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9화 태평양을 건넌 자!
“이제야 제대로 된 대우를 받는 것 같습니다!”
되돌아가는 차량에 함께 타고 있던 오기원의 수행비서가 상기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음? 아 뭐.”
하지만 오기원은 무언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비서가 하는 말을 흘려듣고는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런 오기원을 보며 비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신 겁니까?”
“음? 뭐 별일 아니니 신경쓰지 말도록. 잠깐 눈 좀 붙여야겠군.”
“아, 예 죄송합니다.”
기원의 말에 수행비서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기원의 눈은 감겨 있었지만, 정작 잠을 청하지는 않았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보라색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며 고민 속으로 빠져들었다.
‘위기…… 위기라.’
대한민국은 축복받은 땅이다.
그동안 각국을 돌아다니며 용병 일을 많이 해 왔던 대원길드이기에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당장 이웃나라인 일본만 가 봐도 지옥과 같은 땅으로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침식지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장 도시만 벗어나 봐도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었다.
거지는 흔했고, 도둑이나 강도는 그보다 더 흔했다.
애들이 구걸을 다녀도 누구 하나 측은한 눈빛을 보내는 이들은 없었다.
물론 부자는 여전히, 아니 오히려 더 부자가 되었고, 중산층은 몰락하거나 새로운 부자가 되었다.
양극화의 정점을 찍어 가고 있었다.
중국도 다를 바 없었다.
일부 지역은 예전처럼 다시 배급을 통해 연명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지금 세상에 마적 떼가 돌아다니는 곳도 있는 곳이 중국이었다.
미국이나 유럽 등도 다를 바 없었다. 슬럼가는 더욱 커졌고, 마약은 더는 막지 못할 정도로 번져 버렸다.
그쪽에 신경을 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성공적으로 생존했다는 국가들만 해도 그런데 다른 곳들은 어떻겠는가.
‘희망……?’
희망이란 단어를 떠올리자마자 가슴이 서늘해졌다.
마치 그 의미가 사라진 단어를 대하는 느낌이었다.
순간 손을 멈칫했다.
‘젠장.’
자신도 모르게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던 것이다.
자칫 손안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부술 뻔했던 것이다.
기원의 감겨 있는 눈이 일그러졌다.
그런 기원의 모습을 수행비서가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훔쳐보았다.
타타타타!
요란하게 울리는 로터소리를 들으며 오기원은 헬기에서 내려섰다.
“쯧.”
조금 전 주둔지로 되돌아오는 길에 본 주변의 부대 배치를 떠올리던 중이었다.
하늘이라 그런지 군부대의 배치가 눈에 더 잘 들어오고 있었다.
“군부대도 확실히 신경을 쓰는 모양입니다.”
“그렇게 보였나?”
“예? 아, 예. 무슨 문제라도…….”
“아니, 그렇게 보였다면 다행이고.”
기원은 코를 찡긋 하며 먼저 걸음을 옮겨갔다.
“무슨 일 있었어?”
당황한 수행비서에게 다가온 비서실장이 질문을 던졌다.
“아니, 오히려 극진히 대접을 받다가 왔습니다.”
“그런데 왜 표정이 좋지 않으시지?”
“글쎄요. 오는 내내 뭔가 고민이 있으신지 계속 표정이 좋지 않으셨었습니다.”
“혹시 모르니까 대원의료원 김 원장에게 연락해 둬. 혹시 불편하신 곳이 있으면 바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게끔.”
“알겠습니다. 조치하겠습니다.”
그런 길드원들의 걱정을 한 몸에 받으며 기원이 자신의 거처로 걸음을 옮겨 나갔다.
* * *
카르탈마니어가 영상을 보면서 얼굴을 살짝 일그러트리고 있었다.
“그 표정은 무슨 표정이에요?”
-음,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은 표정입니다만.
“오! 그렇구나. 그럼 지금 표정은?”
카르탈마니어가 고개를 돌리자 스마트폰을 자신에게 들이대고 있는 고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있었고, 그 옆에는 미친 듯이 올라가는 채팅들이 있었다.
-하극상이라는 게 가끔은 미치도록 하고 싶은 거구나…… 라고 생각하는 표정입니다.
“어우 큰일 날 소릴…….”
깜짝 놀란 빈이 스마트폰을 돌리며 손을 흔들었다.
“형님들 그러면 오늘은 여기서 방종할게요. 예? 용가리 형 노래요? 참아요. 이 용가리 아재 현피 뜨러 갈지 몰라요. 자다가 사시는 아파트가 주저앉는 수가 있다니까요?”
빈의 말에 채팅창에는 ‘ㅌㅌㅌㅌᄐᄐ’ 라는 자음이 미친 듯이 연타되고 있었다.
“그럼 행님들 다음에 봅시다! 뾰옹!”
그 말을 끝으로 빈이 화면을 껐다. 그런 빈을 보며 카르탈마니어가 한숨을 내쉬었다.
을지부루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결론적으로 고빈에게도 꼼짝 못 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부루의 소환자가 빈이었기 때문이었다. 자연스럽게 상하 관계가 만들어져 버린 것이다.
거기에 카르탈마니어의 임무 중 하나가 빈의 호위였으니까.
“그런데 저건 왜 계속 보는 거예요? 아까도 보드만.”
-이상해서 그럽니다.
“뭐가요? 저거 힘이 센 만큼 머리가 나쁘다면서요?”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단순 물리적인 힘만으로 따지면 저에 못지 않는 놈이 바로 쿠거르탄입니다.
저 마물의 이름이 바로 쿠거르탄이었다.
일종의 타락한 거인족이다.
본능적으로 적아를 구분하는 정도의 지능 정도만 겨우 가지고 있어 일종의 목적 없는 파괴 작전에나 가끔 활용한다.
다만 물리적인 파괴력을 빼면 극악의 효율을 가지고 있기에 침식 균열 같은 전략적인 목표에는 별로 활용하지 않는다.
드는 마력에 하면 딱히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뭐 고위 마족들이 줄줄이 죽어나가서 그럴 수도 있다면서요?
-그건 그렇습니다. 이쪽의 전력을 확인하기 위해서 활용했을 수도 있고 말입니다.
“그런데 뭐가 이상해요?”
-멍청하지만, 너무 멍청하게 죽은 게 이상해서 말입니다.
카르탈마니어의 말에 빈은 물론이고 한쪽에서 과자봉지를 통으로 입에 털어 넣고 있던 을지부루까지 관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자세히 좀 말해 보라우.”
“그건 또 무슨 말이에요?”
-저자. 대원길드장이라는 소환자. 별로 강해 보이지 않습니다.
“길티. 딱 봐도 비리해 보이니까네.”
“뭐 운이 좋았다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저건 확신을 가진 움직임입니다. 그런데 저 표정은 행동과는 좀 다른 느낌입니다.
“움. 똥 씹은 얼굴이긴 한데.”
-그리고 지금 이 부분에서 멈칫했다가 다시 움직이잖습니까.
“예. 작살 날 뻔했드만요.”
“안 움직였으면 뒤진 거이디.”
-이 행동과 이전 행동 사이에 이질감이 있다는 겁니다.
카르탈마니어의 말에 빈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의 말에 부루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그래서 뭐가 문제인 거죠?”
-중요한 게 바로 그겁니다. 이상한데…….
“이상한데?”
-별다른 게 떠오르진 않는다는 것.
“아이 씨.”
순간 빈이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응징은 부루가 대신 해 주었다.
와장창창!
“뭐야?”
창문이 깨지는 소리에 다들 놀라 시선을 돌렸다.
“또?”
“와, 보통 저쯤 되면 죽지 않나?”
“설마 죽이려고 하겠어? 죽지 않을 만큼만 패려는 거겠지.”
사층에서 추락하여 이미 반파된 화단에 뒹구는 카르탈마니어를 보며 주변을 지나던 군인들이 말을 주고받았다.
카르탈마니어가 벌떡 일어서서 그대로 자신이 날아서 떨어진 곳으로 몸을 다시 날렸다.
마치 조금이라도 늦으면 죽기라도 한다는 듯 말이다.
다시 솟구쳐 올라간 화단에는 급조한 표지판이 꽂혀 있었다.
-낙하 주의. 가끔 파충류형 종족이 추락하는 경우가 있음.
그리고 그 화단 주변에는 튼튼한 울타리가 둘러쳐져 있었다.
그때 다시 깨진 창문 안으로 들어간 카르탈마니어의 행적을 보던 군인 하나가 멍한 표정을 지었다.
“어? 저거 뭐지?”
“오늘 마수 비행요청 있었냐?”
“저거 비행마수 아닌데?”
순간 한 병사가 스마트폰을 들어 망원줌으로 당겨 보았다.
“마, 마족?”
“마족이다!”
순간 주둔지에 비상이 울려 퍼졌다.
애애애애앵!
-헤게루이안?
카르탈마니어가 창문으로 내려서는 고위마족을 보며 얼떨떨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구…… 군주시어?
“왜, 왜 이래 마른 거이간?”
부루 역시 그 마족이 헤게루이안임을 알고선 멍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떠나올 때 보았던 얼굴과 지금의 모습은 전혀 달랐던 것이다.
얼굴은 물론이고 온몸이 비쩍 마른 것이 뼈만 남은 것 같아 보였던 것이다.
-마, 마력이 고갈되어…….
그 말을 남기고 헤게루이안이 털퍼덕 엎어졌다.
그런 헤게루이안을 다들 안쓰럽게 내려다보았다.
애애애애애앵~
창밖의 사이렌 소리가 마치 진혼곡마냥 울려 퍼지고 있었다.
“아저씨가 잘못하셨네.”
“내래 그리 먼지는 몰랐디.”
일을 마치고 알아서 복귀하란 말을 부루는 당연하다는 듯 내렸고, 헤게루이안은 그냥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 결과 헤게루이안은 태평양을 맨몸으로 건너와야만 했다.
그 와중에 만난 태풍이 두 개였다.
이곳의 지리도 모르고 딱히 내려설 땅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서 끝이 안 보이는 바다 역시 처음이었다.
마계는 십분의 일 정도만 바다였으니까.
그렇다고 좌표를 아는 것도 아니었고, 거리가 멀어 통신도 힘들었다.
거기에 통신이 가능한 마도구도 가지고 간 것도 아니었다.
“어쨌든 고생했어야.”
부루는 그가 내려놓은 것을 보았다.
그때 불려온 이승배가 검은 돌을 만지며 입을 열었다.
“귀, 귀환석?”
“이거이 맞는 거이간?”
“아, 예.”
승배가 얼떨떨한 얼굴로 대답했다. 분명 기억에 있는 것이었다.
고진천과 그 일행들이 귀하게 여기던 것이었다.
이게 또 있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오면서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지만, 마력이 꽤 응축된 것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새겨진 법칙 역시 고위의 것으로 보이고 말입니다. 다만 훼손이 된 것이 아쉽지만 말입니다.
체게루이안이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이 원인이 된 게 맞는 거이간?”
-아마도 그렇지 않나 생각됩니다. 어떤 식으로든 연구하던 과정에서 이것을 자극했었지 않나 생각됩니다. 해서 이곳의 좌표가 노출이 된 것이고 말입니다.
헤게루이안의 설명에 부루가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다른 흐름의 마력을 자극했으면 아마도 이쪽이 아닌 다른 쪽 세상의 좌표가 노출되었을 것입니다. 그랬다면 아마 그곳이 위험했겠지요.
헤게루이안의 담담한 음성에 부루를 비롯해 이 방안에 있던 이들이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니보라. 거기에 누가 있는지 알기는 하고 그런 소릴 하는 거이네?”
-예?
규칙이 살아 있는 행성의 경우. 그런 경우에는 그 안의 존재들이 가지고 있는 격이 상승한다.
즉 흔히 말하는 영웅들이 탄생한다는 의미였다.
강자들은 영혼의 크기에 따라 더 강해진다는 말이었다.
순간 이들은 고진천을 떠올리고 있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마족들은 순간 이들의 표정을 보곤 뭔가 무시무시한 것이 있구나 하고 직감했다.
* * *
헤게루이안의 복귀를 통해 이 사태의 원인을 파악한 구은태 박사와 일행들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전세계적 위기를 불러온 이들이 바로 미국의 연구진이라는 것을 안 것이다.
“미친!”
“정말이지, 이 모든 게…….”
다들 허탈할 뿐이었다.
“이걸 놈들이 알기는 할까요?”
“알아도 잡아떼겠지.”
강문호 중령 역시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대통령에게 직통으로 보고를 먼저 해야겠구먼.”
구 박사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