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8화 위기에 강한 나라
* * *
국가안전보장회의에 참석한 차준우 소장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제가 현역 복귀하면 다 욕합니다.”
“그 욕할 만한 사람들이 차 소장의 복귀를 원했습니다.”
“거 참.”
장년을 바라보는 나이의 차준우 소장은 양현재 대통령의 말에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군에서 은퇴한 지 시일이 지났음에도 그의 능력을 알아봐 준다는 것이 나쁘진 않은 모양이었다.
“지금 상황이 별로 좋지는 않습니다.”
양현재 대통령의 말에 차준우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 그대로였다.
대침식 당시의 상황과 비슷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외국과 같지는 않지만, 사재기가 벌어지면서 상황이 극도로 흉흉해지고 있었다.
아무리 F급이 위험도가 낮다고 해도 일반인에게는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미국은 폭동이 일어난 곳도 있습니다. 미국뿐만이 아니에요. 중국 일본 유럽각지는 그야말로 혼란 그 자쳅니다.”
아무리 정부에서 떠들어 대어도 국민들은 달랐다. 거기에 대침식의 기억은 그리 먼 것이 아니었다.
당연히 더 민감한 것이 맞았다.
“일단 전시체제로 가는 게 맞습니다.”
“준비는 하고 있네. 일단 오늘부로 예비군 소집을 하고…….”
국방부 장관의 말에 차준우 소장이 입을 열었다.
“민방위도 소집하지요.”
민방위란 말에 양현재 대통령이 되물었다.
“민방위까지? 그건 순차적으로…….”
“아닙니다. 지금 미리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랬다간 위기를 조장한다는 말이 나올 겁니다.”
그때 한쪽에서 박용우 총리가 난감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러자 그를 보며 차준우 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러라고 하는 겁니다.”
“예?”
“위기 조장. 지금은 그게 필요합니다.”
차준우 소장의 말에 안전보장회의 위원들이 다들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차준우 소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대침식때 기억 안 납니까? 당시에 군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야 목숨 걸고…….”
“그렇긴 한데, 지휘체계 다 박살나고 연계도 안 되고 세상 망했다고 서로 살기 급급하고 했잖습니까.”
맞았다.
당시의 혼란은 그야말로 재난 수준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난생 처음 보는 괴물들이 갑자기 쏟아져 나온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당시에 그 지휘체계가 다시 잡히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게 뭔지 기억 안 나십니까?”
“예비군…… 민방위…….”
“예. 맞습니다. 당시에는 예비군 소집도 못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통신망이 무너지기 직전에 예비군 민방위가 알아서 뭉치기 시작했기 때문에 겨우 추스를 수 있었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당시 혼란 중에 SNS에 글이 올라왔었다. ‘우리 동네에서 존버합시다! LA폭동 때 교민들이 했다면, 우리 동네도 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이 퍼져나갔던 것이다.
거점에 예비군들이 모이고 반강제적으로 치중물자 알아서 풀었다.
그리고 버티기에 들어갔던 것이다. 각 지역의 학교나 큰 건물을 중심으로 대피소를 스스로 만들어 세우고 말이다.
그리고 그곳에 지역 경찰이 합류하면서 무너지려던 사회가 다시 중심을 잡은 것이다.
“이건 우리민족 종특이잖습니까. 팬데믹이나 전쟁이나. 역사를 봐도 그렇고 말입니다.”
차준우 소장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여전히 걱정이 되는지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나라가 할 일을 국민에게…….”
“나라가 할 일은 국민을 지키는 일입니다. 그 수단 중에 국민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면 내밀어야지요. 차라리 이럴 땐 당당하게 국민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게 맞습니다.”
차준우 소장의 말에 다들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이거 틀린 말은 아니군요. 일단 준전시가 아닌 전시체계로 기준을 잡고 빠르게 처리합시다.”
그때 누군가 도착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다들 누가 올지 알고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열리고 들어선 인물들을 보자 차준우 소장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안녕하십니까!”
우렁찬 소리와 함께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고빈이었다.
그 뒤를 따라 을지부루와 김창진 그리고 구은태 박사와 강문호 중령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장군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강 대위 오랜만이야. 아, 이젠 중령인가?”
“뭐, 그게 그렇게 됐습니다.”
차준우 소장과 강 중령은 서로 잘 아는 사이였다. 한 부대에서 활동했었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작전을 짜는 게 차 소장이었다면, 실행하는 건 강 중령이었으니까.
그때 차준우 소장의 시선이 빈을 향했다.
“방송 잘 보고 있네.”
“오! 인기인께서 제 방송을! 감사합니다!”
“인기인은 무슨…….”
차준우 소장이 인기인은 맞았다.
대침식 이후에도 자국민에 대한 자긍심 고취를 위해 차준우 소장과 강문호 중령에 대한 다큐등의 방송들이 연이었었으니까.
그 때문에 빈의 인기인이라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사실 별떨어진 놈이 날세.”
“헛! 형님!”
방송에 자주 출몰하는 혜자 구독자 중 하나의 이름이 차준우 소장의 입에서 나오자 빈이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김창진이 끼어들었다.
“지금은 좀…….”
순간 차준우 소장이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안보회의 중이었던 것이 뒤늦게 떠올랐던 것이다.
“하, 이거 꽤나 젊게 사십니다.”
양현재 대통령의 말에 차준우 소장이 멋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하릴없는 백수다 보니…….”
그사이에 빈의 일행들은 방금전까지 오가던 사안에 대해서 전달을 받았다.
“일단 이 전쟁에 있어 여러분들의 역할이 크기에 모셨습니다.”
사실 이들에게는 무력 빼고는 필요로 하는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참석시킨 것은 그들을 그만큼 중요하게 여긴다는 쇼맨쉽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요.”
그때 빈이 입을 열었다.
“이거 앱 같은 거 뿌리면 안 돼요?”
“앱?”
“거 있잖아요. 옛날에 마스크 앱도 있었고…….”
“그게 무슨?”
“GPS?”
“네 그거. 활용한 거 여기도 충분히 써먹을 수 있을 거 같은데.”
빈의 말에 몇몇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구은태 박사와 차준우 소장의 표정은 달랐다.
“그거 괜찮은 생각이군!”
순간 수많은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 * *
균열이 발생하는 전조가 보이자 경계병력 중 하나가 빠르게 총 비슷한 물건을 해당 지점에 쏘았다.
“위치 특정했습니다!”
순간 주변에 지나던 사람들의 휴대폰으로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대한민국 사람들이라면 한 번씩은 들었을 경고음이다.
동시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 주변으로 군인들이 몰려나왔다. GPS를 이용해서 균열 지점을 마킹하면 해당 지점으로 인근의 병력이 몰려드는 식이었다.
동시에 차량들이 도로 좌우로 붙으며 멈추어 섰다.
마치 옛날의 민방위 훈련 때와 같았다. 이어서 동시에 차량에서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보행 중이던 사람들도 스마트폰을 바라보았다. 사전에 깔아 놓은 앱을 확인하는 행동이었다.
“이, 이쪽이야!”
화면에는 자신의 위치가 나와 있는, 보행자 네비게이션이 떠 있었다.
그리고 붉은 선으로 가야 할 지점이 자동적으로 정해져 있었다.
예비군들이 거점을 잡고 있는 일종의 대피소였다.
해당 대피소로 보행중인 사람을 자동적으로 유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대피소가 한두 군데는 아니었다.
소규모 발생만 방어하면 되는 일이기에 최대한 많은 곳을 만들어 두었다.
거기에 앱에 AI를 이용해 보행 중인 시민들을 자동적으로 거리에 따라 분배해서 최적의 대피를 유도하도록 되어 있었다.
처음과 달리 사람들은 꽤나 익숙해졌는지 당황하거나 하는 모습은 없었다.
그저 신속할 따름이었다.
그때였다.
“균열! 균열 오픈! 오픈입니다!”
“대기!”
“모두 대기!”
그때 차량에서 늦게 내린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들이 여럿이었는지 다른 이들보다 더뎠다.
“마크해!”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대기병력이 아이들을 이끌고 이동을 시도하는 부부를 향해 달려나갔다.
그때였다.
균열이 활성화 되며 마물들이 괴성을 터트렸다.
“씨팔 하필!”
그런데 운이 나쁜 것인지 도주 중인 가족들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마물들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물론 이미 이쪽은 조준을 준비 중이었기에 제압사격을 하면 되었지만, 도탄 걱정을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모두가 눈을 둥그렇게 뜨게 만드는 일이 생겼다.
투투투툭! 투투투투툭!
아이들을 이끌던 사내가 갑자기 품에서 소총을 꺼내어 쏜 것이다.
“뭐, 뭐야?”
미국도 아니고 딱 봐도 일반 시민으로 보이는데 소총을 꺼내든 것부터가 당황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소음기를 단 것도 아닌데 소리가 기묘했다.
그런데 그 결과가 가관이었다.
“키에엑!”
“케엑!”
막 생성이 되던 마물 두 마리가 그대로 바닥에 뒹군 것이다.
그사이에 마물을 쏜 사내와 가족들은 무사히 부대원들 안쪽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
“쏴!”
따로 명령이 필요하지는 않았지만, 명령과 동시에 군인들이 소총을 쏘았다.
매캐한 연기와 함께 뒤이어 나타난 네 마리의 소형 마물이 그대로 나뒹굴었다.
그리고 나서야 균열이 서서히 닫히기 시작했다.
균열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십오 분 만에 걸린 작전이었다.
“저 누구십니까?”
하지만 분대를 이끄는 분대장의 관심은 상황의 마무리가 아니었다.
방금 전 마물을 쓰러트린 일반인 가족의 남자의 정체가 궁금했던 것이다.
혹시나 사복을 입은 기동대라도 되는가 궁금함에 질문을 던진 것이다.
“아, 그…….”
“분대장님. 이거 전동총 같은데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전동총이라는 말에 분대장은 얼빠진 표정으로 사내를 바라보았다.
“그, 제가 서바이벌 동호회를 좀…….”
사내의 대답에 분대장의 표정이 점점 알 수 없다는 듯 변해 갔다.
* * *
“이거 잘 만들었군.”
차준우 소장은 늘어놓은 전동총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렸다.
민간인 마물 제압사건이 있은 후 잠시 동행한 사내가 어정쩡한 표정으로 한쪽에 서 있었다.
“개좁니까?”
“네.”
“탄은요?”
“마물 사체 중에 가공용으로 나온 거 빼서 아는 친구가 만들어 준겁니다.”
그의 말에 동그란 탄알을 들어 보던 강문호 중령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거 딱 비비탄이네요.”
“그렇구먼.”
“그런데 아무리 개조했다고 해도 마물 제압이 가능할 정도라니…….”
“저, 저도 그게 될 줄은 몰랐죠. 그냥 세상 불안하다 보니 일단 만들어서 가지고 다녔는데…….”
“혼자 들고 다니시는 건 아니겠지요?”
차준우 소장의 질문에 사내의 얼굴이 사색으로 변했다.
“다, 단속하시게요?”
“단속보다는…….”
사내의 말에 차준우 소장이 진한 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재능기부 좀 받읍시다.”
“예?”
순간 사내는 물론이고 이 자리에 있던 이들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 * *
서바이벌 동호회의 회원중에서 꽤나 유명한 총기덕후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씨파, 이거 좃된 거 아냐?”
“벌금 좀 물면 되지 뭐.”
“그런데 이 정도 개조면 벌금만 물고 끝나지는 않을 거 같은데?”
그들의 표정 위에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