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6화 복 받으면 자체발광
* * *
구은태 박사는 긴장된 얼굴로 고개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는 카르탈마니어가 앉아 있었다. 물론 앉았다 해도 체고가 십미터에 달하는 그의 크기는 목이 아플 정도로 올려다봐야 했다.
게다가 외모는 어떤가. 서양의 전설에나 등장하는 용의 두상을 하고 있어 보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이 생길 만했다.
그래도 대화의 물꼬를 틀어야 했기에 구 박사는 조심스럽게 사적인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 거기는 잘 붙고 계신지.”
-…….
“박사님…….”
“끄응.”
동시에 사방에서 한숨이 흘러나왔다. 물론 말을 꺼냈던 구 박사도 아차하는 얼굴로 어색한 미소를 입에 머금고 있었다.
카르탈마니어가 고개를 돌려 을지부루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인간 먹어도 되는 겁니까?
“배고픈 거간? 아무거나 처먹으려 하면 모가질 떼버릴 꺼이니까네, 그리 알라.”
-예.
“히, 히끅!”
순간 먹잇감으로 전락할 뻔했던 구 박사는 딸국질을 연이었다.
“아저씨! 그렇게 하면 어떻게 질문을 던져요! 자꾸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지 말고 먹힐 뻔한 사람 생각좀 하라고요! 누가 아저씨 잡아먹는다면 좋겠어요!”
고빈이 버럭 소릴 내지르며 따지자 부루가 뚱한 얼굴로 답했다.
“가만 두갔어? 아가릴 찢어버리디. 말이 그렇다는 거이디. 큼, 성심성의껏 답하라우.”
-군주의 명에 따르겠나이다.
약간이나마 목숨의 위협이 사라지자 구 박사가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 이쪽 지역에 최초의 조짐이 있었는데 그게 이유가 있습니까?”
-이곳 인근 지역에서 차원을 여는 좌표가 흐른 적이 있었다.
그의 답에 구 박사가 눈을 빛냈다. 그때 옆에 있던 마족 마법사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
-드문 경우기는 하지만 좌표가 알려지게 되면 우리 쪽에서는 해당 차원 혹은 행성으로 가는 길을 열 수가 있습니다.
“아놔, 미국 애들이 일 쳤구나.”
그때 한쪽에 있던 서준모 경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곳에는 한국 연구진 일부와 핵심 인원들만이 있었다.
오로지 이쪽의 성과로 일군 승리였기에 미국의 끈질긴 공동연구 요청에도 일차적인 연구를 이쪽에서 우선 진행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이쪽이 이렇게 광범위하게 침식지가 몰렸던 건가?”
구 박사의 중얼거림에 마족 마법사가 다시 답변을 대신했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이제는 큰 의미가 없지만, 이곳에 오니 그러한 마법적인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럼?”
-어떠한 경로인지는 모르지만, 이곳에 어떠한 물건이 들어와서 길을 열어준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이용해 그것이 날아온 곳을 다시 연결하여 다음 점령지로 삼을 예정이었습니다. 우선권을 가지게 되면 힘을 키우는 데에 있어 유리하니까요.
마법사의 말에 왜 이곳에 유독 침식지들이 다닥다닥 붙었는지 알 수 있었다.
미국이라는 넓은 대지에 왜 유독 이쪽에 침식지들이 집중되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미국애들이 뭔가 하긴 했나 본데요?”
“그러게 말입니다.”
연구원들의 대화를 듣던 중 김창진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왜 그런 표정이야? 뭐 있냐?”
“있지.”
창진의 짧은 답변에 다들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시선이 몰리자 한숨을 내쉰 창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십년 전 말입니다.”
십년 전이라는 말에 일부는 대번에 눈치를 했다.
이 상황에서 십년 전 사건이라면 하나뿐이다.
서울테러.
모두가 입을 다문 가운데 창진은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당시 유류품 중 일부를 미국에서 가져간 적이 있었습니다. 뭐 그땐 힘이 더 없을 때니…….”
달라면 줘야 할 때였다.
물론 반대 의견도 많았지만, 결국 힘의 논리를 이기지 못했다. 추후 결과를 공유하기로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뭘 준 거냐?”
서 경위의 질문에 창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 변신하는 거랑 까만 보석 느낌의 돌 있잖습니까. 뭐 글자 같은 게 자그맣게 새겨진…….”
변신하는 거라는 말에 인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부루나 다른 인원들은 그게 뭐지 하는 표정이었다.
다만 부루가 뭔가 걸리는 게 있는지 입을 열었다.
“까만 돌? 그거 마나석 말하는 거간?”
당시 고진천이 이곳에 왔던 사실에 대해 이미 행적을 듣고 알고 있던 부루 입장에서는 까만 돌이라는 말에 대번에 떠오르는 게 마나석일 수밖에 없었다.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게 있긴 한데, 그건 다 가지고 가셨을걸요? 그게 있어야 되돌아 갈 수 있다고 하셨는데?”
그때 끼어든 것은 이승배였다.
승배 역시 이곳에 있을 자격을 가지고 있었다. 무엇 하나라도 부루와 연관이 있다면 이곳에 올 자격이 있었다.
사실 그 당시의 일이 지금 벌어진 일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하는 그냥 막연한 생각 때문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판도라 멤버들을 제외하면 광호와 승배가 가장 적합한 인물들이었다. 함께 살았던 이들이니 아는 것도 가장 많았고 말이다.
그의 말에 창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물론 그렇긴 합니다. 그분들이 가지고 온 것은 모두 함께 사라졌으니까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의아한 모습을 보이는 승배를 보며 창진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최초 고진천씨…… 아니 그 분께서 오셨던 인근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깨진 것 일부 중에 온전한 것을 발견할 수 있었거든요.”
창진의 말에 다들 혀를 찼다.
“그걸 용케 찾았네?”
서 경위가 신기하다는 듯 던진 말에 창진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군부대를 동원했죠. 뭐, 탄피 찾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병사들부터 해서 각종기기까지 전부 동원해서요. 당시 그 변신갑주에서 나오는 파장이 조금 달라서 비슷한 파장을 찾아보기도 했고 말입니다.”
창진의 말에서 경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걸 미국이?”
구 박사가 끼어들며 던진 질문에 창진이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데 그게 원인이 될 만한 이유가 있는가?”
“그걸 이용해서 이곳에 오셨던 겁니다. 당시 그 분께선.”
“내 이놈의 자식들을 당장에!”
창진의 대답에 열이 뻗은 구 박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사자 서 경위가 그를 말렸다.
“에해이! 일단 참으세요! 지금 이런다고 뭐가 됩니까?”
“뭐가 되긴! 당장에 내놓으라고 해야지!”
“아무리 그래도 천조국 아닙니까!”
“천조국은 개뿔! 이 양반들 아니었으면 죄다 작살났을 인간들이!”
구 박사가 길길이 날뛰며 외치는 말에 다들 쓴 웃음을 머금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미국은 미국이다.
미국의 상황이 심각해지면, 아무리 한국이 잘 버틴다 해도 전 세계적으로 도미노처럼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또 이곳에 뭔가 있다는 판단이 섰기도 했지만 말이다.
결론적으로 구 박사의 예상은 맞았다.
그렇다 해도 당장에 뭔가를 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지금은 조금 나은 상황입니다. 일단 그쪽에서 우리에게 큰 도움을 받은 것도 사실이고 이번 일로 해서 미국은 우리가 없다면 버티기 힘들다는 걸 알 거니까요.”
“끄응.”
창진의 말에 구 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강력하게 요청을 해야지요. 일단 원인은 알았으니까요. 다행히 그것을 살필 수 있는 인원도 생긴 마당이고…….”
창진이 고개를 돌려 마족 마법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족 마법사가 몸을 꼿꼿이 세웠다.
마치 공을 세울 수 있다는 듯.
그걸 본 부루가 다가가 어깨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쓸모 있구만 기래. 복 받을 거이야.”
-여, 영광입니다! 군주시여!
그 순간 마족의 몸 주변으로 보랏빛이 감돌다 사라졌다.
“응?”
-오오오오! 이런 광영이!
순간 마족 마법사가 눈물을 글썽였다.
“뭐 한 것도 없는데 자체발광을 하는 거이디?”
부루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리자 카르탈마니어가 떨떠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마계의 군주에 속한 구성원은 군주에게서 성장할 수 있는 힘을 얻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성과에 대한 포상입니다. 믿음에 반응하는 것이지요.
“기래?”
결국 복받을 거라는 말 한마디에 이렇게 된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 마음은 진정이었으니까.
신기하다는 듯 부루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카르탈마니어가 반짝이는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제게도 질문을. 전 모든 것을 말씀 드릴 준비가 되어 있나이다!
고작 질문에 잘 대답했다는 것만으로도 군주의 신임을 얻어 격의 상승을 얻은 것을 보았다.
방금 그 마족은 상위 마족이었기도 했지만, 방금 부루의 은총에 최상위에 오를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한 것이다.
부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카르탈마니어의 말에 부루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군주시여…….
부루의 시선이 기저귀처럼 감긴 하체로 내려갔다. 그걸 보며 답했다.
“다 붙는 거나 신경 쓰라우. 뭐 물을 거 있으면 내래 질문할 거이니까네.”
-……그. 끄응.
인상을 구긴 카르탈마니어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뭔가 떠올랐다는 듯 카르탈마니어가 말을 이었다.
-아! 쓸 만한 것이 떠올랐습니다!
그의 말에 다들 그를 바라보았다.
-이 지역은 당분간 침식이 오히려 퇴화될 것이옵니다.
“그거이 무슨 말이네?”
-탑은 전초기지이며 점령을 위한 역할을 하지만, 탑이 점령을 당하는 순간 점령지 상실현상이 벌어집니다. 즉 원래대로 되돌아갈 수 있습니다.
그 말에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그 중 서 경위는 허탈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씨부럴, 대가리 둘 달린 개 타고 열심히 총질 했더만, 죽 쒀서 개줬네.”
축하할 일이지만, 왠지 허탈하기도 했다.
아직 대한민국은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인데 이쪽은 안전해졌다는 의미였다.
나름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 것은 맞는데 분위기가 좋아지기는커녕 오히려 험악해지자 말을 꺼냈던 카르탈마니어가 눈을 뒤루루룩 굴렸다.
그때 카르탈마니어가 이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인지 다급히 입을 열었다.
-그, 각 지역을 점령한 군주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의 말에 다들 다시 그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빈이 분위기를 바꾸려는 듯 말을 꺼냈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잖아요. 거기 사령관 아저씨. 거 뭐지? 뼈다구들이 많이 나오고 사자의 어쩌고 그러는 데 그 양반이 우리쪽이거든요? 어때요? 그놈?”
-마계최강의 군주입니다.
“…….”
분위기가 더 차가워졌다.
* * *
존 버튼 안보 보좌관은 인상을 구긴 채 집무실을 이리저리 돌아 다니고 있었다.
“빌어먹을 이 정도였다면 처음부터 그들을 부르지 않았어도 되었지 않나?”
지레 겁을 먹었다고 생각했다.
물론 엄청난 물량공세가 있었지만, 결론적으로 빠르게 적을 제압할 수 있었다.
무슨 문제인지는 모르지만 적들이 항복도 하고 말이다.
만약 미국쪽이 단독으로 작전을 펼쳤다면, 빛나는 승리를 자축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항복한 이들을 토대로 새로운 정보나 연구를 이어나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을 것이 뻔했다.
그러나 가장 큰 공은 대한민국이 가져가 버렸다.
버튼 보좌관은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계속해서 이 나라가 대한민국에 끌려가는 것이 영 마뜩찮았던 것이다.
대침식 이전에도 미국이 그려가는 그림에 종종 반발을 해왔던 나라이기에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구나 이런 상황에서 정당하게 자신의 몫을 주장해야 하는데, 지휘부에서는 양보를 하는 모습을 보이니 더욱 답답했던 것이다.
“끌려 다닐 일이 아니야.”
그때였다.
버튼 보좌관의 집무실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려왔다.
“뭔가?”
“새로운 소식입니다.”
그의 비서관이 조심스럽게 들어와 그의 귓가에 입술을 붙였다.
“뭐? 그게 정말인가?”
“예. 시설 구축을 위해 잠입했던 친구가 가져온 소식입니다.”
비서관의 말에 버튼 보좌관의 얼굴이 환해졌다.
“이거 더 이상 우리가 끌려 다닐 필요가 없어졌군.”
그의 얼굴에 남아있던 짜증이 한방에 날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