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2화 침략의 전조
그때 고빈이 미간을 찌푸린 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아까 부루 아저씨처럼 쏘는 것도 좋은 것 같지 않아요?”
빈의 말에 연구원들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바람총 같은 거 말인가? 이게 독침 같은 게 아니라서. 저지력도 좋아야 하고 관통력도 있어야 쓸 만하지. 어디까지나 일반인들이 쓸 병기라고.”
“맞아. 우린 사람이잖아.”
사람이라는 말을 하며 끼어들었던 기동대원은 부루의 살기 어린 눈빛을 받곤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아니, 입으로 쏘자는 게 아니고, 공기를 이용하면 되지 않아요? 에어건처럼.”
에어건이라는 말에 연구원들의 눈이 번뜩였다. 일부 기동대원 역시 귀가 솔깃한 표정을 지었다.
“오! 나 어렸을 때 BB탄총 피스톤에 휴지 끼워서 파괴력 올리고 그랬는데!”
“맞아! 스프링도 불에 달궈서 찬물에 넣고 별짓 다했지 아마?”
“야, 요즘 누가 그런 거 쓰냐, 전동총이 있는데.”
“아니지, 전기식은 여기서 안 먹히니 압축공기로 가야지. 가스식으로다가!”
순간 연구원들과 기동대원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 * *
-도마뱀들이 요즘 바쁘다지?
사자의 대공 게르하이오 폰 기오르그가 툭하니 던진 질문에 고위 마족 중 하나가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
-그러하옵니다. 마룡의 군주가 한발 앞서나가는 상황이옵니다. 더욱이…….
-잡다한 놈들 역시 그쪽에 줄을 서고 있다지?
기오르그의 말에 고위 마족이 어쩔 줄을 몰라 하며 허리를 숙였다.
-그러하옵니다.
-차원의 틈새에 끼어 들어온 마룡 주제에 많이 컸군.
기오르그가 우습다는 듯 말을 뱉었지만, 이곳에 있는 마족들은 쉽게 동조하지 못했다.
전혀 우스운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절망의 군주도 탑 건설을 준비한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흐음. 아직은 때가 아닐 텐데?
-아무래도 마룡의 군주가 발빠르게 움직이니 조금이라도 영역을 넓히기 위함이 아니겠습니까.
-그렇군.
탑을 세운다는 것은 단순한 전초기지를 만든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지금처럼 제한된 공간에서 병력을 투사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제대로 된 병력을 상주시킬 수 있으며 해당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힘을 갈취할 수 있는 장치다.
그 힘은 군주에게로 흘러들어간다. 다만 탑의 규모에 따라 흡수할 수 있는 힘이 다르다.
문제는 그게 파괴된다면 그 침공은 무위로 돌아간다. 그렇기에 최대한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는 규모로 세우는 게 정답이었다.
마룡의 군주쪽은 그 규모가 충분했다. 최소한 군단장급들이 여럿 상주가 가능했다.
거기에 마계의 대공 역시 내려갈 수 있는 격을 갖추었다.
물론 그 경우에는 군단장급이라 불리는 고위 마족을이 마계로 돌아와야 하지만 말이다.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될 문제다.
-아무래도 마룡의 군주가 독식하기 전에 위험이 있다 해도 일부라도 힘을 빼오겠다는 의미군.
-그런 듯하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차이는 커지겠사오나…….
힘을 빼오는 작업은 눈덩이 굴리기와 같았다.
조금 늦더라도 규모를 키울수록 나중에는 더 유리하기 마련이었다.
물론 세워 놓고 확장하는 방법도 있지만, 세울 때에는 이곳의 마력이 들어가지만 확장 시에는 해당 지역의 힘이 들어간다.
즉 흡수는커녕 재투자에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뭐, 멀거니 있으면 바보 취급당하겠지?
기오르그의 말에 고위마족들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나아졌다.
큰 이득이 되지 않더라도 지금은 해야 할 때다.
왜냐면 마룡의 군주가 흡수할 힘을 최대한 적게 되돌아가도록 해야 격차가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었다.
만약 이대로 방치한다면, 마계의 최강자 자리는 곧 뒤바뀌게 될 가능성이 컸다.
-희망을 걸어 보자고. 우리 일에 찬물을 부은 자들이 마룡의 일족이 있는 영역에 있다고 하니까.
평소 기오르그의 행동과는 다른 반응에 고위마족들은 당황해 하면서도 허리를 숙였다.
그들이 물러간 뒤 기오르그는 자신의 공간으로 이동했다.
-재미있지 않느냐?
그가 던진 질문에 한쪽 벽면에서 마족 하나가 스며 나오며 무릎을 꿇었다.
-군주시여. 명만 내리옵소서.
-마켈그로이언. 준비는?
기오르그의 질문에 마켈그로이언이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명만 내리시옵소서.
마켈그로이언의 대답에 기오르 그가 흡족한 미소를 머금으며 중얼거렸다.
-하나뿐인 권좌를 너무 오래 비워 놓으면 안되지.
기오르그의 미소가 점점 짙어져 갔다.
* * *
“이건 뭐 피라미드를 통으로 옮겨 왔다고 해도 믿겠군.”
마치 피라미드를 보는 듯한 규모에 지키고 있던 군인들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데 곧 신병기들이 투입된다며?”
“일단 듣기로는 그렇지. 한국산이라던데?”
“이젠 무기도 한국산에게 밀린단 말이야?”
약간은 허탈한 듯한 말을 뱉는 군인에게 다른 동료가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야. 아직 휴대폰은 미국산이 최고라고.”
“애플이 밀려난 지 언제인데.”
“아직 우리에겐 삼성이 있다고.”
“오 하느님. 자네의 그 삼성이 한국 브랜드라고.”
“뭐? 진짜?”
시답잖은 대화가 이어지자 이내 흥미를 잃은 군인은 다시 무기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런데 소수라도 샘플이 나오면 바로 적용해야 하지 않나?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건데.”
“그렇지.”
그때 뒤쪽에서 트럭이 연이어 달려왔다.
“응?”
차량이 멈추고 그곳에서 멧 할러데이 중장이 뛰어내렸다.
“장군님이시다.”
그를 향해 보급관들이 일제히 달려갔다. 뒤이어 병사들이 멈추어선 트럭들에 달라붙어 무언가를 내리기 시작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지금 뭐하는 거지? 왜 갑자기 총을 나눠 줘?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저걸 마트에서 선물 나눠 주듯 뿌려도 되는 거야?”
상자를 여니 총기류가 잔뜩이었다. 그런데 웃기는 건 그걸 막 두서없이 나눠 주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일단 우리도 가 보자고.”
지켜보던 그들도 달려갔다.
병사들이 마치 간식 나눠 주듯 한 사람이 대여섯 자루씩 어깨에 메고 돌아다니며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들에게 총기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이거 왜 줬는지 이해할 수 있겠어?”
받아든 총기를 들고 멍한 표정으로 동료에게 질문을 던지자 그가 대답했다.
“음. 화약공장이 망해서 이거라도 연습하라고 준거 아닐까?”
“장난해!”
“음, 여기에 개스를 주입하라고?”
치익!
“미치겠네. 왜 이런 장난감을 나누어 준 것이지?”
그때 확성기로 멧 중장의 음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제군들. 지금쯤이면 국방부가 미친 거 아니냐는 소리가 나왔겠 군. 조금 전에는 화약이 다 떨어져서 이걸 줬을 거라는 웃지 못할 소리가 들리기도 했는데…….
여기저기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쉽게도 화약은 아직 재고가 남았다네. 공장에서도 미친 듯이 찍어 내고 있고. 그런데 문제는 앞으로 우리가 이것과 비슷한 것을 주력 무기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군인들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이런 거? 뭐야? 사실 알고 보니 저 마물들이 동심 가득한 무기를 맞으면 천사로 변해서 하늘로 올라가기라도 한다는 거야?”
“닥쳐 봐.”
-연구소에서 새로운 소재의 발사체를 만들고 있다네. 문제는 그것들이 화약이나 전기적 자극을 받으면 성질이 변한다더군.
이어지는 설명에 다들 다시 침묵했다.
-결국 활처럼 쏘아야 된다는 건데, 그게 쉽게 되는 건 아니라더군.
“차라리 크로스 보우를 주지.”
“그건 연사가 어렵잖아.”
-물론 크로스 보우 형태의 샘플도 처음에는 만들었지만, 아마도 그게 연사가 어렵다. 그래서 압축 공기를 활용하기로 했지. 이것과는 좀 달라지겠지만, 매커니즘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더군.
“그렇겠군. 압축공기라면 충분히 다르겠지. 파괴력을 극대화 시키면 말이야. 그래도 저지력은 떨어질 건데?”
몇몇 마니아들은 이야기를 알아 듣고 의견을 주고받았다.
-일단은 기존의 공장에서 개조 형태로 생산을 먼저 하기로 했으니 이걸로라도 먼저 놀고들 있으라고. 마물이 코앞에 있는데 게스를 못 채워서 총으로 클럽처럼 휘두르지 않으려면 말이야.
멧 중장의 설명이 끝나자 군인들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행히 배우는 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튜튜툭! 튜튜튜툭!
장난삼아 쏘는 병사들도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며 멧 중장은 어색하게 웃었다.
“하긴. 옛날 영화에선 노래 듣고 죽는 외계인도 있었으니까.”
그렇게 중얼거리며 자신의 손에 들린 에어건을 바라보았다.
“효과가 정말로 크면 좋겠군.”
“톰 표정이 왜 그래?”
왠지 잔뜩 굳어 있는 동료를 향해 말을 건 군인에게 톰이라는 병사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이거 말이야.”
“이게 왜?”
“이게 통한다는 말은 우리도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거 아닐까?”
톰의 말에 말을 걸었던 군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러네?”
“갓 뎀…….”
“그래도 맞춰서 죽일 수 있다면 그게 낫지 않아? 보통 후퇴하다가 더 많이 죽는다고. 심지어 이전 전투에선 최소한의 저지도 포기하고 총 버리고 뒤로 뛰던 놈들도 있었고.”
“맞춰 봐야 움찔거리다가 마니까.”
“그래. 그런데 효과가 있으면 또 다르지 않을까?”
희망적인 말을 건네자 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차라리 그게 나을 수도…….”
쿠르르르르!
그의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마치 지진이라도 나는 듯 땅이 심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무, 무슨 일이야!”
“뎀잇! 비상이야!”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다들 뛰어나갔다.
그들의 시야에 들어온 거대한 피라미드 형태의 탑에 보라색 빛이 휘감아 돌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무언가의 피날레를 장식하듯 말이다.
“그럼 이거 쏘면 놈들이 죽나?”
“니가 죽겠지. 이건 장난감이라고!”
“진짜는 왜 안 주고 장난감을 줘!”
“닥치고 구덩이에나 들어가라고!”
아우성을 터트리며 군인들이 각자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뒤쪽에서 강림자들이 일제히 내달려 왔다.
급조한 컨테이너 방벽이 열어 놓은 길 앞에 다들 멈추어 섰다.
이것들은 한국군이 직접 진두지휘해서 만들어낸 대마물 방어 전술기지 형태였다.
침식지대에 솟아오른 탑에 변화가 생겼다는 말에 한국쪽 병력들도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봐야 두 개 중대의 기동대원과 소환자들이 전부였지만, 이 전력이야말로 최강의 전력이었다.
그 가운데에을지부루가 있었으니 말이다.
“조금 있으면 실전배치 할 수 있는데…….”
연구원들이 울상을 지었다.
“일단 만들어진 것부터 옮기라고 합시다! 빨리!”
그때 고빈이 입을 열었다.
“그, 샘플 있죠?”
“이, 있지. 하지만 총기류 샘플은 얼마 되지가…….”
“없는 것보단 낫죠. 그거랑 화살이랑 헛짓했다고 미리 만들던 거도요!”
“아!”
빈의 말대로였다. 지금은 그거라도 있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었다.
실험용이지만, 미리 투사체 용도로 만들어 놓은 게 적지 않았다.
“급한 대로 당겨서 쏘면 되잖아요! 빨리 가지고 갑시다!”
“아, 알았네!”
빈의 말에 연구원들이 기동대원들과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