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6화 영웅의 탄생
뇌리로 들려오는 음성에 기원은 다시 몸을 흠칫 떨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치 숨기던 것을 들킨 사람 마냥 말이다.
하지만, 자신이 들은 목소리를 아무도 듣지 못한 듯 전투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후우.”
자신에게만 들린다는 것을 확인한 기원은 자신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흠칫 몸을 떨었다.
‘빌어먹을!’
안도의 숨을 쉬었다는 건 놈의 말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동했다는 의미였다.
‘이용만 조금 할 뿐이다.’
스스로를 설득한 기원이 뒤를 돌아보았다.
그와 함께 전장을 살피는 강림자가 있었다.
정중부.
고려 무신 정권의 개막자.
“전진한다.”
“그럼 지금 퇴각…… 예?”
대답하던 대원길드의 참모가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대열 만들어. 뚫고 들어가 직접 처리한다.”
“하, 하지만!”
순간 참모의 얼굴위로 공포가 서렸다. 평소에 하지 않던 선택이었다.
“용병들 차량에 탑승 시켜.”
“다시 생각하시는 게…….”
그때 기원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우리가 물러나면 이 부근이 다 작살난다! 대원길드는 목숨을 걸고 이곳을 사수한다!”
쩌렁한 기원의 음성이 전장에 울려퍼졌다.
그러자 영문을 모르고 이쪽을 바라보던 대원길드원들이 일제히 함성을 내질렀다.
그리고 이 근방에 사는 용병들도, 함께 지원을 와서 싸우던 군인들도 그의 결정에 환호로 보답했다.
그들의 환호를 받으며 기원은 입가를 끌어올렸다.
‘빌어먹을 영웅놀이를 이래서 하는 건가?’
꾸미내지 않은 전장의 환호소리에 기원은 나름 기분이 좋았다.
잠시 뒤 기원의 명령에 맞춰 병력이 차량에 탑승하여 초대형 마물을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오기원의 옆에서 호위하듯 달려가던 차량이 커다란 바위에 산산조각이 났다.
비명은 따로 없었다.
날아온 바위에 그대로 전부 피떡이 된 모양이었다.
한쪽에서 말을 달리던 강림자의 몸뚱이가 회색으로 변하더니 이내 먼지로 화했다.
역소환이다.
차량에 있던 소환자 역시 죽었음을 알 수 있었다.
‘빌어먹을!’
꽤나 접근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죽어나간 인원이 삼분지 이에 달했다.
그쯤 되자 기원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거짓이었나?’
분명 그쪽은 거래를 원했고, 이쪽은 그것을 이용하고자 생각했다.
그게 거짓은 아닐거라는 본능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선 그게 거짓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피해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기존의 기동대를 흉내내어 만든 이들의 숙련도가 떨어지는 것도 피해가 커진 이유 중 하나였다.
기동대원들 중 미끼팀의 드라이버들은 대침식 기간에 살아남은 배테랑 중의 배테랑들이었다.
반면에 그가 모은 이들은 오프로드에 특화된 운전자들이기는 하지만, 이런 전투를 겪어본 이들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일에 익숙한 이를 찾는 것 자체가 무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 덕에 용병들과 함께 태운 대원길드의 소환자들의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있었다.
“진군하라!”
그때 자신의 옆에서 말을 달리며 무리를 이끌던 그의 강림자인 정중부가 사기진작을 위한 외침을 터트렸다.
그와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붉은 안개와 같은 기운이 살짝 감돌며 퍼져 나갔다.
와아아아아!
동시에 길드의 강림자들이 일제히 함성으로 화답했다.
정중부의 고유 기술 사기 진작이었다.
말을 모는 몸놀림이 좀 더 기민해지고, 전투력도 상승을 하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그럼에도 마물들은 더더욱 미친 듯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졌다.
동시에 기원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미친!”
놀란 기원이 차량에서 몸을 날렸다. 동시에 정중부가 말을 몰아 그의 몸을 낚아채며 빠르게 이동했다.
떠어어어어엉!
동시에 울려 퍼지는 소리. 그들이 지나온 바로 뒤로 거대한 손바닥이 땅을 진동시키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던 그 초대형 마물이 몸을 날리며 손바닥으로 땅을 내려친 것이었다.
당연히 기원이 있던 곳 주변은 거의 초토화가 되었다.
바로 뒤를 따르던 차량들은 그나마 나았다.
콰앙!
바닥에 있던 손바닥에 부딪혀 이리저리 차체를 뒤집으며 날아갔으니까.
하지만 그 손바닥 영역에 있던 모든 것들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어찌 되었을지는 알 수 있었다.
그 증거를 대듯 주변 있던 강림자들 대여섯기가 동시에 먼지로 변해버렸다.
“젠장!”
이제라도 퇴각을 선택해야 했다.
그때였다.
그의 눈에 보랏빛 선이 보였다.
마치 길을 알려주는 것 같은 선이었다.
“정중부, 보이나?”
“무슨 말을 하는가.”
기원의 질문에 강림자인 정중부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보랏빛 선…….”
“퇴각을 명하는가?”
자신의 중얼거림에 정중부가 딴소릴 했다.
그것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지금 보랏빛 선을 보고 있었고, 정중부는 그것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
정중부의 말위에 올라탄 기원이 대신 고삐를 쥐었다.
재벌가 답게 기마는 기본이었다. 그뿐 아니라 나름 소환자로써 전투를 경험하며, 말을 몬 적은 많은 편이었다.
그가 말을 몰아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보랏빛 길에 말이 올라가는 순간 은은한 보랏빛이 그의 말과 몸을 감싸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거?’
놀란 기원이 고개를 들어 정중부를 바라보았다.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주변을 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을 감싼 보랏빛에 대해 놀라는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위험합니다!”
“피하십시오!”
다만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며 외치는 길드원들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마물들의 공격이 그를 스쳤다.
초대형 마물 역시 손바닥들 도로 들어 자신을 공격했다. 거대한 덩치와는 달리 그 공격 속도는 곤란할 정도로 빨랐다.
콰앙! 쾅! 쾅!
이제 초대형 마수가 두 손으로 땅바닥을 해집고 있었다.
그러나 기원은 그 사이사이를 위태롭지만 용감하게 돌파해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기원은 이게 자신의 능력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보랏빛 선에 올라타는 순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이리저리 알아서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교묘할 정도로 적들의 모든 공격을 피해내고 있었다.
“미친! 저게 말이 돼?”
완전한 침식지가 아닌 덕에 멀리서 촬영을 할 수 있었던 이들의 입이 떡 벌어져 있었다.
말 그대로 빌딩만 한 초대형마물과 다른 마물들의 공격을 전부 피해가면서 질주하는 오기원의 모습은 그야말로 영화의 한 장면과 같았다.
“정중부의 기마술인가?”
“아니야! 화면 봐! 대원길드장이 고삐를 쥐고 있잖아!”
오기원이 말을 몰고 그 뒤에 탄 정중부는 칼을 휘두르며 다가오는 마물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위험은 끝나지 않았다.
“하, 하지만 저렇게 가까이가서 뭘 어쩌자고…….”
“앗! 안보여!”
그때 그를 찍고있던 이가 외마디 비명을 내질렀다.
말을 달리던 기원의 신형이 초대형 마물의 다리사이로 진입해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귀청을 찢는 듯한 괴성이 울려 퍼졌다.
-끄워어어어어엉!
초대형 마물이 괴로운 비명을 토해내며 천천히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뒤로 오기원과 정중부를 태운 말이 빠져나오며 천천히 반원을 그리고 있었다.
마치 다시 돌격을 위해 반전하듯 말이다.
동시에 사방에서 함성이 쏟아졌다.
“와아아아!”
“와아아!”
무릎을 꿇은 초대형 마물의 양쪽 아킬레스 건 쪽에서 보랏빛 기운이 감도는 피가 솟구쳐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저, 저거 위험한 거 아냐?”
그때 오기원이 말에서 훌쩍 뛰어내려 초대형 마물의 다리 위를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앞에선 다시 고삐를 쥔 정중부가 칼을 휘두르며 마물이 땅을 짚은 팔을 난도질 하고 있었고 말이다.
마치 이목을 대신 끌어주고 있는 듯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오기원은 마치 초인이 된 것처럼 움직여지는 신체를 보며 흥분이 고양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최근 그 역시 훈련을 통해 신체의 상승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처럼은 결코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보랏빛 기운이 인도하는 상황에선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내달리던 그의 시선에 초대형 마물의 목둘레로 이어지는 보랏빛 실이 선명하게 들어왔다.
“으아아아아!”
동시에 자신도 모르게 고양감에 취한 외침을 터트리며 그 시작점에 손에 들린 칼을 박았다.
그리고 그 상태로 목둘레를 달리기 시작했다.
푸와아아악!
그가 박아넣은 칼이 지나는 길마다 보랏빛 피가 솟구쳐 올랐다.
* * *
“빨리! 빨리!”
타타타타타타!
주변에 미리 대기하고 있는 헬기를 향해 군용기에서 내린 기동 대원들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한쪽에는 차량을 매달은 헬기가 천천히 고도를 높이며 상승하고 있었다.
“빌어먹을 좀 쉬질 못해!”
고빈이 울상을 지으며 자신의 헬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군 비행기지가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이들의 이동을 안내하기 위해 나왔던 군인들이 무전을 듣더니 놀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야! 벌써 뚫린 거야?”
그 모습에 놀란 기동대원중 하나가 목소리를 높이자 연락을 받던 중위 하나가 멍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 상황 종료랍니다!”
“뭐?”
“상황 종롭니다! 침식균열 막았습니다!”
그 외침에 바삐 움직이던 군인들이 갑자기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비록 자신들이 직접 일군 승리는 아니지만, 그 소식 하나만으로도 다들 환호했다.
“총사령관으로 보이는 마물이 나타났다고 하지 않았나?”
헬기에 탑승해 있던 강문호 중령이 얼떨떨한 얼굴로 질문을 던지자 소식을 제일 먼저 알렸던 중위가 목소리를 높였다.
“예! 선배님! 그런데 처치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처치를?”
재차 들려온 대답에 강 중령이 멍한 얼굴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까지 마물을 처치한 이들은 을지부루 일행이 전부였다.
“혹시, 전신과 신컨이 함께 작전이라도 들어갔던 건가?”
강 중령의 질문에 중위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대원길드 단독작전이었다고 합니다!”
더더욱 믿지 못할 소리였다.
“대원길드? 정중부가?”
대원길드의 영웅급 강림자 정중부. 하지만 정중부는 가진 기술이 높은 강림자지 무력 자체가 어마 어마하지는 않았다.
물론 낮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부루와 같은 특별함은 아니었던 것이다.
“정중부가 이목을 끌고 대원길드장이 초대형 마물의 몸을 발판 삼아 달려 올라가 목을 베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여기! 이거 영상!”
그때 빈이 테블릿을 들고 달려왔다.
거기에는 실시간으로 계속 올라오고 있는 현장 사진과 기사들이 있었다.
꽤나 거친 화소였지만, 분명히 사람 하나가 목을 가르며 달리는 듯한 모습이 찍혀 있었다.
“여기 동영상도…….”
이번에는 방금 올라온 동영상을 재생해 보았다.
“허?”
그걸 본 순간 다들 놀란 눈을 하고 못 박히듯 서 있었다.
말을 타고 다리사이로 빠져나온 오기원이 이번에는 그대로 몸을 타고 달려 올라가 목에 칼을 꽂고 한 바퀴 내달리는 모습이 반복되어 재생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