한 무기가 되는데!”
“거기에 쇠구슬을 왜 넣습니까?”
“아니 여기 영상에는 분명히…….”
“그거 기자님들이 넣은 거잖아요. 막말로 우리 장비 하나에 백이 넘어가는 게 많아요. 그런 마개조 잘못했다가 박살나면 한두 푼 드는 줄 아십니까?”
“아니 당시에 이게 문제가 됐던 거잖아요!”
“막말로 일부 중의 극히 일부일 뿐이고, 지금 여기 동원된 우리들은 그저 스포츠로 즐기던 사람들입니다. 막말로 지금 여기 범죄자 취급 받을 이유가 어디있냐고요!”
“언제 범죄자 취급했다고 그래!”
“아씨, 왜 자꾸 반말을…….”
결국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때 의장이 다시 중재를 했다.
“국회에서의 언사를 조심해 주시길 바랍니다.”
“네. 근데 저 양반 반말 좀 하지 말라고 해 주세요. 그리고 이럴 거면 우리 그냥 집에 갈랍니다. 한창 바빠 죽겠는데 이게 뭡니까? 안 해요!”
결국 열이 뻗친 동호회 사내가 다 때려 친다는 말을 하자, 그를 다그치던 의원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이 시국에 그게 말이나 됩니까!”
“아니 그럼 어쩌라는 겁니까! 범죄라며요?”
“그게 절차를…….”
“절차 밟으면 되겠네요. 필리버스터도 하고 열심히 의견 나누시다가 마물 쏟아지고 하면 참 좋겠습니다.”
결국 대화의 끝은 파국으로 달했다. 하지만 이날의 여파는 심상치 않았다.
국회 영상이 삽시간에 퍼져나가며 난리가 난 것이다.
결국 문제의 의원은 전 국민적인 지탄을 받았고 당시 출석했던 동호회원은 국회 사이다패스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속속들이 새로운 형태의 병기들이 만들어져 가고 있었다.
* * *
사람이 많으니 별의별 것들이 다 나오기 시작했다.
연구원들은 물론이고 동호회원들까지 모이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기본적으로 동호회원들은 밀덕들이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총기지식이 있었다.
거기에 스스로 부품을 만들기까지 하는 이들이다 보니 3D프린터는 물론이고 금속가공을 통해 시제품을 만들어 보이는 이들까지 있었다.
그 결과물 중 하나를 집어든 강문호 중령이 놀란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거 스텐건 아닙니까?”
“어차피 잘만 나가면 되잖습니까. 이건 구조도 간단해서 오히려 좋죠.”
2차대전 때 영국에서 쇠파이프를 잘라 공업용 스프링을 이용해 만들었다던 세계 최저가 기관단총의 형상을 닮아 있었다.
대답을 보니 그걸 모델로 만든 것이기도 한 모양이었다.
문제는 당시 이 총은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딱 맞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한번 당기면 탄창이 비워질 때까지 나가고 탄이 튀고 아군 뒤통수 맞추기 딱 좋고…….
그럼에도 총이 없어 맨손으로 나갈 수 없어 후속 시리즈까지 만들어 내며 계속해서 찍어 냈던 총이었다.
“물론 화약을 쓰는 것도 아니고 탄피 배출식도 아니니 문제 없을 겁니다. 오히려 간단하니까 부품 수급이나 고장에도 강하고, 또 대용량 가스통을 허리춤에 달고 다니기에도 좋고…….”
“와, 전쟁 끝나면 이거 하나 기념품으로 가져가고 싶네.”
“역시 장인이야!”
어느새 모여든 사람들이 감탄 반 탐욕 반으로 눈을 번들거렸다.
그렇게 무수히 만들어지는 대마물용 총기들은 조금씩 방향을 정해 나가기 시작했다.
기존 모형총 중 수량이 많은 것들을 개조해 일부 부품만을 교 하여 강한 파괴력에도 부서지지 않도록 하는 것과 방금과 같은 아예 찍어 내기 쉬운 형태로 대량생산을 병행하는 것으로 말이다.
* * *
한인들에 관한 미국의 조치가 알려지자 양현재 대통령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야말로 파격이었으니 말이다.
“이렇게까지요?”
“바라는 게 있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야…….”
“어느 정도는 들어줘야 할 겁니다.”
“어쩔 수 없지요.”
“그런데 곤란한 건…….”
외교부 장관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흐렸던 말을 이어나갔다.
“다른 나라에서도 흉내를 내며 자치권을 주겠다고…….”
“아니 자기들은 군대가 없답니까?”
그 말에 대통령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건 뭐 전세계적으로 한국인을 용병으로 쓰겠다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었다.
“그건 아닙니다만 미국처럼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지요.”
“혹시?”
마갑의 정체가 그새 새어나갔냐는 의미의 반문이었다.
그 반문에 외교부 장관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원래 소문은 빠른 법이잖습니까. 또 우리 주변만큼 세계 각국의 스파이들이 득실거리는 곳은 없을 겁니다.”
“제대로 파악하고 있다면서요?”
양 대통령의 질문에 국정원장이 난감한 표정으로 대신 대답을 했다.
“그렇긴 합니다만, 숨어들지 않고 구경 다니는 놈들도 많고, 또, 어이없는 건 그들끼리도 정보 교환을 할 정도라서…….”
그의 말에 양 대통령은 이걸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에 빠져들었다.
듣고 보니 뭔가 없나 기웃거리는 수준인데 이걸 가지고 때려잡기도 뭣한 상황인 것이다.
“후우. 정말 지끈거리는군.”
양 대통령이 머리를 짚으며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런 대통령을 보며 다들 비슷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최근에 논란이 일었던 국회 쪽이 잠잠해진 것도 압력을 넣은 국가들도 꽤 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라든지 중국이라든지.”
“빌어먹을 해외통.”
국정원장의 보고에 대번에 알아들은 양 대통령이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