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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57화 (157/305)

제157화 인정받은 남자

* * *

비밀은 오래가지 못했다.

예상대로 중국과 미국쪽에서 마갑주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혈액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어차피 오래 끌 수 있었던 비밀은 아니었기에 이 사실은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자 두 국가에서는 혈액량을 늘려 줄 테니 자신들에게도 공급을 해달라는 회유가 들어왔다.

예상했던 바이기는 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이렇게 하지 왜 이렇게 복잡하게 비밀로 해 가면서 했느냐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일단 초반에 제대로 수량을 먼저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오히려 혈액을 필요로 하기에 그것을 가지고 밀당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일단 일정량을 만들어 두고 난 뒤에 이 사실이 알려진다면 무언가를 밀고 당기기가 어려웠다.

일단 어느 정도의 수량이 사전에 만들어져 있는지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물론 여전히 모자랄 수는 있지만, 어느 정도 전력이 확보된 상황이라면 재료조달 자체가 거래의 대상이 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 덕에 혈액이 떨어지기 전에 다시 보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장밋빛 미래를 설계하는 가운데 일이 터졌다.

길을 걸어가던 사람들의 휴대 전화기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미친 듯한 경고음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규, 균열이다!”

누군가가 다급하게 외치며 휴대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동시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도로의 차들은 일제히 차도 가까이에 붙어서 멈추기 시작했다.

누구 할 것 없었다.

마치 민방위 훈련이라도 하듯 차량 운행이 멈추어 선 것이다.

“뛰어!”

그렇게 전국적으로 경보음이 알려진 날 세계는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 들었다.

양현재 대통령의 얼굴에는 짙은 피로감이 서려 있었다.

“후우. 다시 대침식이 발생한 것 같은 느낌이군.”

“그런 느낌이 아니라 발생빈도로 본다면 그와 유사한 상황은 맞습니다.”

“다행이라면 이전과 다르게 폐급…… 아니 F급에 해당하는 마물만 발생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문제는 상황이 이렇게 되니 사회적 혼란이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벌써 사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고…….”

“후우.”

사재기란 말에 양현재 대통령의 얼굴의 피로감이 더 짙어졌다.

그나마 한국은 사재기가 덜한 편이었다.

팬데믹 공포에 전 세계를 몰아 넣었던 바이러스 때에도 사재기가 거의 없었던 나라였다.

그러나 대침식 때는 달랐다.

사재기로 인해 일시적인 마비 현상이 벌어졌었던 것이다.

마물은 바이러스와 달리 직접적인 위협이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균열등은 새로운 병기들이 아니더라도 기존 화약무기로 처리 가능했기에 빠르게 제압되고는 있습니다만…….”

보고를 올리던 중 끼어든 알람이 있었다. 휴대폰에서 울려퍼지는 비상 경고음.

“젠장, 또?”

순간 대통령의 얼굴이 다시 굳어졌다.

* * *

타타타! 타타타!

점사로 격발되는 총기류에 마물들이 내달리다가 이리저리 처박혔다.

거리에는 메케한 화약 냄새가 진동했다.

“빌어먹을, 화약냄새만으로도 질식할 정도라니. 화생방이 따로 없네.”

군인들이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미치겠습니다. 잠을 좀 자야지 않겠습니까?”

“곧 예비군 소집 될 거 같으니 조금만 참아라.”

“하아…….”

일주일에 한번 혹은 한 달에 한두 번 있던 균열이 이틀사이에 전국적으로 수십 번은 발생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히 군인들의 피로감이 누적되어가고 있었다.

평소에 동원되던 기동대들은 거의 침식균열을 대비하기 위해 배치된 상황이라 일반 균열에는 군부대가 동원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긴장된 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피로가 극에 달해가고 있었다.

“참, 3소대는 어때?”

“둘 죽었답니다.”

“씨팔.”

어두운 표정으로 답변하는 상병의 대답에 질문을 했던 분대장의 얼굴이 구겨졌다.

“마물도 아니고…….”

자조섞인 음성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방금 전 언급된 사망자는 마물에 의해 죽은 것이 아니라 오인 사격으로 인해 아군에게 피탄된 희생자였다.

시가전 상황으로 정신없이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미친 새끼들 왜 갈기고 본 거야?”

“그게 폐급이라서 그런 거 같답니다.”

“젠장!”

급수가 높은 마물이라면 잘못 쏘았을 때 어그로가 끌리기 마련이었다.

그래서 더 위험한 상황이 만들어지기에 긴급이 아니라면 확인 후 사격이 기본이었다.

그런데 폐급은 아니다.

폐급은 총알만 맞아도 죽는다.

이틀간 줄줄이 그런 폐급들만 튀어나오다 보니 일단 위험을 피하기 위해 사격부터 하는 병사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경험 많은 기동대원들이 전부 침식균열 방어에 동원되어 있으니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그때였다.

한쪽에 무전이 왔다.

“교대다!”

“교대? 벌써?”

“동원이야! 동원!”

동원이라는 말에 군인들의 얼굴이 확 펴졌다.

드디어 명령이 전파되었는지 동원 예비군들이 소집되었던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야, 고생들 했다!”

“마시고 해!”

동원예비군들은 자신들이 함께 구매해 온 음식들을 던져주었다.

“아!”

“감사합니다!”

“빨리 빠져! 빠져서 먹고 가!”

예비군들의 배려에 팽팽한 긴장감 속에 있던 현역병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제 2의 대침식이 될지 모르는 사태를 앞두고 숨고르기를 해 나가기 시작했다.

* * *

을지부루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대형 TV에 보여지는 상황이 꽤나 심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어케 된 거이 이런 상황에서도 기어나오는 거이간?”

“먹고는 살아야죠.”

“집안에 먹을거이 없는 거이간?”

부루의 질문에 고빈이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없는 건 아닌데, 일단 일을 해야 돈이 돌잖습니까.”

“알다가도 모르겠구나야.”

“물론 조만간 조치가 있겠죠. 그런데 창진이 아저씨는 얼굴 보기 힘드네요?”

“걔가 그쪽을 맡은 건 아니지만, 일단 공무원이잖아.”

“그러는 아저씨도 공무원이잖아요.”

“내 담당은 여기니까.”

서준모 경위의 대답에 빈은 입맛을 다셨다.

“그런데 왜 이런대요?”

“일반적인 상황은 아니라 했으니까네. 미친거이 아니면 이런 짓을 할 이유가 없다디 않았네?”

“헤게루이안 아저씨말은 그런데, 그 미친 짓을 하고 있잖아요.”

“길티.”

“뭐 카르탈마니어 아저씨가가 있으니 뭐라도 이유를 알아내겠죠.”

빈의 말에 서 경위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제발 그러면 좋겠네.”

* * *

카르탈마니어의 삭막한 표정을 보며 전략참모본부의 인원들은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여러 가지 질문을 던져봤지만, 딱히 소득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보통은 이런 짓을 안 한다는 것 정도가 소득이었다.

지금 각 균열에서 나타나는 마물의 숫자는 적게는 네다섯에서 많게는 이삼십여 마리 정도다.

전부 소형개체에 F급 마물을 넘지 않았다.

혼란은 있지만 타격까지 가지는 않는 숫자였다.

문제는 너무 잦게 발생한다는 점이었다.

대침식 때에도 이런 식의 무의미한 물량공세는 없었다.

“재물도 아니라는 거지요?”

한 남자의 질문에 카르탈마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쓰레기 같은 마물들의 피는 약해지는 시간이 빠르기에 크게 유효하지는 않지. 아마도 대공들의 지위가 크게 뒤바뀌며 참모진들이 멍청한 놈들로 바뀐 모양이군.

카르탈마니어의 말에 이들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여전히 찜찜했다.

사회적 혼란은 적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 사태가 전세계적이라는게 문젭니다. 무언가 노림수가 있지 않을까요?”

또다른 사람이 조심스럽게 던진 질문에 카르탈마니어가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병신 짓일 뿐. 나라면 이렇게 안 하지.

을지부루나 고빈 혹은 그들이 인정하는 이들에게나 고분고분하지 다른 이들에게는 뻣뻣하다 못해 귀찮아 하기까지 하는 카르탈마니어의 행동에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그나마 이들은 이렇게 직접 질문이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다.

“뭐 좀 나왔습니까?”

김창진이 초췌해진 얼굴로 나타나자 참모진들이 울상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미치겠네. 오가지 말고 여기 있으면 안되나?”

“저도 그러고 싶긴 한데. 죽겠습니다. 위에서 쪼고 아래서 울고. 그런데 여기서까지 그러면 전 어쩝니까.”

창진의 말에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가장 바쁜 이가 창진인 것은 틀림이 없었다.

비밀 임무가 이제는 전담 임무가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그런데 일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어, 창진이 감당하기에는 벅차게 되었다.

그럼에도 대안이 없어 그를 부려먹는 데에 다들 혈안이 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왜 쓰레기 같은 행동이라는 겁니까?”

보고서를 보며 인상을 쓴 창진이 다시 질문을 던졌다.

카르탈마니어의 답변은 한결같았기 때문이었다.

-인간들이 쏘는 쇠붙이 하나 버티지 못하는 쓰레기를 순차적으로 투입하는 것이 정상은 아니지. 제대로 된 부대를 만들어 쓸어야 거점을 만드는 건 기본이니까.

카르탈마니어의 관점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창진은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미간을 찌푸렸다.

무언가 짚이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사회적 혼란을 만들기에는 이미 충분히 성공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의 질문에 카르탈마니어가 의문을 표했다.

-그걸 해서 뭘하지?

“움…….”

창진은 어떻게 대답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조심스럽게 설명을 해주었다.

사회적 혼란이 벌어졌을 때의 잇점을 말이다.

항상 압도적인 힘 혹은 테라포밍 형태의 점령만을 해오던 마족에게는 약간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이었지만, 최대한 은유적으로 설명을 해 나간 것이다.

그러나 그 설명을 듣고 난 카르탈마니어는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하지. 그게 가능하려면 제대로 된 전초가 만들어진 이후 이쪽 세상의 파악을 한 다음에나 가능한 일이다.

“불가능이라고 할 정도야…….”

-아니 불가능이다. 우리야 우리의 군주가 이곳에 있기에 여기에서 이야기하고 듣고 하지만, 다른 이들은 다르다. 왜 힘으로만 하냐고? 정보가 없으니 그게 당연한 거다.

그의 말에 창진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하긴. 이쪽에 대한 정보 수집이 안되어 있으니 그럴 수는 있겠네요. 뭐, 첩자가 있으면 모를까.”

그의 말에 카르탈마니어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굳이 그런 짓을 할 마족이 있을까? 타 종족을 첩자로 삼는다는 건 고위 마족들이나 가능하고 권능의 일부를 소모하는 일인데?

“그러면 다행이고요. 같은 사람도 의심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야말로 답이 안 나오거든요.”

그의 말에 카르탈마니어가 주먹을 불끈 쥐며 중얼거렸다.

-미리 알았어야…….

“그말 장군님께 말씀을…….”

창진의 말에 카르탈마니어가 움찔했다.

* * *

큼직하게 썬 스테이크를 입에 가져가며 TV화면을 보던 오기원이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제대로군.”

-그러게. 이런 쉽게 흔들릴 줄은 몰랐군.

머릿속에 울려오는 목소리에 기원이 입을 열었다.

“이 세상은 다른 세상과 달리 하나가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무너질 가능성이 크기에 이런 상황이 가능합니다.”

예전과 달리 차분한 음성.

공손함마저 베어져 있었다.

-자네와 나는 여러모로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 기쁘네.

“저 역시. 이렇게 인정을 받게 되어 기쁘군요.”

미소를 짓는 기원의 눈자위에 보랏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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