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6화 샘플이 아니라 선물
* * *
“미치겠군.”
닉 레너드 대통령의 얼굴이 참담하게 일그러졌다.
그는 지금 한국에서 날아온 마갑주의 테스트 현장에 있었다.
“방어복 개발 정도라고 하지 않았나?”
“죄송합니다.”
케인 스미스 국장이 할 말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무언가 대한민국의 구은태 박사가 진두지휘하는 연구동에서 활발한 연구가 이어지는 것에 대한 정보를 얻기는 했었다.
그게 바로 방호복이었다.
그런데 날아온 물건은 전혀 달랐다.
지금은 강림자만 덜렁 내보내고 소환자는 안전한 곳에서 대기하는 식의 전투 방식과 비교해 월등한 차이가 증명된 상황이었다.
최근 점점 소환자의 전투력이 상승하면서 이 부분에 각종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기가 막히게 만드는 물건이 보내져 온 것이다.
지금 그들이 보고 있는 마갑주라 명명한 제품은 그야말로 획기적이었다.
소환자의 보호성을 높이는 정도의 보호 장구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침식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워리어 플랫폼을 보내온 것이다.
심지어 메커니즘이 완전히 다른 덕에 일정부분의 파손에도 안정성이 뛰어나기도 했다.
너무도 탐이 나는 물건이었다.
“요즘 버튼이 어디서 지내고 있지?”
레너드 대통령의 질문에 스미스 국장의 안색이 굳어졌다.
지금 상황에서 버튼 보좌관의 존재는 하등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안 되었다.
“버튼은 지금 상황에서 도움이 안됩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가서 쏴버리고 싶어서 묻는 거네.”
“…….”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스미스 국장은 쓴 웃음을 머금었다.
미국에 솟아난 침식지와 탑을 함께 공략했을 때까지만 해도 양국의 분위기는 최고조로 올랐기 때문이었다.
물론 결정은 레너드 대통령이 했지만, 그것의 바탕은 버튼 보좌관의 맹활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알려지면 의회에서 또 날 잡아먹겠다고 그러겠군. 젠장, 구국의 영웅에서 나라를 망친 인간으로 급전직하라니.”
최근 그의 평가였다.
한국에서 지원을 받아올 때만 해도 굳이 그럴 필요가 있는가 하며 성토하던 반대파들이 성공적인 방어 이후 입을 다물고, 전국적으로 그를 구국의 결단을 내린 대통령으로 칭송했다.
문제는 그 후 최근의 일이 터지며 한국군의 지원에 대해 떠들어 대던 반대파들이 이제는 한국을 빈손으로 돌려보내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욕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연일 방송에서도 이 일을 퍼트리고 있어 대통령의 탐욕이 미국을 망치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
“빌어먹을 외교적인 결단이라고 칭찬할 때는 언제고.”
레너드 대통령이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샘플 말고 제대로 된 물건은 어떤 조건으로 구매를 할 수 있다고 하던가?”
레너드 대통령의 질문에 미국 외교부 장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건…… 동맹으로써 인도적 지원이라고…….”
“그건 고맙군. 이정도 물건이라면 그냥 날로 먹을 수 없다는 건 지나가던 마약쟁이도 알 수 있는 사실이라고. 그래서 조건은?”
“없습니다.”
“응?”
“이게 전부랍니다. 지원해 줄 수 있는 건…….”
외교부 장관의 말에 레너드 대통령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누가 지원을 요청했나? 팔라는 거야! 하우 마취! 얼마냐고 물어보란 말이네!”
그때 스미스 국장이 끼어들었다.
“팔 수 없다는 말입니다.”
“뭐? 왜! 무기도 서로 사고 파는 세상이야! 왜 못 판다는 건가!”
레너드 대통령이 열을 올리자 스미스 국장이 쓴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다 같은 무기가 아니잖습니까. 랩터 같은 경우와 같이 팔아 달라고 해도 안 판 것처럼 말입니다.”
“그럼 그걸 준다고 해!”
“그건 생산중단 된 지도 되었고……. 지금 대한민국에 위기가 오고 있는 조짐이 있어 그쪽 물량을 대는 데에도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그나마 이것들을 지원한 것은 동맹으로써의 예우라고 합니다.”
“내가 알기로 달랑 일곱 벌인데! 이걸 가지고 뭘 하란 말이지?”
레너드 대통령이 허탈한 얼굴로 묻자 스미스 국장이 정정해주었다.
“총 열벌입니다. 세벌은 전우에 대한 선물이라며 멧 중장등에게 보내졌습니다.”
“일곱벌이나 열 벌이나!”
“파악한 결과 이것을 받은 나라는 오직 두 곳뿐입니다.”
“어디? 우리말고 우방이 어디 있다고!”
“우방은 아니지만 중국쪽에도 갔다고 합니다.”
“왓더뻑! 매번 치고 받고 하던 사이 아니야? 그쪽에 보낼 게 있으면 이쪽으로 보내야지!”
“그게……. 중국 쪽은 국경을 마주하고 있었고, 또 그 경제적으로도 많은 이득이 되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순간 레너드 대통령이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기 전의 전조현상처럼 그의 얼굴도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동시에 레너드 대통령이 발로 바닥을 내리 찍으며 욕설을 연신 내뱉었다.
“뻑! 뻑뻑! 쉣더 뻑!”
* * *
“왜 갑자기 귀가 뻑뻑해지지?”
“그건 또 무슨 드립이냐?”
고빈의 중얼거림에 서준모 경위가 말을 받았다.
“몰라요. 걍 아무 말 대잔치요.”
귀를 후비던 빈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서 경위가 울상을 지으며 에처롭게 물었다.
“버, 벌써?”
“놀면 뭐해요. 훈련해야지.”
빈은 지금 적응 훈련 중이었다.
다른 이들과 달리 빈은 소울아머를 입고 훈련하고 있었다.
희안하게도 지금 소울아머를 입을 수 있는 존재는 고빈뿐이었다.
일종의 적응 훈련인 것이다.
그때 훈련장 입구가 시끌벅쩍해졌다.
“아놔, 주작단 단주 왔네.”
“닥쳐 이새꺄!”
빈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모습을 드러낸 신컨길드장 구도원이 버럭 소릴 내질렀다.
“꼬우면 한판 붙어 보시던지. 소환자끼리 붙던 강림자끼리 붙던 난 아무거나 다 상관없는데.”
“뭐? 그래 당장…….”
도원이 외치려는 순간 뒤에서 그를 응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힘내시게!”
“……하씨. 이 빌어먹을 보신 제일주의.”
도원이 뒤를 돌아보자 김경징이 멀찍이 떨어져 그에게 주먹을 들어올려 보이고 있었다.
마치 힘내라는 듯.
“안 싸워!”
도원이 버럭 소릴 내질렀다. 그러자 그제야 그의 곁으로 찔끔거리며 김경징이 다가왔다.
“정말 절묘한 커플이다.”
그 모습을 보던 서 경위가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근대 아재는 왜 왔어요?”
“우리 BJ비니 벗방 라이브 보러.”
“에이씨, 나 그런 거 안 한다고 이 주작 단주가 뭐래?”
빈이 발끈하자 도원이 히죽거리며 말을 이었다.
“안하긴 개뿔. 너 전에 여고생들이 오빠 복근 보여주세요 한마디에 웃통까고 쌩쑈한 짤 엄청 돌아 다니거든? 알고 보니 그 여고생 군필 여고생이었다며? 그 아저씨가니 방송 보며 남긴 인증 짤도 있드라.”
“그냥 더워서 벗은 거라고!”
BJ비니 방송 흑역사의 한 장면을 부관참시하는 도원의 드립에 빈이 버럭 소릴 내질렀다.
그러나 도원은 발악하는 빈에게 한방 더 날렸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에서 우리 킹 세종님의 명대사 중에 이런 게 있지. 지랄하고? 자빠졌네.”
“지, 지랄이라니!”
“지랄이디 그럼 그거이 멀쩡한 정신에 할 짓이간? 여자만 좋아하든 남자만 좋아하든 둘 중 하나만 하라우.”
그때 모습을 드러낸 을지부루가 몇 마디 거드는 모습에 빈이 몸부림을 쳤다.
그걸 본 부루가 대부를 어깨에 걸치며 말을 이었다.
“참으면 병되는 거이디. 끼부리디 말고 덤비라우. 내래 언제든 열린 맘으로 조져줄 테니.”
“됐어요!”
삐져버린 빈을 두고 배를 잡고 웃던 도원이 은근한 음성으로 부루에게 질문을 했다.
“그런데 의외로 깨인 분 같습니다. 남자든 여자든이라는 말을 보니.”
“사내새끼 궁둥이 쫓아다니는 새끼는 군문에도 종종 있었디. 기런 놈들 때문에 똥도 못 싸고 다니던 아새끼들도 좀 있었고 말이디.”
“쿨럭!”
“물론 싫다는 거 덥친 새끼들은 내래 친히 죄 잘라 주었디. 내래 그걸 모아 고추밭도 만들었디.”
“무, 무슨 밭요?”
“궁금하네?”
부루가 질문을 던진 도원의 바지춤을 내려다보자, 김경징이 뒷걸음질을 쳤다.
“그냥 알 것 같습니다. 장군.”
“기래. 저치 닮아 눈치는 빠르구나야.”
“어? 벌써 도착했구만?”
그때 뒤에서 구은태 박사가 연구원들을 이끌고 모습을 드러냈다.
“예. 뭐.”
그러자 도원이 떨떠름한 얼굴로 대답했다.
도원이 이 자리에 온 이유는 소울아머 착용 연구 때문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소울아머는 어느 수준을 넘어서는 이가 입었을 때에는 그 효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내용 때문이었다.
십년전의 기억을 가진 이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였고, 또 마족 마법사들의 입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물론 빈이 그 정도의 강자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소환자라면 어느 정도까지 능력을 뽑아 낼 수 있는지 연구해 볼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소환자인 빈이 강림자인 부루와 연동되어 있기에 이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는 이론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다른 경우는 어떻게 반응하는지 확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별도로 준비한 연구였다.
일반적인 소환자를 활용하기에는 조금 위험한 부분이 있다는 의견이 있어, 준 영웅급으로 분류된 김경징의 소환자인 도원이 이 연구에 동원된 것이다.
준비를 마친 도원이 갑주를 입었다. 그리고는 미리 설명 받은대로 운용을 하자 그의 온몸을 소울아머가 뒤덮었다.
“어때요?”
연구원의 질문에 도원이 얼떨떨한 표정을 지으며 손을 쥐었다가 폈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나온 대답.
“이거 쩌는데?”
순간 온몸으로 넘치는 힘에 도원의 눈에 탐욕이 서렸다.
“야, 나랑 붙어볼래?”
“그거 벗으면. 아니면 우리 부루 아저씨랑 붙던가.”
빈의 말에 도원이 키득거렸다.
“너 죽다 살아난 거 이미 들어서 알거든?”
도원의 말에 빈이 얼굴을 구겼다. 그렇게 잠시 몸을 움직이던 도원에게 김경징이 말을 걸어왔다.
“위험하오.”
“응?”
“위험하오! 위험하오! 위험하오!”
“아니 왜 갑자기…….”
순간 김경징의 몸에서 먼지 같은 것이 풀풀 날리기 시작했다.
그걸 본 도원이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
역소환의 징조였다.
그 순간 김경징이 버럭 소릴 내질렀다.
“당장 때려 치라고, 이 개노무자식아!”
“……!”
순간 충격을 받은 도원이 소울아머를 해체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김경징을 바라보고 있었다.
김경징은 언제 욕을 했냐는 듯 멀찍이 떨어져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와, 나 말고 강림자에게 욕처먹는 인간이 또 있었네?”
그 광경을 보며 빈이 키득 거리며 웃고 있었다.
연구는 실패로 돌아갔다.
최상위 인지도를 자랑하는 강림자를 보유했음에도 소울아머를 제대로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증명된 것이다.
물론 이 연구 결과로 가장 좋아한 것은 바로 빈이었다.
“우히히!”
안 그래도 이게 탐이 났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이제부터는 이걸 빼앗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즐거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지옥의 시작이었다.
이전의 강도와는 비교할 수 없는 훈련을 받으며 처절하게 뒹구는 빈에게 서준모 경위가 응원의 한마디를 외쳤다.
“힘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이씨! 내가 무슨 스파이더맨이야!”
빈이 악다구니를 쓰며 버럭 내지르자 서 경위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반말은 말자. 내가 형이야.”
“닥쳐!”
“꼬꼬댁?”
“아재개그 따위! 하지 말라고오오!”
빈이 폭발하려 하자 서 경위는 조심스럽게 자리를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