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5화 어그로꾼 부루
최후저지를 위한 장벽 위에서 방어선이 하나둘씩 줄어들며 퇴각하는 병력을 바라보는 에덤 소장의 얼굴은 한껏 굳어져 있었다.
“빌어먹을 저게 다 CG같군.”
“포토샵에서 복사해서 붙여 넣은 것처럼 말입니까?”
“그래.”
분명 많은 숫자가 죽어나갔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도 탑은 마르지 않는 화수분처럼 마물들을 쏟아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래서는 저들이 활약할 공간이 나오지를 않겠어.”
에덤 소장이 아무리 현대의 군을 통솔하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최소한 기병이 어떠한 상황이 갖추어져야 활약을 할 수 있다는 점을 모르지는 않았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상황은 기병을 운용하기에 별로 좋지 못한 상황이었다.
물론 운용하고자 하면 못할 것은 없지만, 적진이 너무 촘촘하다는 게 문제였다.
이래서는 기병의 돌파력을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어느 정도 파고들다가 돌파가 멈추어 버릴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아래쪽 기병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뭐지?”
을지부루의 지휘아래에 하마한 가우리 기병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날래 움직이라우!”
“지금 제정신이세요?”
“기럼? 돌은 걸로 보이는 거간?”
“…….”
고빈은 부루의 말에 침묵을 택했다.
그동안의 경험을 보아 때론 솔직한 대답이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어디서 끌고 왔는지 커다란 바퀴가 달린 수레의 앞쪽으로 커다란 판낼들이 겹겹이 세워졌다.
그리고는 이어서 그 뒤에 창들을 찔러 넣었다.
그러자 앞쪽으로 창날들이 고슴도치처럼 튀어나왔다.
그리고는 뒤쪽에 창날들이 밀리지 않도록 막고 있었다.
“이거? 검차?”
그때 기동대원중 하나가 알아봤는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길티. 검차디.”
“아니 저길 이걸 밀고 들어간다는 겁니까?”
“밀어야디. 기럼 이걸 구경하라고 만드는 거 같네?”
“하지만, 얼마 밀고 가지도 못할 거 같습니다.”
“기럼, 얼마나 더 튀어나오는지 모를 놈들을 족족 죽이고 있으란 말이간? 일단 밀고 가 보는 거이야. 뭘 어케 반응하는지 봐야 하디 않갔네?”
“그, 그렇긴 한데.”
이제야 지금 그들이 급조하고 있는 것의 용도를 안 이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움직이는 방벽이라 보면 되디. 잔말 말고 일이나 도우라우.”
“하, 하지만, 이거…….”
다른 이들의 우려와는 상관없이 그들은 그들만의 일을 계속 이어 나갔다.
멧 중장은 만들어진 검차들을 보며 당황했다. 분명 접근조차 하기 어려워 보였다. 그러나 마물들의 성향상 시체라도 창날에 던져 놓고 들러 붙을것이 뻔했다.
그런데 굳이 이걸 끌고 가겠다는 것이 이해가 안 갔다.
하지만, 부루와 일행들은 물론이고 후방에 대기하던 강림자들까지 검차를 앞세우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엄연히 강림자들에 대한 지휘권은 부루에게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그들을 만류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뭐라도 해내길 바라는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 한쪽을 막고 있던 강림자들이 길을 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검차의 대열이 나아가기 시작했다.
퍼퍼퍽! 퍼퍽!
뀌에엑!
케엑!
자리가 뒤바뀌기가 무섭게 다가오던 마물들이 검차의 전면에 나 있는 창날에 꿰여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전진하라우!”
그 검차의 선두에 올라선 부루가 대부를 휘두르며 외치자 강림자들이 일제히 검차를 밀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강림자들의 괴력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수십은 쌓여 버린 마물들이 밀리기 시작했다.
심지어 자기들끼리 서로를 밟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수십여 미터 정도를 전진하고 나자 그 속도가 현저하게 둔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물들이 아군들의 몸뚱이를 밟고 올라서서 검차가 있는 방향으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마치 안쪽으로 뛰어들겠다는 듯 말이다.
그러나 상황은 반대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키에에엑!”
개를 닮은 마물이 맹렬하게 뛰어오다가 펄쩍 뛰어오르는 순간 커다란 대부가 몸통을 그야말로 박살내듯 갈라 버렸다.
이어 그 대부를 휘두른 이가 마물들의 몸뚱이 위에 내려섰다.
이어서 대부로 바닥을 쓸듯 낮게 휘둘렀다.
그러자 서로 밀려서 다닥다닥 붙은 마물들의 머리통들이 마치 잘 익은 볏단들처럼 우수수 썰려 나가기 시작했다.
부루였다.
그리고 그 뒤를 따라 가우리의 병사들이 일제히 주변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검차를 넘어선 그들이 일제히 주변을 쓸어나가기 시작했다.
일부 중대형 마물들이 이쪽을 보고 다가오려 했지만, 그들의 상대는 이들이 아니었다.
검차 안쪽에서 쏘아진 화살들이 사방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러자 마치 주머니 속에서 비어져 나온 것처럼 튀어나온 검차들의 대열 주변으로 마물들의 시체가 그득하게 쌓이기 시작했다.
시체들의 높이가 일 미터 육칠십 센티밖에 안 되는 검차의 높이를 훌쩍 넘어가기 시작했다.
그때 뒤쪽에서 또 강림자들이 일제히 따라 나왔다.
그리고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시체를 옮기고 있었다. 아니 그 것들을 쌓고 있었다.
“헐?”
마지막 방벽 위에 올라서 있던 멧 중장이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그들이 하는 행동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아챘던 것이다.
시체로 산을 쌓는다는 말이 있었다. 지금 그들은 실제로 보여 주고 있었다.
물론 진짜 산은 아니었다.
대신 시체로 일종의 성벽을 만들고 있었다.
검차로 만든 장벽에 꿰인 마물들의 시체는 단단히 얽혀서 제대로 된 주춧돌이 되어 주었다.
그걸 바탕으로 족족 죽여서 쌓고 있었다.
순식간에 수 미터가 넘어가는 시체들의 장벽이 만들어졌다.
그것을 바탕으로 이쪽의 강림자들이 위에서 아래로 무기를 휘둘렀다.
달려오는 마물들은 올라오다가도 화살과 무기에 맞아 굴러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시체의 산을 쌓는다는 것은 대단한 전시효과임에는 분명했다. 그러나 효율 면에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지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장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
멧 중장의 입에서 탄성이 튀어 나왔다.
흐름이 바뀌기 시작했다.
마물들이 한쪽으로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음. 저건 뭐지?
마룡의 일족이며 중급 마족인 카버레이드의 시선이 한쪽을 향했다.
마물들이 한쪽으로 쏠리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고요한 호숫가에 구멍이라도 나서 빨려 들어가는 것 마냥 한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었다.
-쯧, 미물들이란.
그나마 조련한 덕에 멍청하게 죽어나가는 건 덜 했지만, 그래도 본능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음. 저자?
그때 카버레이드의 눈이 움찔하더니 얼굴이 굳어졌다.
-마수의 대공?
그제야 알아본 것이었다. 순간 욕망이 가슴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가슴이 차가워졌다.
중급마족에 불과한 자신이 어찌 할 상대는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예상대로 그가 나타났군.
카버레이드의 시선은 계속 부루를 향하고 있었다.
분명 강했기에 대공을 무너트렸을 것이다. 그리고 마룡족의 군단장 역시 쫓겨 왔고 말이다.
그럼에도 왠지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쩌면 욕심 때문이다.
하지만, 이내 가슴한 구석에 피어오르는 욕망을 누르고 자리를 떴다.
대공의 지위를 가진 이를 잡는 일은 그 어떤 상황에도 우선했다. 마계에서의 힘의 균형을 무너트리기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었다.
처음 만들었던 시체의 산은 점점 넓어져 갔다.
마치 영역을 확장해 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이것이 오히려 눈빛을 끌었는지 계속해서 마물들이 밀려들어왔다.
그 덕인지 점점 밀집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때 부루가 멧 중장이 있는 곳으로 뛰어 올라오며 입을 열었다.
“크게 한 방 날려야디 않갔어?”
부루의 말에 멧 중장이 긴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건 저기 탑을 노리기 위한…….”
“길티. 기래도 이쯤이면 할 만하디 않네? 언제까지 저런 쭉정이만 상대할 거이간. 최소한 나온 것들은 정리를 해야디.”
부루의 말에 멧 중장이 유선전화기를 들었다.
“지금 말입니까? 효과가 있을까요?”
[부루장군의 말도 충분히 이해가 가는 상황이야. 아직 끝도 없다고. 전투는 이제 시작인데 말이야.]
“일단 알겠습니다.”
에덤 소장은 전화를 끊고 미간을 찌푸렸다.
마물들을 한데 모은 지금 마물들에게 화력을 집중하자는 말이었다.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최소한 숫자 정도는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봤다.
“백악관에 통보해. 작전 시작하겠다고.”
고민은 길지 않았다. 어차피 이곳의 통제권은 그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 * *
“명령이 떨어졌다. 투하준비.”
지휘관의 명령에 요원들은 장비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이게 통할까요?”
“통하기를 바라야지.”
마크 셰넌 대령이 요원들을 향해 희망을 담아 말했다.
그 이후로 침묵이 스쳤다.
요원들은 바쁘게 움직였고, 그동안에도 아무런 말이 오가지 않았다.
“침식지 상공 인근입니다. 지정된 좌표에 도달했습니다.”
“기상상황은?”
“다행히 풍속 등에 영향은 없는 상황입니다.”
요원들이 컴퓨터를 조작하며 보고를 했다.
“조금 더 접근을 하면 좋으련만.”
지휘관인 마크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는 건 다들 아는 사실이었다.
특히 첨단장비일수록 침식지에 가까울수록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일반적인 전자기기와는 또 달랐다.
영향을 받지 않고 최대한 가까이 유지할 수 있는 거리가 오백여 미터 근처다.
처음에는 미사일도 쏘아 보고 했지만 침식지에 진입해 들어가는 순간 전자기기가 먹통이 되어 버리기 일쑤였다.
괜히 재래식 병기만 투사하는 게 아니다.
먹히지 않으니 재래식 병기만 쓰는 것이다.
지금 이들이 쓰는 건 재래식병기도 아니었다.
신의 회초리라 불리는 병기의 마이너 버전이었다.
오차율을 최소한으로 유지하면서 합당한 파괴력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만약에 오차율이 조금이라도 크게 생긴다면 아래에 있는 수많은 군인들의 생명을 보장 받을 수 없기에 조작하는 이들의 표정은 그 어떤 때보다도 신중했다.
처음에는 성층권이나 그 이상의 위치라면 문제가 없겠지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침식지 상공을 지나는 순간 위성이 먹통이 되어 버렸던 것이다.
이 알 수 없는 힘은 마치 침식지 위아래로 무한정 뻗어가 영향을 끼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이상의 대기권 밖은 조금 영향이 줄어들었지만 말이다.
그래서 차원의 침공이라는 말을 하기까지 했었던 것이다.
자유낙하를 통해 중력을 통한 물리파괴력을 극대화 시켜 적을 타격한다는 것이 이번 작전의 목표였다.
물론 먹힌다는 전제하에 말이다.
상대방에는 흔하지는 않지만, 마법이라는 것이 있어 때론 이쪽의 첨단무기들을 허무하게 만들기도 했었다.
처음에 한두 번은 먹혀도 마법이라는 힘은 어느 정도 이상의 타격에 대해서는 반드시 대응책을 만들어 내었다.
그렇기에 이쪽에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활용하기 위해 아껴 왔던 것이었다.
“준비를 마쳤습니다.”
요원들의 보고에 마크는 숨을 멈추었다.
잠시 후 성충권에 떠 있던 비행선에서 화살모양의 쇠기둥이 비스듬히 쏘아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