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48화 (148/305)

제148화 사람 된 건가?

을지부루라는 이름이 나오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거지? 그 힘도, 일반적인 강림자와 달라. 우연이라고 할 건가?

-우연이라면 우연이겠지? 우리도 설마 차원의 틈에 빠져든 영혼이 우리 마계에 정착할 줄은 몰랐으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

-말 그대로. 이 세상의 존재였지만, 다른 세상으로 옮겨간 존재가 죽은 뒤에 간혹 우리 쪽으로 오거든.

기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별의 기억은 희미할지 모르지만 그 자체는 역사를 바꿀 존재였다는 의미지.

그제야 일부 이해가 되었다.

소환자의 패드를 이용해서 측정했을 때 존재감이 그토록 낮았던 것이 말이다.

-거기에 우리 마계와 연결이 된 것 때문에 온전하게 그쪽으로 흘러들어간 것이고 말이야. 완전체는 우리도 오랜만에 보는 경우지. 보통은 세상의 멸망에 다다를 때나 가능한 일인데 말이야.

-그건 왜지?

-파편도 성장을 하니까. 이쪽의 존재를 그들이 처치할수록 영혼의 격은 올라가기 마련이거든. 소환자는 파편이든. 단순하게 말하자면 강해진다는 거지.

결국 버티고 버티다 살아남은 이들 중 그 격을 올려 완전체가 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는 말이었다.

멸망에 다다를 때에나 가능하단 이야기도 그런 이유였고.

-어느 수준만 되도 파편의 주변 기억도 불러오게 될 거야.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 되는 거지.

기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하나의 강림자가 또 다른 강림자를 소환하는 경우가 있었다.

부대단위로 말이다. 드물지만 지휘에 특출하거나 부대원과 생전에 끈끈한 유대감을 가진 경우 그랬다.

의병 출신의 강림자의 주변에 의병들이 새롭게 강림되는 경우도 있고 말이다.

물론 이름이 그리 유명하지 않은 강림자들의 경우다.

그 경우 빠르게 한계치에 도달했기에 그러리라고 판단한다.

-뭐 아마도 이 세상도 언젠가 가능은 하겠지?

-그럼…….

희망을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기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의지를 꺾는 이야기가 이어졌다.

-물론, 멸망에 다다를 때 말이야. 그런데 그 즈음에는 이미 우리는 이쪽으로 마음 놓고 드나들 수 있을 때고.

제약이 사라진다는 말에 기원은 섬뜩함을 느꼈다.

지금도 막아내는 것조차 힘이 들 지경인데 시간이 흐르면 더욱 어려워진다는 말에 할 말을 잃어 버린 것이다.

‘빌어먹을…….’

믿기 어려운 이야기다. 하지만, 왠지 마음이 흔들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기원은 그 흔들림을 부정이라도 하듯 거친 음성으로 되물었다.

-그래서. 왜 내 앞에 나타난 거지? 놀리려고? 재미있어서?

-쯧, 그 귀찮은 짓을 내가 왜 하지?

들려온 목소리에는 짜증이 섞여 있었다. 순간 기원은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마치 상대가 떠나 갈까봐 걱정되듯 말이다.

-시간이 걸리면 언젠가는 우리도 목적한 바를 이루겠지. 하지만, 나의 왕께서 보고 싶은 얼굴이 있다 하시더군.

-왕? 군주를 말하는 건가?

-이런 아직 모르나 보군. 우리 세상에 왕이 탄생한 것을 말이야.

순간 기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아마 곧 알게 될 거야. 보니 그쪽에 새로운 군주를 섬긴 마계의 일족들이 있을 테니까.

-뭐?

-그럼, 그 다음에 이야기 하자고. 아! 그땐 이놈의 몸통을 부수게. 내가 알아서 찾아갈 테니까.

-자, 잠깐!

순간 당황한 기원이 목소리를 높였지만 파리는 더 이상 대답할 수 없었다.

보랏빛으로 온몸이 물들더니 작은 보석으로 변해 굴러 떨어졌으니까.

기원은 서둘러 바닥으로 떨어진 작은 보석을 주워들었다.

그는 그제야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마치 잃어버리기라도 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듯 말이다.

“젠장.”

기원은 손톱만 한 보라색 돌멩이를 손에 쥐며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 * *

회의실에 도착해 있던 외교장관의 말에 다들 혀를 내둘렀다.

“이제 와서 다시 파병 요청을? 이쪽의 경고를 무시할 땐 언제고 그런 소릴 한답니까? 그리고 우리도 안전하지가 못합니다. 거절해야 합니다.”

국방장관이 목소리를 높였다.

양현재 대통령이 담담한 목소리로 답했다.

“지금 상황에선 그쪽에 도움을 줄 수 없다는 게 더 정확할 것이오.”

우회적이지만 국방장관의 의견에 무게를 실어주는 발언이었다.

일부 국무위원들이 우려의 빛을 나타내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지금 대원길드가 막아내기는 했지만, 언제 또 위기가 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전쟁나면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사람들 많다는 말이 항상 돌았지만, 지금은 미국도 안전을 보장 못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이 땅을 지키는 것이 최선의 길이었기에 반론도 없는 상황이었다.

“대원길드쪽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일단락은 된 듯 합니다만…….”

대원길드는 지금 뜨거운 감자였다. 더는 손대기가 힘든 상황이었다.

현재 맡고 있는 지역으로 배치된 것 자체가 유배의 성격을 띈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곳에서 큰 성과를 거둔 대원길드를 건드는 것은 정부에서도 부담이었다.

또 일부 국무위원들은 대원길드에 호의적이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다른 길드나 대원 길드나 비슷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오히려 재벌그룹들이 적극적인 지원을 해서 길드를 키워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국가가 모든 것을 지원하고 관리하기에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소환자는 국가 자산으로 취급되지만, 개개인 자체에게 구속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일부 국가는 구속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곳은 이유가 있었다.

소환자들이 빠져나가게 된다면 나라가 무너질 상황 혹은 그에 준하는 위기에 빠진 곳들이다.

또 그런 곳들의 경우 구속력을 발하기는 하지만, 이미 정치권과 소환자간에 끊을 수 없는 동반자적인 상황에 이른 곳이 많았다.

즉 소환자가 정치에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거다.

무리도 아니다. 아프리카 지역은 다수가 소환자를 중심으로 한 군벌이 있을 정도니까.

반면에 가장 빠르게 대침식을 이겨낸 한국은 그게 불가능했다. 다른 곳에 비해 위기의식이 덜하다는 게 문제였다.

빠르게 국난을 회복한 만큼 소환자에 대해 강압적인 법령을 만들기 어려웠던 것이다.

만약 절망적인 위기까지 갔었더라면 비슷한 법안이 있었을 법도 하지만 말이다.

거기에 환난을 이겨낸 선진국들까지도 인권을 문제 삼아 그런 부분을 금지했다.

인권 때문이 아니라 금전으로 서로 빼오고 싶은 마음 때문이겠지만 말이다.

그러다보니 재정적인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재벌의 지원이 고플 수밖에 없었다.

재건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할 시기에 국가의 역량을 소환자에게만 투자할 수 없는 법이니 말이다. 그렇다고 국가에 대한 충성을 요구하기에는 불가능한 시대가 되었고 말이다.

그 예로 준 민간 군사기업인 기동대가 있으니까.

“지금은 건들면 안 되지요.”

“사실 대원 연구소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해당 지역으로의 배치가 이미 그들에 대한 처벌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곳에서 소통이 좀 안 된 문제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큰 성과를 냈지 않습니까.”

“소통에 좀 문제라니요! 자칫 잘못했으면 큰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었다는 겁니다!”

명령체계를 우선시하는 국방부장관이 항변을 하자 대원그룹을 두둔하던 국무위원의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높아졌다.

“그 잘못 될지 모른다는 정보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침공자들의 편에 섰던 이들입니다! 그들의 말을 전적으로 믿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안 믿으면요? 그들이 주는 정보가 틀린 것이 있었습니까? 과거의 역사에도 항장은 대우해 주는 법이었습니다!”

“역사? 역사라고요? 트로이의 목마는요? 그들이 트로의의 목마와 같은 세력일지 누가 압니까? 거짓 항복으로 상대 세력에 들어가 결국 나라가 무너지는 역사는 없단 말입니까!”

“다들 진정들 하세요! 여기가 국횝니까!”

그들의 언쟁을 말리던 와중에 양현재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국회란 말에 수석 비서관이 당황한 얼굴로 그를 불렀다.

“대, 대통령님…….”

“아, 이건 기록에서 좀…….”

그제야 양현재 대통령도 자신의 말 실수를 느끼고는 한쪽에서 기록을 하고 있는 이에게 어색한 얼굴로 부탁을 했다.

일부 국무위원들도 양현재 대통령의 발언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는 어정쩡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 덕에 상대방의 말 꼬투리를 잡는 언쟁은 이어지지 않았다.

국회에서 입성한 이들이 적지는 않았지만 왠지 국회에 비교되는 게 자존심이라도 상한다는 듯 말이다.

“다 떠나서 지금 그들에게 항명죄라도 물을 수 있습니까? 민간 길드에게 말입니다.”

아까 대원길드를 두둔했던 국무위원이 다시 목소리를 낮추며 묻자 발끈했던 국방장관도 얼굴을 구기며 입을 다물었다.

“일단 해당 지역은 대원길드에게 계속 맡기는 게 좋겠습니다. 가장 위험지역을 훌륭하게 방어해 낸 대원길드에게 계속 의뢰를 이어간다고 하는 쪽으로 담화를 발표해야지요.”

“그거야…… 아!”

당연한 말을 왜 담화까지 하느냐 말을 하려던 국무위원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위험지역이기도 하지만, 민간인들이 집중된 곳이 아니기도 했다. 민간인들의 경제적 피해가 낮다는 것이다.

거기에 그렇게 함으로써 치켜세워주는 척 하면서 대원길드를 계속 그 자리에 묶어 놓을 수도 있고 말이다.

따지고 보면 준전시에 가까운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연락을 받지 않는 행위는 문제가 되고도 남았다.

다만 여론을 의식 안 할 수 없는 상황이니 담화를 통해 그들을 치하하며 못 박아 버리려는 정치적 의도인 것이다.

“대신 그들에게 과중해질 업무를 걱정해서 이선을 군이 보조하는 것으로 하는 방향으로 합시다.”

이건 보험이다. 양현재 대통령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충분한 결과라고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회의에 참석한 오기원의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이런 아직 모르나 보군. 우리 세상에 왕이 탄생한 것을 말이야.’

뇌리에 박혀있던 그날의 대화.

‘그게 진짜로군.’

구은태 박사의 브리핑을 들으며 그게 진짜일 수 있구나 싶었다.

구 박사는 여러 가정을 통해 지금의 상황이 얼마나 위기인지를 피를 토하듯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다.

다른 길드장들 역시 지금이 진짜 위기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얼굴을 굳히고 있었다.

그들의 브리핑이 끝난 뒤 오기원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때 그에게 다가온 신컨길드장 구도원이 말을 걸어왔다.

“오, 이번에 크게 한 건 하셨던데?”

“…….”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 사이이기에 대답은 없었다.

“뭐, 이제라도 제대로 싸워주면 좋은 거고. 그런데 언제 그렇게 몸놀림이 화려해지셨대?”

도원이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묻자, 기원이 그를 외면하듯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운이 좋았지.”

“헐?”

그 말을 던지고 멀어지는 기원의 귓가로 도원의 벙찐 목소리가 들려왔다.

“헐?”

구도원이 벙찐 얼굴로 멀어져가는 오기원을 바라보고 있자, 다가온 전신길드장 임병화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데?”

“아재요. 방금 저 인간이 운이 좋다고 한 거 못 들었어?”

“들었지.”

“그게 안 신기해?”

도원의 말에 병화가 쓴 웃음을 머금었다.

“사람 됐나 보지.”

평소의 오기원이라면 겸양의 말과는 거리가 먼 답을 했을 것이다.

당연한 일이라고 하던지 혹은 자신이 못한다고 남이 못할 거란 생각을 버리라던지…….

선민의식이 자리잡고 있는 오기원으로써는 의외의 반응이었다.

“냄새나.”

“흐음.”

“이상하지 않아?”

도원의 말에 병화도 공감을 하기는 했다. 하지만 딱히 꼬집을 만한 게 없었다.

“그냥 사람 된 걸로 믿어야지. 그랬으면 좋겠군.”

병화의 대답에 도원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지금 상황에서는 그게 어디겠나 싶네.”

병화의 말에 도원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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