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17화 (117/305)

제117화 마계의 군주들

* * *

사자의 대공 게르하이오 펜 기오르그의 입술이 호선을 그렸다.

-꽤나 빠르군. 쫓겨 왔다고 하지 않았나?

기오르그의 질문에 고위 마족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그렇긴 하오나 이미 탑을 세울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할 수 있었다 하옵니다.

그의 말에 기오르그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하긴. 균열을 제일 먼저 포착한 게 도마뱀 놈이었지?

-그, 그러하옵니다.

마룡의 군주 칼베니어 드리브 칸 오르페우스. 처음부터 마계의 종족이 아닌 존재였다.

수식어대로 타 차원계의 용이라는 존재였다. 그러나 여타 용들이 존경 혹은 경외의 존재였던 것과는 달리 오르페우스는 공포의 상징이었다.

결국 동족을 살해하고 그 심장을 취하는 방법으로 강해지다가 결국 마계로까지 쫓겨 오게 된 존재였다.

이미 그 자체로도 상위 마족 이상의 힘을 가진 존재였다.

그런 그는 마계로 쫓겨 온 뒤로도 그는 차원계를 넘나들며 자신을 쫓아낸 동족들을 하나둘씩 사냥하여 복수를 해 나갔다.

결국 동족을 멸족시키고 갓 태어난 새끼들은 타락시키며 그 복수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그건 복수가 아니었다.

그저 강해지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강해진 그는 당시 자신을 받아 준 마계의 대공을 살해하고 그 자리를 찬탈했던 것이다.

그게 지금의 마룡의 군주라 불리는 오르페우스였다.

찬탈을 당한 마계대공의 무리는 보통 그 세력이 줄어들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오르페우스는 오히려 그 세력이 늘어났다.

마계 대공의 자리를 노리는 과정에 큰 유혈도 없었다.

그저 마계대공의 목숨만을 취했으니까.

그리고 타락시킨 용족들은 마룡으로 변화하며 더욱 강해진 세력으로 발돋움했던 것이다.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별을 찬탈하는 데 선두를 섰던 것이다.

그 덕에 마계의 대공중에서도 3강이라는 압도적 위치에 올라서게 된 것이다.

이번에도 운이 좋아서인지 차원계 침공의 선두가 되어 어느 마계대공보다도 의욕적이었고 말이다.

그 어떤 마계대공보다도 권좌에 대한 탐욕이 강한 존재였다.

-마수의 군주는 좀 아쉽군. 다른 두 곳의 대공들은?

-이번 균열에서 꽤나 큰 타격을 입은 듯하옵니다.

-그렇겠지.

기오르그의 입가가 비죽이 올라갔다. 마치 그걸 원했다는 듯 말이다.

-어찌하시려는지요. 다른 여타 대공들과 달리 우리 지역의 침식지들은 아직 제대로 확장도 못 한 상황이옵니다. 마룡의 군주는 탑을 통해 직접 강림을 준비할 것입니다. 이러다가는…….

고위 마족이 뒷말을 흐렸다.

3강이라 불리는 마족들 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리는 사자의 대공이지만, 그 차이는 미미했다.

그렇기에 약체라 불리는 네 명의 마계 대공들이 세력을 부지했었던 것이다.

만에 하나라도 그들을 취하는 순간 다른 두 대공이 손을 잡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아슬아슬한 균형.

지금의 상태가 그랬다.

그런데 지금 그 대공 중 하나가 차원계에 속한 상황이었다.

-마왕이 탄생할 수 있다는 건가?

-물론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만, 점점 세력의 균형이 몰리게 되면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옵니다.

-그러면 안 되지.

기오르그가 입가를 끌어올리며 중얼거리자 고위 마족이 비로소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회유와 교언의 마족 마켈그로 이언은 지금 어디에 있지?

-마수의 대지에 있나이다.

-클, 비어 버린 숫자를 채워 보려 버둥거리는군.

마수의 위가 지상계로 넘어간 상황. 하지만 그 때문에 마수의 대지에 펼쳐지는 영향력이 크게 떨어진 상황이었다.

물론 마계 대공쯤 되면 강림 후에 수하들을 불러내는 소환의 문은 자연적으로 활용할 수 있지만, 지금의 신생 마계대공은 아직 그 수준까지는 오르지 못한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외부의 존재가 마계대공의 위에 오른 것은 마룡의 군주인 오르페우스가 처음이었다.

그런데 인간이라 불리는 개체가 마계대공이 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그것도 차원의 틈바구니에서 튀어나온 영혼이 딸린 유체가 말이다.

그 덕에 일부 마수의 대지에 남아있는 고위 마족들은 영향력에서 벗어나 각자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마켈그로이언은 그들을 영입하거나 또는 무력으로 꺾어서 세력을 넓히고 있는 것이었다.

-불러라. 이대로 있으면 안 되지 않느냐?

평소 마켈그로이언을 탐탁지 않게 여기고 있던 고위마족들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목소리 따위는 나오지 않았다.

지금 마켈그로이언의 세력은 무시 못 할 정도로 성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를 소환하겠나이다.

-그래. 이대로 있으면 안 되지. 이대로는…….

말과는 다르게 여전히 느긋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기오르그 대공이었다.

* * *

마룡의 일족 카르탈마니어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앞에는 미청년의 모습을 한 마룡의 군주 칼베니어 드리브 칸 오르페우스가 서 있었다.

“확실히 사자의 대공이 내세운 고위 전투마족들이 당할 만하군. 그렇지만, 이번 일은 네놈의 욕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느냐?”

인간의 언어로 뱉어지는 질책에 카르탈마니어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저, 절대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그저 주군께서 마왕위에 오르시는 모습을 보고자…….

“뭐, 그 정도 변명거리조차 없으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겠지.”

-용족의 심장을 걸고 진실임을…….

“거짓이라고 탓하는 게 아니다. 시도를 했으면 성공을 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 뿐.”

-이번에는 반드시 놈을 취하겠나이다.

“재미있는 존재로다.”

오르페우스가 피식 웃음을 머금었다.

그때 그가 손을 휘저었다.

그러자 허공에 커다란 영상이 보여졌다.

“흐음. 시간이 꽤 걸리는구나.”

오르페우스의 중얼거림에 카르탈마니어가 대답했다.

-최소한 침식지 하나를 더 합쳤어야 했었는데…… 죄송하옵니다.

“뭐, 상관없지. 그러나 저러나 참 재미있지 않은가?”

카르탈마니어가 오르페우스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무엇이 말이옵니까?

“가장 강력한 기운이 모인 곳이 이곳이 아니라는 게 말이야.”

-아마도 그 별의 파편이 영향을 끼친 것이 아닐까 생각되옵니다.

“그야 그렇겠지. 환영의 군주가 가장 넓은 침식지를 장악하고도 아직 탑조차 세우지 못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을 못 했으니까.”

지금의 아프리카와 유럽쪽을 장악하고 있는 환영의 군주인 셀로나 반 크리로이아의 경우 가장 많은 지역을 장악하고도 탑은커녕 아직도 침식지를 넓히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이들이 침식지를 넓히는 이유는 별의 기운을 뽑아내 자신들의 힘을 강화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가장 많은 지역을 장악하고도 허덕이는 꼴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독립마족들에게까지 손을 뻗히고 있다지?”

-별 수 없었을 것이옵니다. 이대로라면 격차가 크게 벌어질 것을 직감했을 겁니다.

독립마족.

군주의 세력권 밖에 있는 존재들을 의미했다.

힘이 없어서 겨우 버텨내는 존재들이다.

물론 그들은 힘을 키워 군주의 휘하에 입성하기 위한 나름의 야망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그들이 일부 침식지들을 열고 해당 차원의 각 지역에 널려 있었고 말이다.

환영의 군주인 크리로이아는 그런 독립마족들을 휘하에 끌어들이려 애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쉽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그래. 눈치들은 봐야 하니까.”

그들이 침식지를 넓히는 이유는 대공들과는 달랐다.

적당한 시기가 오면 일부만을 취하고 좋은 조건에 침식지를 넘기기 위한 것이 전부였다.

지금 침묵하는 약한 세력권의 마계대공들이 가끔 그런 침식지들을 거두어 힘을 조금이나마 키운다.

또 그런 독립마족들 중에서 쓸 만한 마족들을 눈여겨보다가 영입을 하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기오르그는 아직도 시체들이랑 노닥거리고 있는가?”

오르페우스의 궁금증에 한쪽에 있던 또 다른 마룡족이 대답을 했다.

-기오르그는 마켈그로이언을 소환했나이다.

“흐음. 그거 좀 아쉽군. 미리미리 포섭했어야 했거늘.”

오르페우스는 마켈그로이언을 꽤나 아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수완을 높게 평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탑을 세우는 모습을 보고 급해졌나 보군.”

-그런 듯하옵니다. 허나 아직 우리 침식지 주변에 새로운 마수의 군주가 남아 있기에 그 틈을 타려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드옵니다.

“푸하하핫!”

그 말에 오르페우스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거 참 걸작이군! 사자의 대공이 말이야! 눈치를 본다고?”

재미있다는 듯 떠드는 그에게 마룡족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동원했던 다른 마계군주들까지도 실패를 했으니 어쩔 수 없었던 것 아닐까 생각하옵니다.

“뭐, 그럴 수도. 가능하면 나도 한번 내려가 보고 싶군.”

오르페우스는 허공에 비춰지고 있는 고층건물들을 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유희하기에 좋은 곳 아닌가?”

-지금까지 본 차원계 중에서는 가장 특이한 곳이기도 하옵니다.

“그렇지. 신이 떠나간 별임에도 별의 의지가 저토록 강한 것도 특이하지.”

-그뿐 아니라 별의 파편들도 독특하옵니다.

“그렇지 저 좁은 곳에서 서로를 향해 얼마나 피를 튀기며 투쟁하였으면 저렇게 많은 별의 파편들이 튀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거야. 길잡이 역할을 하는 정도에 불과한 별의 파편이 저렇게 많이 쏟아질 줄이야.”

오르페우스의 말에 마룡족들은 물론이고 마계에서 오랜 세월을 살아오던 고위 마족들마저도 그의 말에 동조했다.

-그러하옵니다.

-보통은 신의 사자쯤으로 취급되는 존재들이 저곳에선 마치 소환물 취급당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고 말입니다.

“그야, 신의 의지가 떠나간 지 오래인 터라 불완전한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이지.”

-최대한 빠르게 탑을 세워 강림하시도록 하겠나이다.

“그래. 이 칙칙한 곳은 이제 좀 지겨우려 하니까.”

오르페우스의 말에 다들 고개를 조아렸다.

* * *

헬기에서 내린 김창진과 서준모 경위는 멍하니 한쪽을 바라보았다.

“와…….”

서 경위가 입을 떡 벌리고 감탄사를 흘리자 창진이 한숨을 내쉬며 감상평을 남겼다.

“피라미드는 어디 명함도 못 내밀겠네요.”

“저거 어디까지 올라가는 거지?”

“그건 모르겠지만, 저렇게 올라갈 때까지도 방치하는 것을 보면 역시나 일반적인 병기는 통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창진의 답변에서 경위의 얼굴이 구겨졌다.

“젠장.”

“저곳인가!”

그때 서 경위의 복장을 지르는 음성이 뒤에서 들려왔다.

“육모 방맹이 내려! 여기 아냐! 젠장! 그 꺽정인가 뭐시깽인가 튀어나온 거 보고 웃지 말아야 했어!”

그의 강림자를 보며 서 경위는 울상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 강림자는 마패를 꺼내 열심히 입김을 불어 가며 닦고 있었다.

“젠장, 그거 어사패는 원래 어사가 들고 다니는 거 아냐?”

“참으십쇼. 저러고 싶어서 저러는 거겠습니까?”

“하아.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내 인생이 왜 이리 꼬였냐?”

“현생일지도요.”

“닥쳐!”

서 경위의 중얼거림에 창진이 애써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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