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28화 (128/305)

제128화 맹약은 깨어지고

“보통 이럴 땐 포위를 풀고 탈출하지 않아요?”

묵갑귀마대원으로 인정받으면서 느꼈던 두근거림도 잠시 현실로 돌아온 빈은 질린 얼굴로 조심스럽게 상식선의 질문을 던졌다.

“대가리가 있는데 모가진 따서 가야디 않갔어?”

“…….”

부루의 태연한 대답에 빈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누구 하나쯤은 자신과 비슷한 마음을 먹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물론…….

“우라질레이션, 경기도 오산이네.”

“지금 뭔 헛소리하는 거이간?”

“있어요. 아저씨는 정말 아저씨네요. 오늘만 산다던 어떤 아저씨처럼 .”

“기래? 그 친구도 나처럼 멋지구만!”

부루가 호탕하게 외치자 빈은 잠시 원빈과 그의 상관관계를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덤덤하게 인정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말실수를 좀 했어요. 이거 방송에 나갔으면 아마 비교 짤 돌았을걸요?”

“헛소리 말고 이제 달릴 거이니까네, 꽉 잡고 따라 붙으라우!”

그 말과 함께 부루가 먼저 퓨켈을 몰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아, 진짜 대책 없는 양반들!”

그리고 빈 역시 반사적으로 그들과 함께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따, 따라갑니까?”

겨우 후미에 합류했던 멧 중장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

함께 포위망을 뚫으면 되겠다는 마음으로 합류한 것인데, 부루는 오히려 이전 침식균열 때 나타났던 마족을 향해 내달리기 시작한 것이다.

“따라붙어!”

멧 중장은 그대로 따라붙기 시작했다. 여기서 뒤쳐질 수도 없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아놔! 뒤로 빠지자고 했잖아! 저 양반이 누군데!”

“우리 가만있으면 들통 나지 않잖아?”

“마물들이야 본능으로 움직이는 종자들이고, 저것들은 마족이라잖아! 먹힐지 어떻게……. 오, 씨발라먹을 수박같은! 나 저 마족새끼가 나 꼬나봤어!”

“아놔! 우리 딱 보고 있어! 어쩌냐?”

“몰라! 다들 알아서 몸들 사려라! 살아서 보자!”

기동대원들은 저마다 현실에 대한 원망을 쏟아 부으며, 자신들이 탄 늑대에 의지하여 따라붙기 시작했다.

살기 위한 몸부림인 것이다.

내달려오는 기마들을 보던 카르탈마니어가 입가를 비죽히 끌어 올렸다.

-오만한 것들. 제대로 된 힘을 보지도 못한 주제에…….

카르탈마니어가 손을 들어올리자 그의 뒤를 따라 나온 병단의 마족병들이 일제히 산개하기 시작했다.

그중에 로브를 입은 마족들이 일제히 영창을 시작했다.

순식간에 이루어진 영창 후에 형형색색의 광구들이 허공을 가르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보며 카르탈마니어가 자신의 무기를 뽑아들면서 입을 열었다.

-제대로 상대해 주지.

콰콰콰콰!

“으잉?”

말을 달리던 부루의 눈이 휘둥그렇게 떠졌다.

마법이 날아들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다른 세상으로 넘어간 뒤로 마법에 종종 취약한 모습을 보였던 그였다.

하지만, 그건 잠시일 뿐이었다.

“우왁! 저걸 어떻게 막아요?”

뒤따르던 빈이 날아드는 마법을 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하지만 부루는 놀란 표정을 지었던 것과 달리 이내 침착한 모습으로 대응을 시작했다.

이내 그의 손에 활이 쥐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뒤를 따르던 묵갑귀마대원들이 일제히 활을 뽑아들기가 무섭게 시위에 화살을 재었다.

“그, 그걸로 막혀요?”

“잘 쏘면”

빈의 중얼거림에 대답을 해 준 것은 바로 유화였다.

그 역시 활에 화살을 먹이고 잔뜩 잡아당겼다.

투앙!

부루의 화살이 시위를 떠나자 그것이 신호가 되었는지 묵갑귀마대원들의 화살들도 일제히 허공을 날았다.

“넌 모르겠지만, 아마도 마법에 가장 많이 당해 본 사람이 우리 부루장군님일걸?”

“예?”

이들이 다른 세상에 살다 왔다는 건 들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마법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모습들만 보았기에 유화의 말에 얼떨떨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 빈에게 유화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대장군의 스승님이 바로 대륙 유일의 대마법사이셨거든.”

“갑자기 얘기가 왜 판타지로…….”

말끝을 흐리며 날아간 화살을 따라 시선을 돌린 빈의 눈앞에서 형형색색으로 터져나가는 마법들의 불꽃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퍼퍼퍼퍼펑!

“와……, 저게 가능해?”

기동대원들은 무수히 터져나가는 마법들을 보며 혀를 찼다. 물론 방패로 막거나 무기를 휘둘러 마법을 파훼하는 장면을 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마치 탄막을 형성해서 날아드는 미사일일을 요격하듯 마법들을 요격하는 모습은 그들도 처음이었다.

장관이었다.

그때 노르스름한 빛줄기가 다시 날아드는 모습이 보였다.

“저, 전격 마법이다!”

그때 누군가가 놀라 외쳤다.

다른 마법과 달리 전격마법은 파훼가 잘 안 되는 것이었다. 막거나 후려쳐도 감전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그게 또 막혔다.

“헐? 피뢰침이야?”

전격계 마법이 날아드는 순간 묵갑귀마대원이 무언가를 집어 던졌다.

그건 사슬이 달린 단창이었다.

그게 전방에 꽂혔다. 그리고 그 사슬 끝에는 투척용 단창이 연결되어 전격 마법을 향해 날아들었다.

콰르르릉!

귀청을 찢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벼락이 칠 때 들려오던 천둥 소리였다.

“와…….”

다들 입을 떡 벌렸다.

전격마법의 한가운데로 날아간 단창을 타고 흐른 전력이 단창 꽁무니에 달린 쇠사슬을 타고, 바닥에 박혀 있는 쇠창의 몸통을 지나 바닥으로 스며드는 것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다.

바닥이 움푹 패이며 시커멓게 그을리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쪽으로 날아오는 전격계 마법은 없었다.

마법이 파훼되는 모습을 보며 부루가 이를 갈았다.

“내래 마법 때문에 한동안 괴기 냄새가 온몸에 진동했었디.”

결코 즐거울 수 없던 추억을 떠올린 부루였다. 하지만, 그 덕에 마법을 충분히 파훼할 수 있었다.

또 그것의 덕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바로 천유화와 일행들의 덕도 있었다.

마계에서 용병으로 활동한 전력이 있는 만큼 마물이 아닌 마계 병단과의 싸움을 해 본 경험이 다수 있었다.

물론 그런 경험은 부루도 있었지만, 홀로 싸워 왔던 그와 달리 천유화와 일행들은 제대로 군대 대 군대로 싸워 본 전적이 많았던 것이다.

그 경험이 지금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투투퉁! 투퉁! 퉁!

속사.

선두에 선 묵갑귀마대 뒤편에서 그들에 비하면 가벼운 무장을 한 가우리의 궁기병들이 연사를 해 대었다.

그들이 쏘아낸 화살들이 연신 마법을 쓴 마족의 마법병단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다크실드!

-안티 에로우!

마족 마법병단이 연신 방어마법을 펼쳤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공격마법을 재차 펼쳤던 마법 병단원들이 전부 고슴도치가 되어 바닥에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도 쏟아지는 화살을 막기 급급할 따름이었다.

티티팅!

-이런 바보같은!

카르탈마니어가 한손으로 방어 마법을 펼치며 날아드는 화살을 막아 내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치욕으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때 그의 곁으로 중급 마족인 카버레이드가 나서며 외쳤다.

-제가 병력을 이끌고 놈들의 선봉을 저지하겠사옵니다!

-그래. 저 날파리 같은 놈들에게 제대로 된 마족병단의 힘을 보여 주도록.

카르탈마니어가 선두를 자청한 카버레이드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카버레이드가 유령마를 소환하여 달려나갔다.

그러자 그 뒤를 따라 하위 전투 마족들이 일제히 유령마를 소환하여 따라나서기 시작했다.

* * *

-크윽! 이 빌어먹을 전쟁 용병 따위가!

고위마족이 분노한 외침을 터트리며 남은 한 팔에 쥐어진 창을 내질렀지만, 허무하게 허공을 가르고 지나갔다.

콰득!

허공을 가른 대가는 참혹했다.

잔뜩 일그러진 고위마족의 머리통이 바닥을 뒹굴었기 때문이었다.

-감히 마계의 맹약을 잊었단 말인가!

그 모습을 보며 열도 안 남은 고위마족의 호위를 받으며 전투를 벌이던 절망의 군주 트라가 듀 에쉬발트가 분노에 찬 외침을 터트렸다.

그러나 주변에서 저항하는 그의 전투마족들을 향한 적들의 공격은 멈춤이 없었다.

그리고 주변의 고위마족들의 숫자가 셋 정도만 남았을 때 비로소 그의 외침에 대답을 해 줄 존재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맹약이라…….

-전쟁에 팔려 다니는 버러지가 감히!

절망의 군주 에쉬발트가 터트린 분노에 모습을 드러낸 이가 입을 열었다.

-그 버러지가 이제 새로운 군주가 되겠군.

미소 섞인 중얼거림에 절망의 군주 트라가가 마력을 끌어 모으며 나섰다.

-신의 따위는 찾아 볼 수 없는 사자의 대공과 네놈은 맹약의 대가를 받을 것이다. 다른 군주들이 맹약을 어긴 사자의 대공을 짓밟을 것이며…….

에쉬발트의 저주 섞인 외침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용병마족이자 회유와 교언의 마족이라 불리는 마켈그로이언의 입꼬리가 기괴하게 올라가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설마?

-사자의 대공께서 멍청한 마룡의 힘마저 취하시게 되면 그 누가 대항할 수 있을까? 일곱군주? 아니지. 이젠 여섯 군주. 그리고 그중에 허울만 남은 두 군주와 도마뱀들의 왕까지 무너지는 마당에 말이지.

그 말에 에쉬발트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졌다.

-설마 그걸 노리고 우리에게 침식지에 대한 기회를 주었단 말이더냐! 별의 파편쪼가리들과 함정을 판 것이었더냐!

연이은 외침에 회유와 교언의 마족 마켈그로이언이 어깨를 흔들며 웃었다.

-설마? 파편 따위와 손을 잡을 리가. 그 파편 따위에게 대공의 자리도 내주고 형편없이 패퇴한 자들을 굳이?

조롱 섞인 말에 절망의 마족에 쉬발트의 온몸에 마기가 미친 듯이 들끓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네놈의 목을 취하고 다른 군주들과 함께 맹약을 이행하여 사자의 대공의 오만함을 벌하리라.

트라가의 양손에 보랏빛 마기가 일렁이며 뭉치기 시작했다. 그러 자 그를 마주하고 있던 마켈그로이언의 손에도 거대한 검이 소환되어왔다.

그리고 이내 검신을 타고 보랏빛 마기가 화염처럼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강자의 오만함은 원래 아름다운 법이지. 그리고 오늘로써 용병 나부랭이란 말은 털어 버릴 생각이라오.

-네놈 따위가!

에쉬발트가 온몸을 보랏빛으로 물들인 채로 걸음을 옮겨 나갔다.

그런 그를 상대로 회유와 교언의 마족은 마중 나가듯 걸음을 옮기며 입술을 핥았다.

-이제 앞으로 절망의 군주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회유와 교언의 군주라는 이름이 차지할 것이오.

그의 눈에 보랏빛 탐욕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 * *

마룡의 군주 칼베니어 드리브 칸 오르페우스의 얼굴이 굳어져 있었다.

그는 대전의 한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원래는 벽이 있어야 할 곳이 사라지고 없었다.

그 밖으로 자신의 권속인 드레이크들이 날아다니며 브레스를 뿜고 있었다.

그런 드레이크들을 향해 본 드레이크들이 마찬가지로 브레스를 뿜어내며 따라붙고 있었다.

쿠구구궁!

무언가 날아와 부딪혔는지 그의 대공성이 비명을 지르며 뒤흔들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오르페우스가 입을 열었다.

-재미있구나, 사자의 대공이여.

세로로 찢어지는 동공에는 더 없는 분노가 일렁이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