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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24화 (124/305)

제124화 전투의 시작

귀가 먹먹한 굉음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접근해 오는 마물들이 소형이기에 지상화기를 먼저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몰려오는 마물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덕에 따로 조준 따위를 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은 장점이었다.

메케한 화약내음과 함께 마물들이 와르르 쓰러져 나갔다.

대공기관총이나 벌컨 같은 무기들 역시 압도적인 화력을 뽐내었다. .

그럼에도 마물들은 계속 꾸역꾸역 몰려 나왔다.

그때였다.

“멈춰?”

어느 순간에서부터인가 마물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아니 정확히는 유효 사거리 안 쪽으로 돌입을 멈춘 것이다.

그걸 본 기동대원들은 안색을 굳혔다.

일반 마물들의 행동 양식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살인본능에 이끌리던 형태와 달랐던 것이다.

다르다는 것은 이쪽 입장에서는 좋지 않다는 의미와 같았다.

“씨부럴. 탑부터가 불안했어.”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때 맞춰서 입구 쪽에서 딱 봐도 덩치가 있어 보이는 마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키에엑! 케엑!

소형 마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이리저리 튕겨 나가는 모습이 연출되었다.

앞에 있던 소형 마물들이 걸리적거렸던 모양인지 아군임에도 마치 귀찮다는 듯 손을 휘저으며 나아 왔던 것이다.

그게 효과가 있었는지 소형 마물들이 이리저리 움직이더니 길을 만들었다.

“Shit…….”

멧 할러데이 중장이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시작부터 조짐이 안 좋았다.

탑이 생긴 것만 보아도 지금까지의 양상과는 다를지 모른다는 생각은 했다.

사전 정보도 있었다.

마족으로 구성된 병단은 전술을 구사한다는 것까지 말이다.

실제 사자의 대공이라 불리는 마계의 대공이 부리는 스켈레톤 부대의 예만 들어보아도 전술이 있다는 게 얼마나 까다로운지 알 수 있었다.

기본적인 전술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꽤나 대응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중형 혹은 대형으로 보이는 마물들이 선두에 섰다.

그뿐 아니라 중간 중간에도 중대형 마물들이 마치 방패라도 되는 듯 도열한 모습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딱 봐도 의도를 알 수 있는 대형이었다. 그리고 도열을 마치는 순간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다시 화기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까와는 달랐다.

대충 쏘아도 맞아 쓰러지던 소형마물들과는 달리 중형이나 대형 마물들은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것도 당연한 것이 이미 쏘아도 의미 없다는 것을 안 군인들이 아까와 달리 대열의 틈을 노리고 화기를 투사했던 탓이기도 했다.

방벽 위에서 쏘아대는 것 덕분에 여전히 쓰러지는 마물들은 많았지만, 아까와 달리 빠르게 접근을 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였다.

“갓뗌!”

억센 억양의 욕설이 절로 튀어 나왔다.

“저거 분명?”

“놈들이 동료들의 시체를 방패로 삼아서 전진해 오고 있어!”

마물들이 먼저 죽은 마물들을 머리위로 들어올리고 전진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앞에는 중대형 마물들.

그 뒤로는 죽은 시체를 방패처럼 들어 올린 소형 마물들.

마치 로마의 집단방진을 형성한 것처럼 전진해 오고 있었던 것이다.

“점점 빨라진다!”

“쏴!”

고속유탄포와 속사포, 그리고 전차포탄들이 연이어 날아들었다.

지금 먹히는 것은 그런 종류의 화기들뿐이었다.

하지만, 몰려오는 숫자에 비해 쓰러지는 숫자는 강물에서 물 한두 바가지를 퍼낸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원거리 사수 강림자들이 공격을 시작했다.

시작은 궁수들이었다.

현을 뜯는 소리와 함께 화살들이 날아갔다.

그러자 아까와 달리 중대형 마물들이 집중공격을 받고 하나 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 사이를 노리고 화기들이 다시 집중 투사가 되었다. 그러나 그것도 또 잠시였다.

“Oh my God…….”

누군가의 맥 빠진 중얼거림이 울려나왔다.

방금 쓰러진 방패역할의 마물들을 들어서 계속 전진해 왔다.

마치 잘 훈련된 정병처럼 움직임을 보이던 것이었다.

물론 따지고 보면 동료의 시체를 방패로 막는 단순한 행위지만, 이것을 대규모 숫자의 마물들이 하니 질릴 정도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점점 가까워져 왔다.

여전히 죽어나가는 숫자는 많았지만, 거리가 좁혀 오는 것은 그보다 더 빨랐다.

“빌어먹을 후퇴!”

결국 더 이상의 방어를 포기하고 군인들이 각자 쏘던 화기를 놓고 이탈하기 시작했다.

* * *

침식지 밖에서 촬영한 화면을 보면서 상황을 확인하던 닉 레너드 대통령의 표정이 굳어져 있었다.

“벌써부터 후퇴를?”

“상황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국방장관의 말에 레너드 대통령은 침묵했다.

“마물들이 이전과 다른 형태를 보이는 게…… 아무래도 그 정보가 맞는 듯합니다.”

이것이 본격적인 침공일지 모른다던 이야기.

지금 이야기를 꺼낸 건 특수구역의 연구원이었다.

“그건 어느정도 예상했던 것 아니오.”

레너드 대통령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만, 구 박사쪽에 말을 해 주었던 정예 군단병이 오기도 전에 일반 마물이 저런 형태를 보여 준다는 것은 의외였습니다.”

진땀을 흘리며 설명하는 연구원의 말에 레너드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대체 천문학적인 비용을 가져가면서 지금까지 한 것이 무엇이오.”

조용한 질책에 연구원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사실 이번 신병기에 관한 힌트도 결국은 그 코드명……”

“코드명? 제너럴 을지라 부르시오. 차라리 이름을 부르던지. 이름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연구원이 재빨리 말을 정정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죄송합니다. 제너럴 을지가 힌트를 준 것입니다. 사전에 말씀을 드렸지만, 어떻게 해서든 그를 우리가 확보해야 앞으로의 전투에서…….”

“그만.”

그의 말을 끊은 것은 케인 스미스 국장이었다.

“죄송합니다.”

스미스 국장이 연구원의 입을 다물게 한 뒤에 사과를 했다. 그의 사과에 레너드 대통령이 혀를 찼다.

“미쳤군. 아직도 현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있다니.”

“허나 그 하나 때문에 지금 우리 미국이 끌려다니고 있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일이 잘못되면?”

“예?”

“버튼 자네가 책임질 건가?”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존 버튼 안보 보좌관이 할 말을 잃었다.

“빌어먹을 그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지 말란 말이네. 돈이 중요하면 나라도 돈을 퍼주면서까지 데려오고 싶은 심정이야. 그런데? 지금 그게 가능한가? 그러면? 납치라도 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나?”

“강림자들을 총 동원해서라도…….”

“우리 미국 강림자 수준을 알면서 그런 소리가 나오나?”

“죄송합니다.”

“왜? 핵 가지고 협박이라도 할까? 그 순간 대한민국에게 잘 보이려고 우리 미국에 핵을 떨궈 줄 나라가 한둘이 아니라는 건 그대도 알지 않나?”

평소와 달리 거칠게 나오는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버튼 보좌관은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확실한 것 아니면 아예 입 밖으로 떠들지 말란 말이네.”

레너드 대통령의 굳은 표정에 버튼 보좌관은 재차 사과를 했다.

“알겠습니다.”

그때였다.

“충돌합니다!”

순간 다시 화면으로 이목이 집중되며 장내에 침묵이 흘렀다.

* * *

강림자들의 대열이 뒤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때 약속이라도 한 듯 마물들 양 옆에 있던 블록들이 폭음과 함께 좌우로 무너져 내렸다.

그 덕에 강림자들은 빠르게 뒤로 물러날 수 있었다.

일부 마물들이 있기는 했지만, 그 정도는 별 문제 없었다. 그렇게 다음 블록으로 후퇴를 하자 후방에서 경고성이 터져 나왔다.

“은폐하십시오!”

그와 함께 뒤쪽으로 빠진 강림자들이 블록의 뒤편으로 몸을 완전히 숨겼다.

동시에 바닥을 뒤흔드는 진동음이 울려 퍼졌다.

쿠구구구구궁!

묵직한 진동과 함께 귀청을 찢는 듯한 폭음이 울려 나왔다.

이어서 멀찍이 서 있던 이들의 몸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파가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나갔다.

한번 무너졌던 블록들을 중심으로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친 것이다.

“조심해!”

후두두두둑!

각자 파낸 참호와 방공호 안에 몸을 숨긴 군인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낙하물들을 소리를 들으며 이를 악물었다.

블록이 깨어지며 튀어나온 돌과 바위 따위는 물론이고, 마물들의 그을린 살덩이들이 사방에 철떡거리며 떨어져 나뒹굴었다.

폭발이 끝날 즈음 몸을 피했던 군인들이 정면을 바라보았다.

전선에선 잠시 몸을 피했던 강림자들이 처음과 같이 다시 좌우의 블록들을 중심으로 반원을 그리고 대열을 갖춘 채였다.

그리고 좌우의 블록위에 올라선 군인들이 아까와 같은 형태로 화력을 투사하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콰!

온몸이 떨리는 진동을 받아내면서 화력이 투사되고 있었다.

방금 전의 폭발이 만들어 낸 여파를 직접 눈으로 바라보며 사격을 가하는 군인들의 눈에는 희망이 서리기 시작했다.

화약과 기간이 지나 처치곤란이었던 구식포탄들을 땅에 묻고 그 위에 컨테이너 블록을 설치했다.

물론 파괴전문가들을 통해 일차 폭발에 블록들이 좌우로 쏟아져 내리면서도 매설한 포탄과 화약이 터지지 않게끔 만들어 놓았다.

효과는 있었다.

블록이 좌우로 쏟아지며 길을 막아 후퇴하는 병력의 뒤를 잡히지 않게 만들었고, 이차적으로 침 식지에 거대한 폭발이 원을 그리며 터져나가게끔 만들었다.

미국이니까 할 수 있는 물량공세였다.

또, 자기 돈이 아니니까 한국 쪽 계획 입안자가 신나게 설계를 하기도 했기에 효과는 어마무시했다.

총알이나 포탄이 박히지 않던 중대형 마물들도 이 거대한 화약이 만들어 낸 운동에너지에는 버티지 못하고 사방으로 날렸다.

중대형 마물이 그러한데 소형들은 어떻겠는가.

영역에 있던 것들은 갈가리 찢어지고 한줌 핏물이 되어 사라져 버렸다.

그뿐이 아니었다.

원형으로 폭발이 되었다. 해도 파편이 안쪽을 향하게 설계 되었다.

완벽하지는 않아도 후방 쪽으로는 최대한 파편이 튀지 않도록 설계한 덕에 마치 크레모아가 터진 것 마냥 파편이 안쪽으로 튀어나갔던 것이다.

그것들에 의해 소형 마물들의 상당수가 또다시 피떡이 되었다.

게다가 떨어져 내리는 중대형 마물들에 깔려죽기도 했다.

크허어어엉!

캬악!

그래도 중대형은 중대형이었다.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던 중대형 마물들이 괴성을 내지르며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일부 중형 마물들은 절룩거리며 데미지를 입은 모양을 보여 주기는 했지만, 그 정도가 다였다.

그중 일부 안쪽으로 떨어져 내렸던 중대형 마물들은 집중공격을 당해 쓰러지기도 했다.

다시 마물들의 러쉬가 시작되었다.

쿠구구구궁!

불의 장벽이 만들어졌다.

벙커에 들어가 있던 군인들이 이제는 제법 익숙해진 듯 서로 말을 주고받았다.

“몇 번째더라?”

“다섯 번째. 이제 두 개 남았어.”

“젠장, 많이 줄었겠지?”

“그렇지 않을까?”

이 단순한 저지가 벌써 다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었다.

두 번의 저지선이 무너지면 마물들은 침식지 경계선상의 최후방벽에 도달하게 된다.

“그럼 우리차례네.”

“그러게.”

방벽 밖에 대기하던 군인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의 전투가 멀지 않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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