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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29화 (129/305)

제129화 기오르그의 탐욕

오르페우스의 말에 무너진 외벽 안쪽으로 사자의 대공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가 서서히 내려서며 대답했다.

-재미있다면 다행이야. 나름 애써 준비했는데, 재미없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했거든.

-마계의 대공이란 자가, 그것도 최강이라 불리는 군주인 그대가 이런 얄팍한 수를 쓰다니. 창피하지도 않은가?

오르페우스가 그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하지만 기오르그는 별로 개의치 않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얄팍하다니. 그건 선입견이야. 뭐, 그래도 그 선입견 덕에 지금 같은 기회가 생긴 것이고.

웃으며 대꾸하는 기오르그의 뒤편에서 화염에 휩싸여 추락했던 드레이크 하나가 솟구쳐 올랐다.

여전히 불길에 휩싸여 있어 모르는 누군가가 본다면 그 투지에 박수를 보낼 법도 했다.

하지만, 실상은 그게 아니었다.

부활.

사자의 대공이 가진 죽은 자의 부활이었다.

숨통이 한번 끊어지면서 이제는 마룡의 군주인 오르페우스의 권속이 아닌 사자의 대공인 기오르그의 권속으로 되살아난 것이다.

사자의 대공을 상대하기 꺼려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다.

죽음이 이어질수록 사자의 대공의 권속들은 늘어 간다는 것.

-차원계로 모든 힘을 투사할 때 뒤통수를 친다는 건 맹약을 어기는 것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겠지?

오르페우스의 입에서 흐르던 존중이나 반공대는 더 이상 없었다. 그의 말에 기오르그가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그 맹약이란 거 말이지. 왜 생겼는지는 알고 묻는 건가?

빙글거리는 웃음을 띄우며 던진 기오르그의 질문에 오르페우스의 얼굴이 살짝 꿈틀거렸다.

기오르그 다음으로 강자로 인정받는 그였지만, 그에게도 약점이 있었다.

바로 마계의 군주로서 살아온 기간이 짧다는 것이다.

물론 짧다고 하지만 그 기간은 천년에 가까웠다.

그러나 눈앞의 기오르그는 마계의 군주로 살아온 기간만 일만 년에 가까웠다.

가장 오래된 군주.

다른 군주들이 다른 마족에게 자리를 빼앗기고 권능을 넘겨주며 소멸되는 와중에도 그는 한번 잡은 자리를 놓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군주들의 맹약을 처음 제의한 것 역시 눈앞의 기오르그다.

-그 맹약은 말이지. 자격 없는 존재를 견제하기 위함도 있지만, 버러지들이 힘을 모아 대항하는 것을 막기 위함도 있거든.

기오르그의 말에 오르페우스가 입을 다물었다.

-대신 차원계 침략을 통해 힘을 늘려가자는 제의가 먹혀들어갔지. 힘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준 거야. 공평하게. 그런데 그게 공평할까?

기오르그가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양팔을 벌리며 전투가 벌어지는 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강자는 더 강해지고 약자는 더 약해지지. 그걸 알았을 때에는 그 의미 없는 맹약에 더 매달리게 되지.

오르페우스의 이가 갈렸다.

-우습지 않나? 각기 절망이니 죽음이니 마룡이니 권능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 그런 맹약놀음에 묶여서 순진하게 행동해 왔다는 것이 말이야.

기오르그의 말에 오르페우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대로였다.

멍청했던 것이다. 자신 역시 지금에야 멍청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당장 나를 꺾는다 해도…….

-나도 멍청해 보이는 건 아니겠지?

중간에 말을 자르고 던져온 기오르그의 질문에 오르페우스는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는 얼굴을 구기며 입을 열었다.

-설마 침식균열에 다른 약소 군주들에게 기회를 준 것이?

-제법 강한 반발이긴 하더군. 별의 파편이라는 게 말이야. 그런데 말이지. 재미있는 것이 그 일이 우리 쪽에서만 벌어졌다는 것이야. 의지를 가진 파편이라니. 신기하지 않아?

기오르그의 말에 오르페우스는 신음성을 흘렸다.

-어찌 되었든 생각보다 강한 덕에 내가 마지막 권좌에 오를 기회가 빨리 오게 되었더군. 뭐, 마수의 군주가 거기서 당할지는 나도 몰랐지만.

지금쯤이면 기오르그의 다른 군대가 쇄약해진 대공이나 군주를 침탈하고 있을 것이 분명해졌다.

남은 것은 오르페우스를 포함한 네 군주뿐. 물론 그 넷이 힘을 합친다면 할 만하다.

그러나…….

-그래서 내게 왔군.

-맞아. 그런 면에서 대단해. 천 년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여기까지 힘을 키웠다는 건 인정받을 만한 일이야. 아! 그 덕에 나를 이리 빨리 볼 수 있는 거기도 하니까, 그저 내 탓만은 하지 말아 줬으면 좋겠군.

기오르그의 말에 마룡의 군주가 웃음을 흘렸다.

-내 여기서 이런 꼴을 당할 줄은 몰랐군. 그런데 말이지. 나 역시 고맙다고 해야겠군.

오르페우스가 웃으며 말하자 기오르그가 피식 웃었다.

그가 다음에 할 말을 예상하기 때문에 흘린 웃음 같았다. 그리고 예상했던 말이 흘러나왔다.

-여기서 내가 너를 잡으면 이 마계의 유일 군주는 내가 될 것이니까.

-이런! 그럼 내게 고마워해야겠군?

기오르그의 말에 오르페우스의 몸뚱이가 천천히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이 신호가 되었는지 기오르그가 천천히 허공에 떠서 무너진 곳 밖으로 몸을 빼내었다.

콰르르르릉!

마룡의 둥지라 불리던 성이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자리에 거대한 마룡이 피어를 내질렀다.

-크워어어엉!

마룡의 군주 오르페우스가 뱉어 낸 피어에 사자의 대공이 끌고 온 언데드들은 물론이고 힘겹게 싸우던 마룡의 권속들이 쓰러지 거나 타격을 입고 이리저리 비틀거렸다.

-목소리 한번 우렁차군.

허공에 뜬 기오르그가 오르페우스를 바라보며 감탄사를 흘렸다.

그런 기오르그를 바라보며 마룡으로 현신한 오르페우스가 거대한 눈동자로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네놈 뼛가루까지 씹어 먹어 주지.

오르페우스의 살기 넘치는 말에 기오르그가 화답했다.

-그 멋진 몸으로 언데드를 만들어 타고 다닐 생각을 하니 흥분 되는군. 아마 내 일생의 역작이 될 거야.

기오르그의 화답에 오르페우스는 거대한 브레스로 마지막 답변을 날렸다.

콰콰콰 콰콰콰!

* * *

-이상한데.

로브를 입은 마족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력을 안정시켰음에도 본성과의 통신이 연계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본성의 마법병단원이 뭔가 실수를 한 건가?

한 마법병단원의 중얼거림에 뒤에서 그들을 지휘하던 중급마족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분명 마법진도 문제없고, 마력석에도 문제가 없는데 연결이 되지 않아 해 본 말입니다.

-사령관께서 나가 있으니 다행이지. 그게 아니라면 네놈들은 한줌 잿더미가 되었을 거다.

중급마족의 말에 마법병단원들의 얼굴이 헤쓱해졌다.

그래서인지 그들의 움직임은 더욱 분주해졌다. 하지만, 단지 그뿐 통신을 담당하는 마법구는 여전히 빛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위잉, 위이이…….

사방에서 울려오는 진동음들.

동시다발적으로 울려온 소리였기에 못 듣기도 어려웠다.

마법병단원들은 물론이고, 출진을 앞두고 있던 마족병들까지도 의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지?

-게이트가 왜?

이번에는 조금 전과 달랐다.

마법병단원들은 물론이고 내부 지휘를 맡고 있던 중급마족들마저도 당황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갑자기 게이트의 마력원이 꺼진 거지?

-빨리 알아봐!

기본적으로 마족들은 마법에 능하다.

마법을 용의 소유물로 알고 있지만, 마족 역시 마찬가지다.

다만 용은 타고난 그릇의 크기로 인해 전능적인 존재로 알려졌을 뿐, 마족도 그에 비하면 모자라지 않았다.

다만, 그 경지의 한계는 각자 가진 재능에 따라 차이가 큰 것이 다른 것뿐이다.

그런데 마룡족과 이곳의 마족들이 함께 하니, 마룡의 군주가 이끄는 마법전력은 마계에서도 손 꼽히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지금 이곳의 마법병단원들은 이동마법에 능한 이들이었다.

특히 차원간의 연결을 하는 게이트 마법에 특화된 마족들인 것이었다.

그런데 게이트들이 일제히 꺼져 나간 것이다.

-보, 본성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이 없습니다!

게이트를 살피던 마법병단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그, 그럴 리가?

그들을 지휘하던 중급마족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이곳의 문제가 아니야!

탑 상부에서 날아 내려온 고위 마족의 말에 중급마족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마룡의 일족으로 마법에 능한 고위마족이었다.

-탑의 마력진은 정상 작동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방적으로 게이트가 작동을 멈췄다면 필히 본성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의미다.

그의 말에 중급마족들은 답답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혹시 차원간의 끈이 끊어진 것 아닐런지요.

침략을 위해 그들의 마계와 이곳과의 연결선이 존재한다.

차원선.

그것이 연결되었을 때 비로소 침공이 가능했다. 하지만 차원선은 행성계를 다스리는 신이 없을 때나 연결이 가능했다.

바로 이곳처럼 말이다.

-혹여 이곳의 신이 되돌아 온 것은 아닐런지요?

하나의 의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러나 고위마족은 고개를 내저었다.

-궤도에 이른 행성에 신적 존재가 남아 있는 경우를 보았는가? 특히 인간들에 의해 신의 존재가 이용당하고 변질되었을 때 더욱 신은 빠르게 사라지는 법.

신을 내쫓는 것은 간단하다.

믿지 않는 것이 아니다. 신의 존재를 입맛대로 변질시켜 이용할 때였다.

있는 그대로를 믿지 않을 때 신은 떠나간다.

신의 도움이 없이도 자립이 가능할 때 많이 발생하는 현상이었다.

이들은 그런 차원이나 행성들만을 침략의 대상으로 삼는다.

차원선은 걸기도 간단하지만, 신적 존재라면 끊어내는 것도 어렵지 않기 때문이었다.

-허나 지금 상황은 도무지…….

또 다른 중급마족이 지금 상황이 말이 안 된다는 듯 입을 열었다.

-그랬다면 침식지조차 거두어졌겠지. 차원선이 매개가 되어야만 침식이 시작되는 법이니까.

-설마 누군가가 침략한 것은…….

-어이없군, 여기 혹시 군주들 간의 맹약을 모르는 놈이 있나?

고위마족의 냉소 어린 대답에 말을 꺼냈던 중급마족이 서둘러 입을 닫았다.

-일단 추가 병력은 당장 어려운 듯하니, 마계병단을 추가투입 시킬 준비하도록 하라.

이 탑의 지휘관이 나가 있는 이상 지금 눈앞의 고위마족에게 명령권이 있다고 해도 무방했다.

-사령관님에게도 알리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탑 안쪽의 병력이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움직임을 보면서 고위마족이 고개를 들어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탑의 천장에는 보랏빛 구름이 맴돌고 있었다.

비정상이다.

그곳에 보랏빛 마력이 감돌아야 정상이었다. 그러나 그저 빛을 잃은 구름만이 흐릿하게, 뭉쳐진 안개마냥 맴돌 뿐이었다.

중급마족인 카버레이드가 마족 병단을 이끌고을지부루를 향해 나아갔다.

탐욕 어린 시선이 잠시 부루를 향했지만, 이내 아쉬움을 흘리며 유령마의 고삐를 돌렸다.

그들의 대열은 쐐기꼴로 달려오는 기마들의 옆구리를 향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반기듯 화살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족병단원들이 일제히 한 손을 들어 올리자, 손목에 달린 둥근 모양의 팔찌에서 회색 빛이 일렁이더니 유령마와 그들의 몸을 가릴 만한 크기의 반구를 만들어 내었다.

터더더덩!

순간 쏟아진 화살들에 의해 회색 빛이 순간 흐려졌다.

-마력을 최대한으로!

순간 놀란 카버레이드의 외침에 마족병단원들이 일제히 마력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그들의 방어막은 다시 형태를 되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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