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6화 소설보다 더한 현실
“이거? 가능성 있는 이야기야?”
순간 누군가가 노트북을 뒤적이며 외쳤다.
“아니 일종의 교란 장치기는 한데, 이게 사실 사람이나 강림자나 외형적인 차이는 없잖습니까.”
“그렇지. 그래서 이걸 눈속임이라고 한 것도 있고.”
잠깐 연구를 해 보니 이것을 파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일종의 생체신호를 교란하도록 만든 장치에 불과했기에 전파방해 관련 장비만 있다면 깨기에는 쉬웠다.
문제는 그렇다 해도 이것 자체가 발상이 획기적인 게 아니라는 건 아니었다.
거기에 그게 위험한 이유는 방법을 안다고 해서 일반인이 대응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문젠 마물끼리도 적아를 구분한다는 건데…….”
마물이 적아를 구분한다는 사실은 얼마 전에 알려진 것이다.
바로 을지부루 덕에 알게 된 것이다.
그가 얼결에 마수의 군주가 되면서 휘하의 마수들이 일제히 마물들을 상대로 이빨을 드러냈던 것이다.
당연히 마물들 역시 이빨을 드러내며 공격해 온 마수들에 대항을 했고 말이다.
“그런데 그건 일종의 명령이 떨어져야 대응하던 것 같은데.”
“그럼 그 상대를 특정하지 못하면 통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 정도는 가능할 거 같은데?”
연구원들은 자신들만의 세상으로 빠져들었다.
그때 구 박사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건 강림자에게 신호를 보내는 식의 매커니즘이라고 아는데. 설마 적들에게 팔찌를 채워서 명령하자는 건 아니겠지?”
비꼬는 어투는 아니었다.
연구라 해도 분야가 다르기에 비유를 하듯 던진 질문이었던 것이다.
“직접 차야지요. 교란의 대상은 본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능합니다.”
연구원의 확신에 찬 말에 구 박사가 입을 열었다.
“지금 바로 가능한가?”
“미국 쪽에 지원을 요청하면 가능할 거 같습니다. 뭐 아깝긴 해도…… 어차피 그쪽도 조금은 알고 있는 내용이라서요.”
“로열티 받으면 되지 뭐. 그리고 지금 우리가 누굴 지켜 주는 건데. 당연히 도와야지.”
구 박사의 말에 연구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딜은 내가 치겠네. 정부 관계자에게도 말은 해야겠지?”
“그건 제가 맡겠습니다.”
구 박사가 확인하듯 묻자 강 중령이 나섰다.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한다고, 지금 상황에서는 정부와 보조를 맞춰야 하는 게 맞았다.
“안 그래도 이쪽으로 김창진 요 원이 급파를 해 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뭔가 미국 측에 요구할 것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연구원들을 대동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41구역!”
“에일리언 연구소!”
“오오! 거긴가? 외계인 공밀레 한다는 곳이?”
순간 눈치를 챈 연구원들이 앞다투며 입을 열었다.
“그건 창진 씨가 오면 알겠지요.”
들뜬 연구원들을 보며 강 중령이 웃으며 답했다.
금지나 다름없는 곳이다.
괴담에서 주로 나왔던 곳이기도 했고, 그 존재사실조차도 베일에 싸였던 곳이다.
당연히 연구원들에게는 전설의 엘도라도 같은 곳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언제 온다던가?”
눈을 반짝이는 구 박사를 보며 강 중령이 멋쩍은 웃음을 머금었다.
* * *
“터가 안 좋아.”
서준모 경위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물었다.
“뉘십니까.”
서 경위의 질문에 패랭이를 쓴 사내가 육모방망이를 들어올리며 외쳤다.
“아암행어사아아! 출두요오오!”
“뭐, 패랭이 보고 그거부터 떠오르긴 했습니다만…… 야 후배야. 이거 비밀로 하면 안 되냐?”
서 경위가 자다 깨서 발견한 강림자를 보며 방 안에 들어와 놀란 눈을 하던 최후배 경위에게 던졌던 질문이었다.
소환자들이 어떻게 굴려지는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봐 왔던 그였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눈앞의 강 림자가 전혀 반갑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찰지게 들어맞았다.
“와 비행기다.”
“전용기죠.”
비행기, 그것도 전용기를 보며 터트린 감탄사치고는 영혼 없는 울림에 가까웠다.
“이 전용기 탑승의 영광을 나에게 선사했어야만 했냐? 후배도 있는데?”
서준모 경위의 질문에 김창진은 혀를 차며 답했다.
“눈치 없이 남의 연애에 파토내고 싶습니까?”
“아니지. 난 최후배 경감의 결혼을 적극 추진하는 사람이야.”
“진짭니까?”
“당연하지. 결혼…… 나만 당하고 살 수 없으니까.”
“그러고 보니 형수님께 인사도 못 드렸네. 촉이라도…….”
“하지 마, 이 새꺄!”
서 경위의 속은 그렇게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었다.
* * *
넓어진 침식지 주변으로 만들어지는 방어선을 보며 멧 할러데이 중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넓어진 방어선도 문제지만, 제대로 정비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초동 대응을 어떻게 할 수 있을지가 걱정이군.”
“그러게 말입니다.”
옆에서 맞장구를 치는 이는 바로 한국에서 파견 온 기동대원이었다.
일개 대원이 미군 중장과 함께 있는 그림도 신기했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 더 이상했다.
하지만, 엄연히 한국의 기동대원들은 귀중한 자원들이었다.
특히 옆에 있는 기동대원은 미끼팀으로 활동을 하면서 이번에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서 발생한 침식 균열까지 모든 균열사태에 참전을 한 베테랑이기도 했다.
그만큼 강림자와의 공조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고, 또 그들이 없다 해도 어떻게 시간을 끌어야 하는지 도가 튼 이였다.
“그런데 저 낚싯줄이 도움이 되나?”
“뭐 발목만 잡는 정도지만, 효과는 좋습니다. 보통 놈들이 달려올 때는 소형개체를 앞세웁니다.”
“그렇긴 하지.”
“물론 작고 빠르니까 먼저 달려오는 거지만요.”
“작은 개체라도 걸리면 다행이란 거군.”
“뭐, 그런 것도 있지만, 작은 놈을 엎어트리면 중형종에게는 꽤나 성가신 걸림돌이 됩니다.”
“오호?”
“뭐, 대형종이야 그냥 다 짓밟으며 오긴 하지만.”
기동대원의 말에 멧 중장이 웃으며 답했다.
“그게 어때서 그런가. 우리 손 안 대고 적들의 손으로 개체를 줄이는 훌륭한 작전이건만.”
“그렇게 봐 주시면 감사하지요.”
이들이 말하는 낚싯줄이 진짜 낚싯줄은 아니었다. 낚싯줄처럼 투명하고 질긴 소재의 실이었다. 다만 한국에서 이 작전을 쓸 때 낚싯줄을 활용했기에 낚싯줄이라고 하는 것뿐이다.
정규 작전은 아니었고, 기동대원들의 임기응변에 불과했지만, 그 효과는 이미 충분히 증명이 되었다.
그 외에도 실전을 통해 만들어진 모든 것이 총동원 되는 중이었다.
“어우. 그런데 이렇게 넓은 침식지는 점입니다.”
“뭐, 할 말이 없군.”
“탓하려는 건 아니었고요. 우리나라도 사실 을지장군 님 아니었으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는 일이잖습니까.”
을지부루의 이야기에 멧 중장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게 가장 부럽긴 하네. 하지만, 난 자네들의 역할을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본다네.”
“압니다. 그러니 제가 미군 장성 옆에서 떠들 수 있는 거잖습니까. 흐흐흐.”
“하하하!”
기동대원의 너스레에 멧 중장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나저나 현실은 현실이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응?”
“뭐, 헌터물이니 아포칼립스물이니 대침식 이전에 유행하던 웹소설이 생각나서 말입니다.”
“좀비 같은 것 말인가?”
“뭐 그게 오래되고 대표적이긴 한데. 우리나라에선 그보다 더한 막장으로 지구가 골백번 멸망할 정도로 많은 소설들이 나왔지요.”
“오호? 하긴. 그러고 보니 한국 웹소설 원작으로 헐리웃에서 영화를 찍은 게 몇 있었지. 흥행도 했고.”
“예. 맞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대침식 때 우스갯소리가 장르 웹소설을 본 자와 안 본 자로 나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린가?”
멧 중장이 의아한 표정으로 질문을 하자 기동대원이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뭐 웹소설을 보던 사람들은 그 내용에 나왔던 패턴을 보고 알아서 대응을 준비했다는 거죠. 안 본사람들이야 뭐 뭘 하는지 몰라서 허둥대고 말입니다.”
“오호?”
“그래서 나온 말입니다.”
기동대원의 설명이 꽤나 흥미로웠는지 멧 중장이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경청해 나갔다.
“인간의 상상력이 이럴 때는 꽤나 도움이 되는군.”
“예.”
“그런데 그 소설들 중에서 가장 헬 난이도는 뭐였나?”
“에이. 뭐 고질라 같은 게 세상에 나와서 깽판치고 그러는 거죠. 아니면 탑이 나온다던지.”
“탑?”
“예. 갑자기 탑이 확 솟구치는 거죠. 그런데 이게 인간이 만든 병기는 아예 안 먹힌다는 설정이거든요.”
지금과도 크게 다를 거 없긴 했다. 그래도 궁금은 했는지 재차 질문을 했다.
“그럼 어떻게 하는가?”
“뭐 직접 올라가서 깨는 거죠.”
“오! 게임 같군.”
멧 중장의 말에 기동대원이 피시시 웃으며 말했다.
“뭐 비슷합니다. 여하튼 그건 다른 의미로 위험한 게 일종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다는 겁니다.”
“전진기지라. 끔찍하군.”
“뭐, 소설이니까요.”
기동대원의 말에 멧 중장이 안도의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뭐, 이 정도만 되도 다행이라는 건가?”
“그렇죠.”
“그래. 탑도 안 솟구쳤는데, 좋게 생각해야지.”
드드드드드!
“…….”
“왓?”
쿠드드드드드!
땅이 미친 듯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발밑의 진동을 느끼며 기동대원이 불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부탁 하나 드릴게요.”
“뭔가.”
“이 동네가 원래 지진이 엄청나게 많이 일어나는 곳이라고 말해 주시면 참 좋을 것 같습니다.”
기동대원의 희망 어린 질문에 멧 중장이 어두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지진이 많은 곳에는 지하시설을 만들 수가 없다네.”
이 근방에 지하시설이 있다는 건 이제 비밀 아닌 비밀이었다.
멧 중장의 말에 기동대원이 입을 꾹 다물었다. 멧 중장은 진동을 느끼며 애써 웃음을 머금었다.
“자네 말대로 탑이 아니길 빌어야겠군.”
“아…….”
멧 중장의 말에 기동대원이 급격히 어두워지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문제라도…….”
“영화 드라마 보면 이런 걸 사망 플래그라고 하거든요.”
“나 같이 말한 사람이 죽나?”
기동대원의 말에 멧 중장이 쓴 웃음을 지으며 묻자 기동대원이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뇨. 대신 말하는 일이 벌어지긴 하더라고요.”
쿠쿠쿠쿠!
침식지 중앙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저것처럼.”
“쉣 더…….”
기동대원의 시선을 따라 눈길을 던졌던 멧 중장이 나직하게 욕설을 뱉었다.
그리고는 마지막 희망을 담아 말했다.
“탑만 아니길 빌어야겠군.”
“그 말도 하지 마시지.”
“…….”
멧 중장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옆의 기동대원을 계속 힐끔거리며 쳐다보았다. .
그가 한마디씩 던지는 게 더 얄미웠던 것이다.
* * *
“뭐가 솟구쳐?”
김창진이 얼굴을 구기며 반문했다. 그걸 본 서준모 경위가 입을 열었다.
“응? 비행 중에 전화해도 되는 거냐? 아니 전화가 되네?”
“알겠습니다.”
“무슨 일인데? 용암이라도 솟구쳤다고 하디?”
“차라리 그건 낫지.”
“그럼 뭐가 솟구쳐. 석유 같은 건 아닐 거고.”
“탑과 비슷한 게 솟구쳤다더라고.”
창진의 말에 서 경위가 혀를 차며 입을 열었다.
“탑? 이게 무슨 닳아빠진 헌터물이냐?”
“현실이 더 소설 같은 법이라더니…….”
“하긴. 내가 지금 가는 꼴도 꼭 작가가 억지로 캐스팅해서 끌고 가는 거 같지 않냐?”
“후우.”
끝까지 한마디 던지는 서 경위를 뒤로한 채 창진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