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3화 침략의 전조 (2)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 같았던 현상이 삼십 분째 지속되고 있자, 일부 군인들이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왠지 이렇게 또 얼마간 버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 본 것이었다.
그때 뒤쪽에서 웅성임이 들려왔다.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본 톰이 화들짝 놀랐다.
“왓! 더…….”
거대한 맹수들이 몰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놀란 것은 그게 아군인 것 같다는 것이다.
그 위에 한국 군인으로 보이는 이들이 두 명씩 올라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대체 뭐야?”
멍하니 보던 동료가 허탈한 표정으로 그것을 지켜보다가 중얼거렸다.
“뭐긴. 반지의 제왕 실사판이지.”
“shit! 한국군이 부럽기는 목장갑 이후로 두 번째야!”
“오! 그 손바닥 빨간 것? 난 종종 한인 마트에서 사서 쓴다고.”
미군들은 그들을 보며 농담이 절로 나왔다.
조금 전까지의 긴장감이 조금이나마 흐려지는 느낌이었다.
머리가 두 개인 거대한 늑대 위에 탄 한국군이 아군이라는 점에서 안도감을 준 것일지도 몰랐다.
“젠장 시선이 너무 부담스럽네.”
“그래도 우린 좀 나은 편이야. 알잖아.”
“그렇지.”
각자 들고 있는 무기들은 제각각이었다.
“활이라니…….”
그 중 일부는 석궁과 함께 활을 들고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연사력 때문이었다. 물론 활이 그렇게 쉽게 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잠깐이지만 궁사 훈련도 받았다는 점이 위안이 되었다.
물론 그걸 가지고 실전에서 쓴다는 건 어불성설이지만, 그래도 일제히 발사하면 제압 사격은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 때문이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일부 일선의 미군에게도 석궁이 들려졌다. 속도를 생각해서 이인 일조로 주어졌다.
임시방편이지만, 그래도 이게 나으리라 생각한 것이다.
그마저도 석궁용 화살이나 일반 화살이 넉넉한 상황이 아니었다.
중간에 공기 압축을 이용한 소총류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임시방편으로라도 쓸 수 있는 분량이 있는 것은 미국의 가공할 만한 생산력과 한국의 빨리빨리 정신이 결합한 결과라 볼 수 있었다.
그때 무전병이 달려와 밝은 얼굴로 외쳤다.
“헤이!”
“무슨 일이야! 마이크!”
“일차 분량이 출발했어! 역시 활보다는…….”
그 사이 서둘렀는지 만들어진 분량부터 옮겨오고 있다는 희소식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다시 진동이 울려오기 시작했다.
그 진동음에 저절로 탑을 향해 시선을 돌린 기동대원들이 중얼거렸다.
“이거 너무 식상한 거 아니냐?”
“정말 오진다.”
“어쩔 수 없어! 우리 최선을 다하자!”
누군가가 당당하게 외치며 사기를 불어넣듯 외치자 사방에서 화답이 오갔다.
“개새끼! 넌 샘플용 소총 들고 있잖아! 나랑 바꿔!”
“그래. 넌 손가락만 당기면 된다 이거지!”
“가위 바위 보를 잘 하던가! 승부의 현실은 냉혹한 거야!”
그러는 사이 앞쪽에 있던 강문호 중령이 외쳤다.
“닥쳐! 곧 시작이다!”
이번 전투는 강문호 중령이 직접 나서게 되었다.
다들 민간인 신분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반은 군인이나 마찬가지인 상황.
그렇기에 강 중령의 외침에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입을 다물고 눈을 빛내었다.
어쩌면 방금 전까지 떠들던 것은 긴장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것일지도 몰랐다.
“다들 알다시피 지프에서 탑승용 마수로 바뀌고, 무기 또한 직접적인 타격이 가능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그만큼 우리의 임무가 더 위험해졌다는 것을 알 것이다.”
강 중령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진동음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지만, 그의 우렁찬 목소리를 감출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므로 더더욱 조심하길 바란다. 오늘 이 전장이 우리나라가 아님에도 우리가 이곳에 있는 이유 역시 잘 알 것이라 생각한다. 침식 균열은 단지 어느 한 곳을 막는다 해서 생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동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급선무는 가장 큰 균열을 막지 못하면 그곳이 베이스가 되어 점점 막기 힘들게 변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내부적으로 국내보다는 차라리 해외에서 싸우는 것이 더 낫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희망도 없이 그저 누군가가 조롱하기 위한 비하의 단어가 되어 버린 고기 방패란 단어마냥 쓰이던 우리에게 대항할 무기가 생겼다.”
고기 방패란 말에 다들 안색을 굳혔다.
언젠가부터 한남이란 단어와 함께 조롱의 대상이 되었던 단어다. 하지만, 누구 하나 욕하지도 않았다.
실제로 그들끼리도 그런 농담을 했다.
실제 그 역할이 다르지도 않았다. 누군가는 조롱하기 위해 쓴 단어지만, 민간인들을 위해 또 징집병들을 위해 몸을 방패삼아 전장에 뛰어드는 이들이었다.
고기라는 단어를 뺀.
그들은 말 그대로 최후의 방패였다.
그게 그들의 자긍심이다.
“물론 그럼에도 우리는 이 전장에서 주연은 아니다.”
강 중령의 시선이 저 앞에 도열하고 있는 기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숫자는 더 늘어 있었다.
선두에는 가우리의 기마들이 있었지만, 그 뒤에는 그와 유사한 형태로 도열한 기마들이 있었다.
중세 기사 복장을 한 소수의 기사단과 옛날 이곳을 장악했던 소수의 인디언 강림자들이 대열을 만들고 있었다.
그 뒤로는 보병이나 마찬가지인 강림자들이 각자 군집 대열을 만들고 있었고, 미군들로 구성된 이들이 차량에 한국의 기동대원들이 처음에 한 것처럼 강림자와 소환자들을 태우고 시동을 걸고 있었다.
그들이 주연이다.
“그럼에도 언젠가 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갈 때 우리 역시 이 전장에서 맞서 싸웠음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강 중령답지 않게 쩌렁쩌렁하니 외치며 가슴을 흔들어 주었다.
“우와아아아!”
“와아아!”
“쏴리질러!”
“씨파! 다 죽었어!”
기동대원들이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함성을 내질렀다.
“잊지 마라!”
강 중령이 손에 들린 활을 치켜 올리며 외침을 이어 갔다.
“우리는!”
“우리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음에도 따라 외친다.
“고기 방패가 아니다!”
“고기 방패가 아니다!”
자긍심을 불어넣었다.
“최후의 방패다!”
“최후의 방패다!”
와아아아아! 기동대원들의 함성이 사방을 뒤 흔들었다.
쩌렁한 함성을 들으며 미군들도 역시나 마찬가지로 지휘관들의 외침에 따라 복창했다.
마치 전염이라도 된 듯.
첨단 무기에 의존해서 그저 후퇴만을 거듭하던 그들도 기동대원들을 보면서 자신감을 얻은 것이다.
자신들의 역할이 아직 있다는 것을 자각한 것이다.
그때 거짓말처럼 진동이 멈추었다.
그리고 탑 하부에서 문으로 보이는 구멍들이 사방에서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쥐 죽은 것 같은 찰나의 침묵.
그 침묵을 뒤흔드는 소리가 울려왔다.
캬르르! 캬라라락! 카악!
가지각색의 괴음들.
열려진 구멍에서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걸 바라보던 강 중령이 중얼거렸다.
“시작이다.”
강림자들이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가 이래 많은 거이간?”
을지부루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게요?”
몰려나오는 마물들을 보며 을지부루가 혀를 내찼다. 300m에 달하는 한 면에서만 십수 개에 달하는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정말 물밀듯이 마물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도 많다많다 했었지만, 이건 정말 발 디딜 틈도 없어 보였다.
“…….”
“넌 와 아가릴 닫고 있는 거이간?”
“어, 음……. 긴장 안 되세요?”
고빈의 얼굴은 살짝 하얗게 질려 있었다.
다른 소환자들과 다르게 그는 부루의 옆에 있었다.
이제는 제법 한 사람 몫을 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게 또 익숙하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의 자리는 앞으로도 빼박 부루의 옆이라는 것이다.
그도 알고 있었다.
그가 바로 소환자들의 롤 모델이라는 것을. 그리고 희망이라는 걸 말이다.
물론 그런 것 치고는 여전히 가볍지만 말이다.
부루가 빈의 질문에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긴장은 개풀 뜯어먹는 소리 말라우. 저거이 일일이 쳐 죽일 생각하니 진절머리 나는 거이 전부이니까네.”
“형님들 들으셨죠? 다 쳐 죽이실 생각이랍니다. 오! 후원 감사 합니다! 아 영어구나! 땡큐! 엥? 독일어라고요?”
“…….”
마지막까지 카메라에 대고 씨부리는 걸 보니 그래도 아직은 살 만한 모양이었다.
“기거이 꼭 이 마당에 해야 하는 거이간?”
“아저씨!”
그때 빈이 부루에게 카메라를 던졌다.
“지랄 말고 응원하고 후원이나 팍팍 하라우! 눈팅만 하는 애새끼들 찾아내서 내래 현피 가갔어!”
부루가 나름 협박의 메시지를 던져 주자 채팅창이 미친 듯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때 부루가 매의 눈으로 입을 열었다.
“글쓰는 곰팅이 아새끼 뒈질 줄 알라. 근돼라 했네? 내래 그거이 근육 돼진 거 다 아니까! 스미스 부르라우! 스미스!”
“아저씨. 이거 잡는다고 미 정보 국장 부르면 욕먹어요! 봐요!”
빈이 채팅 화면을 보여 주었다.
- 글쓰는 곰팅이 : 님아 자비!
- 글쓰는 곰팅이 : 님아 자비!
- 피바다파 : 오! 미 정보국 공팅 다이!
- 근육여고생 : ᄏᄏᄏ 나 캡쳐 뜸!
-글쓰는 곰팅이 : 님아 자비!
글쓰는 곰팅이 님이 100,000원 후원합니다.
“한국 가서 보자우.”
부루의 하드캐리에 후원금이 쏟아졌다.
그걸 본 빈이 마무리 멘트를 했다.
“형님들, 살아서 봐요. 이 후원금 중 8할은 아시죠?”
빈이 씁쓸하게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중구난방이던 채팅창이 침묵으로 변했다.
전투에서 부상당하거나 희생된 기동대원이나 군인들에게 쓰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 후원금이 제게 쓰이지 않길 빌며 흐흐흐”
끝까지 너스레를 떤 빈이 카메라를 옆으로 넘겨주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촬영을 보조하던 국방부 소속 카메라맨들이 카메라와 태블릿을 받아 들며 빈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주었다.
“끝나고 보자!”
“옙!”
빈이 힘차게 대답하고는 앞을 바라보았다.
빈의 손에는 어느새 가우리 기병들과 마찬가지로 기병용 삭이 들려 있었다.
마물의 부산물로 만든 기병창이었다.
잠깐의 유희가 끝이 나고 몰려오는 마물들을 향해 부루가 손을 들어 올렸다.
“각자 위치 잡으라우.”
그의 명령에 천유화가 깃발을 흔들었다.
그들이 항상 들고 다니던 삼족오 기였다.
그러자 각 블록 뒤에 대기하던 보병 강림자들이 일제히 반원을 그리며 블록과 블록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블록 위에는 유탄 사수들과 포병들이 직사로 전면을 겨누고 숨을 죽였다.
한국식 방어 시스템이었다.
마물들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OMG…….”
“위에서 보니 더 까마득하군.”
블록의 위에서 중화기를 가지고 대기하던 미군들은 창백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긴장하지 마! 그래도 아직은 소형이 대부분이야!”
“빌어먹을 그게 위안거리라고 말하는 거야? 지금?”
일부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때였다.
무전이 울려왔다.
[준비! 준비!]
무전이 울려오자 오가던 욕설과 대화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동시에 다들 긴장된 얼굴로 각자의 사선을 바라보았다.
그때 잠시 침묵하던 무전이 울려 퍼졌다.
[Fire!]
“Fire!”
복명복창과 동시에 중화기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