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37화 (137/305)

제137화 행복회로

* * *

닉 레너드 대통령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반대라고?”

“반대입니다. 그들이 우리를 도운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 탑을 회수해 가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것들을 상대하기 위한 우리 군인들의 희생은 생각하지 않으시는 겁니까?”

반대의 선봉에는 존 버튼 안보 보좌관이 있었다.

지금 이 자리에는 후속 대책을 위한 한국 쪽의 총리가 와 있었다.

후속대책이라 함은 탑의 회수였다. 탑의 회수는 구은태 박사 쪽을 통해 전달된 내용이었다.

지원군이 미국을 지켜 내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민감한 부분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예상한 부분이었다.

이야기가 길게 이어질 것도 예상했고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처음 인사하는 자리에서부터 강력하게 반대를 하고 나올 줄은 몰랐다.

박용우 총리는 버튼 보좌관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원래부터 강경파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대놓고 반대의사를 표현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이 문제는 추후 우리끼리 논의를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통령님. 추후 논의를 한다 하더라도…….”

“지금 자네는 선을 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나?”

레너드 대통령이 빠르게 수습을 하기 위해 말을 하는 순간에도 버튼 보좌관이 끼어들었다.

그에 레너드 대통령은 굳은 얼굴로 강력한 경고를 내비췄다.

있기 힘든 일이다.

물론 미국 측의 결례가 맞았다. 하지만, 그걸 수습하려는 대통령과 보좌관의 충돌을 본 총리는 일이 왠지 어렵게 돌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버튼 보좌관이 정말 안하무인이라서 이렇게 공식적인 인사 정도를 나누는 자리에서부터 저렇게 강력한 반대를 언급하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다.

일종의 논란거리를 만들기 위함인 것이다.

지금 레너드 대통령은 위기를 극복해낸 대통령으로 국민들의 지지를 얻어 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과 이것은 다른 일이긴 했다.

미국은 미국이다.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해 준 적은 있어도 내준 적은 없었다.

이 차이는 크다.

버튼 보좌관은 마치 미국이 내주는 것으로 모양새를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증거로 지금 두 사람의 충돌을 기자들이 연신 어디론가 송출하고 있었다.

콰앙!

평소 이 정도로 흥분한 모습을 보이지 않던 레너드 대통령이었지만, 지금만큼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그가 책상을 크게 내려치자 위에 있던 물건들이 자리를 이탈했다.

“지금 뭐하는 건가.”

“거듭 말씀 드리지만, 저들의 요구에 응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지금 잠시의 위기를 돌파했다지만, 상황이 종결된 건 아닙니다. 그런 상황에서 새로운 열쇠가 될 수 있는 물건을 내준다는 건 미래의 가능성까지 내주는 것입니다.”

“이야기 듣지 못했나? 일시적이지만 우리의 위기는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일시적이라는 것 말입니다.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는 말과 같습니다.”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버튼 보좌관은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다음에도 그들의 도움이 없이 지금처럼 승리할 수 있다고 보는가? 함께 그날의 상황을 지켜봐 놓고선?”

“다음에는 그들의 도움이 없이도 승리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반대의사를 표한 것뿐입니다.”

“…….”

“그리고 그들 역시 그날의 승리에 우리의 지분이 없다고는 못 할 것입니다.”

버튼 보좌관의 말을 듣던 레너드 대통령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그 자리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군.”

“……저는 그 누구보다도 제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파면을 의미하는 말에도 버튼 보좌관은 물러서지 않았다.

레너드 대통령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부 국무위원들이 버튼 보좌관과 함께하는 모양새를 느끼고 있었다.

그때였다.

버튼 보좌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저들이 다 말하지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무언가.”

레너드 대통령이 침착하게 반문했다. 버튼 보좌관이 이정도로 안하무인인 인물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뭔가 다른 내용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던진 질문이었다.

“그들은 이번 일로 일시적으로 우리가 위기를 벗어났다고는 하지만, 그건 반만 맞는 말입니다.”

“자세히 말해 보게.”

버튼 보좌관의 말에 레너드 대통령이 대답을 이어 가도록 종용 했다.

굳어진 표정은 여전했지만, 아까와 달리 분노는 살짝 누그러진 모습이었다.

그의 표정에는 오히려 뒤에 나올 설명에 대한 궁금증이 더 선명했다.

“본국의 침식지들은 이제 정상으로 환원이 된다고 합니다.”

“환원?”

“대침식 이전의 상황으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버튼 보좌관의 말에 레너드 대통령의 표정이 놀람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이 땅은 위기에서 벗어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탑을 점령하는 순간 그 결과가 나타난다고 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저들이 탑을 회수한다면 혹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입니다.”

버튼 보좌관의 이야기는 그들로서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이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연구원 대표로 참석한 이들도 약간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 모습을 본 버튼 보좌관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우리도 동맹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오픈하지는 않으니까요.”

분위기가 바뀌었다.

“해당 시설물을 연구해서 얻을 것이 많다고 생각하는가.”

“그동안 많은 연구가 있었습니다. 물론 그들에 비하면 모자람이 있을 수 있지만, 이 시설이 우리 땅에 있는 한은 그들도 우리에게 협조를 해야 할 것입니다.”

목적은 이것이었다.

연구 결과에 대한 공동 소유.

버튼 보좌관의 말에 레너드 대통령은 약간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탑은 위협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군주의 권능으로 탑을 회수해 간다는 말에 내심 동의를 하고 있었던 차였다.

하지만, 버튼 보좌관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그때였다.

“곤란합니다. 그런 식은.”

말을 꺼낸 것은 케인 스미스 정보국장이었다.

“일부 인원들이 대한민국의 임시 기지 주변에 포진되어 있던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런 식으로 정보를 편취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특히 그들이 알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저 우연히 입수한 정보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알고 있다 해도 말 그대로 우연히 알아낸 것뿐이니 문제는 없지요.”

버튼 보좌관이 입 꼬리를 올리며 답하자 스미스 국장이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정보를 다루는 입장에서 그가 모르는 정보를 다른 이의 입을 통해 듣는 것은 좋은 기분이 아니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런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다면, 그 역시 이후의 일에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다.

정보국의 수장이기에 오히려 이런 부분에 가장 민감했다.

소위 말하는 정보 조작 등을 통한 공작 같은 일을 해 왔지만, 그렇기에 정보 수집 등에 있어 빌미를 주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각 부처의 정보수집라인에 대해서 그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었다.

미국은 그만큼 광대한 규모와 영역을 가진 나라기 때문이었다.

그때 버튼 보좌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리고 이곳은 미국입니다. 우리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알아야 하는 게 기본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정보국장의 우려는 알겠습니다만, 그들의 영역이 아닌 이상 그들의 정보수집 활동도 한계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만.”

정보 수집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정보의 보호다.

버튼 보좌관의 말은 결국 스미스 국장은 자신의 일에 집중하라는 것이었다.

처음 화를 내던 것과 달리 고심을 이어 가던 레너드 대통령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일단 이 부분은 보류해 봅시다.”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버튼 보좌관은 미소 지었다.

다만 스미스 정보국장은 씁쓸한 미소를 입에 머금었다.

이 판단이 과연 좋은 판단인가 하는 고민만 길어질 뿐이었다.

* * *

박용우 총리는 허탈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미국 측의 통보 때문이었다.

‘회수는 어렵다. 다만 공동연구를 제안한다.’라는 답변이 왔기 때문이었다.

자국의 위협을 무릅쓰고 도왔음에도 이런 결과가 나온 것에 대한 허탈함이 강하게 왔던 것이다.

대침식 이후 대한민국의 위상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왔다고 자부했지만, 결국 또다시 미국의 힘의 논리는 이겨 내지 못했던 것이다.

“쥐새끼들이 드나들더니만.”

김창진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마치 이번 일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서준모 경위 역시 혀를 차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왜 그런 짓을 한대요? 그거 뭐 먹을 게 있다고?”

고빈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자 창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

“뭐라도 파악해 낼 수 있다는 것이겠지. 물론 공동연구를 제의한 것을 보면 기왕 해 먹을 거 나눠먹자는 의미일 거고.”

“아놔 양아치 색휘들!”

빈이 분을 터트리자, 묵묵히 있던 구은태 박사도 얼굴을 붉혔다.

“위험도에 대해서도 말했습니까?”

구 박사의 말에 박 총리가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감수하겠다고 합니다.”

지금 그들이 말한 위험은 탑을 회수하지 못한다면, 다른 군주의 통로로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였다.

물론 이 부분에 있어선 그들은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대답을 했다.

“그거 괜히 알려 줬네요.”

빈이 어이없다는 듯 말하는 건 바로 대마물병기였다. 바로 압축 공기를 활용한 새로운 무기였다.

비록 이번에는 임시로 활용하기는 했지만, 충분히 그 효용을 확인했다.

그걸 확인한 미국은 이차 대전 때의 생산력을 과시하듯 관련 병기들을 이 시간에도 엄청나게 찍어대고 있었다.

물론 미국은 쿨하게도 관련 병기의 특허비용을 충실히 지불하고 있었다.

아마 이번 일에 대한 미안함의 발로일지 몰랐다.

“놔두라우. 알아서 하갔디.”

을지부루의 말에 다들 그를 바라보았다.

왠지 아쉬운 표정이었다.

특히 카르탈마니어가 발끈하는 모습을 보였다.

-군주시여. 명을 내리시면 이 땅을 피로 물들게 하겠나이다!

“그거 못하게 하려고 아저씨랑 우리랑 피 터지게 싸운 거거든요?”

카르탈마니어의 외침에 빈이 핀잔을 주었다.

그러자 카르탈마니어는 다시 위축된 모습을 보였다.

빈이 부루의 소환자임을 알게 된 이상 그를 다른 이들처럼 대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때 부루에게 은총을 받은 마족 헤게루이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럼 탑의 동력원이 되는 부분의 힘만이라도 취하시면 어떻겠사옵니까.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잖사옵니까.

“탑 안 준다잖아요.”

빈의 말에 헤게루이안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그러니까 껍데기만 놔둔다는 말입니다.

그의 말에 다들 고개를 돌렸다.

“그게 가능합니까?”

그 말에 가장 귀가 솔깃한 이는 박 총리였다.

왠지 눈알이 번들거리는 것이 뭐라도 한 방 먹이고 싶다는 표정이었다.

-가능합니다. 다만 모든 힘을 가져올 수는 없지만, 말입니다. 부작용이라면 다른 군주의 통로로 활용될 가능성이 남아 있는 위험 정도입니다만.

순간 모두의 입가에 미소가 어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