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2화 피를 뿌리는 이유
* * *
‘이 와중에.’라는 말이 있다.
여러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말이지만, 보통은 어려운 상황 혹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쓰는 말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을 앞에 두고 자중지란을 일으키거나, 덜 중요한 일을 끄집어내 분란을 일으킬 때 흔히 사용한다.
지금이 그랬다.
-정부의 몰아주기 과연 옳은 일인가.
-새로운 권력의 한 축으로 급부상한 길드.
-정부의 영웅 만들기?
가지각색으로 포장되어 올라오는 기사들의 제목을 보던 고빈이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헐, 이 와중에?”
누가 봐도 깎아 내리기 바쁜 기사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대원길드의 고군분투. 알려지지 않은 영웅들.
-연일 밀려오는 마물들을 막아 내는 대원길드.
마치 미국을 다녀온 이들은 외유라도 하고 온 것마냥 표현하고 있었다.
반면에 문제를 일으키고 북쪽으로 쫓겨나다시피한 대원길드는 마치 시대의 희생양인 것처럼 표현했다.
거기에 나아가 그들이야 말로 영웅 만들기를 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허, 싸롸있눼.”
그 기사를 옆에서 본 서준모 경위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감상평을 남기고 있었다.
물론 당장 달리는 댓글들은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대침식 이후 정부가 해왔던 일들이 최선에 가까웠다는 것들을 다들 알고 있어서는 아니었다.
빈과 마찬가지로 침식균열이라는 사태가 벌어지는 위기의 상황에서 할 만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위기의 상황에서 뭉치는 민족 특유의 성향 때문에 욕을 먹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그런 기사가 도배되기 시작한 것은 아직 몇 시간도 되지 않았다.
마치 그들이 비행기에서 내리는 순간까지 집중포화를 하겠다는 듯 작정하고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최대한 그들의 도착이 금의환향이 되는 것만큼은 막겠다는 듯 말이다.
심지어 이 흐름에 숟가락을 얻는 정치권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제 좀 살 만한 거 같으니까, 목소리를 내려나 봅니다.”
김창진도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일부 사설에는 대침식 이후 연임된 대통령이 마치 독재를 꿈꾸는 것 마냥 표현되고 있었다.
이 일이 마치 그 일환인 것처럼 말이다.
정치적으로 연관된 언론들도 슬며시 숟가락을 얹으며 더 혼란스러워졌다.
“이게 효과가 있나요?”
어이없는 표정으로 빈이 묻자 창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즉답을 피했다.
“딱히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또 없다고도 할 수 없어서.”
“예?”
“일단 뭔가 있어 보이잖아. 여론이야 저런 기사에 안 좋게 달리기는 하지만, 뭔가 있긴 한가 보다라고 생각만 하면 장땡이니까.”
최소한 이들의 금의환향에 재를 뿌리는 것에는 성공하는 거다.
“끙.”
“그리고, 미국은 미국이라고 말은 하지만, 확실히 대침식 이전 때의 미국과 지금의 미국은 다르니까. 저자세 외교다 뭐다 말이 나오는 거기도 하고.”
“약간 저자세 같기는 하네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빈도 약간 실망스러운 감이 없잖아 있는 모양이었다.
물론 그런 것 치고는 제대로 엿을 먹였지만 말이다.
“찔리는 게 없는 건 아니긴 해서.”
“예?”
창진의 말에 빈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때 총리가 약간 당황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거기까지만 하시는 게…….”
“응?”
총리의 제지에 창진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다만 입을 한 번 뻥긋 했다.
‘핵.’
순간 빈이 ‘아!’하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모두가 눈치 있는 건 아니었다.
“액? 핵? 그거이 뭐이디?”
순간 박용우 총리가 창진을 노려보았다.
극비 아닌 극비다.
창진은 모르는 척 고개를 돌렸지만, 박 총리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지금 비행기 안에 있는 사람들 존재 자체가 대한민국에서는 특급이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핵에 관련된 이야기는 이미 공표만 하지 않았지, 다들 쉬쉬하는 정도다.
“핵미사일입니다.”
“뭐에 쓰는 거간?”
“이 세상을 수백 번은 멸망시킬 수 있는 무기입니다. 물론 그런 무기지만, 균열에는 먹히지 않았고요.”
러시아가 그 예였다.
대침식 초기 러시아는 과감하게 핵을 사용했다.
물론 인원의 소개령도 있었고, 때론 과감한 선택이 최선일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 정도로 몰렸던 상황이었다. 또 해당지역이 체르노빌 인근이었던 것도 결단을 내릴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땅은 넓고 대침식 당시 빠르게 일을 수습하기 위해서는 그게 최우선이라고 판단했었으며 시험해 보기에는 오히려 나은 상황이었으니까.
물론 후폭풍이 최소한이 되도록 핵배낭을 이용한 공격이었다.
결론적으로 의미 없었다.
소형이나 중형 마물에게는 효과가 있었지만, 그 이상의 마물들은 운동에너지에 의한 타격 이상은 줄 수 없었다.
심지어 폭발 후 방사능이 뿌려진 대지 위를 마물들은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 활보했다.
반면에 인간은 발을 들이지 못하게 되니 그곳을 중심으로 대규모 침식지가 형성이 되어버린 처참한 결과였다.
그것을 목격한 미국이나 중국 등은 만에 하나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서 만들어놓았던 작전을 모조리 취소했다.
그럼에도 핵은 탐나는 무력 중 하나였다.
대한민국 역시 북한으로 밀고 올라가면서 가장 먼저 별도의 특수부대를 활용해 핵미사일들을 장악했다.
말마따나 이 와중에도 그것만큼은 챙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방해할 미군도 모두 철수해 있었고, 떠들어댈 만한 일본은 섬들이 통으로 침식지가 되며 전전긍긍했다.
중국과러시아 역시 넓은 땅덩이를 지키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으니 그 판단은 맞았다.
생존이 최우선이 된 상황에서 핵을 내놔라 마라 할 수 없었다. 그 후에 가장 먼저 대한민국이 위기를 벗어난 뒤에는 미묘한 균형관계가 형성이 되어 버렸고 말이다.
“그럼? 미국도 그거 입 다물어 준다는 거였네요?”
박 총리가 쓴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와, 최소한 보유국은 됐네요.”
빈이 떨떠름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물론 그걸 떠들 수는 없겠지요?”
“예. 뭐…… 고충이 많으십니다.”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게 함정이다. 절차라는 게 있으니까. 미국 역시 유럽등지의 국가들을 신경 안 쓸 수 없고 말이다.
“그나저나 비행기 뜨고 열몇시간 날아가는 사이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네요.”
빈이 한숨을 쉬며 중얼거리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옆에서 구경하던 카르탈마니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계가 설마 일통이 된 것인가?
카르탈마니어의 중얼거림에 다들 시선이 그를 향해 돌아갔다.
“그 말이 왜 갑자기?”
지금상황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추론에 다들 고개를 갸웃거릴 만했다.
그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이야기는 출발 전에 나왔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지금 다시 튀어나온 것이다.
기사를 보고 말을 주고 받는 상황에서 말이다.
-마물들이 지속적으로 쏟아지는데 그걸 효과적으로 막아내고 있다는 이야기 때문입니다.
“그게 문제가 되요?”
-마계에 널리고 널린 게 마물이긴 합니다만, 그만큼 중요한 전력이기도 하니까요.
빈의 질문에 카르탈마니어가 대답했다.
“그걸 효과적으로 막으면 좋은 거 아닌가요?”
빈이 되묻자 카르탈마니어가 입을 다물었다. 잔뜩 찌푸려진 미간.
삼등신의 모습이라 귀엽느니 하기에는 그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카르탈마니 어의 입이 열렸다.
-비효율 적이지만.
모두가 카르탈마니어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마물의 피를 대지에 뿌려 침식지를 늘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물론 말 그대로 비효율적이지요. 다만 필요에 의해 침공 초기에 그런 방법을 활용하지요.
카르탈마니어의 이야기를 들은 이들의 얼굴이 눈에 띄게 경직되었다.
특히 구은태 박사의 얼굴이 더 굳어져 있었다.
대침식 초기 이론 중 사장 된 것 중 하나가 마물들이 밀집되어 죽은 곳에서 추가 균열이 생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있었다.
그 이론이 곧 힘을 잃었던 것은 마물이 많이 죽었던 곳들의 공통점은 마물이 생성되었던 곳들과 겹쳤기 때문이었다.
마물이 많이 죽어서 균열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균열생성 초기에 소형 마물이 먼저 나왔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라는 것이었다.
구 박사도 그 이론이 더 맞다 판단하고 있었고 말이다.
구 박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혹시…….”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던진 질문에 카르탈마니어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처음 무작위 균열을 통해 소형 마물을 쏟아낸 건 침공 초기에는 소형마물 이상의 마물들을 보내기에는 균열이 작기 때문입니다.
“그, 그럼?”
- 소형마물이야 개체도 많고 또 증식도 빠르기에 그렇게 이용을 합니다. 초기 균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비효율 적이지만 그런 방식을 활용하는 것이지요.
부루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하는 카르탈마니어였지만, 다른 이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 어차피 소형 마물은 소모성인데 왜 비효율을 따져요?”
빈의 질문에 카르탈마니어가 대답했다.
-수가 많은 것이지 무한한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그런 균열은 오래 유지하지 못하니 교두보를 마련한 뒤에는 지속적으로 마법으로 침식지를 넓히는 작업이 필요했지요.
“그럼 지금 이 비효율적 행동을 하는 건 대침식 초기때와 같은 것을 의미하는 겁니까?”
구 박사의 질문에 카르탈마니어가 고개를 저었다.
-이미 확보된 침식지가 있는 상황에선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다만 다른 하나.
말을 끊을 때마다 숨이 턱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말 그대로 막대한 피를 뿌리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통해 일시적이지만 탑을 소환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 잠깐! 탑? 탑이라고!”
-그렇소.
탑이라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구 박사의 반문에 카르탈마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지만 지금까지 그런 일은…….”
-강대한 군주의 대지에는 수많은 마물이 서식하는 법입니다. 그 마물들은 병단의 기본 단위. 아무리 마족병이 중심이라 해도 그 기본 병력이 전부 소멸된다면 균형을 이루기가 힘이 드는 법이라…….
“그, 그래서 마계가 하나로 통일되었을지 모른다는 말을?”
구 박사의 마지막 확인에 카르탈마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지금 상황이 심각했다.
어쩔 수 없이 부루에게 충성을 했지만, 나름 시간을 끌며 이쪽에서 세력을 쌓거나 한다면 이쪽에 새로운 군주가 마계와 같은 영역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졌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빠, 빨리 이 사실을!”
박 총리가 하얗게 변한 얼굴로 뛰어갔다. 위성전화를 통해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 * *
전화를 끊은 양현재 대통령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무슨 일이신지…….”
비서관의 질문에 양현재 대통령이 다급하게 외쳤다.
“비상회의 소집하고! 차, 차 사령관도 함께 부르게!”
“얼마 전에 복귀한 차준우 훈련소장 말입니까?”
사령관이라 불렀지만, 지금 보직은 소환자 훈련소의 훈련소장을 맡은 상황이었다.
“빨리! 대침식이 문제가 아니야!”
대통령의 외침에 비서관은 질문을 더 이어가지 못하고 밖을 호출했다.
대침식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
그것만으로도 지체할 시간 따위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