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0화 공략을 위한 준비
* * *
존 버튼 보좌관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왜 출입이 안 된다는 겁니까!”
닉 레너드 대통령은 열이 달아오른 버튼 보좌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해당 구역은 대통령인 나도 쉽게 드나들 수 없는 곳이네. 아쉽게도 자네에게는 보안레벨이 허용되는 수준이 아니라네.”
“그러면 그곳의 연구원들을 소환시켜 주십시오. 이대로 끌려 다닐 수는 없습니다!”
“나도 그럴 마음은 없네.”
“마물 열 마리에 대한 교환비를 듣고도 그런 말씀이십니까!”
버튼 보좌관의 말에 레너드 대통령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 역시도 충격을 받기는 했다. 터무니없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으니까.
“나도 처음에 자네와 비슷한 마음이었네. 하지만 대체불가라는 말에 할 말이 없어지더군.”
“그건…….”
“그게 아니면 라이트 형제가 만든 비행기를 좀 벗어난 형태의 공군을 투입하란 건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면서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좀 더 자유롭게 비행할 수 있다는 것 외에는 장점이 없습니다.”
“그게 다른 점일세. 선회 능력이라던지 작전 수행능력. 거기에 타격을 받아도 일정 부분 경감할 수 있는 생체 보호막도 존재하니까. 비교하긴 어렵지 않겠는가?”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버튼 보좌관이 고개를 숙였다.
“자네가 해야 할 일은 그 지하에 뭔가 있는지 피크닉을 가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 거래를 통해 비용 대비 효율을 가져올 수 있는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일세.”
“우리는 그들을 지금까지 지켜 준 나라입니다.”
“맞아. 동맹이지. 그런데 동맹에게 방위비 명목으로 돈을 내놓으라고 협박했지. 그리고 자꾸 똑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대침식 때 우린 동맹을 버리고 귀국했고 말이지.”
“방위비는 전임자의 문제입니다.”
“맞네. 문제는 이후에도 책임을 지는 이도 없고 별다른 변화도 없었지.”
“…….”
“나가 보게.”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버튼 보좌관은 소득 없이 돌아서야만 했다.
그가 나가고 난 뒤 레너드 대통령이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자네 말대로 연구시설을 봐야겠다고 하더군.”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는 일을 과격하게 처리하려 할 겁니다.]
“그게 통한다면 나도 허락했을 것이네.”
[그걸 전문으로 하는 게 우립니다. 하지만 그걸 추천해 드릴 수 없습니다.]
“알고있네.”
[그럼 계속 접촉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알겠네.”
닉 레너드 대통령과 통화를 마친 케인 스미스 정보국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버튼 보좌관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쪽은 더 곤란해졌다고.”
굳이 정보를 캐낼 필요도 없었다. 김창진이 알아서 정보를 보내 주었다.
물론 그 정보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물에게 일반군인들이 타격을 줄 수 있는 병기의 공유라…….”
스마트폰에는 영상이 들어 있었다.
“활이라니. 인디언도 아니고.”
고개를 내저었다.
활은 총이 나타나기 이전에 인 간이 가질 수 있었던 가장 훌륭한 원거리 투사체 중 하나였다.
“뭔가 다르단 거지. 물론 비밀로 하지는 않겠지?”
한국은 이것을 독점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이걸 공유하면서 최대한의 이득을 얻어내려 할 것이 뻔했다.
“로열티라도 받겠다는 건가? 물론 시일이 지나면 만들 수야 있겠지.”
엄청난 첨단의 기술이 들어간 것이 아닌 이상, 언젠가는 만들 수 있기는 할 것이다.
문제는 이쪽은 시간이 없다는 점이다.
“이걸 공유하고 쓸데없는 타협 따위는 하지 말라는 거겠지.”
한숨을 내쉰 스미스 국장은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광고를 보았으니 실물을 확인할 순서다.
* * *
“이게…….”
한국 연구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 꼴보다는 좀비에 더 가까워 보였다.
“아, 오셨소?”
“미스터 구?”
“알아보기 힘들 정도요? 허허허.”
“잠은 자고 하는 겁니까?”
“원래 연구란 게 이런 거요. 하나도 풀리지 않다가도 갑자기 풀리기 시작하면, 뭔가 정신없어지는 법이라.”
몰골이 상해 있는 사람치고는 얼굴이 밝았다.
스미스 국장은 그들의 표정을 보며 기대감이 차 올랐다.
무언가 일이 잘 풀려 간다는 의미였다.
“활을 연구하는데 밤잠을 설칠 정돕니까?”
“활이라고 하기보단 적용 가능한 투사체 일체를 찾아 그 샘플을 만들고 가능한 고대 병기들에 조합을 하는 중이오.”
“고대…… 병기 말입니까?”
“화약을 이용한 투사체는 불가능하오. 물론 레일건과 같은 전기를 이용한 투사체 역시 불가능. 지금까지 알아낸 것이 그게 전부였소.”
“하아. 이걸 참 뭐라고 해야 하나. 현대 병기의 발전이 오히려 답을 빙 돌아가게 만들었군요.”
“물론 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네. 중요한 건 합금비니까.”
“그럼? 뭔가 다른 게 있다는 것입니까?”
스미스 국장의 질문에 구 박사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니 우리가 이 고생하는 거요.”
“미국 쪽 인력은 왜…….”
“결과는 공유할 생각은 있지만, 과정까지는 공유할 수 없네. 나름의 욕심? 물론 그쪽도 언젠가 따라 붙겠지만. 실패를 통해서 얻는 것까지는 공유하기 싫은 욕심이라고 보면 되네.”
“어쩔 수 없군요.”
“일단 현지에서 조달한 병기 샘플을 좀 보겠는가?”
구 박사를 따라 간 스미스 국장은 실내 한쪽의 병기 실험장에 도착했다.
“미국은 이런 게 참 잘 되어 있어 좋더군.”
“이게 다?”
스미스 국장은 한쪽에 전시되어 있는 병기들을 보며 입을 떡 벌렸다.
“일단 이 정도일세.”
“뭐가 이렇게 많습니까?”
“활은 숙달의 어려움이 있으니 석궁 형태의 무기를 기본 무장으로 하면 좋을 것 같군. 아쉽게도 칼이나 창으로 활용은 좀 어렵네. 사람의 힘으로는 의미 있는 타격을 주기 어렵거든.”
“연사는 가능합니까?”
“가능하네. 연사식 석궁이 없는 건 아니라서. 그런데 연사식은 좀 무리가 있지.”
“이건 새총입니까?”
“의외로 사거리와 파괴력이 좋아서 말이네. 그런데 뭐 관통력에 문제가 있어서 일단 제외했네. 우리가 상대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야.”
병기들을 살피던 스미스 국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 통하는 겁니까?”
스미스 국장의 질문에 한쪽에 있던 창진이 입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왔소.”
“일단 젤리베어 같은 마물에게는 특횹니다.”
“오호?”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일종의 유체형 마물에게 타격이 더 잘 들어가는 편입니다.”
창진의 말에 스미스 국장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이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비행형 마수의 문제로 말이 좀 많습니다.”
“사실 전 반대입장입니다.”
“그게 무슨?”
“찍어 낼 수 없으니까요. 생태를 완전히 확인한 것도 아니고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 아닙니까. 사실. 우리에게도 개체 수는 모자랍니다.”
창진의 말에 스미스 국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협상의 여지조차 없다는 것을 확인한 셈이다.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것들 아니겠습니까?”
대 마물용 투사병기들을 가리키는 창진의 말에 스미스 국장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특히 대침식 초기만 해도 얼마나 끔찍했는가.
전선이 구분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전투는 민간인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만들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치안의 공백으로 인한 폭동과 약탈이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져 피해가 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그래서 이런 투사병기의 필요성은 어느 나라든지 강력하게 요구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더 중요하기에 긴장이 되는 스미스 국장이었다. 하지만 창진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이건 돈벌이용으로 활용하지는 않을 겁니다. 세계의 위기니까요.”
“으음.”
풍선효과. 어느 한쪽을 틀어막아도 다른 곳이 튀어나올 수 있다는 짐작이 점점 현실화 되어 가고 있는 상황이었다.
세계적인 공조가 필요하다는 건 다 알지만, 자국방어도 벅찬 상황 이기에 의미 없는 외침일 뿐이었다.
아니 대침식 이후에 각국들은 나름의 대비책을 의제에 올려놓고 논의를 해 왔다.
그러나 그게 의미 없다는 것이 이번에 다시 확인되었다.
아니 의미가 아예 없진 않았다. 한국이 가능성을 열어 준데다가 위기의 상황에서 파병까지 왔으니 말이다.
“2차 대전의 힘을 전 세계는 기억할 겁니다. 천조국이라는 이름이 괜히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창진의 말에 스미스 국장이 웃음을 머금었다.
“진영이 나뉘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상황이기는 하지요. 그나마 하늘길과 바닷길이 막히지 않은 것이 다행이고.”
“예. 그래도 막히게 되면 그땐 대책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은 바로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제일갑니다.”
“인정하지요.”
“물량에는 천조국만 한 곳이 없고요.”
“중국도 있잖습니까?”
넌지시 중국을 입에 올렸다.
“물론 중국 쪽도 도와야지만, 아마 그쪽은 자국 내의 수요를 맞추는 것만 해도 선방하는 겁니다.”
“다만, 선행 연구를 통해 나오는 신제품의 실전 테스트를 미국과 우리가 함께 공동으로 해야 할 겁니다.”
테스트라고 했지만, 앞선 기술을 가장 먼저 적용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좋군요.”
“그리고 아예 안 남는 장사는 될 수 없겠지요. 정산은 인류의 승리 뒤가 될지 모르지만.”
스미스 국장이 만족스러운 듯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필드테스트를 서둘러야겠군요.”
스미스 국장의 말에 창진이 밝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미 진행중입니다.”
창진의 말에 스미스 국장이 놀란 눈을 했다.
연구가 시작된 것이 삼 일이 좀 지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벌써 말입니까? 어디서…….”
“매일 끌려 나가는 인원들이 가지고 갔지요.”
“아……. 귀중한 데이터가 나오겠군요.”
매일 끌려 나가는 인원이라는 말에 스미스 국장이 웃음을 머금었다.
가장 많은 실전을 겪은 한국의 기동대의 테스트라면 좀 더 다양한 데이터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뭐,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야지요.”
창진이 마주 웃었다.
* * *
“농담이시죠?”
얼굴이 반쪽이 된 기동대원이 손에 들린 무기를 보며 물었다. 그러자 을지부루가 확인사살을 했다.
“비싼 밥 처먹고 농담이 나오간?”
“……이게 통한다고요?”
“통하니 쥐어 줬디.”
기동대원들이 다들 자신의 손에 들린 무기들을 바라보았다.
“무슨 무기가 종류별로…….”
“심지어 연노도 있네?”
“연노? 그게 뭐야?”
“조선시대 아낙네들이 쏘던 연발 석궁?”
“연발이면 좋은 거 아냐?”
연발이란 말에 서둘러 집어 드는 기동대원 동료에게 말을 꺼냈던 이가 몇마디 덧붙였다.
“연발을 선택한 대신 사거리와 파괴력을 희생했지.”
“……근접병기라고 생각하면 될 거다.”
“끙.”
“그래도 코앞에 닥쳤을 때 효과만 있다면 이것도 쓸 만할지도 모르지 않나?”
누군가도 흥미를 가진 표정으로 들어 올려서 이리저리 바라보았다.
“그걸 우리더러 확인하라고 준 거 같지 않냐?”
그 말에 다들 부루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을 받으며 부루가 엄지를 치켜 올려 줬다.
“똑똑하구만 기래.”
“……끙.”
칭찬 아닌 칭찬에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