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9화 알리바바는 전자상거래 회사
* * *
협상이 결렬되기가 무섭게 일행들은 짐을 쌌다.
이런 급작스러운 움직임에 놀란 것은 다름 아닌 함께 전투를 했던 미군들이었다.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에덤 소장이 분통을 터트렸다.
그때 멧 할러데이 중장이 씩씩거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좀 알아보셨습니까?”
“빌어먹을!”
콰앙!
에덤 소장의 질문에 멧 중장이 그대로 쓰레기통을 걷어찼다.
양철 쓰레기통이 그대로 종잇장처럼 구겨지며 내용물을 쏟아내며 나뒹굴었지만 에덤 소장은 그를 탓하지 않았다.
“무슨 일입니까.”
에덤 소장의 질문에 멧 중장이 한숨을 탁 쉬며 대답했다.
“빌어먹을 정치꾼들!”
“아…….”
정확한 내용을 말하기도 전이었지만 정치꾼이라는 말에 에덤 소장은 탄식을 흘렸다.
“빌어먹을 안전해 졌다고 벌써부터 밥그릇 싸움이라니.”
멧 중장이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얼굴을 양손으로 비볐다.
“이거 좋지 않습니다.”
에덤 소장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지금 병사들의 반응은 붕떠 있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동맹이니 혈맹이니 떠들어대던 병사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굳은 표정으로 갑작스럽게 떠난다는 말에 다들 어리둥절해 있었던 것이다.
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윗선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만약 이쪽의 욕심으로 인한 것이라면, 그들의 사기는 크게 낮아질 것이다.
부채의식.
함께 전장에서 싸운 병사들에게는 좋지 않은 감정이었다.
비록 미국은 당분간 안전해졌다고는 하지만, 저들이 완전히 물러가기 전까지는 이 전쟁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미래를 위해서라고? 지금 눈앞의 일도 처리 못해서 동맹군의 도움을 받은 주제에? 당장 그들이 없었으면 우린 이미 이곳에 없었다고!”
멧 중장이 울분을 토하듯 외쳐 대었다. 에덤 소장은 묵묵히 그의 울분들 함께 들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그도 지금 당장 군을 때려치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런데 일반 병사들은 어떻겠는가.
두 사람의 한숨소리만 쌓여갔다.
* * *
“지금 뭐하는 거이간.”
“출입 증서를 주셔야 진입이 가능합니다.”
검은 복장을 한 군인들이 을지부루와 일행들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평소 이들과 인사를 주고 받던 경계병들이 난감한 얼굴로 서 있었다.
지금 그들이 들어가려는 곳은 탑의 내부였다.
이들이 떠날 차비를 하면서 마지막으로 들린 탑의 진입을 처음 보는 군인들이 막고 있었던 것이다.
“허, 가지가지 하는 구나.”
구은태 박사는 그들의 행동에 혀를 찼다.
그때 뒤에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뭐하는 거야!”
일행들이 뒤를 돌아보자 멧 할리데이 중장과 에덤 소장이 벌게진 얼굴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보건대 일행들을 향한 분노는 아니었다.
“누가 함부로 차단을 하라 했나!”
이곳의 실권자인 에덤 소장이 버럭 소릴 내지르자 안쪽에서 검은 양복의 사내가 나와 신분증을 보였다.
“해당 시설은 우리측에서 관리하기로 했습니다.”
“공문은?”
신분증을 본 에덤 소장의 질문에 검은 양복의 사내는 덤덤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마 지금쯤 도착했을 겁니다. 우리는 그저 명령대로 이곳의 경계를 인수…….”
퍼억!
그때 성큼 걸어간 에덤 소장이 원래 경계를 서던 병사의 가슴팍을 밀어치며 외쳤다.
“누가 명령 없이 경계지역에 외부인을 들이라고 했나!”
“죄, 죄송합니다!”
에덤 소장의 행동에 검은 양복 사내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난, 아직 그 빌어먹을 공문을 받지도 못했고 내 임무는 끝나지 않았네.”
“지금 장군께선…….”
“뭐하나! 제압해!”
“Yes, sir!”
에덤 소장의 외침에 한방 얻어 맞았던 병사들을 비롯해 원래 경계를 서던 인원들이 큰 목소리로 답하며 일제히 소총을 들어 그들에게 겨누었다.
그러자 입구에 그들 대신 자리를 잡고 있던 검은 군복의 사내들도 동시에 소총을 들어 겨누었다.
에덤 소장의 행동에 검은 양복의 사내가 씁쓸한 미소를 입에 머금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장군께선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정면으로 어기고 계십니다.”
“그 명령 받지 못했다는 말을 이미 했네만.”
에덤 소장의 말에 검은 양복 사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였다.
“그만 하라.”
차분한 음성.
부루의 말에 에덤 소장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너럴 을지. 이곳은 제가 책임을 질 것이니…….”
“공문을 보냈다디 않네. 무리하지 말라우.”
공문이 왔다는 건 에덤 소장도 알고 있었다.
다만 이곳에 갑자기 다른 기관의 병력이 들이닥쳤다는 말에 도착했다는 공문은 뒤로하고 이곳으로 곧바로 온 것이다.
조금 전 부루 일행이 이곳으로 갈 것이라는 통보를 받은 뒤에 벌어진 상황이라 무언가 불길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예상은 맞았고 말이다.
“하지만…….”
“아군끼리 드잡이질 말라우. 자네 마음은 내래 잊지 않갔어.”
“제너럴…….”
부루 답지 않은 부드러운 음성에 에덤 소장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죄송합니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멧 중장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이며 다가왔다.
“됐어야. 죄송은 무슨. 고생했어야. 아들 훈련은 빼먹디 말라. 알간?”
“걱정 마십시오. 그리고…….”
부루와 일행들이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멧 중장은 할 말이 많은 듯 했지만, 짧게 마무리 했다.
“언제든 필요하시면 부르십시오. 어디든 가겠습니다.”
“…….”
자신을 향한 시선에 멧 중장이 멋쩍은 웃음을 머금으며 몇 마디 덧붙였다.
“전우잖습니까.”
“……기래.”
멧 중장의 말에 부루는 그의 어깨를 툭툭 쳐주고는 그대로 뒤를 돌았다.
그리고는 그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어져 갔다. 더는 탑에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말이다.
“좀 미안한데요.”
여태 입을 다물고 있던 고빈의 말에 다들 어색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도 이렇게 해야 의심을 피하지.”
“그건 그렇죠.”
탑의 힘을 회수하는 건 굳이 안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 천천히 탑의 영역을 벗어나면서도 부루는 힘을 흡수하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이렇게 일을 벌이는 이유는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을 티내기 위함이었다.
탑의 힘을 최대한 흡수하고 나면 탑은 빠른 속도로 빛을 잃는다. 마치 불 꺼진 전구마냥.
표면에 은은하게 흐르는 보이지 않는 광택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육안으로도 변화를 알 수 있다.
물론 이유를 모르면 어리둥절할 수도 있다.
그저 침식지가 환원현상을 일으키는 것과 유사한 현상인지 알 수 없는 일이긴 하다.
그러나 반대로 이쪽을 의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기에 아예 이런 연기를 한 것이다. 어차피 힘의 흡수를 위해서는 근처까지는 왔어야 했으니까.
“이대로 우린 뜨면 되는 겁니까?”
“기래. 헤게 뭐라는 아새끼가 알아서 한다니까네. 뭐디? 알리바바를 만들어야 한다지 않았네?”
“알리바이요.”
“기거나 기거나.”
“허허. 알리바바는 동화책 주인공이잖습니까.”
부루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구 박사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러 자 빈이 킬킬거리더니 끼어들었다.
“에이. 알리바바는 전자 상거래 회사잖아요. 중국거.”
빈의 대답에 구 박사와 일행들은 그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넌 애기 때 동화책도 안 봤냐?”
“유튜브를 봤죠.”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빈을 보며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싹수가 노랬어…….”
* * *
대한민국으로 향하는 군용기가 뜨는 가운데 전투에 참여했던 미군들이 경례를 올리고 있었다.
나름 떠나가는 전우에 대한 예우였다. 그 와중에 그 모습을 바라보던 존 버튼 보좌관의 표정은 더없이 시원해 보였다.
“더 귀찮게 굴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이군.”
그들은 회의석에서 자리를 벗어나면서 한 말대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국을 떠났다.
물론 중간에 탑으로 접근하는 그들을 알아채고 막아서는 과정에서 실랑이가 있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이쪽이 원하는 대로 마무리가 된 것이다.
“그런데 출혈이 만만치 않습니다.”
뒤쪽에서 따르는 이가 조심스럽게 내뱉은 말에 상쾌해 보이던 버튼 보좌관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어쩔 수 없지. 군의 사기도 생각해야 하고,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니까.”
그 말대로 꽤나 출혈이 있기는 했다. 산업적인 부분부터 군사무기까지 꽤 퍼줘야 했다.
심지어 최신 무기 라이센스와 기술공여까지 약속을 해주고 나서야 실랑이가 끝이 났다.
“거머리 같은 놈.”
버튼 보좌관은 박용우 총리를 떠올리며 작게 욕설을 퍼부었다.
정말 치떨리게 뜯어갔다.
“최신형은 아니지만 항공모함까지 뜯어갈 줄은…….”
“그만 하게. 그만큼 뜯어갔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는 것의 가치가 높다는 것이니까.”
아직은 연구중이지만, 그 가치가 적지 않다는 건 조금씩 밝혀지고 있었다.
게다가 지금은 전 세계가 대침식에 대응하는 것이 최우선인 상황.
항공모함은 애물단지나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좀 운용을 줄여야 할 판이기도 했고 말이다.
“어찌 되었든 연구원들을 독촉해. 한국에서 공작을 통해 연구원을 더 보충해 올 테니까.”
버튼 보좌관의 노림수는 이것이었다.
안전해진 미국.
그리고 보장되는 부.
이것을 통해 한국의 유능한 연구인력을 데려올 작정이었다.
물론 당장은 아니다.
구 박사와 함께 연구를 진행하도록 일단 두었다가 소득이 생기게 되면 하나씩 뽑아올 예정이었다.
“소환자는 몰라도 이 정도쯤이야.”
버튼 안보 보좌관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떨어지질 않았다.
* * *
미국에서 도착한 기동대원과 을지부루 일행은 큰 환영을 받았다.
소위 국뽕의 종결자들이었다.
-천조국 별거 없네?
-주모! 여기 국뽕 한 사발!
-캬! 이쯤 되면 주모도 프렌차이즈 설립해야 할 듯!
-항공모함이 웬 말이냐!
-님들 저거 운용비나 뽑겠어요? 다 세금임.
-그래서? 주면 안 쓸 거임?
-세워놓고 입장료 받아도 운용비는 뽑지 않나?
-위에 님은 뇌를 안 쓸 거임?
-어쨌든 든든하네!
넷상에서도 이번 일에 대해 대체적으로 호의였다.
미군이 없으면 나라 망한다고 떠들던 때가 엊그제였다.
심지어 대침식 초창기 때 미군 철수를 보며 일부 인사들은 결사반대를 외치며 울고불고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젠 반대의 결과를 만들고 온 이들이었다.
이례적으로 이들이 도착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내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미국에서는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 *
미국 51구역 비밀기지 내에서도 최심층에 위치한 연구동.
“…….”
연구원 하나가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이, 이게 뭐지?”
오늘도 연구를 이어가기 위해 비밀금고를 열고 들어온 연구원은 눈을 껌뻑이며 자신이 본 것을 다시 확인했다.
마치 잘못 보았길 바라며 말이다.
“게, 게이트 석이…….”
검정색의 반들반들한, 복잡한 무늬가 수놓여 있어야 할 게이트 석이라 명명된 돌 대신 다른 것이 놓여 있었다.
크기는 비슷했지만, 색과 생김새가 다른 돌이 그 자리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아, 아니겠지?”
다시금 현실을 이탈하는 연구원의 음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