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3화 미국이 달라졌어요!
* * *
“이것들이 갑자기 왜이래?”
구은태 박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방금 통화가 끊어진 전화기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욕도 안 하시고.”
“커흠. 누가 보면 내가 욕쟁인 줄 알겠네.”
강문호 중령의 질문에 구 박사가 헛기침을 내며 답했다.
“온갓 짐승 새끼부터 씨로 시작 되는 단어는 죄 가져다 쓰셨잖습니까. 박사님이시라 그런지 겹치는 욕도 없던데요?”
강 중령이 웃으며 대꾸하자 구 박사가 콧잔등을 살짝 찡긋하며 답했다.
“욕 처먹을 짓을 하니까.”
“방금은 안 했나 봅니다.”
“피를 보낸다더만.”
“네?”
“연구 협조를 위해서 피를 보낸다더라고.”
구 박사의 말에 강 중령이 어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정부쪽을 통하지 않고 직접 말입니까? 뭐 좀 달라고 합니까?”
“별 말 안 하더군.”
그때 김창진이 연구실을 방문했다.
“박사님 혹시?”
“미국?”
“예. 우리 쪽에도 연락이 왔었어서…….”
창진의 방문에 구 박사는 방금 통화 내용을 전달해 주었다.
“이거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뭐가 또 있나?”
“존 버튼 안보 보좌관이 경질됐다고 합니다.”
“그 떽떽 거리던 놈?”
“예.”
“큼.”
구 박사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게 어때서라는 표정을 짓자 창진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화해의 제스춰라 보시면 됩니다. 사실 존 버튼 안보 보좌관은 좀 강성이었던 이었거든요.”
“결국 도장은 미 대통령이 찍은 것 아닌가.”
“그렇긴 합니다만, 어찌 되었든 우린 아무런 것도 문제삼지 않겠다라는 의사를 밝힌 거라 봅니다. 그리고 피 같은 경우도…….”
“뭔가 알아챈 건가?”
“아니요.”
구 박사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자 창진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중국 쪽을 통해 우리가 혈액을 가져온다는 정보쯤은 그들도 파악 가능하니까. 우리가 어디에 쓸지는 모르겠지만, 먼저 알아서 돕겠다는 겁니다.”
“흐음.”
“당장 지금 상황에서 모든 새로운 것은 우리를 통해 만들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건 그렇지.”
결국 백기를 든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추가 외신이 있을 겁니다.”
“추가라니?”
추가라는 말에 창진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버튼 보좌관이 우리쪽 언론에 몇 가지 사실들을 흘리며 분탕질을 친 것을 바로 잡겠다는 겁니다.”
“지랄도 풍년일세.”
“없는 것보단 났죠. 최고의 인력을 동원해서 헐리웃 영화처럼 만들어 보냈던데요?”
“뭘 만들어?”
“당시 우리 기동대원들과 소환자 강림자들의 활약 영상 말입니다. 끝에는 우리는 하나, 영원한 동맹? 뭐 이런 느낌으로 미군과 우리 군이 함께 환호 지르는 그림으로 만들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허허…….”
구 박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웃음을 흘렸다.
* * *
“역시 화면 빨은 내가 났디.”
을지부루가 팔짱을 끼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의 눈 앞에는 벌써 몇 번째일지 모르는 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바로 미국 발 국뽕 다큐였다.
물론 이 국뽕다큐란 말은 한국 사람들이 붙인 것이다.
한국이 아닌 해외에서 이토록 띄워주기를 하니 다들 이걸 보고 국뽕 다큐라 부른 것이다.
뭐, 그런 것 치고 폄하하는 이들은 없었고, 반대로 오히려 경계의 눈을 보내는 이들은 좀 많았다.
뭘 얼마나 더 뜯어 처먹을라고 그러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지금 한국 강림자들이 점령했던 탑에 대한 진실이 나돌아 다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영토를 차지하려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며 저쪽 편을 들어 주던 이들의 입이 가장 먼저 닫혔다.
결과적으로 땅을 차지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마계의 진출로를 아예 닫은 뒤 회수하여 막으려 했음이라는 근거 있는 이야기가 힘을 얻었던 것이다.
물론 그 근거는 고빈이 풀어놓은 썰이다.
거기에 직접 뛰었던 빈이 인방에서 푼 썰이니 당연히 힘을 얻을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야 항의가 있었지만, 당장 고빈 자체가 유니크한 존재였기에 한계가 있었다.
또, 정부도 욕을 얻어먹고 있었기에 빈의 발언에 침묵했다.
“빈이가 입구에 포위 됐다는데요?”
그때 천유화가 들어와 입을 열자 부루가 미간을 찌푸렸다.
“포위? 기거이 뭔 소리간?”
고빈은 외치고 있었다.
“형님들 보이죠? 보이죠? 야, 이거 이래도 됩니까!”
“고빈씨! 국민에게도 진실을 알 권리가…….”
“우리 형님들에게도 진실을 알 권리가 있거든요? 오! 쭈차뿌까 형님 후원 감삼다!”
“아니, 지금 동의없이 저를 촬영하시면…….”
“너님은 내 동의 받고 지금 촬영하시는 거고요?”
지금 연구소 입구에서는 수많은 기자들과 빈이 대치중이었다.
그런데 웃긴 건 카메라를 동원해서 빈을 털기 위해 출동한 그들에게 빈도 마찬가지로 라이브 방송을 통해 대응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이크를 밀어 넣으며 질문이라도 하려고 하면 빈이 재빨리 라이브 방송장비로 그 기자의 얼굴을 함께 담았던 것이다.
이들은 주로 그동안 이들에 대해 불리한 기사를 써서 융단 폭격했던 기자들이었다.
일이 역전되어가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은 결코 굴복하지 않았다.
여전히 그들의 방송을 믿는 지지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여기서 밀리게 된다면 뒤는 없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다.
“인플루언서로써의 영향력을 무기로 기자들에게 오히려 폭력적인 상황을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작정한 기자의 질문에 빈이 대답했다.
“네, 맞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요.”
“그, 네?”
“맞다고요. 막말로 나쯤 되니까 이러지 다른 사람이라면 이거 먹혔겠어요? 그러니 님 뭣 되 보라고 맞짱 뜨는 거 맞아요.”
“지, 지금 그 대답은 법적으로 문제가…….”
“고소하셈. 이참에 미국으로 확 떠버릴라니까. 그쪽에서 나 받아 준다던데. 물어볼래요?”
그 말을 던진 빈이 대답을 줄 기회도 주지 않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심지어 화상 통화였다.
-오! 미스터 고……왔 더 뻑!
빈의 화상통화에 반갑게 인사를 하던 미국 남자가 갑자기 화들짝 놀라며 욕설을 내뱉었다.
“스미스 아저씨 이거 실시간이라니까요. 욕하면 영정 먹어요.”
-아, 그…….
“대통령 아저씨가 나 미국 가면 받아준다고 했죠?”
빈의 말에 영상에 보이는 장면을 의식한 스미스 국장이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미스터 고와 제너럴 을지 등은 미국의 영웅입니다. 오신다면야 언제든 환영합니다. 물론 한국 정부가 절대 놓아 줄 리는 없겠지만 말입니다.
“기자 아저씨 들었죠?”
“이, 이 남자가 누구?”
“뒤로 빠져, 멍청아! 미 정보국장이잖아!”
그제야 스미스 국장의 얼굴을 알아본 기자들이 난리가 났다.
“이 사람들이 막 나 못살게 굴어서…….”
-원하시면 미국에서 소송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미국의 영웅들께 명예 시민권을 드리기로 결정했으니까요. 소송은 이쪽이 천국일 겁니다. 변호인단은 걱정 마시길.
“오! 진짜요? 그럼 여기…….”
그 말을 듣고 난 빈이 라이브 카메라를 돌리자 화면에 걸리는 이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 광경을 보는 채팅창은 눈으로 보는 게 불가능할 정도로 글들이 올라가고 있었고, 후원이 쏟아지고 있었다.
-미스터 고. 그럼 좋은 이야기 좀…….
“흐흐흐. 네. 언제든 또 연락하면 받아주시고요.”
-돈 워리.
빈의 말에 스미스 국장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때 입구에 문이 열리며 을지부루와 천유화 등이 나타났다. 전부 하나같이 무기를 들고 있었다.
“응? 뭐에요?”
“다 어데갔네?”
“도망 갔죠.”
부루의 질문에 빈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대답했다.
“놓쳤다는 거간?”
“네? 아니 도망갔다니까요?”
“니런 죄 살려 보낸 거구만!”
“…….”
빈은 대부를 들고 주변을 둘러보는 부루를 보며 뒤따라 나온 유화를 바라보았다.
“뭘로 알고 오신 거에요?”
“포위됐다고.”
유화가 머쓱한 표정으로 대답했고, 그 뒤쪽에서 서준모 경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타났다.
“난 기자들에게 포위됐다고 했지.”
“헐 주어 하나 빠지니 이런 결과가…….”
부루를 보며 빈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만약 빈이 계속 포위된 상황이었으면 대부가 먼저 날아들었을지도 몰랐다.
결론적으로 빈이 많은 이들을 살린 것이다. 그리고 이 또한 라이브 방송으로 전파되어가고 있었다.
* * *
텔레비전을 보던 오기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빌어먹을!”
얼마 전까지 자신과 대원길드에 관한 내용으로 가득했던 편성들이 싹 자취를 감춘 것이다.
“집지키는 개가 됐군.”
그들은 전 세계적인 위기를 이겨낸 영웅으로 취급되고 있었다.
물론 대원길드의 이야기도 있기는 했다.
대원길드가 있기에 그들이 마음 놓고 세계의 위기를 막기 위해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이라는 보도가 연이었다.
항상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담기 위해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도 자리를 감췄다.
거기에 대원길드의 편을 들던 기자들 역시 자리에 없었다.
마치 자리보전을 위해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듯 싹다 자리를 뜬 것이다.
이유는 다양했다.
하지만, 대원길드 편을 들기 위해 신나게 씹어대던 이들의 뒷배가 알고 보니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린 것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그도 듣는 귀가 있어 낮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었던 것이다.
초반에는 그래도 그의 말을 듣고 고빈을 마치 나라를 버리고 떠나려는 매국노로 기획 기사를 받아 적었던 곳들도 있었지만, 그곳들이 가장 먼저 집중포화를 맞았다.
정말로 말뿐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미국과 연계된 로펌에서 해당 언론으로 연락이 갔던 것이다.
결국 그 대응에 대한 소문은 더욱 빨리 퍼져나갔고, 저녁이 된 지금은 생존을 위한 언론인들의 처절한 몸부림으로 기사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인터넷 기사들을 찾아보던 비서실장이 어이없다는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아예 닳아 없어질 거 같습니다.”
“뭐가?”
“하도 물고 빨아서 말입니다.”
적나라한 비유였지만, 그보다도 더 어울리는 것도 없었다.
“존 버튼은?”
“연결은 되지 않았지만, 알아 본 바에 의하면 해임된 게 맞다고 합니다.”
“빌어먹을! 그걸 왜 안 알린 거지?”
“그야…….”
어차피 그는 이쪽과 밀접한 사이도 아니었다.
그저 상황이 맞을 듯 해서 정보를 주고받은 그 정도 사이가 전부였다.
당연히 자기가 잘렸다고 보고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자랑할 일도 아니고 말이다.
기원은 이를 악물며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잠깐일 뿐입니다!”
몸을 돌려 들어가는 그를 향해 비서실장이 위로삼아 외쳤지만 기원은 그저 방문을 소리나게 닫아 버릴 뿐이었다.
“후우. 주목이야 받지 못하게 됐지만…….”
그는 이정도로 반응할 만한 일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결과적으로 빛이 좀 바래긴 했지만, 기존 대원길드의 위치와 지금은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차츰 영향력을 더 늘려나가면 될 일이라는 판단을 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