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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50화 (150/305)

제150화 데자뷰

미국의 상황을 전해 들은 헤게루이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가능성은 있었습니다만…… 왜 굳이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탑의 효용가치가 낮다는 건 아니었다.

기존 침식지와 다르게 탑에서는 아예 오가는 게이트를 열어서 병력을 부릴 수 있으니까.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마계에서 마력을 쏟아 붓는 것만이 아니라 탑과 연결된 침식지들에게서 마력을 회수해 와야 한다.

그 말은 곧, 안 그래도 줄어들고 있는 침식지들이 다 회복이 된다는 의미였다.

거기에 일단 탑을 세우면 더는 별개의 침식지를 열어 침식지를 늘려나가는 행동을 할 수가 없다.

유지는 가능하지만 늘려가는 것은 탑을 중심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균열을 여는 것도 침식지의 규모 혹은 농도에 비례한다.

넓기만 하다고 좋은 건 아니다.

침식지의 농도가 높을수록 높은 격을 가진 마물이나 마족이 내려갈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침식지들은 농도가 낮아지며 규모가 줄어들던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탑을 활성화 시키면 나머지 침식지는 유명무실하게 될 수 있었다.

그럴 바에야 줄어들고 있는 침식지에 균열을 만들어 다시 장악을 시작하는 게 더 전술적으로 의미가 있었다.

물론 마찬가지로 복구하는 작업부터 쉽지는 않겠지만, 동시 다발적으로 침식균열을 만들면서 장악해 나가는 것이 정답이었다.

탑을 장악하는 순간 다른 곳으로 나올 수 있는 마물의 숫자나 질은 눈에 띄게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탑이 아무리 장점이 있다하더라도 전선을 하나로 축소시킨다면 확장이 오히려 더딜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걸 알면서 왜?”

헤게루이안의 설명을 들은 일행들의 머릿속에 든 생각이었다.

왜 굳이 그런 짓을 하는가다.

전술적으로 유리함이 없는 선택이니까.

일행들의 의문을 받은 헤게루이안과 카르탈마니어가 답했다.

-그건 저도 잘…… 마법이 전문 분야라…….

-전, 전투가 전문분야입니다.

결국 뾰족한 대답은 없었다.

* * *

전창걸과 판도라 멤버는 오랜만에 얼굴을 본 일행들보다 그들이 보여 준 마나석과 갑주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거 아냐? 짭 아이언 맨 그거.”

제이의 말에 레이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는 거 같은데? 웅삼 아저씨가 저거 입고, 진천 아저씨에게 용감하게 덤볐다가…….”

“개쳐발리셨지.”

레이니의 말을 웅삼이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쳐발렸다는 말에는 광호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찔거렸다. 그런 광호를 보며 승배가 키득거렸다.

“그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혹은, 아니면 파블로스의 개 그런 반응?”

“닥쳣!”

광호가 발끈했다.

그때 부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거이 뭐라고 입고 덤볐단 거이네?”

“걸치고 뭐 힘주면 힘이 팍 쎄진다던데요?”

레이니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답변에 다들 멀뚱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용감하게 나선 이가 있었다.

“해 보면 알지.”

그건 바로 고빈이었다.

“그게 뭔 줄 알고!”

옆에서 놀라는 강문호 중령의 말은 한 귀로 흘리며 빈은 그대로 갑주를 걸쳤다.

나머지 인원들은 오히려 궁금하다는 시선으로, 그리고 나머지 반은 빈은 못 느꼈겠지만, 실험체를 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특히 가장 말렸어야 할 구은태 박사의 눈빛이 그랬다.

빠르게 조끼형태의 갑주를 걸친 빈이 주먹을 불끈 쥐며 외쳤다.

“변신!”

중이병스러운 외침을 내뱉는 빈을 보며 한쪽에 있던 서준모 경위가 혀를 차며 말했다.

“왜? 아이언 맨도 외치지.”

“아이언 맨!”

“……시킨다고 하냐?”

그걸 또 따라 외치는 빈을 보며 서 경위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때였다.

위이이잉!

갑자기 갑주에 빛이 서리기 시작한 것이다.

“어엇!”

“뭐, 뭐야?”

순간 다들 놀란 눈으로 빈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실시간으로 그 갑주가 중세 기사들의 것과 비슷하게 보이는 전신갑주로 변해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헐?”

가장 놀란 것은 고빈이었다.

“이거?”

앞에 외친 변신이니 아이언맨이니 하던 말은 그냥 형식상이었다. 하지만, 복장을 걸친 것은 장난삼아 한 것이 아니었다.

마물을 잡듯이 집중하는 느낌으로 힘을 뽑아 올렸다.

그러자 갑자기 빛과 함께 힘이 솟구치기 시작한 것이다.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에는 안면가리개까지 모두 착용이 된 상태였다.

빈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건틀렛이 끼워진 손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허공에 팔을 휘둘러 보았다.

파아앙!

영화에서나 효과음으로 쓸 법한 파공성이 울려 퍼졌다.

“우와아!”

“깜짝이야!”

주변 사람들의 놀란 음성이 울려 퍼졌다. 빈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죽이네, 이거.”

고빈의 변신에 놀란 건 이것을 가까이서 봐 왔던 이승배와 광호였다.

“저거?”

“진짜로 작동시켰네?”

승배와 광호가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빈을 바라보았다.

그들이라고 이것을 안 입어 봤을까.

웅삼이 위험한 물건이라고 하는 말에 걸치지 않는다고 했지만, 미련이 없었을 리가 없다.

몰래몰래 한 번씩 걸치고 용을 쓰고 해 봤다.

남자치고 애나 어른이나 히어로에 대한 동경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결론은 그냥 무겁다였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서 빈이 그것을 입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최근 빈이 보여 준 모습은 괴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영웅처럼 말이다.

물론 그들도 짧은 기간이지만, 을지부루의 수하들에게 개처럼 구르며 이제는 하급 마물 정도는 상대할 정도는 되었다.

그러나 그쯤 되니 오히려 까불거리는 빈이 실제로 얼마나 강한지 더 잘 알게 되었다.

그렇지만, 이걸 이렇게 간단히 입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몇 가지 동작을 해 보던 빈이 고개를 돌렸다.

“응?”

“어?”

순간 승배와 광호의 눈에 뭔가 익숙한 그림이 떠올랐다.

“아저씨 함 뜹시다. 오늘이야말로 소환자의 위엄을 보여 주지.”

“…….”

“…….”

순간 둘은 예상했던 장면에 오히려 할 말을 잃었다.

“재미있구나야! 나가자우.”

빈의 도발에 부루가 히죽거리며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는 모습을 보던 광호가 중얼거렸다.

“쟤 아까 레이니가 한 말 못 들었냐? 개쳐맞았다는 거.”

“몰라. 저거 입으면 저렇게 되는 걸지도. 뭐 있잖아. 광전사 갑옷 같은 거.”

“그건 게임이고.”

“제정신이면 저런 말 못 하지. 그러니 지금은 실화고.”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그들은 빠르게 뒤따라 나갔다.

“헐?”

광호가 혀를 내찼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랐다.

퍽! 휙!

콰아앙!

제법 동체시력도 올라오고 했다고 자부하던 광호나 승배였지만, 그들의 눈으로도 겨우 잔상정도만 확인할 수 있었다.

고개를 좌우로 휙휙 돌리며 대련을 바라보던 광호의 입에서 감탄의 음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맞는 건 또 처음이네.”

“맷집은 좋아진 거 같지?”

“그러게.”

둘의 대화 그대로였다.

그래도 응삼이 좀 버티며 제법 싸우는 것처럼 하다가 끝내 오지게 맞았다면, 빈의 경우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전광석화같이 맞았다.

퍽하는 소리와 함께 꽂힌 부루의 한 방에 빈의 몸뚱이가 바람을 가르며 날아가 벽면을 파고들었다.

그걸 또 부루가 친히 달려가 끄집어내어 집어 던졌다.

그 와중에도 빈은 날아가다가 공중에서 균형을 잡으며 한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영화처럼 착지했다.

그 상태 그대로 날아든 부루의 플라잉 니킥에 면상을 맞는다.

그러면 또 다시 섬전처럼 날아가 반대편 벽면에 사람 자국을 만들며 처박히는 빈.

그 모습이 마치 일본에서나 찍는다던 만화의 실사판 액션과 같았다.

“웃긴 거 같은데 소름도 끼치고…….”

“내 말이.”

사방에 사람자국이 생겨났다.

“말려야 하는 거 아냐?”

“누가?”

광호의 질문에 승배가 고개를 돌렸다.

그의 시선 끝에는 유화와 가우리의 병사들이 있었다.

그들의 손에서 신사임당이 오가고 있었다.

“내기까지…….”

그들의 염려와 다르게 대련은 빠르게 맞고, 빠르게 끝났다.

열 번쯤 맞으며 날아가던 빈이 착지와 동시에 갑주를 풀고 그대로 몸뚱이만 빠져나온 채로 오체복지를 했던 것이다.

“와, 거북이가 등껍질 버리고 집 나와서 비는 줄…….”

그 장면을 레이니가 명쾌하게 비유했다.

“살려 줍쇼!”

빈이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고 있었다.

그렇게 빈의 짧은 하극상은 아픔만 남긴 채 새드엔딩으로 마무리 되었다.

아직 멀쩡하다며 이참에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부루를 말린 것은 제이와 레이니였다.

그녀들의 말림 덕에 빈은 목숨은 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응?”

그 모습을 보던 승배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빠진 거 같지 않아?”

“왜?”

승배의 말에 광호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어리둥절하다가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세인?”

“송 작가?”

두 사람이 없었다.

전창걸 대표는 눈앞의 두 여자를 보며 말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여, 역시 비벼도 안 돼!”

“저, 얘들아. 그건 아무리 봐도 알라딘에서 나오는 램프 같지는 않은데…….”

물론 전 대표의 말 따위는 그녀들의 귓구녕에 비집고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아! 마나! 마법! 리셀 아저씨가 그런 거 있어야 한다고 했는데!”

“아냐! 진천님은 그런 거 없이도 여기 왔잖아! 마법에 잼병이신 거 언니도 알잖아!”

“저기 얘들아. 나 니들 대표란다.”

전 대표의 항변에도 그녀들…… 송가인과 세인은 검은 돌멩이를 쥐고 옥신각신 하고 있었다.

“잠깐. 마법? 리셀 어른? 어? 그거?”

그제야 그녀들이 들고 있는 돌멩이가 눈에 들어왔다. 이어서 전 대표의 동공이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 그거 그거지?”

“그래! 전기! 전기도 에너지야! 그걸 이용해 보자!”

“어떻게?”

물론 그 검은 돌멩이의 정체를 어렴풋이 눈치챈 전 대표의 질문 역시도 가볍게 흘려 버리는 두 여자였다.

“아! 젓가락! 돌멩이를 한손에 쥐고 다른 손에 쇠젓가락으로 전기 콘센트에 꼽아 보자!”

“그게 좋겠어!”

“니들마저 미쳐 가냐…….”

이제는 광기에 번들거리기 시작하는 가인과 세인 두 인간의 헛소리에 전 대표는 울상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의견이 하나로 통일된 그녀들이 동시에 상황을 정리했다.

“그럼 이 귀환석은 내가 쥘 테니 언니가 내 손을 잡고 쇠젓가락을 콘센트에 꼽아!”

“그럼 이 귀환석은 내가 쥘 테니 세인이 니가 내손을 잡고 쇠젓가락을 콘센트에 꼽아!”

동시에 내뱉은 그녀들의 말을 들은 전 대표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당장 미친 건 아니구나. 미쳐 가는 것일 뿐.”

젓가락을 서로에게 양보하는 그녀들을 보면 최소한 뭐가 더 위험한지는 알고 있다는 거다.

물론 그래 봐야 잘못되면 둘 다 죽는 건 마찬가지지만.

하지만, 전 대표가라면 먹다 방치해두었던 쇠젓가락을 그녀들 둘이 서로의 손으로 함께 쥐는 모습을 보며 더 이상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함께 하는 거야!”

“함께 가는 거야!”

“하지 마! 니들 함께 미친 거야!”

두 사람의 미친 대사를 들은 전 대표가 울부짖으며 문 쪽으로 뛰어나가며 외쳤다.

“장구우우운!”

하지만 전 대표의 발걸음은 문 밖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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