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4화 의심하는 자들
* * *
“오늘도 몇 잡았다면서요?”
고빈의 질문에 김창진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뭐, 그렇지. 바보가 아닌 이상 뭐라도 좀 파 보려 접근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지금 그들이 언급한 것은 바로 중국과 미국 그리고 일본이나 여타 다른 나라들에서 몰려든 정보원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쪽에서 마물의 식량으로 둘러대었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다들 여러 각도로 정보원들을 밀어넣고 있는 상황이었다.
“기사도 났던데. 흡혈귀설부터 좀비설…….”
“이미 추적은 해 놨지. 돈만 주면 떠들어댈 개인방송이나 그런 언론들이 많으니까. 또, 얼마전까지 물고 뜯고 하던 언론들도 이번에는 이쪽으로 몰려든 거고.”
“와, 기사 보니까 꼭 우리나라 연구소에서 좀비사태와 같은 세기말 현상이 벌어질 것처럼 써놨던데. 괜찮아요? 거기 기사들 보니까 각 국의 연구원들로 구성된 사찰을 받아야 한다고도 하던데요?”
“역으로 사찰 받고 있지. 그쪽들. 계좌도 다 털어서 말이야.”
“그것도 말 많던데요? 언론 탄압이라고.”
“솔직히 탄압이긴 하지. 돈 먹은 인간들만 탄압하는 거지만.”
창진의 말에 빈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어차피 시간문제긴 하지만 참 힘드시겠어요.”
“뭐. 지금은 존버가 답이라.”
창진이 웃으며 답하자 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은 이게 맞았다.
이쪽에서 쓸 수 있는 수량을 먼저 확보하는 게 답이다.
만약 이 사실이 사전에 노출되면 각국에서 날아오는 오만가지 로비와 혈액을 구하는 일에 더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그런데 장군님은?”
창진의 질문에 빈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뭐, 계속 방 안에만 계시네요.”
“또, 그 영상 보시는 건가?”
“네.”
빈이 대답하자 창진이 씁쓰레한 미소를 머금으며 중얼거렸다.
“많이 그리우신가 보군.”
창진의 말에 빈이 애써 웃으며 답했다.
“그런가 봐요.”
마치 영화관 같은 분위기였다.
커다란 화면에는 영화 같은 영상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앞에 을지부루와 세인 그리고 송가은 작가와 나머지 판도라 멤버들이 앉아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화면을 향하고 있었다.
수많은 기마들이 달렸다. 그들을 이끄는 이가 있었다.
영상을 보면서 그 누구 하나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지켜볼 뿐이었다.
그들의 시선 속에 공통점은 하나였다.
그리움.
그렇게 또 한참을 지나 영상이 끝이 나자 다들 아쉬운 얼굴을 했다.
“좋갔구나야.”
부루가 한쪽 입가를 올리며 중얼거렸다.
그가 부러워하는 이는 다름 아닌 우루였다.
멋들어지게 꾸며진 영상을 보며 부루는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전투가 소강상태로 변하자 무한 다시보기를 하며 그들의 영상에 푹 빠진 부루였다.
심지어 비공개처리 되었던 서울 테러 영상까지도 김창진이 가져다 준 덕에 나름 돌려가며 주구장창 보고 또 보았다.
“많이 보고 싶나 봐요.”
세인이 던진 질문에 부루가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두말함 잔소리 아니갔습네까?”
“그렇죠?”
“길티요.”
“저도 그래요.”
세인의 대답에 부루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면 볼수록 기억은 흐려지지 않고 각인되어 가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대답 없는 이의 모습을 보고 또 보는 그들이었다.
* * *
-신기하군요.
헤게루이안의 말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가요?”
한바탕 구르다가 온 고빈이 땀을 닦으며 묻자 헤게루이안이 시선을 묵갑귀마대원과 가우리의 병력들에게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저들 말입니다.
“파편답지 않은 거?”
-그게 아닙니다. 상당히 강한 게 신기합니다.
그들은 지금 신컨길드와 전신길드 그리고 각지에서 선별된 소환자들과 드잡이 질을 하고 있었다.
말이 드잡이 질이지 그들이 몽둥이를 들고 쫓으면 나머지는 살기 위해 버둥거리는 정도였다.
“으아아!”
이곳에서는 사람이 비명을 내지르며 날아다니는 것이 일상이었다. 딱히 그걸 보고 놀라는 이들은 없었다.
-평상시에는 저렇게까지 무력이 증폭되는 법이 없으니까요.
“그건 뭔 소리래요?”
빈이 궁금한 듯 되묻자 마족 바법사인 헤게루이안이 천천히 설명을 이어나갔다.
-말 그대롭니다. 별의 파편은 저항할 대상이 있을 때에만 그 힘이 증폭됩니다.
“그야…….”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기는 했다. 마물들이나 마계의 존재들의 힘은 파괴적이었다.
대형마물의 경우 건물을 종이상자 다루듯 부수는 괴력은 기본이었다.
심지어 운동에너지의 집약체인 레일건마저 퉁겨내는 괴물이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강림자는 그런 괴물을 상대한다.
다만 평소의 실험에서는 그 정도까지의 괴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점으로 보아 그와 비슷한 학설이 있었다.
따지면 부루도 비슷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헤게루이안은 그렇다 하더라도 그들 자체의 전투력이 상상 이상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 세상의 법칙을 한 번 벗어난 존재이기에 그렇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구나.”
세삼 저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에 빈이 감탄을 흘렸다.
그때 구은태 박사가 초췌한 얼굴로 다가왔다.
“지금 여기서 뭣하는 게요.”
-잠시 휴식을…….
“쉴 시간이 어디 있소.”
구 박사의 말에 헤게루이안의 얼굴이 똥빛으로 변했다.
-부족한 마력 보충도 할 겸, 머리도 식힐 겸……. 아니 대체 당신들은 쉬지도 않소?
헤게루이안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을 하자 빈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뭐, 여기다 가져다 붙일 말은 아니긴 한데……우리나라 앞에 헬이라는 단어가 붙어요.”
-하아…….
“그러려니 하세요.”
빈의 말에 헤게루이안이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그놈의 빨리 빨리…….
중얼거리며 멀어지는 헤게루이안을 보며 빈이 혀를 찼다.
“외국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들 중 하나가 빨리빨리라더니만…….”
축 쳐져서 끌려가는 헤게루이안을 보며 빈은 그저 명복을 빌 뿐이었다.
-크롸롸롸롸!
물론 헤게루이안만 시달리는 건 아니었다.
십여 미터 이상의 신장을 자랑하는 카르탈마니어가 거대화한 몸을 일으켰다.
“죠져!”
“가즈아!”
그런 그를 향해 묵갑귀마대원들이 몽둥이를 들고 달려들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빈이 한숨을 내쉬었다.
“포기할 때도 되었는데.”
빠악! 빡!
-크어억!
개판이었다.
카르탈마니어에게 맞아 날아가는 가우리 병사들 그 와중에도 몽둥이를 날리는 이들…….
항상 훈련이 끝날 때쯤 찾아오는 카르탈마니어와 그들의 대결이었다.
자신이 굴복한 것은 오직 군주뿐이라던 카르탈마니어였기에 항상 이 시간이면 서로 간의 자존심싸움이 벌어진다.
물론 그 자존심싸움이 벌어지는 이유는 하나다.
“넘어간다아!”
“조져!”
“다리부터 분질러 버려!”
-커어억! 비겁하다! 거긴 아직 덜 아물었…….
사타구니를 가리며 비명을 내지르는 카르탈마니어를 보며 빈은 인상을 찌푸렸다.
“너무하네. 남자끼리.”
오늘도 이렇게 카르탈마니어는 몰매를 맞으며 무릎을 꿇었다.
* * *
오기원은 손바닥에 놓여있는 보랏빛 보석을 바라보았다.
보석이라기에는 좀 투박한 면도 있지만…….
그것을 감싸 쥐었던 오기원은 순간 화들짝 놀랐다.
“씨파.”
순간 자신도 모르게 깰 뻔했던 것이다.
만약 이것을 부수게 되면 왠지 되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는 것일 것 같았다.
그때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있었다.
“들어와.”
문이 열리고 비서실장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혈액 관련 보고입니다.”
다량의 혈액이 한국으로 집중된 사실은 오기원에게도 의문이었다.
문제는 정부는 그에게 그와 관련된 사실은 알려 주지 않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직접 알아보고 있던 중이었다.
“뭐 좀 알아낸 거 있나?”
“일단 알아낸 것은 그게 마물의 식량 따위가 아니라는 겁니다.”
비서실장의 보고에 기원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그럼?”
“일단 외부에는 식량처럼 처리하는 걸로 보이는데 우리 쪽 인원 하나가 폐기를 위한 혈액팩을 입수했다고 합니다.”
“폐기를 했다고?”
뭔가 이상했다.
식사 대용이라고 끌어 모은 것이 폐기 예정이거나 앞둔 것들이었다.
그런데 폐기를 위한 혈액팩이란 말은 또 무언가.
“우리 연구원이 그것을 확인했는데, 분명 혈액팩이긴 한데 마치 뭔가 수분만 남기고 알맹이만 빠진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건 무슨 말이지?”
“처음에는 혈액팩에 물을 담아 놓은 것인 줄 알았다고 합니다. 비닐백에 투명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이어지는 보고에 기원의 이마가 점점 찌푸려졌다.
보고에 의하면 혈액의 전성분 중 일부가 그 투명한 액체에서 발견이 되었다고 했다.
“뭔지 알 수는 없지만, 확실히 먹이로 소모하는 건 아닐지 모릅니다. 뭐 공상과학 영화처럼 기운만 흡수해 가는 그런 괴물이 있다면 모를까…….”
“그런 놈들이 있었다면 우리가 모를 리 없지.”
“예. 일단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에서도 그런 종류의 마물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인육을 뜯어먹는 마물은 있었다.
또 체액을 빨아먹는 종류도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일부 기운만 흡수하는 종류의 마물은 들은 적이 없었다.
지금 세계의 연구소 중에서 대원길드만큼 많은 종류의 마물에 관하여 연구가 이루어진 곳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새로운 상품을 위해 세계를 용병처럼 돌아다니며 샘플을 채취한 곳이 바로 대원길드였으니까.
그것 때문에 이번 혈액 사건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졌던 것이다. 아마 다른 국가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세계의 첩보원들의 요람처럼 되어 간다는 보고도 있었으니까 말이다.
“어쩔까요?”
“…….”
고민하던 기원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지금부터 확인해 봐야지.”
기원이 전화를 걸었다.
* * *
김창진이 한숨을 내쉬며 통화를 끊었다.
“이걸 아군이라고 봐야 하나…….”
위쪽에서 온 연락이었다.
마갑은 다행히 성공적으로 생산해 내었다.
다만 시일이 많이 지난 혈액이었기에 마갑의 생산량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생피를 뽑을 수는 없지 않은가.
지금도 후방의 부대에서는 군인들에게서 피를 뽑아내고 있었다. 외출증과 교환을 해 주면서 말이다.
그뿐 아니라 감옥의 제소자들을 대상으로도 헌혈을 독려하고 있었다.
헌혈을 한 제소자들에게는 특식 등을 제공하는 식으로 말이다.
나름 신선한 피였기에 효율은 올라갔지만, 결과적으로 한 사람에게 얻을 수 있는 혈액의 양은 정해져 있었다.
그런 와중에 대원길드에게서 위쪽으로 연락이 왔던 모양이었다.
지금 우선적으로 지원 대상으로 삼은 곳은 전신길드와 신컨길드였다.
대원길드는 아직 그 대상이 되지 못했다.
이미 이전에 그들이 한 행동으로 인해 국익에 저해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거기에 밀접하지는 않지만, 존 버튼 전 미 안보 보좌관과도 연락을 한 기록을 찾아낸 뒤였기에 더욱 믿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