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1화 언론플레이
* * *
“지금 유럽 쪽은 난리도 아니라면서?”
순찰을 돌던 대원길드원 하나가 입을 열었다.
“뭐 그래도 수습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닌데 일반 균열의 빈도수가 높아졌다고 하더라.”
“그런데 우리 길드 너무 조용한 거 아냐?”
해외파견근무가 잦았던 대원길드이기에 이렇게 시끄러운 상황인데도 조용한 것이 이상했던 모양이었다.
“지금이 그럴 때냐? 안 그래도 시끄러운데.”
“그건 그렇지만.”
대원길드가 예전만 못한 것은 그들도 잘 알고 있었다. 하늘처럼 떠받들던 관련 공무원들의 반응만 봐도 그랬다.
규모는 여전히 대원길드가 크지만, 위세로 따진다면 대한민국 삼대 길드가 아니라 이대 길드라고 불려도 이상한 점이 없었다.
“길드 옮겨야 하는 거 아냐?”
“아서라. 그러다 찍히면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왜? 일본이라도 진출하고 싶냐?”
“미쳤냐?”
일본의 경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본토 중 일부가 아예 통으로 침식지가 된 곳이다.
그것도 모자라 지금 하루하루 국가 위상이 깎여 나가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지금 상황에서 일본 진출이라는 말은 축구로 따지면 프리미어 리그에서 중국리그로 가는 것과 같은 비유였다.
따지면 한국도 자칫 잘못했으면 일본과 같은 꼴이 될 수도 있었다.
북한의 붕괴 때문이다.
북한이 대침식을 막지 못하면서 벌어진 일은 일본과 같은 상황이 되기에 충분한 위기였다.
다만 대침식과 같은 전 세계적 재난이었기에 북으로 과감하게 치고 올라갈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과감한 북한진출을 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또 한 가지.
위기에 뭉치는 민족성도 빛을 발했던 것도 있었다.
그런 상황이었지만, 북한은 아직 낙후된 지역을 모두 복구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뭐 이쪽도 이제 슬슬 개발이 되고 있지 않나?”
“그 개발의 주역이 우리가 아니니 문제지.”
이번에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지원 중 하나가 낙후된 북한 지역의 개발이었다.
문제는 그것을 얻어낸 주역이 바로 전신길드란 것이었다.
물론 따지고 보면 전신길드 역시 그저 수혜자에 지나지 않지만 말이다.
“그나저나 왜 요즘 순찰을 자주 돌라고 하는 거지?”
“왜? 할 것도 없잖아. 이 동네.”
“그건 그런데 최근 들어 순찰 간격이 촘촘해지니까 피곤해서 그렇지.”
“요즘 침식지 인근 지형 변화가 심상치 않다잖아.”
“그런데 침식지가 늘어나는 건 아니라며? 다른 나라에 비하면야…….”
“아, 몰라. 까라면 까는 거지.”
그들은 그렇게 투덜거리면서 걸음을 재촉했다.
대원길드의 연구원들이 심상치 않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침식지 인근의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말인가?”
대원길드장 오기원의 질문에 연구원들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예. 마치 예전 대규모 침식이라도 벌어졌던 때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마물이 등장하거나 하지는 않잖습니까.”
그때 길드의 간부 하나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연구원이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모호하다는 겁니다. 차라리 침식현상이면 속 편할 건데, 마치 땅이 가뭄이라도 들 듯 조금씩 전반적으로 말라 가니까요. 이 현상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대원길드의 연구진은 세계에서 최고라 불리지 않습니까? 그런데 도움을 요청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번에는 대원그룹의 중진이 화난 표정으로 다그쳤다. 그러자 연구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가 최고인 것은 소재 공학과 연구 개발 쪽입니다. 침식지 자체의 연구는 아무래도…….”
연구원의 말은 틀림이 없었다. 사실 그들의 영역은 침식지 발현 쪽이 아니었다.
그들은 침식지의 소재 혹은 마물들을 통해 얻어낸 재료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즉 상품가치가 있는 것을 만들어 내는 쪽으로 특화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최근에 대마물 병기를 만들어 낸 구은태 박사 팀만 못하지 않습니까.”
“그건 사실 발명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연한 발견에 가깝지.”
“그 발견조차 못할 정도로 눈이 먼 이들을 우리는 수억씩 연봉을 주며 고용하고 있다는 건가?”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기원의 말에 연구원들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대원 길드의 장이자 대원그룹의 주인이나 마찬가지인 그의 발언에는 연구원들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만약 이 상황에서 침식발현이 벌어진다면?”
“유럽쪽에서 온 연구자료를 토대로 봤을 때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봅니다. 균열의 전조까지는 아닙니다. 다만 해당 지역이 너무 광범위하니까 이에 대한…….”
그때였다.
애애애애애앵!
요란한 싸이렌 소리가 울려오자 그들의 대화가 끊어진 수밖에 없었다.
이어 요란하게 울려오는 전화벨 소리.
“균열입니다!”
균열이라는 소리에 기원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디?”
“백두 섹터, 거기서도 중국 접경 지역입니다!”
그 말에 기원은 빠르게 회의실을 나섰다.
오기원과 길드의 정예들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전투가 마무리된 상황이었다.
“어떻게 된 거지?”
“침식지와 인근에서 동시다발적 균열이 벌어졌었습니다. 다만 대다수 폐급, 아니 F급에서 E급 마물들이 주류라 특수기동팀과 그룹 용병들이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인근에는 수많은 마물들의 시체가 있었고, 아직까지도 화약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그룹에서 파견 나온 홍보팀과 인근의 기자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어대고 있었다.
“딱 좋군.”
그 모습을 본 기원이 피식 하고 웃음을 머금었다.
“예?”
“경계 강화하고 기자들 대접 잘 해 주고.”
“기자들이야 항상…….”
최근에는 기자들에 대한 접대에 더 신경 쓰고 있었다.
대원길드의 위상이 이전 같지 않아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이야기가 나갈 수 있게끔 말이다.
“더 해 주라고. 내일 아침이면 복귀할 건데 기왕이면 그들이 없는 사이 위기를 우리가 막아 냈다고 하면 좋지 않아?”
“아…….”
“위기의 상황에 해외여행이나 다니는 이들과 달리 우리는 오지에서 대한민국의 방위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좋지 않겠어?”
기원의 말에 다들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어차피 저들이 해낸 일들은 이미 기사들로 떠들어댄 지 꽤 되었다.
그 화룡점정이 그들의 복귀였지만, 그 화려한 마무리에 똥물을 뿌리자는 의미였다.
그뿐 아니다.
기존에 대원길드가 욕을 먹었던 걸 그들에게 똑같이 갚아 주겠다는 의도도 섞여 있었다.
“나쁘지 않습니다.”
“기왕이면 시체들을 한곳에 모아서 연출하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그런 건 알아서 하고.”
이런 면에서 오지라는 게 좋았다.
조작하기에 딱 좋은 지역이었다. 증인이라고 해 봐야 길드원들과 연관된 이들이 전부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거. 알맹이는 다 뺏기고 왔다는 기사도 함께 터트리고 말이지.”
“알겠습니다.”
아껴두었던 기삿거리가 하나 또 있었다.
미국에서 대신 싸워 주고도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빼앗기고 왔다는 것.
그러고 생색내기용으로 잡다한 것만 받아왔다는 식의 기사가 나갈 것이다.
물론 그 생색내기용이 적잖은 것은 아니었지만, 중요한 것은 이쪽에서 원했던 것을 받아오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 중요했다.
“기왕이면 딱 이정 도의 일이 좀 더 길게 이어지면 좋겠군.”
결국 기원의 말은 씨가 되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다시 접경지역으로 계속 마물들이 부정기적으로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었다.
마치 물량공세라도 하듯 말이다.
그러나 나름 만반의 준비를 마친 대원길드는 그 마물의 러쉬들을 잘 막아 내었다.
그리고 효과적으로 그 장면들을 편집해서 사방으로 내보내었다.
* * *
위성통화를 마친 박용우 총리가 안도의 숨을 내뱉었다.
“후우.”
“상황이 어떻답니까?”
“대원길드가 잘 막아 내었다고 합니다.”
박 총리의 말에 구 박사가 혀를 찼다.
“개똥도 필요하면 약에 쓴다더니 거기에 틀어박아 두니 또 이럴 때에는 제 값을 하네.”
“그러게 말입니다.”
구 박사의 말에 박 총리가 웃으며 대답했다.
“피해는 없답니까?”
“그게 나름 필사적이라는 기사가 뜬 것 같기는 한데, 딱히 지원을 요청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형식적으로 자신들의 뒤쪽에 방어라인을 만들어 달라는 정도?”
박 총리의 말에 구 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 와중에 언플이구먼.”
“대원길드가 좀 몰렸잖습니까. 정부에서 연결된 끈도 다 끊어져 나갔고.”
대원그룹의 지원을 받은 정부의 각료들이 다들 끈이 떨어지거나 집중감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이기에 대원그룹에 대한 방패가 지금은 거의 없다시피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마족 마법사들의 말로는 당분간 균열을 열 여력이 없을 거라던데. 연구원들은 출발했다고 합니까?”
구 박사의 질문에 박 총리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직은. 일단 해당 지역의 관리 책임은 대원그룹에 있기에 요청이 있기 전에는 굳이 진입을 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그쪽에서 위험과 보안을 들어 일이 좀 마무리된 이후에나 허가하겠다고 하니까요.”
“허, 머리 쓰는 거 하곤.”
위기라면 모를까 성공적으로 막아 내고 있는 현장에 연구인력을 무작정 집어넣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그쪽에서 거절을 한 것도 아니고 안전을 이유로 잠시 보류하라는 말이니 이쪽에서 강제하기도 모호했다.
“배워먹은 짓 어디 가지 않는군.”
이건 이전에도 대원그룹에서 종종하던 짓이었다.
물론 대원그룹뿐 아니라 각 토벌을 맡았던 길드들도 하던 행동이었다.
일종의 전리품 정산 같은 것이다. 아무래도 무언가 새로운 것이 나왔을 때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그게 손해라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먼저 확인해서 등록해야 그게 재산이 된다.
그래서 일종의 전리품 정산시간은 봐주는 것이 관례화되기도 했고 말이다.
다만 구 박사는 미국에서 겪고 온 일들 때문에 신경이 바짝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와중에도 밥그릇 싸움이라니.”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중얼거리는 구 박사에게 강문호 중령이 입을 열었다.
“꼭 그것만은 아닐 겁니다.”
강 중령의 말에 구 박사가 그를 돌아보았다.
“무슨 말인가?”
“아무래도 우리가 도착하니까, 적절히 좀 언론플레이를 하지 않겠습니까? 무난히 막았다는 걸 보면 나온 마물들의 종류도 대충 예상이 되고 말입니다.”
“어차피 별거 아닌 게 드러날 일인데 굳이…….”
구 박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리자 박 총리가 쓴 웃음을 머금으며 말을 이었다.
“어차피 그런 건 정정 보도를 할 건덕지가 없지 않겠습니까?”
“응?”
“막아 냈다는 게 중요하겠지요.”
그때였다. 누군가가 박 총리에게 다가와 귀엣말을 하자 그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어 직원이 건네준 태블릿을 열어 보았다.
“허?”
순간 박 총리의 입에서 헛바람 소리가 흘러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강 중령이 조심스럽게 묻자 박 총리가 안색을 굳히며 태블릿을 전달해 주었다.
강 중령이 그것을 받아들자 옆에 있던 구 박사도 궁금한지 시선을 태블릿으로 향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구 박사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세계적인 호구 짓 인증인가?
딱 봐도 자극적인 제목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그 기사의 내용은 점입가경이었다.
마치 그들이 정치적인 이유로 미국에 소중한 소환자 인력을 보내 제대로 된 대가도 받지 못하고 귀국하는 것처럼 기사가 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