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0화 바꿔치기
-흐음.
마족들 사이에서 군주의 남자 혹은 부루의 남자라 불리는 헤게루이안은 미리 사전에 받은 명령을 충실히 이행을 했다.
마법에 관해서는 아직 많은 것을 알지 못하는 인류와 달리 을지부루는 이미 그 효용을 알고 있었다.
물론 체계는 다르지만, 충분히 빈틈을 찾을 수 있다는 판단 하에 김창진등 요원들과 함께 모의 상황훈련을 거쳐 침투 및 탈취에 성공했던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은 대한민국의 원정부대가 철수한 뒤에 실시되었다. 의심을 살지 모르지만, 증거가 없어야 하니 말이다.
헤게루이안이 손에 쥔 지도를 펼쳐 보았다.
대한민국과 미국을 가르는 바다가 대충 손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빨간 점이 직선으로 그어져 있었다.
빈이 친히 그려준 지도다.
굳이 지도가 필요하지는 않았다. 군주에 종속된 마족들은 그 힘을 멀리서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빈은 혹시 모른다며 나름 친절하게 지도를 그려준 것이다.
-이쪽으로 쭉 가면 된다는 말이지?
헤게루이안은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약간 걱정 어린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뭐 가다 보면 나오겠지. 군주님의 힘도 이 방향에서 느껴지니…….
다만 불안한 것은 힘은 느껴지는데 그 크기가 적게 느껴지고 있었다.
이유는 여럿이 있을 수 있다.
힘을 감추었거나, 혹은 대기의 여러 물질 때문일 수도 있었다.
단순하게 생각해서 멀어서 일 수도 있지만, 이렇게 지도를 쥐어 준 걸 봐서는 설마 못 찾아갈 곳을 알려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럼 가 봐야지.
헤게루이안의 몸뚱이가 바다를 건너기 시작했다.
-바다가 넓어봐야 얼마나 넓겠어.
그 생각으로 몸을 띄운 것이다.
마계의 바다가 해당 행성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십분의 일이었다.
그리고 지구에서 바다는, 삼분지 이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헤게루이안은 바다를 건너기 시작했다.
* * *
-임무를 마치고 출발하였다고 합니다.
“……기래.”
부루는 옆에서 알짱거리며 보고를 올리고 있는 카르탈마니어를 보며 적응되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와, 이래서 파충류를 키우는 사람도 있나?”
-파, 파충류라니! 그런 저급한 종자들과 비교를!
“미안요.”
발끈하는 카르탈마니어를 보며 고빈은 재빠르게 사과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입을 막기 급급했다.
터져 나오려 하는 웃음 때문이었다.
덩치가 큰 대부분의 마족들과 마물들은 지금 항공편과 배편을 이용해 이동 중에 있었다.
물론 이 부분은 미국 측의 도움이 있긴 했다.
나름 미안한 부분이 있는지 이러한 편의 정도는 전폭적으로 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군주에게 잘 보이지 못해 안달한, 정확히 말하면 깍아먹은 점수를 최대한 회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카르탈마니어는 부루가 타고 있는 항공편에 함께하고 있었다.
물론 거대한 덩치가 탈 비행기는 없었다. 그러나 고위 마룡족답게 또다른 능력이 있었다.
바로 체형을 변환시키는 고유마법이었다.
물론 드래곤 일족처럼 종마저 다른 형태로 변하는 폴리모프 마법을 쓸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고유 형태를 벗어나지 않는 한에서 크기를 줄일 수 있었던 것이다.
“삼등신을 만화에서나 봤지…….”
그때 한쪽에서 슬쩍 훔쳐보던 기동대원 하나가 중얼거렸다.
그러자 카르탈마니어가 고개를 홱 돌리며 그 기동대원을 노려보았다.
날카로운 눈빛.
그 눈빛을 본 기동대원이 거친 숨을 내뿜었다.
“하악! 소장욕구가…….”
-뭐, 뭐냐 그 기분 나쁜 표정!
겁내기는커녕 오히려 숨소릴 거칠게 내뿜는 기동대원을 보며 카르탈마니어가 인상을 찌푸렸다.
삼등신.
키 일미터도 안되는 크기로 변한 카르탈마니어는 소위 장화신은 고양이라 불리는 케릭터에 버금 갈 정도로 귀여워 보인다는 게 함정이었다.
“안 그래도 인방에 출연시키게요. 그 다음에 캐릭터 산업에 진출하면…….”
“오! 큰 그림!”
“대박! 나 좀 모아놓은거 있는데 지분 투자좀.”
“이럴 때일수록 도와야지. 우리 기동대 연금공단에다가 내가 적극 추진해 볼게. 전우아이가!”
“흘흘 그것도 좋은데요?”
고빈의 큰 그림에 그와 가까운 기동대원들이 함께 숟가락을 얹었다.
“그런데 말을 들을까?”
“부루 아저씨랑 딜했죠.”
“응?”
“부루 아저씨 부하니까. 까라면 까겠죠. 도착하는 대로 밥상을 한우로 도배해 드리기로 했어요.”
“캬!”
-…….
그들의 대화를 듣던 카르탈마니어가 분노에 부르르 떨다가 이내 서글픈 눈동자로 부루를 올려다보았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동정심이라도 얻어 보려는 모양이었다.
그런 카르탈마니어를 쓰다듬는 손길이 있었다.
-……이건 또 무슨!
“아. 저도 모르게…….”
귀국 인원의 편의를 위해 전세 기에 함께 탑승하고 있던 스튜디어스가 자신도 모르게 카르탈마니어의 머리를 쓰다듬은 것이었다.
-크윽! 이런 치욕이!
결국 카르탈마니어는 자신의 자리에 앉아 울분을 참아야만 했다. 하지만 귀국길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스튜디어스들이 오다가다 그에게 준 사탕이라던지 과자라던지 하는 음식이 그나마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오도독!
-달콤하긴 하군.
나름 적응을 위해 노력하는 카르탈마니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김창진에게 서준모 경위가 킬킬 거리며 말을 걸었다.
“바꿔치기 된 거 보고, 아주 난리 났겠지?”
“났겠죠? 이거 저거 내주면서 지키려고 했던 게 사라졌을 테니까요.”
“그치?”
“뭐, 그래도 어쩌겠습니까. 지들이. 증거가 없는데.”
창진의 말에 서 경위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암. 그래야지. 참 뭘로 바꿔치기 했다고?”
“뭐, 일단은 없어지면 더 복잡할지 모르니까, 이곳에 없는 걸로 바꿔치기 해 놓으라고 했는데 무슨 뭐라더라?”
“시간을 끌 수는 있으려나?? 뭐, 상관없지 흐흐흐.”
서 경위의 음흉한 미소만이 조용히 감돌 뿐이었다.
* * *
심각함과 분주함이 감도는 가운데 연구원들은 창백한 얼굴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물질변환일까요?”
“그럴 수도.”
“세부 분석 결과 나왔습니다. 현 지구상에 없는 물질임에는 분명합니다.”
“지난 연구 데이터는!”
“아직 뽑는 중입니다!”
51구역.
그중에서도 가장 최 심층부, 게이트 스톤 연구실이라고 명명된 곳에서는 그 어떤 때보다도 연구원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당황 반, 기대 반이었다.
그동안 연구하면서 빛을 발하는 정도만의 변화만 보였던 연구대상이 하루아침에 그 형태가 변환되어 있었다.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이게 무언가 일차적인 변곡점일지도 모른다는 기대심리도 있었다.
“크기와 형태가 변환된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손안에 들어오는 크기의 돌멩이를 닮았던 게이트 스톤이라 명명된 것이 지금은 마치 작은 옥수수처럼 변해 있었다. 갈색의 형태에 수정조각 같은 것이 점점이 박혀 있었다.
“모르지. 다만 우리 연구가 진일보 되어가는 것일지도 몰라. 이것이 내뿜는 파장 데이터가 오는 대로 다시 연구를 이어가야겠지만. 어찌되었든 일차 변환이 시작되었는데 이걸 그대로 대한민국 연구진들이 가져갔었다면 배 아플 수도 있겠어.”
“다행이군요.”
“아이언맨 프로젝트 쪽은?”
“이 결과를 의식하고 있습니다. 그쪽이 관리하던 아머도 동시에 형태가 변환된 것으로 보아 무슨 연관이 있을지 모른다는 입장이니까요.”
“그래. 해 보자고.”
연구원들의 열의가 점점 높아져 갔다.
아이언맨 프로잭트 팀이라 불려진 연구실은 기공의 고수가 불려와 힘을 불어넣고 있었다.
몇몇 기공을 쓰던 인원이 힘을 죄 빨려 미이라가 된 이후 다시 시도되는 실험이었다.
물론 동원되는 이는 그걸 알지 못하고 말이다.
“으음. 색의 변화만 좀 있을 뿐인데.”
“그래도 연구 초창기처럼 갑주가 입혀지면서 생명력을 잃고 죽는 현상은 없지 않습니까. 무언가 변화가 생길 겁니다.”
“이 작은 미지의 금속판이 원래 갑주로 변환된다? 하아. 질량보존의 법칙조차 벗어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그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반드시 우리가 먼저 결과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자료를 봐서 아시잖습니까. 이 연구가 어떤 결과물을 만들어 낼지.”
“서울테러 영상이라면 지겹게 봤지. 좀더 힘을 내자고. 그리고 게이트 스톤팀과 공조도 더 철저히 하고.”
연구원들은 모처럼 일어난 변화에 의욕을 불태웠다.
* * *
“그거요? 엘리멘탈 웜인지 뭔지 하는 거가 만들어낸 거라던데요?”
기내 화장실에서 만난 고빈과 서준모 경위는 마나석 대신 놓고 온 것에 대한 정보를 나누고 있었다.
“만들어내? 중요한 건가?”
-정보가 필요한 거군.
그때 아래쪽에서 신중한 음성이 들려왔다. 카르탈마니어였다.
“그게 뭐에요?”
빈의 질문에 카르탈마니어가 입을 열었다.
-엘리멘탈 웜은 마계의 지중을 다니는 마물중 하나로 마계의 광석자원을 먹잇감으로 하는 종이지. 그놈이 광석을 먹고 배출해 내는 또 다른 결정석인데, 마계의 농부들은 이걸 농사짓는 데 활용하지. 식물의 생육에 도움이 크거든.
“……똥 같은데요.”
-똥? 마수 같은 것들이 먹고 싸재끼는 것을 말하는 건가? 뭐 비유하자면 비슷하겠군. 광석을 먹고 배출해 내는 거니까.
“아……. 왠지 속지 않을지도.”
결론 적으로 마나석 대신 마수 똥을, 그리고 소울아머 대신 마계의 병졸이 쓰는 일종의 신분증을 놓고 왔다는 것이었다.
빈이 불안한 표정으로 서 경위를 봤다. 그러자 서 경위도 어색한 미소로 빈을 바라볼 뿐이었다.
* * *
“이제 시작일 뿐입니다. 연구 결과가 쌓일수록 우리는 미지의 힘에 한걸음 더 다가갈 겁니다.”
존 버튼 보좌관의 강력한 발언에 닉 레너드 대통령은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했던 부분은 문제가 없었던가?”
“경계체계는 여전히 문제없었고, 출입흔적도 없습니다. 연구의 진일보로 다들 확신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기존 연구 결과의 데이터를 토대로 변화의 계기가 무엇인지를 확인하는 단계라 보시면 될 겁니다.”
“흐음. 어쨌든 어려울 때 도움을 준 동맹에게 억지에 가까운 무리를 해서 지킨 것인 만큼 인원을 더 투입해서라도 결과를 만들어 냈으면 좋겠군.”
레너드 대통령의 희망 섞인 말에 버튼 보좌관이 의기양양하게 답했다.
“걱정 마십시오. 모두가 미국을 위해섭니다.”
“나도 그렇게 믿네.”
그들은 미국의 발전을 위해 자신들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 * *
산을 오르던 사내들이 심각한 얼굴로 말을 주고 받고 있었다.
“요즘 좀 이상하지 않슴까?”
“임자도 그래 생각했네?”
“산주변이 죄 말라가는 게 눈에 보이는데 이상하지 않을 리 없디 안갔슴까?”
“길티? 나무도 죄 말라가는 게 뭔가 이상하구만.”
그들은 약초꾼들이었다.
그것도 북쪽의 백두산 자락에서 활동하는 이들이었다.
“알려야 하는 거 아님까?”
“헛짓 말라우. 우리 여서 약초 캔다고 사방팔방 알릴 일 있네?”
“기티만…….”
“뭔일 있음, 알아서 하갔디. 거 남쪽서 알아주는 아들이 왔다디 않네. 대원인지 뭔지 하는 곳 말이야.”
“기건 길티요. 어쨌든 날래 움직이시디요. 날이 저물갔시오.”
그들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는 사이 그들이 지난 길에 있던 풀들은 그 시간에도 점차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