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0화 요게 먹히네?
화살공격을 막아내며 다가오는 마족기마들을 보며 천유화가 말 머리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애들 좀 보고 오겠습니다.”
유화의 뒤를 따라 약 오십여 기가 이어 달렸다.
마치 이런 상황이 익숙하기라도 한 듯 을지부루는 그대로 내달리며 한마디 던졌다.
“늦디 말라우.”
그런 부루의 말에 호응이라도 하듯 속도를 높여 마주 달렸다.
“저거 저래도 돼요? 숫자가…….”
함께 달리던 고빈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물었다.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딱 봐도 서너 배는 많아 보이는 적들을 향해 마중 나가는 모습. 그게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다.
거기에 그들이 맞이하는 상대는 단순한 마물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대로 된 정예병이라 불리는 마족병이었다.
“누가 죄 조지고 오라한 거이네? 옆구리만 틀어막으면 되는 거이야. 닥치고 고삐 단단히 쥐라우. 우리 상대는 눈 앞에 있으니까네.”
부루의 말에 빈이 화들짝 놀라며 시선을 앞으로 옮겼다.
잠깐 한눈을 팔았을 뿐인데 적들이 금방 가까워져 왔던 것이다.
“후아!”
빈은 큰 숨을 내뱉으며 긴장을 토해내었다.
겉보기에는 마물들이 더 위압감이 있어 보였었다. 그런데 점점 가까워져 오면서 제대로 정돈된 대열을 보니 그 생각이 바뀌었다.
마물들과 같이 소름끼치듯 울려오는 괴성은 없었다.
오히려 다들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있었다. 그러나 그 모습이 상대적으로 더 위압감 있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총알이 하늘을 가르고 미사일이 날아다니는 세상에 창과 칼로 무장된 병력이 대규모로 맞붙는 순간이다.
어이없을 법도 하건만 웃을 수도 없다. 그 첨단 병기들이 통하지 않는 상대들이기 때문이었다.
오로지 이 칼과 창으로 상대할 수 있는 세계의 적.
“으아아아아!”
빈은 자신도 모르게 함성을 내질렀다. 마치 공포라도 잊으려는 듯.
그것이 신호가 되었는지 거대한 함성이 뒤를 따랐다.
와아아아아!
함성을 뒤로하며 달리던 유화가 적들과 교차하기 시작했다.
마치 비껴내듯 부딪히는 순간 마족병단원들이 유령마의 위에서 튕기듯 날아갔다.
기병용 삭으로 일차적으로 적들의 대열을 쳐낸 유화가 그대로 단창을 들어 올리며 이리저리 휘둘렀다.
부와악!
강하게 휘어진 창대가 마족병의 목을 후려치는 순간 목뼈가 그대로 꺽여 나갔다.
그런 유화를 향해 마족병들이 한손에 보랏빛 구체를 만들어 던져내었다.
하지만, 유화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듯 환두대도를 반대편 손으로 들어 휘두르며 날아오는 구체를 퉁겨 내었다.
이어서 단창을 살짝 들어올려 거꾸로 잡은 유화가 이내 팔을 휘둘렀다.
투콰콰콱!
날아간 창이 마족병들의 몸통을 연달아 꿰뚫었다.
비명이 사방으로 흘렀다.
그때 유화를 향해 카버레이드가 양손에 시미터와 유사한 칼을 들고 들이닥쳤다.
-네놈의 영혼이라도 취해야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겠구나아!
동시에 양손의 칼을 휘두르자 조각달과 같은 형상의 기운이 쏘아져 나갔다.
그걸 유화는 환두대도를 휘두르며 퉁겨내었다. 그 사이 카버레이드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그 상태로 유화를 향해 그대로 쏘아져나갔다.
휘두르느라 환두대도가 방향을 잃은 상황. 그때 유화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의 몸 주변으로 은빛호선이 사방팔방으로 스쳐날았다.
쾌래래래래랙!
-이런 빌어먹을!
먹잇감을 눈앞에 두고 있던 카버레이드가 양손의 칼을 휘둘러 날아드는 손도끼들을 튕겨내었다.
하지만 중앙으로 파고드는 한자루 환두대도는 막아내지 못했다.
콰드드득!
몸통을 꿰뚫는 파육음이 울려왔다.
-놈!
카버레이드가 눈을 부릅뜨는 순간 유화가 그의 목줄기를 잡아챘다. 그 손을 잘라내기라도 하려는 듯 양손의 칼을 교차해왔다.
“애 쓴다.”
유화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순간 멱줄기를 쥔 손이 옆으로 당겨졌다. 그리고 배에 박힌 환두대도는 그와 반대편으로 몸통을 갈랐다.
콰투투툭!
-꺼억!
카베레이드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와 보조를 맞추듯 그의 몸통도 입을 떡 벌렸다.
그러나 유화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모가지를 틀어쥔 채 환두대도를 연신 휘둘렀다.
터컥! 썩!
카버레이드가 걸친 갑주가 잠시 저항하나 싶었지만, 환두대도를 막아내지는 못했다.
칼자루를 쥔 카버레이드의 양팔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이어 걸리적거린다는 듯 척추뼈에 겨우 의지하고 있던 그의 몸통을 다시 환두대로로 쳐냈다.
콰작!
카버레이드의 하체가 반바퀴 돌아 땅에 나뒹굴자, 유화는 비로소 마음에 든다는 듯 웃으며 말고삐를 틀었다.
“이제 좀 가벼워졌네. 이제 튀자!”
그들을 향해 에워싸오던 마족병들을 헤치고 빠르게 이탈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의 지휘관이 몸통만 남은 채 들려가는 것은 막겠다는 듯 그들이 포위를 완성해 나갔다.
그때였다.
-크르륵. 네놈…….
유화가 환두대도를 도집에 넣고는 목줄기를 양손으로 쥐었다. 그리고 잡아 뜯었다.
투확!
보랏빛이 감도는 핏물이 사방으로 튀는 순간, 유화가 양손에 든 머리통과 몸통을 그대로 포위망을 향해 집어던졌다.
“막지 마라! 다 찢어죽이기 전에!”
어느새 다시 소환된 단창을 빙그르르 돌린 유화가 살기 가득한 외침을 토해내었다.
-크르릉!
기동대원들을 태우고 달리던 머리 둘 달린 마수가 기분 나쁜 듯 고개를 뒤로 틀었다.
목 위가 뜨듯한 물로 젖어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 미안. 나도 모르게 지렸다.”
그런 마수에게 미안하다는 듯 기동대원 하나가 얼떨떨한 표정으로 변명을 흘렸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한쪽을 향하고 있었다.
포위망을 말 그대로 찢어내며 이탈하는 천유화의 기마들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실화냐?”
“씨파 차라리 영화면 이게 다 특수효과구나 하면서 보지…….”
“꿈에 나오겠네. 사람, 아니 마족 하나를 맨손으로 찢어 죽이는 거 실화냐?”
“맨손은 아니지, 닭 토막 내듯 칼 한 자루로 팔다리를 쳐내기는 했으니까.”
훈련 때 쥐 잡듯 잡아대기는 했지만 평소 유들유들한 모습을 보이던 유화의 잔인한 손속에 지켜보던 기동대원들도 절로 소변을 지렸던 것이다.
물론 이전 전투에서 마물을 작살내던 모습을 숱하게 봐왔지만, 그것들의 형태가 괴물에 가까웠기에 잔인함보다는 통쾌한 감정이 우선시 되었었다.
그런 것들에 희생당하던 아군을 떠올리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마족병의 경우 그 생김새가 피부색은 좀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인간형이기에 체감이 달랐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잠시 기동대원들은 일제히 무기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멍하니 바라보는 사이 그들을 향해 돌파를 해낸 유화의 병력이 꽁무니에 적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오, 온다!”
본능적으로 무기를 들기는 하였지만, 다들 긴장된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과연 이게 먹힐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물론 마물을 상대로 효과를 확인하긴 했다.
하지만, 마족은 또 다른 존재다. 이것이 먹힐지는 잘 모르는 일이었다.
그때 선두 쪽에서 그들과 마찬가지로 얼이 빠져 있던 강문호 중령이 활 시위를 팽팽하게 잡아당기며 외쳤다.
“엄호!”
“자, 잠깐. 이게 먹힙니까? 마족은 확인 안 해본…….”
투웅!
누군가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강 중령의 화살이 시위를 떠나갔다. 이어 다른 화살을 비어버린 시위에 걸며 입을 열었다.
“지금 하면 됩니다.”
다시 강 중령의 시위가 당겨지는 순간 멍하니 있던 기동대원들이 각자의 무기로 일제히 엄호사격을 시작했다.
화살이 날아드는 모습에 마족병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눈에 별의 파편과 그런 종류가 아닌 이들의 공격쯤은 구분이 되었다.
물론 마물들처럼 적아를 구분하지 못하지는 않았다. 본능보다는 이지와 판단으로 움직이는 것이 마족병이니까.
그런 안일함이 문제가 되었나 보다.
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말을 달리던 마족병이 유령마 위에서 떨어져 내렸다.
-멍청한…….
부주의에 의한 것으로 판단했던 마족 하나가, 떨어지는 동료를 스쳐보며 중얼거리다가 말끝을 흐렸다.
-마, 막아라!
운이 나빴는지 무시했던 화살은 이마 한가운데에 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흘러내리는 핏물은 분명 무시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 경고성이 조금 늦었는지 날아드는 화살들에 마족병들이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어설픔은 있어 제대로 화망을 형성하지는 못했지만, 마족병들의 방심이 그 부족함을 채워주었다.
그리고 화살뿐만이 아니었다.
투투툭!
얼굴을 비롯해 갑주에까지 작은 구멍이 송송 뚫리며 마족병의 몸이 마치 전기에 감전이라도 된 듯 파들거리며 유령마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의 얼굴과 몸통에는 붉은 점과 같은 구멍들이 송송 뚫려 있었고 그곳에서 피가 송글거리며 솟구쳤다.
이십여기의 마족병들이 나가 떨어진 뒤에야 사방에서 방어막들이 만들어졌다.
파파팡!
방어막을 방패처럼 펼치고 나서야 더는 쓰러지는 마족병들은 없었지만, 이미 추격을 이어가기에는 늦어 버렸다.
-되돌아간다…….
그들은 결국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지휘관의 몸뚱이가 이리저리 찢기고 일방적인 피해만을 입은 채 말이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기동대원들이 얼떨떨한 얼굴로 자신들의 무기를 내려다보았다.
“요게 먹히네?”
을지부루가 이끄는 주 병력에 대한 요격이 실패하면서 그들은 카르탈마니어가 이끄는 병력의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쾌래래랙!
순간 다가온 기마들로부터 던져진 손도끼들이 은빛 원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콰콰콰쾅!
선두의 마족병들이 들어 올린 방패 위를 두들겨대는 소리가 마치 폭음처럼 울려대었다.
그 뒷 열에서 대기하던 마족들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무표정한 얼굴로 육중한 방패를 들고 있던 마족병들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카르탈마니어가 이를 드러내었다.
-제법!
그때 카르탈마니어의 옆에 있던 마족이 약간 굳은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놈들의 돌진을 제대로 막아낸 이들이 없다고 합니다.
-변두리의 가치 없는 것들을 상대로 만들어낸 무용일 뿐이다.
으르렁거리며 뱉어낸 카르탈마니어의 말에 이야기를 꺼냈던 마족이 입을 다물었다.
그때였다.
콰콰콰쾅!
충돌음이 울려 퍼지며 마족병들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크아아악!
-캬아악!
그때까지 침묵을 지키며 바위처럼 버티던 마족병들의 입에서 비명들이 터져 나왔다.
까득!
동시에 이를 악다문 카르탈마니 어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대, 대형을 더 밀집시켜라! 물러서지 마라!
그 광경을 보던 중급 마족들이 당황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그들의 희망과 달리 마족병들은 속수무책으로 이리저리 튕겨져 나갔다.
그러나 카르탈마니어는 그대로 발을 굴렀다.
콰르르르릉!
순간 그의 앞으로 땅거죽이 마치 파도라도 되는 것 마냥 출렁여 나갔다.
그에 반쯤 무너져 있던 마족병들은 그대로 균형을 잃고 우수수 나자빠졌다. 하지만 세상은 공평한 듯 내달려오던 부루일행들의 퓨마들도 출렁이는 대지에 의해 헛발질을 하며 이리저리 나자빠졌다.
기병의 돌파력을 무너트리기 위한 일격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