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5화 선물이라네.
* * *
중무장한 군인들이 주변을 에워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대원길드의 길드장 오기원은 얼굴을 구겼다.
“찍어 찍어!”
그 와중에 일부 기자들이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그럼 막지 말란 말입니까?”
“그건 아닙니다만, 제대로 된 방어선 형성을 위해 현장 지휘권을 회수해야겠습니다.”
“외지로 보낼 때는 언제고 잘 막고 있는데 지휘권을 회수한다는 건 대체 누구 판단입니까?”
오기원의 얼굴이 잔뜩 굳어져 있었다.
스마트폰을 부순 후 누군가가 직접 올 것은 예상했었다. 오라고 부순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렇다 해도 공을 세운 이상 자신을 어떻게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판단했었다.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기이하게 되어가고 있었다. 지금 자신들이 막아낸 것이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마물들의 의도라는 설명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기자들이 이 상황을 기록하고 있었지만, 상황은 불리하다고 봐야 했다.
그때였다.
콰드드드!
땅이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마물들이 쏟아지기 시작하는 징조였다.
“침식균열입니다!”
누군가가 외쳤다.
침식지 중앙 하늘에 검보랏빛 구름이 몰려들었다. 전형적인 침식균열의 징조였다.
“빌어먹을!”
순간 기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침식지도 아닌 곳에서 침식균열이 일어났다는 것에 당황한 것이다.
중국과 맞닿은 침식지 주변을 방어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이기는 했다.
하지만, 이 지역은 엄밀히 말하면 침식지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침식 균열이 벌어지고 있었다.
“젠장!”
결국 정부에서 보낸 이들이 한 말이 맞을 수도 있다는 것이 된다.
머리를 빠르게 굴린 기원이 외쳤다.
“대원길드는 그대로 방어선을 지켜라! 용병들에게 탄 보충 시키고! 빨리!”
재빠르게 외친 기원이 당황한 군 지휘관을 보며 입을 열었다.
“지휘권 인수해 가실 겁니까? 이 상황에서?”
그렇게 말을 하며 기자들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들을 보는 순간 군 지휘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기자들을 물리지 않은 이유는 정부에서 정당한 이유로 이들의 지휘권을 회수한다는 의도를 자연스럽게 알리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상황이 틀어졌다.
“일단 이선 방어 준비 하겠습니다.”
“방어선이 완성될 때까지 대원 길드는 이 지역의 방어를 위해 최선을 다하도록 하겠습니다.”
절대 이곳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막다가 쓰러질 생각 따위는 없었다.
최소한 이 상황을 면피용 혹은 상황을 반전하기 위해 활용할 정도는 되었다.
연락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침식지 방향으로 진군해 나갔던 것이 이런 상황을 만들어 주었다.
문제는 기존 침식지와 달리 이곳은 방어진지가 만들어진 상황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나마 침식지 방향으로 마물들을 몰아넣기 위해 조여 가던 중 이었기에 임시로 만들어낸 방어선이 있었기에 내릴 수 있던 판단이었다.
* * *
백두산 접경지에서 나타난 침식 균열보고에 청와대는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로 변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근처에 대원길드가 방어망을 형성해서 침식지로 마물들을 몰아가던 중이라 해당 균열에 즉각 대응을 할 수 있었다는 점입니다.”
참모본부의 보고에 양현재 대통령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들의 도착시간은?”
“한 시간 뒤입니다.”
누구라고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대답은 빠르게 나왔다. 바로 을지부루 일행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여기까지 날아오는 시간동안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 지는 군.”
지난 몇 시간동안 십년은 더 늙어 보이는 모습이었다.
대한민국은 안전하다는 인식이 번져서인지 이전에는 주목받지 못하던 일들까지 다 고개를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번 일이 특히 그랬다.
하나로 중지가 모아진 내용들은 아니었지만, 목표는 하나였다.
현 정치권에 대한 공격.
물론 나라가 망하라고 하는 행동들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 이 시점에 목소리를 내어 놔야 나중이 있다고 판단한 정치적인 판단들이었다.
이건 여당이고 야당이고 가릴 게 아니었다. 역사에서 위기는 항상 기회이기도 했으니까.
문제는 정말로 상황이 심각해질 수 있는 시점이라는 것이다.
“각 당대표분들과의 자리가 준비 되었습니다.”
“가지.”
초췌한 모습의 양현재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설득을 해야 할 시간이었다.
* * *
콰콰쾅!
투투툭! 투투투툭!
용병들은 물론이고 새로운 대응 병기를 지급받은 군인들까지 방어선을 만들어 전투에 임하고 있었다.
그러나 양상은 이전과 달랐다.
중대형 마물들도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그나마 중대형 마물들에게도 이 병기들이 먹히기는 했다.
문제는 저지력에서 현저히 떨어지는 탓에 점점 방어선을 향해 마물들이 가까워져 오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피, 피해!”
슈우우우.
멀리서 날아온 차량의 잔해가 용병들과 군인들이 웅크리고 있던 방어벽을 두들기고 튕겨나갔다.
콰쾅! 이내 그것은 사방으로 튀며 미처 피하지 못한 이들을 덥쳤다.
“아악!”
“다, 다리가!”
“살려주시라요!”
군인이고 용병이고 살려달라 외치는 이들이 많았다.
그 빈 공간을 소환자와 강림자들이 매웠다.
그 광경을 보며 지휘하던 오기원은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전장을 살피고 있었다.
‘지금 물러서?’
벌써 삼십분째 밀려오고 있었다. 하지만 정말 모호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었다.
정석대로 조금씩 물러서며 버틴다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대형 마물들 때문에 일순 방어선이 흔들린다.
자칫 어느 한 곳이 뚫리면 전력을 보존하며 퇴각하는 게 불가능해질 수도 있었다.
침식균열을 이미 경험해 봤기 때문에 지금 이정도가 전부가 아니라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때였다.
-우리는 왠지 대화가 잘 통할 것 같지 않은가?
“뭐?”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에 기원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의 말에 호위병력으로 따라 붙은 길드원은 멀뚱한 시선을 보내며 되물었다.
“예?”
“방금 누가 말을…….”
-이런 내가 너무 갑자기 말을 걸었나 보군.
다시금 울리는 목소리.
기원은 순간 얼굴을 굳히며 입을 열었다.
“아니, 잘못 들은 것 같군.”
그렇게 답하며 다시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체 방금 뭐지?’
-역시 침착한 친구야. 속으로 말한다고 생각해봐. 아! 어깨쪽을 살짝 보면 대화가 가능할 거야.
그 말에 기원은 조심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어깨쪽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없진 않았다.
‘웬 파리가…….’
-호? 이걸 파리라고 하는군? 꽤나 공들여서 정신을 감응해 놓았으니 방금 들어 올린 손은 내려 놓으시게.
순간 기원이 흠칫하는 사이 파리는 어깨에서 날아올라 앞에 대기해 있는 오프로드 차량의 난간에 앉았다.
-이러면 보고 대화하기 좋겠지?
‘누구냐.’
-침착한 게 마음에 드는군. 그 욕망만큼 말이야. 자, 이 세상이 어디까지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가?
담담한 듯 달콤하게 들려오는 목소리. 그 목소리에 기원은 불쾌한 감정이 들었다.
‘지금까지 번번이 깨진 주제에 웃기는 질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나?’
-어이구. 한방 맞았군. 맞아. 그렇긴 한데, 그게 우리가 힘이 없어서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했다.
그들이 싸우고 있는 마계의 군주들이 무수히 많은 세상들을 흡수해왔다는 것이 최근에 알려진 정보였다.
물론 신빙성 있는 정보였다.
미국 쪽에서 알려온 내용이니까.
물론 그 출처는 구은태 박사 쪽이고 말이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줄까? 지금까지 왜 각국에 가해지는 침공의 수준이 왜 달랐을까?
초기에는 알지 못했지만, 최근에야 알 수 있었다. 일부 지역의 침공이 오히려 더 활발했다는 것을 말이다.
-물론 그대가 있는 이곳의 존재들에게는 박수를 치고 싶더군. 차원역장을 펼칠 수 없는 미미한 마물들이 다수라고 하지만, 마수의 군주까지 쓰러트릴 정도니까 말이야.
‘아까 물었지만, 다시 묻지. 누구냐.’
기원의 반복된 질문에 파리가 발을 비비며 대답했다.
-미안하군. 난 새로운 군주가 된 마켈그로이언이라고 하지.
군주라는 말에 기원의 눈이 커졌다.
-아, 그리고 이렇게 이세상 미물의 모습으로 나타난 이유는 계약을 하나 하고 싶어서라네. 내 또 다른 별명은 회유의 마족이라고 하지.
순간 기원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웃기는 소리. 더는 대화할 가치가 없다.’
‘잘 생각 하라고. 지금 자네의 상황에 도움이 되는 선물 하나 하려고 하니까. 물론 나에게는 좀 손해겠지만.’
그의 말이 끝나는 순간 기원이 손을 들었다.
찰딱!
“에이씨, 왠 파리새끼가……. 어이쿠 죄송합니다.”
“……크음.”
기원이 들었던 손을 슬며시 내리며 헛기침을 했다.
방금 전까지 그와 대화하던 파리가 떡이 되어 보닛에 뭉개져 있었다.
물론 방금 그걸 그렇게 만든 차량의 운전사가 천을 가져와 깨끗하게 닦아 버렸지만 말이다.
그 흔적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던 기원이 속으로 입을 열었다.
‘어이.’
대답이 없었다.
다시 목소리를 전달해 보았다.
‘마, 마켈그로이언?’
역시나 대답은 없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시선이 방금 전 마켈그로이언을 척살한 운전사를 향했다.
그의 시선을 받은 운전사가 몸을 움찔거렸다.
* * *
-이런. 연결이 끊어졌군.
회유와 교언의 군주 마켈그로이언이 미소를 띄었다.
-죄송합니다. 지배력이 낮아, 그런 미물밖에 연결할 수 없었습니다.
마법을 펼쳤던 마족이 고개를 숙이며 사죄를 했다.
그 옆에 있던 또다른 고위 마족이 입을 열었다.
-버러지 같은 놈이 군주님의 제의를 저버리다니. 점령하게 되면 직접 제가 사지를 찢어서 머리통만 붙여 잡아다 대령하겠나이다.
고위 마족의 말에 마켈그로이언이 웃으며 대답했다.
-무슨 소리. 거래는 이제 시작일 뿐.
마켈그로이언의 말에 고위 마족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금 그자는…….
-거래의 기본이네. 첫 제의는 멋지게 차버리는 게.
마켈그로이언의 답에 고위 마족이 고개를 숙이며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그럼?
-일단 궁금하겠지. 내 선물이 뭔지 말이야.
-으음. 그럴까요?
-아마도. 그렇겠지? 아! 짧은 메시지 하나쯤은 다시 날릴 수 있을까? 혹시 선물을 보고 놀라지 않았으면 해서 말이지.
그의 질문에 마족 마법사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단방향의 메시지 정도는 가능하옵니다.
마켈그로이언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내 선물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
* * *
“씨팔!”
대원길드 길드장 오기원의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평소 냉철하기로 유명하고 저급한 욕설을 하지 않던 그의 입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의 욕설에 놀랍다는 반응을 하지 않았다.
다들 시선이 한쪽으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워어어어어!
기괴한 괴성을 내뿜으며 몸을 일으키는 마물 하나가 있었다.
문제는 기분 나쁜 괴성이 아니었다.
“대, 대체 크기가?”
어마어마한 그 크기가 문제였다.
“대형 마물이 무릎까지도 안 온다니…….”
대형에 속하는 마물들의 크기야 다들 다르지만 대충 평균 잡으면 육칠 미터는 되었다.
기준은 약 오 미터 정도를 잡긴 하지만, 제대로 큰놈은 십 미터에도 육박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마물은 최소한 오십미터에 가까워 보였다.
미국에서 나타난 마족보다도 더 큰 크기의 마물이었다.
그때 그 마물이 마치 기원을 바라보는 듯했다.
그때 그의 뇌리로 익숙한 음성의 메시지가 들려왔다.
-선물이라네. 자네를 영웅으로 만들어 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