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8화 전쟁을 준비하는 자들
“뭐, 어사또의 오른팔쯤 되나 보지요. 나름 준영웅급이라지 않습니까. 포졸 출신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수준이라지요?”
창진의 위로에도 서 경위는 울분을 터트렸다.
“젠장! 그럼 뭐해!”
“음. 역모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그의 강림자는 답답한 마음에 버럭 소릴 내지른 서 경위의 복장을 다시 한번 뒤집어 주었다.
아직은 이전 생의 기억이 선명해서인지 무의식적인 반복 행동이 자주 보였다.
임꺽정이 곰방대를 물거나 자꾸 이상한 말을 하는 것도 그와 유사한 현상이었으니까.
이런 건 자아가 높은 상위 강림자들의 초기 증상이었다.
그때 저 멀리서 그들을 반기는 얼굴이 있었다.
“어? 니들이 왜 나오냐?”
“젠장, 그 양반들이 움직이기나 합니까?”
달려온 이들은 바로 이승배와 광호였다.
그 뒤에는 임꺽정이 어슬렁거리며 따라오고 있었다.
“응? 저 양반 담배 끊었냐?”
“달달한 게 입에 맞는답니다. 그리고 악플이 좀 달려서.”
어슬렁거리며 따라오는 임꺽정의 입에는 막대사탕이 물려 있었다.
“악플? 뭐야? 웬 악플?”
“이게…… 자기는 의적이니까 백성들의 평판도 신경 써야 한다던데요?”
광호의 말에 서 경위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얼굴을 굳히며 질문을 했다.
“그런데 음식도 먹냐? 난 그 양반들 일행만 먹는 줄 알았는데.”
“이게 같이 움직이니 영향을 받 던데요? 처음부터 같이 하다 보니 더…….”
둘의 대화는 정상적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꺽정이와 암행어사의 호위무사가 이마를 맞대고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이 불쾌한 놈은 뭐지? 포졸이냐?”
“놈!”
“왜? 꼬우면 잡아 보던가.”
“아씨!”
그들의 대치에 다들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미치겠네. 좀 말려라.”
“뭐 따지면 도둑과 경찰쯤 되니 저러는 게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지만…….”
그때 한쪽에서 미국쪽 인원들이 그들을 마중 나왔다. 그 중 한명의 얼굴을 알아챈 창진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그에게 나아갔다.
“국장님이 직접 나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아닙니다. 사안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그를 마중 나온 이는 바로 케인 스미스 정보국장이었다. 그뿐이 아니었다.
“존 버튼 안보보좌관이오.”
“알고 있습니다. 반갑습니다.”
“와 유명인이다.”
그 뒤에 있던 서 경위가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한마디 거들었다.
그러자, 창진이 조심스럽게 서 경위에게 입을 열었다.
“스미스 국장님은 한국어를 하실 줄 아십니다.”
“알아. 그래서 인종차별주의자라고는 안 했잖아.”
“…….”
서 경위의 거침없는 대꾸에 창진은 한숨을 내쉬었고, 스미스 국장은 쓴웃음을 머금었다.
마음 같아선 버튼 안보보좌관과 함께 나오고 싶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급한 일이니까요.”
“일단 함께 가시지요.”
스미스 국장이 그들을 인도했다. 그때 옆에 있던 버튼 보좌관이 조용히 물어왔다.
“아까 저 뒤에 있던 남자가 뭐라 했나?”
“보좌관님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흠. 나쁘지 않군.”
고개를 끄덕이는 버튼 보좌관을 보며 스미스 국장은 인종차별관련 내용을 말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바로 침식지 경계선상이었다.
그곳은 나름 철통같은 방어선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야, 장벽만 있으면 우리나라라고 해도 되겠다. 저건 또 뭐지? 역시 천조국인가? 꼭 레이저포라고 해도 믿겠다.”
서준모 경위가 감탄을 하자 김창진이 조용히 대답했다.
“레이저 맞습니다.”
“헐? 진짜? 효과는 있고?”
“있으니 달아 놨겠지요. 소위 마물들에게 생체 보호막이라는 게 있지만, 일정 수준 이상의 에너지원에는 소멸되니까요. 뭐 효율은 아직 어떨지 모르지만.”
“많은 걸 아십니다.”
케인 스미스 국장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자 창진이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저도 일단 정보부 소속이잖습니까.”
실 소속은 정보부에서도 마물전담팀이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또 레이저는 비밀결전병기가 아니었다. 다들 오랜 시간동안 연구해 왔던 병기였기 때문이었다.
“혹시 타격은 해 보셨습니까?”
“처음에 해 봤지만, 역시나였습니다.”
“미사일입니까?”
“토마호크에 레일건, 레이저까지 테스트 해 봤습니다.”
그의 말에 창진은 굳이 결과에 대해 묻지는 않았다.
결과를 묻기에는 너무 멀쩡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능성이라도 보였다면 이들이 이렇게 그들을 맞이하러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곳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있었다.
“박사님?”
“응? 왔는가?”
구은대 박사가 연구원들을 줄줄이 뒤에 매달고 다가왔다. 그 곁으로는 가우리의 병사들이 호위를 서며 따라붙고 있었다.
“오, 여기서 보네? 그래 우리는 언제 돌아가?”
그때 말을 걸어온 이는 바로 천유화였다.
구 박사의 호위를 위해 함께 있는 모양이었다.
천유화의 말에 스미스 국장은 물론이고 버튼 보좌관까지 인상을 구겼다.
“왜요? 대접이 별롭니까?”
“아니. 그건 아닌데, 이거 뭐 여기 눌러앉으면 여자 강림자를 소개시켜 준다는 둥 뭐 그러는데 영 시답잖아서.”
“…….”
유화의 대답에 창진이 스미스 국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스미 스 국장의 시선은 옆의 버튼 보좌관을 향해 있었다.
“큼.”
버튼 보좌관은 그냥 고개를 돌리고 헛기침을 할 뿐이었다.
“강림자도 여자 좋아합니까?”
그때 서 경위가 묻자, 유화가 어깨를 으쓱였다.
“싫어하진 않지. 그런데 못생겼어.”
“인종이 달라서 그리 느낄 수도…….”
“아니, 니가 세이렌이나 엘프를 못 봐서 그래. 비교하면 오징어야. 심지어 강림자 말고 반쯤 벗은 여자들도 술자리에 끼어들었는데 난 가슴에 흉갑 찬 줄 알았어. 그거 방패 대용인가? 별로 튼튼해 보이지 않는 걸 살 안에 넣어 놨던데?”
“…….”
유화의 허물없는 돌직구에 창진은 쓴웃음을 머금으며 스미스 국장에게 농담을 던졌다.
“눈이 매우 높으신 분들인가 봅니다. 그래도 신경 쓰셨을 건데.”
“이해해 주게. 나라면 그렇게 안 하니까.”
“압니다. 개인적으로는 이해하지만 아마, 아래쪽에서 상황파악을 해서 보고를 올리지 않겠습니까?”
“끄응.”
그때 버튼 보좌관이 끼어들었다.
“호의였을 뿐이네. 오해가 좀 있을 수도 있겠지만.”
“씨부랄 오해 좋아하네.”
“응?”
그때 서 경위가 중얼거리는 말에 버튼 보좌관이 그를 보며 갸웃거렸다.
“그냥 의미 없는 혼잣말입니다. 영어를 못하는 양반이니까요.”
창진의 변명에 서 경위가 싱긋 웃으며 손을 들어 올렸다.
“하우두유두! 아임 파인 땡큐. 앤드 유?”
“……아임 파인.”
서 경위의 알아듣기 어려운 콩글리쉬에 버튼 보좌관이 어색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다만 스미스 국장만이 서 경위를 살필 뿐이었다.
“저분은 직위가…….”
스미스 국장의 질문에 창진이 머리를 긁었다.
“음. 경찰? 일단 제 보호를 위해 함께 오셨습니다. 소환자라서요.”
“그렇습니까?”
창진의 설명에 스미스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우리나라쪽은 조짐이 없나?”
“예. 다행히. 아마 말씀하신 이론대로인 듯합니다. 다른 국가들의 상황이랑 비교해 보니 확실히 빈도의 차이가 있습니다.”
“결국 지금까지 하던 대로 하면 야금야금 갉아 먹힌다는 건데. 이거 참. 우리나라만 막는다고 되는 게 아니구먼.”
“좀 난감하긴 하지요.”
지금 상황은 말 그대로 난감했다.
“일단 이곳의 상황에 대해 따로 설명해 주겠네. 아참, 그리고 기동대 관련해서 논의 할 것도 있고”
“기동대 말입니까?”
창진의 질문에 구 박사가 슬쩍 스미스 국장을 보며 설명을 접었다.
“이건 극비사항이라 좀 그렇구먼.”
“알겠습니다.”
창진은 구 박사를 보며 웃음을 흘렸다.
극비면 굳이 여기서 운을 뗄 이유가 없다.
스미스 국장이나 버튼 보좌관 들으라고 말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 * *
“니보라. 일어나야디? 자는 거이네?”
“……우웁!”
“아직도 게워낼 거이 있는 거간?”
을지부루의 질문에 멧 할러데이 중장은 엎어진 채 얼굴에 퍼져 있는 자신의 토사물을 보며 생각했다.
‘이 덩어리는 어제 먹은 것인가…….’
하지만 토사물에 얼굴을 박고 있음에도 멧은 몸을 일으킬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방에 비슷한 광경이었다.
그나마 고빈만이 아직 팔팔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 외에 초창기부터 함께 훈련을 해 온 몇 명만이 겨우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키기 위해 노력할 뿐이었다.
“아저씨들 그 렙에 잠이 와요?”
그런 소환자들을 보며 빈이 염장을 질렀다.
“이, 이게 게임이냐!”
“대충 메커니즘은 나왔잖아요. 많이 때려잡으면 강해진다. 굴리면 강해진다. 막말로 이중에 나만큼 구른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일부 소환자의 항변에 빈이 팩트 폭력으로 대응했다. 그러자 다들 죽을상을 지을 뿐이었다.
틀린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쯧, 어쩔 수 없디. 오늘 훈련은 여기까지만 하디.”
부루의 말에 시체처럼 누워 있던 이들의 눈에 빛이 감돌았다.
“빨리 씻으러 가라우! 열 셀 때까지 안 가면 계속 훈련을 하는 것으로 간주하갔…….”
부루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오물에 코 박고 있던 멧부터 벌떡 일어나 샤워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다른 소환자들도 벌떡 벌떡 일어서 비틀거리면서도 질주해 나가는 모습이 마치 시체가 좀비로 변해 내달리는 호러물의 명장면과도 같았다.
“아니 오늘은 웬일입니까? 다른 때는 도끼로 팔다리 있는 곳을 내리쳐서 벌떡 일어나게 했던 분이.”
“훈련은 이제 그만해야디.”
“응?”
부루의 평온한 말에 빈이 불길함을 느꼈다.
“여기 주변에 침식지가 어디라고 했디?”
“……아.”
빈은 부루의 말에 탄식을 흘리며 고개를 돌렸다.
신이 나서 달려가는 소환자들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틀린 건 아니긴 하네요. 훈련은 종료. 실전은 시작.”
“클클클!”
부루가 기분 좋은 웃음을 흘렸다. 그 웃음이 빈은 악마같이 느껴졌다.
“와, 이거 타고 달리면 꽤 재미있겠는데?”
그때 얼마 전에 공수되어 온 마수들에게 먹이를 주던 기동대원 하나가 중얼거리는 걸 부루가 들었다.
“응? 뭔 소리간?”
“아, 장군님. 캬! 예전에 영화 중에 반지의 제왕이란 게 있거든요. 아!”
기동대원은 뭐가 좋은지 실실 웃으며 휴대전화기를 보여 주었다.
영화의 한 장면이 그대로 보여지고 있었다. 유명한 오크라이더가 나오는 장면이었다.
“짚차가 좋긴 한데 엎어지면 끝 아닙니까. 차라리 이런 거 하나…….”
그때 그의 옆에 있던 기동대원이 불안한 표정으로 그의 옆구리를 찍었다.
“야, 그만.”
“응? 왜? 그냥 그렇다는 건데.”
“이거이 오크라는 거이간?”
“예. 오크라는 건데…….”
“오크는 이래 안 생겼어야. 근육도 더 크고 돼지 비슷한 대가리디.”
“그거 일본식 판타지 아닙니까?”
기동대원의 말에 부루가 대답했다.
“기거이 모르고 나 있던 곳에는 멧돼지 닮은 놈들을 오크라 불렀디.”
“헐? 진짭니까? 개들도 이런 거 탑니까?”
“안 타디.”
“에이.”
부루의 답변에 실망하는 기동대원을 보며 동료들은 왠지 모를 안도를 했다.
그때였다.
부루가 늑대형 마수를 보며 중얼거렸다.
“대가리가 둘이니 둘은 탈 수 있갔구만.”
“네?”
“…….”
부루의 호기심 어린 중얼거림에 기동대원들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