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5화 그의 선택
콰앙!
오기원이 집어던진 스마트폰이 그대로 산산 조각이 나서 흩어졌다. 마치 장난감처럼 말이다.
거듭된 실전을 통해 꽤나 신체적 능력이 상승된 결과였다.
“개자식들.”
방금 받은 통보 때문이었다.
당장은 일급 기밀이기에 알려 줄 수 없다는 말이 전부였다.
추후 공개시기가 되면 알려 주겠다는 말과 함께 말이다.
그러나 이미 다각도로 정보를 취득한 내용을 살피면 전신 길드나 신컨 길드는 이미 해당 내용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이번에도 대원 길드는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이렇게 나온다고? 풉!”
방금까지 화를 내던 기원이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화내다가 또 웃는 모습을 누가 본다면 미친놈이라 할 것이다.
“큭큭큭!”
기원은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었다. 그 기괴함에 그의 사무실에 함께 있던 비서실장과 대원길드의 팀장, 그리고 연구실장등은 불안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후. 나가 봐.”
기원의 말에 다들 그저 고개만 살짝 숙이고는 밖으로 빠져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홀로 남자 기원이 소파에 몸을 묻으며 다시 한 번 욕설을 흘렸다.
“거지같군.”
욕설을 내뱉는 그의 입가는 쓴웃음이 매달려 있었다.
그는 품에서 보랏빛 보석을 꺼내들었다.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파삭!
그대로 그의 손에서 박살이 났다. 보석처럼 보였지만 다이아몬드와 같은 단단함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힘을 주자 마치 기다렸듯 산산이 부서지는 것을 보니 말이다.
그와 동시에 보랏빛 기운이 그의 코를 향해 흘러들어갔다.
순간 흠칫하고 놀랐지만, 기원은 의연하게 그 기운을 받아들였다.
살짝 놀랐던 것과 달리 별다른 고통이나 변화는 느끼지 못했다.
물론 달라진 것이라면 있었다.
-생각 외로 오래 걸렸군. 사실 이제는 다른 친구를 찾아봐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지.
머릿속으로 울려오는 그때 그 목소리.
주변을 둘러봤지만, 파리나 혹은 그와 비슷한 것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자네가 부순 그것. 그게 매개체이니 주변을 둘러볼 필요는 없다네.
마치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음성에 기원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너무 그런 표정을 짓지는 말게. 그저 자네의 주변을 살필 수 있게 되었을 뿐이야. 당장은 그게 전부지.
-그런가?
-그래. 사실 난 대화를 좋아한다네. 대화 없이 어떻게 상대를 설득하겠는가.
그 말에 기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마켈그로이언이라 했지?
-기억하는군.
-상대를 기억하는 건 거래의 기본이겠지. 또 거래를 하려면 내용을 들어야 할 필요가 있겠지?
-맞아. 당연한 일이지.
-저번에 하던 이야기 계속했으면 좋겠어.
기원이 침착한 표정으로 본론을 밝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자네를 내 일족으로 받아들이고 싶군. 당장은 그 차원. 지구? 그곳을 발 아래로 꿇리고 힘을 흡수하는 데에 있어 도움이 돼 주었으면 좋겠고 말이야.
결국 예상했던 제의다.
‘이게 매국노란 건가?’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고작 나라 팔아먹는 것 따위와는 다르지.’
기원의 한쪽 입가가 끌려 올라갔다.
비릿한 미소.
-당신의 일족이 된다는 것이 어떤 이득이 있는지 자세히 알고 싶군. 그냥 개처럼 살아간다면 차라리 뒤질 때까지 싸워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후회하지 않겠나?
-내 모든 것을 건 거래야. 따지고 보면 뭘 선택해도 후회는 남겠지. 그렇다면 최대한 이득이 돼야 그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 수 있지 않겠나?
기원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핫! 정복과 싸움밖에 모르던 놈들만 주변에 있어서였는지 몰라도 이런 대화는 참 즐겁군. 난 그대가 더욱 욕심이 나는걸?
-욕심이 난다면 베팅을 하라고. 참고로 그쪽 설명대로라면 충분히 유리할지 모르지만, 내게 손을 뻗은 것을 보면 또 모르겠군.
기원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이 웃음기 있는 목소리로 답했다.
-그대에게 손을 뻗은 이유가 우리가 이곳을 정복하지 못할 것 같아서일 것 같은가?
그 웃음기 섞인 질문에 기원이 무표정으로 대꾸했다.
-글쎄. 그것보단 내게 제의를 한 이유가 더 궁금해서 말이지.
-뭐, 그렇게 말한다면야…… 욕심 때문이라고 하지.
-욕심?
-이래봬도 바닥부터 군주의 자리까지 올라온 몸이라고. 나름 입지전적이라는 거지.
-대충 알겠군. 입지전적이란 건 때론 주변에서 버러지처럼 생각할 수도 있거든. 고귀하다면 고귀한 혈통의 입장에선 더더욱.
-이런 기분이 나빠지려 하는데?
-현실을 말한 거지. 그래서 더욱 압도적인 힘을 탐하게 되는 거니까.
-뭐, 틀린 말은 아니니 인정하지. 이 또한 내 장점이니까.
기원의 입가가 꿈틀거리며 다시 올라갔다.
-어찌 되었든 군주의 위에 있지만, 이 자리에도 우열은 있기 마련이라는 거지. 난 그곳에서 최소한 가장 높은 자리까지는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이고.
-유일한 지배자를 노리는 건가?
-이런 그건 불가능하다고. 이미 마계의 왕이 탄생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대들이 이길 수 없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니까.
-차이가 큰가?
기원의 질문에 마켈그로이언이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크지. 하지만 나머지는 출발선이 같다는 거지. 거기서 내가 나아가기 위해 그대를 내가 탐을 내는 것이고.
그 말을 듣던 기원이 묵묵히 생각에 잠겼다.
한참을 고민하고 또 고민하던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해야 할 일. 그로 인해 내가 받을 이익과 대우. 그게 많이 궁금해지는군.
기원의 질문에 마켈그로이언의 음성에 진중함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럼 이제부터 조율을 해 보지.
그들의 대화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나 마찬가지였다.
미래를 위한 베팅이기 때문이었다.
* * *
“백 벌인가…….”
강문호 중령이 아쉬운 얼굴로 중얼거렸다.
그 난리를 치면서 만들어 낸 마갑주의 숫자다.
그 옆에는 주먹만 한 크기의 붉은 핏빛의 보석들이 쌓여 있었다.
-운용을 생각한다면 이게 최적이오. 살아 있는 생명체에게서 직접 뽑아내는 것에 비하면 생명력이 떨어지기에…….
헤게루이안이 조심스럽게 말끝을 흐렸다.
“탓하는 게 아닙니다. 이만한 게 어디겠습니까.”
이 말이 밖으로 나가면 여러모로 문제가 될 수 있었다. 폐기 직전의 혈액에도 인권 문제가 붙을 수 있는 논란거리였다.
그렇기에 이것을 만들고 난 뒤에는 이것의 제작 혹은 존재에 대해서는 최대한 비밀을 지켜볼 생각이었다.
문제는 그 와중에 이미 의심의 눈초리만 잔뜩 산 상황이지만 말이다.
“일단 저쪽에 스무 벌이 그 뭐지? 출력이 떨어진다는 거지요?”
-주문한 대로 출력이 떨어지는 것들을 만들었소. 다만 아쉬운 것은 좀 더 좋은 품질의 재료만 있거나 숫자를 줄일 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이지만.
그의 말에 강 중령은 쓴 웃음을 머금었다.
마갑의 출력이 높기만 한다면야 좋다. 하지만 10의 힘을 낼 수 있는 것을 한 벌 만들 분량이라면 5의 힘을 낼 수 있는 것을 서너 개를 만들 수 있었다.
즉 가성비가 안 나온다는 말이었다.
“일단 이걸로 대충 눈 가리고 아웅은 해야겠지?”
강 중령이 한쪽의 질이 떨어지는 스무 벌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중국과 미국 쪽에 팔 것들이었다.
아무래도 그들이 가장 목소리가 커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적당한 성능의 것을 분배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되면 알아서 그들도 커버를 쳐 줄 것이다.
또 물밑으로 거래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시일이 지나면 바보가 아닌 이상 이것을 만드는 데에는 인간의 혈액이 필요하다는 것을 눈치챌 것이고 그렇다면 알아서 재료를 가져다 바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쪽에선 그것을 이용해 이쪽이 필요한 수량을 만들면서도 그쪽에게 적당히 나눠 줄 수 있으니까.
그쪽 입장에선 그곳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질이 떨어진다고는 하지만, 없던 게 생긴 거다.
배부른 소리를 할 상황이 아닌 것이다.
최소한 이것을 착용하면 지금 내는 힘의 두 배 가까이는 낼 수 있었고, 또 충격량의 흡수도 적지 않게 받아낼 수 있었다.
적어도 한 사람이 서너 명의 몫을 하게 된다는 의미다.
그것만 해도 어딘가.
거기다가 이것을 만들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이다.
그들 입장에서는 이게 같은 성능인지 떨어지는 성능인지 당장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술도 없고 말이다.
시일이 지나 데이터가 쌓이면 차이를 알 수 있겠지만, 원래 독점판매가 가능한 무기류는 수출할 때 다운그레이드 하는 거다.
“이겁니까?”
그때 김창진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쪽이 배터리군요?”
창진이 주먹만 한 붉은 보석을 가리켰다.
중간 중간 점검을 왔던 창진이기에 대충 활용법과 구성을 알고 있었다.
“예.”
“그럼 물건은 어떤 겁니까?”
“저쪽 겁니다.”
“외관상으로 차이는 없어 보이는데.”
“외관으로 차이가 나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다만 힘을 쓸 때 때깔이 좀 다르다고 해야 하나.”
“아, 시험운용은 저도 봐서 알기는 합니다. 어쩌겠습니까. 우겨야지.”
창진이 웃으며 대꾸하자 강 중령도 마주 웃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이 아이디어를 낸 것은 김창진이었다.
좀 떨어지는 거 던져 주고 공범 만들자.
단순하지만, 나름 효율적인 의견이었다.
“가져다 팔 겁니까?”
강 중령의 질문에 창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일부는 선물로 주고 일부는 뭐 팔아야겠죠.”
“전부 연구한답시고 뜯어나 보지 않으면 다행이겠습니다.”
“그건 우리가 알바가 아니겠지요?”
강 중령의 걱정 섞인 질문에 창진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 * *
장웨이는 눈앞에 놓인 상자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상자는 이미 개봉되어 내용물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갑옷?”
갑주하나가 있었고 그 위에는 QR코드가 찍혀 있었다.
“대체 뭔지 모르겠네.”
장웨이가 인상을 찌푸리다가 상자에 동봉된 설명대로 QR코드를 스마트 폰으로 찍었다.
그러자 링크가 연결되더니 익숙한 누군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안녕들 하십니까? 오늘 이 제품의 시연을 맡은 빈이라고 합니다!]
“…….”
마치 쇼 호스트와 같은 텐션으로 갑주를 들고 다짜고짜 설명을 시작하는 빈의 모습이 스마트폰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그 꼴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던 장웨이의 표정이 놀람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게?”
그 안에는 놀라운 모습이 보였다.
마물을 상대로 밀리던 이가 이것을 착용하더니 압도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심지어 고빈을 제외하고는 C급의 마물을 상대한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것을 착용한 소환자가 C급 마물 둘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시간이 흐르고 둘을 제압하고야 말았다.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B급까지 상대가 가능하다는 점! 메모하시고, 이거 하나만은 잊지 맙시다.]
빈이 주먹만 한 보석을 들어올리며 말을 이어나갔다.
[요고? 소모품이니까 아껴 쓰시되, 제때 갈아주지 않으면 그냥 가죽갑옷에 불과하다는 점! 잊지 마시길 바라며 전 이만 뿅!]
의미 없는 개그와 함께 영상은 끝이 났다.
장웨이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갑주를 몸에 걸쳐 보았다.
그리고 설명대로 운용을 시작하자 온몸으로 힘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장웨이가 인상을 찌푸렸다.
힘이 넘치면서 불편함이 생겼거나 한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거 너무 좋잖아?”
이게 가져올 파장을 너무 잘 알기에 얼굴을 구겼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