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4화 원래 감당하기로 한 것
* * *
전화를 통해 들은 이야기를 설명해 준 구은태 박사와 일행들은 긴장된 얼굴로 카르탈마니어를 바라보았다.
굳은 얼굴을 한 채 고민을 하던 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 예상이 맞는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순간 강문호 중령이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또 다른 위기가 다가온다는 말에 절로 욕설이 튀어나온 것이다.
“그런데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해 오는 게 실리적으로 맞는 행위가 아닌가?”
당혹스러운 상황에서도 구 박사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카르탈마니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평소라면 그게 맞겠지만, 이미 그러한 방법으로 힘의 소모만 얻었으니…….
잠시 말을 흐렸던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이어 나갔다.
-……아마도 강력한 힘을 제대로 투사하겠다는 의도일 것입니다.
“강력하다? 이미 군주급이니 뭐니도 나온 마당에 더 강력한 거이 있갔네?”
을지부루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되묻자 카르탈마니어가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마수의 군주와는 상황이 다르옵니다. 그의 진짜 힘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마수들입니다. 그렇지만, 힘을 쌓기 위해 본인이 직접 침공한 대신 정예라 부를 수 없는 병력은 거의 끌고 오지 못했습니다.
카르탈마니어의 말에 다들 입을 떡 벌렸다.
당시의 일이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거의 대한민국 전력의 절반 이상을 퍼부은 전투였다.
그럼에도 부루가 마수의 군주를 직접 꺾어 내지 않았다면, 방어에 실패했을지도 모르는 규모의 침공이었다.
그런데 그게 제대로 된 병력을 끌고 오지 못한 것이라고 설명을 한 것이다.
-그리고 이건 조심스럽게 예상하옵건대…….
카르탈마니어가 슬쩍 부루의 눈치를 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렇다 해도 군주급이 정상적으로 넘어오기 힘듭니다. 그래서 마수의 군주는 스스로의 힘을 봉인한 채 넘어왔었던 겁니다.
-그게 봉인한 거라고?
-그게 아니었다면 별의 파편 따위…… 큼, 그게 아니라.
“뭐 하나 빼 먹디 말고 제대로 말하라우. 수틀리면 대가리부터 딸 거이니까네.”
-아, 아마도 이곳에서 힘을 흡수한 뒤에 침식지를 넓혀 봉인된 힘을 되찾아오려 했던 것이 맞을 겁니다. 허나 그 머저리 같은 자는 이곳에 위대하신 영도자께서 존재하신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패착이었사옵니다!
“이거 통일되기 전에 북한 방송에서 나오던 대사 같은 느낌이…….”
서준모 경위의 중얼거림에 고빈이 맞장구를 쳤다.
“둘의 공통점은 잘 보일라고 한다는 거. 다른 점은 이쪽은 머리 간수를 위한 거?”
“그럼 군주급이 아니라 해도 강한 놈이 올 수 있다는 거겠네?”
그때 천유화가 끼어들며 던진 질문에 카르탈마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침식지의 마력을 하나로 모아도 탑의 출력에는 한계가 있을 겁니다. 아니라면 이전처럼 군주의 힘을 봉인해서 넘어오는 것인데…….
이미 한번 그렇게 넘어와서 부루에게 당했다.
물론 그때와는 다르겠지만, 같은 행동을 반복할 만큼 무모하지는 않으리라 판단했다.
그때였다.
“총리님.”
한쪽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박용우 총리에게 청와대 비서관 중 하나가 다가와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인가.”
“백악관입니다.”
백악관이라는 말에 박 총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시점에서 미국에서 연락이 올 이유가 없었다. 그때 청와대에서도 다시 연락이 왔다.
거의 동시에 온 연락.
박 총리의 선택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대통령님 박 총립니다. 또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잠시 듣고만 있던 박 총리가 굳은 얼굴로 통화가 끊어진 전화기를 비서관에게 넘겼다.
“그 희박한 확률이 이렇게 빨리 발생할 줄은 몰랐습니다.”
박 총리의 말에 다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가 버리고 온 탑에 방어막 비슷한 것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그 안의 미국 현지 연구원들은…….”
박 총리가 뒷말을 줄였다.
-바짝 마른 가죽으로 변했겠군.
대답은 카르탈마니어가 했고, 박 총리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백악관에서 왔다는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 * *
“분명 문제없을 것이라 하지 않았소!”
당황 반, 분노가 반섞인 음성이었다.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다시 활성화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도 드렸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감수하겠다고도 한 건 귀국입니다. 솔직히 당황스럽군요. 지금 우리가 아직 본국에 도착하지도 못했는데 어떤 기사가 났는지 더 잘 아시잖습니까.]
순간 닉 레너드 대통령의 말문이 막혔다.
[지금 우리는 패잔병처럼 마음이 무거운 상태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패잔병?”
순간 레너드 대통령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우리 대통령님에게도 연락을 받았습니다만, 지금 제게 연락을 하신다고 해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만.]
박용우 총리의 대답에 닉 레너드 대통령은 얼굴을 구겼다.
“그쪽에 이곳 탑의 인원이 있는 것으로 아오. 지금 상황에 대해서 정보가 필요하오.”
나름 정중해진 음성을 뱉어낸 레너드 대통령의 시선이 한쪽으로 움직여갔다.
그곳에는 진땀을 흘리고 있는 존 버튼 안보 보좌관이 있었다.
버튼 안보 보좌관은 지금 상황이 당황스럽기만 했다.
분명 확률이 낮다고 들었다.
어려운 말이 있었지만, 그걸 다시 돌리기 위한 마력, 즉 에너지가 막대하기에 효율이 떨어져서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말을 들었었다.
물론 엿들은 이야기지만 말이다.
실제 논의를 했을 때에는 재침의 통로가 될 수 있으니 회수해야 한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 위험한 상황이 오면 자체 폭발을 시키면 된다는 판단을 했다.
보호막 같은 게 있을 때에는 흠도 안 나던 것이 그게 사라지고 나자 쉽게 손상이 갔다.
그래서 그곳을 장악한 뒤에 제일 먼저 한 일이 만에 하나 있을 상황을 대비하여 폭발물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첨단장치가 아닌 유선을 통한 폭발물을 이중삼중으로 설치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갑자기 이상한 막이 생기더니 마치 다른 세상인 것마냥 안과 밖이 차단이 되어 버린 것이다.
당연히 폭발물들은 작동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 안에 있던 연구원들은 마치 거대한 유리창 안에 갇힌 것마냥 허공을 두들기다가 미이라처럼 변해서 쪼그라들어 버렸다.
‘빌어먹을 다 동의해 놓고선!’
버튼 보좌관은 마치 자신을 죄인처럼 바라보는 레너드 대통령의 시선을 피하면서도 속으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 역시 조급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알겠소.”
전화를 끊은 레너드 대통령을 바라보았다.
“지금 그들 역시 상황을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네. 문제는 이쪽의 전조현상이 다시 통로로 활용되는 상황을 예상할 수 있다고 하더군. 결국…….”
레너드 대통령이 버튼 보좌관을 잠시 응시하다가 다른 국무위원 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우리가 감내하겠다고 하는 상황이 벌어져 버렸다는 것이지. 다만 다행인 것은.”
다행이라고 말을 하고는 있지만 레너드 대통령의 표정은 그리 밝지 못했다.
“다시 재가동된 탑은 원래의 목적을 전부 발휘할 수 없는 반쪽이라고 하더군. 침식균열보다는 안정적이지만, 큰 전력을 투사할 수 없는 정도.”
몇몇 국무위원들은 안도의 표정을 지었지만, 스미스 국장과 참모총장 등의 표정은 여전히 펴질 줄 몰랐다.
침식균열도 어렵게 버티던 중이었다. 심지어 다 뚫릴 뻔했던 상황도 있었다.
만약 대한민국에서 온 지원병력이 아니었으면,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을 것이 뻔했다.
“일단 만약을 대비해서 생산중인 무기들을 탑 주변으로 최대한 배치하시오. 그리고 다른 침식지들의 상황은?”
“작았던 침식지는 완전 소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도 그 영역에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쪽에서도 비슷하게 답을 하더군. 탑을 재가동하기 위해서라도 영역에 있는 침식지의 에너지원을 빨아들인다고. 최소한 탑 주변으로 전선이 줄어들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지.”
이어진 대답에 몇몇의 얼굴은 더욱 밝아졌다.
스미스 국장과 참모총장 역시 여전히 굳은 표정이지만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이어지는 변화에 대해서는 역시 그들이 도착한 후에 정보를 주고받는 게 좋겠지만…….”
“그보다 그들에게 다시 요청을 해서 탑을 회수해 가라는 것은…….”
어느 국무위원의 말에 다들 그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은 한숨이 깃들어 있었다.
“우리가 그들에게 거절의사를 밝힌 게 아직 사 일이 지나지 않았소. 심지어 그들은 아직 태평양 상공을 지나고 있고 말이오.”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스미스 국장이 거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국내 상황도 좋지 못합니다. 큰 틀에서 우리도 많은 것을 양보했지만, 대한민국 내부에서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습니다. 물론…….”
스미스 국장이 서늘한 표정으로 버튼 보좌관을 바라보았다.
“……불필요한 정보 공작 때문에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도 문제가 됩니다. 아마 그쪽에서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을 겁니다.”
“정보 공작을 한 적 없소.”
순간 버튼 보좌관이 발끈했다. 하지만 스미스 국장은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으며 답했다.
“대신 국가 간에 나눈 이야기에 대한 기본적인 통제도 하지 않았지요.”
“그건…….”
“그만.”
두 사람 간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가운데 레너드 대통령이 언쟁이 번져나가는 것을 막았다.
“지금은 먼저 이 상황을 최대한 막는 데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오.”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다들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 * *
“빌어먹을 멍청한 놈들! 놔! 대가리에 총알을 박아 넣고 올 거니까!”
폭주하는 멧 할러데이를 에덤 소장과 다른 군인들이 매달려 잡아끌었다.
“참으십시오! 지금은 그게 중요한 상황이 아닙니다!”
“빌어먹을!”
멧 중장이 그대로 쓰레기통을 걷어차 버렸다.
콰장창!
철로 된 쓰레기통이 그대로 구겨지며 나뒹굴었다.
“지금 방어선에 나뒹구는 쓰레기도 치우지 못했는데 어쩌라는 거야 대체!”
멧 중장의 외침에 에덤 소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방법은 없습니다. 지금 지형에다가 폐차장에서 가져온 블록을 쌓고 급속 경화 시멘트를 이용해서 때려 붓는 게 최선입니다.”
“응?”
에덤 소장의 대답에 멧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느냐는 시선이었다.
그러자 에덤 소장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강 중령이 위성통화를 걸어왔었습니다.”
“……shit.”
이쪽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지만 그들은 전우를 잊지 않았다.
“빌어먹을 이 일을 다 마무리하는 순간 난 이 나라를 뜰 거다.”
멧 중장의 대답에 에덤 소장이 놀란 눈을 했다.
“빌어먹을 그게 내 대답이야. 가서 재입대라도 해야 내 마음의 짐을 덜 수 있을 거 같아.”
멧 중장의 대답에 그와 함께 한국에 다녀왔던 군인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그건 다시 생각하시면 안 됩니까? 한국 군대 월급 가지고는 밥 몇 번 사먹으면 없다던데요.”
“맞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잘 버티려면 삽질을 엄청 잘하지 않으면 안 된다더라고요.”
그들의 농담에 멧 중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배우지 뭐.”
이제 겨우 웃음 짓는 멧 중장에게 에덤 소장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럼 소환자들을 부탁드립니다. 아마 힘든 싸움이 될 겁니다.”
“아마도.”
멧 중장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