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4화 정보원 멧 할러데이
* * *
주지환 국정원장이 김창진을 맞이하며 차를 그의 앞으로 밀어 주었다.
“무슨 일이야? 원정 갔다고 시간이 좀 비나?”
“뭐, 그것도 있고요.”
차를 받아들며 창진이 말을 이었다.
“거 십 년 전에 말입니다.”
“응? 그거 왜? 뭐 좀 연관된 거 있어?”
“아니 그건 이미 보고 드린 게 다고요.”
“그런데?”
주 국장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창진이 말을 이었다.
“미국 측에서 뭐 걷어 간 게 뭐뭐 있습니까?”
창진의 질문에 주 국장이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뭐 자료는 있을 거 같긴 한데. 그건 좀 찾아봐야 할 거야. 대침식 때도 당시 자료는 다행히 망실되지 않았으니까.”
“그래요?”
“그런데 그건 왜? 뭐…… 혹시 그거 때문이냐?”
“예?”
주 국장이 차를 입가에 대면서 슬쩍 바라보았다.
“왜 이래. 선수끼리. 대침식. 그거 41구역 음모론 떠도는 거 모르는 사람 없는 것도 아니고.”
“일단 좀 파 보지요. 우리가 연구원은 아니지만, 이거 좀 희한하지 않아요?”
“알아. 이미 사람 보내 놨어.”
“예?”
주 국장이 히죽 웃으며 남은 차를 후루룩 마시고는 대답했다.
“왜 이래?”
“끄응.”
“선수끼리. 크크크!”
“푸하핫!”
주 국장이 킬킬거리며 웃는 모습에 창진은 허탈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 * *
“코큰 아새끼들 희안하디 않네?”
을지부루가 방으로 들어서며 하는 말에 다들 시선을 모았다.
“뭐가요?”
고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자, 부루가 대답했다.
“이 아새끼들이 나만 보면 자꾸 뿌잉뿌잉하는 거이 영 기분이…….”
“뿌잉?”
동시에 다들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얼굴이 왜 그런가.”
멧 중장의 질문에 에덤 소장은 붉어진 얼굴로 외쳤다.
“뿌잉뿌잉이라면서 말입니까!”
“응?”
“하는 순간 쳐맞았습니다!”
에덤 소장의 말에 멧 중장이 놀랍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정말?”
“이거 안 보입니까! 순간 쿵푸팬더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난 자네가 살아 있다는 게 더 신기하네.”
“중장님!”
에덤 소장이 울분에 찬 외침을 터트리자 멧 중장이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뭐, 어쨌든. 그, 뿌잉이란 말은 예를 든거지. 애교라도 떨어서 예쁨 받아야 한다는 말로.”
“끄응.”
“그래도, 난 존경하네. 한국에 이런 말이 있지. 살신성인. 난 자네에게서 그 정신이 느껴진다네.”
“그건 또 뭡니까?”
“좋은 거네.”
“후우.”
멧 중장의 말에 에덤 소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똑똑똑.
그때 멧 중장의 문에서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
멧 중장의 질문에 문밖에서 답 변이 들려왔다.
-정보부에서 나왔습니다.
문밖에서 들려온 소리에 멧 중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불렀다.
문을 열고 모습을 드러낸 이는 바로 미정보부의 수장 스미스 국장이었다.
“스미스 국장?”
“오랜만입니다.”
“흐음. 오랜만이오. 무슨 일이기에 여기 직접 오셨는지.”
스미스 국장을 대하는 멧 중장의 표정은 그리 환대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에덤 소장도 비슷한 표정이었다.
“병원이 아닌 이곳부터 찾은 겁니까?”
“내 뒷조사도 하는 것이오?”
스미스 국장의 말에 에덤 소장이 불쾌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스미스 국장은 어깨를 슬쩍 으쓱이며 대답했다.
“정확히는 제네럴 을지를 지켜보는 겁니다.”
그의 말에 에덤 소장이 피식 웃었다.
그럼 그가 지금 눈탱이가 왜 이리 되었는지 아는 것이 설명이 된다.
다만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그럼 수하들에게 눈치껏 움직이라 하시오.”
“무슨 말인지?”
“그들이 그러더이다. 자꾸 얼쩡이는 것들 같은 편이냐고. 아니면 꼴통에 화살 한 방씩 박아 놓겠다고 말이오.”
에덤 소장의 말에 스미스 국장이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요원들이 모자라면 차라리 경질이라도 시키겠지만, 이건 상대의 능력이 너무 사기적인지라 할 말이 없군요.”
스미스 국장은 걸렸다는 사실에 창피해 하기는커녕 어쩔 수 없는 상대라는 표현을 했다.
그의 답변에 곁에서 듣고 있던 멧 중장이 헛웃음을 흘리며 끼어들었다.
“뭐 정보부의 일이 그거니 그렇다 치고 난 왜 찾아왔소.”
멧 중장의 질문에 스미스 국장이 용건을 내밀었다.
“정보공유 좀 부탁드립니다.”
“그건 국방부를 통해 충분히 가능할 건데?”
멧 중장의 답변에 스미스 국장이 옅은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보고서를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그저 일상적인 소소한 내용 정도면 됩니다.”
스미스 국장의 말에 멧 중장이 피식하니 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직무유기 아니오? 그런 건 그쪽 업무로 생각하는데.”
“그렇긴 합니다만, 그에 대해서 불필요한 자극은 피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스미스 국장의 말에 한쪽에 있던 에덤 소장이 작게 휘파람을 내불었다.
마치 ‘니들이 그런 생각도 해?’라는 느낌이었다.
“두 분은 지금의 제네럴 을지에 관해서만 생각하겠지만, 우리 입장에선 십 년 전의 그의 일행들이 벌인 일들을 염두할 수밖에 없습니다.”
“흐음.”
십 년 전이라 하자 둘은 바로 알아들었다.
이젠 비밀이라 할 것도 아니기 때문이었다.
“강림자가 아니면서도 인간의 몸으로 그들이 한 결과를 생각해 보시면 우리 입장을 이해하실 겁니다.”
“하긴.”
멧 중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경악할 정도의 결과를 만들어 낸 그들이었다.
특수부대는 물론이고 인간병기들까지 상처 하나 제대로 주지 못했다.
심지어 상대들의 무기는 총기류가 아닌, 칼과 활 같은 종류였음에도 말이다.
물론 마법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지만 큰 의미는 없었다.
“이해는 하지만,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는 게 맞다고 판단하는데. 국장께선 내 생각이 틀리다고 생각하시는가?”
멧 중장의 말에 스미스 국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닙니다. 맞습니다. 그런데 상황이 힘드니 저 역시 여기까지 온 겁니다.”
“우린 군인일세. 정보원이 아니라는 거지. 번지수를 잘못 찾아왔군.”
스미스 국장은 단호한 멧 중장의 담변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백악관의 명령입니다.”
그렇게 말을 하며 스미스 국장이 품에서 꺼낸 스마트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멧 중장에게 내밀었다.
멧 중장은 그의 행동을 보며 굳은 얼굴로 스마트폰을 받아들었다.
-할러데이 중장. 나 레너드일세.
“예.”
-무리한 짓은 하지 않네. 오히려 무리한 짓을 하려는 인사들이 있을 수 있어 이 방법을 선택한 것이지.
“무리한 짓……. 정보국에서 이런 제의를 받을 줄은 몰랐습니다.”
-나도 스미스 국장도 이런 제의를 할 줄 예상했겠는가.
대통령의 자조 섞인 말에 멧 중장은 쓴웃음을 입가에 머금었다.
통화가 끝나고 멧 중장이 으르렁거리듯 송곳니를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어떤 머저리가 미친 짓을 상상하는 거지? 차라리 그 멍청이의 머리통에 총알을 박아 넣어 달라고 부탁하면 내 흔쾌히 들어줄 생각이 있네만.”
“그런 일이라면 인공위성보다 못한, 제 부하들이라 해도 충분히 할 수는 있습니다.”
조금 전 에덤 소장의 지적 때문이었는지 감정이 남은 답변을 내놓았다.
그때 멧 중장이 대답했다.
“알겠네.”
“중장님?”
“백악관 주인이 명령하는데 들어야지. 나 같은 퇴물이 무슨 힘이 있나?”
멧 중장의 말에 에덤 소장이 놀란 눈을 했다. 반면에 스미스 국장은 천천히 일어서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자네를 위해서가 아니야. 군인의 존재 이유는 나라를 지키기 위함이니까.”
멧 중장의 말에 스미스 국장이 그대로 방문을 나섰다.
“어찌실 생각입니까?”
“뭐, 어쩔 수 없지. 보고하란 대로 할 수밖에.”
멧 중장의 말에 에덤 소장은 고개를 슬슬 내저었다.
답답한 표정이었다.
* * *
스미스 국장이 스마트폰을 들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게 답니까?”
-맞네. 소스는 별로 안 맞으시는 모양이야. 그래도 햄버거 고기 자체는 마음에 든다시더군. 아참! 위스키가 좀 더 모자라니 기왕이면 그 부분도 신경 써 주면 좋을 것 같네.”
“…….”
멧 중장과의 통화를 끈은 스미스 국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빌어먹을,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지.”
멧 중장은 자신의 요청에 지나치게 충실했다.
“하도 듣다 보니 이젠 부루라는 강림자를 만나면 친근감까지 들 지경이군.”
요원을 통해서 들을 수 없는 정보는 맞았다.
요원들이 그가 언제 어디서 전쟁을 했는데 몇을 죽였고, 또 옛날에 식량창고에서 술을 만들어 먹던 이들을 잡아 족쳤다는 것까지 알 지경이었으니까.
심지어 똥도 잘 싼다니 이쯤 되면 사람인지 강림자인지 구분도 안 가지만 말이다.
그때 옆에 있던 요원이 조심스럽게 질문을 했다.
“이거 다 기록합니까?”
“기록하게.”
“알겠습니다.”
한숨을 쉰 요원은 기록을 이어 나갔다.
스미스 국장과 멧 중장의 통화를 들으며 정보를 기록하는 임무를 받은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적어나갔다.
123. 치킨 열두 마리를 먹고서 입맛이 없다며 그만 먹었다.
124. 위스키 하루에 127병 갱신. 선호도 자체는 몰트 위스키 쪽인 듯함.
125. 훈련을 빙자해 고빈이라는 소환자를 끌고 나가 그의 수하들에게 조리돌림을 함. 다리뼈 두 개 모두 골절. 갈비뼈 세 개도 골절.
126. 한국 드라마를 아침부터 자기 직전까지 시청하고도 모자라 50부작이 끝날 때까지 이어서 봄.
127. 술과 함께 햄버거를 즐겨 봄. 햄버거는 총 214개가 들어갔으며…….
“…….”
새로운 내용을 적어 내려가던 요원이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자신이 왜 이런 걸 지금 여기에서 적고 있어야 하는가 회의적인 심정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났다.
그렇게 삼 일간의 정보를 수집한 스미스 국장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연구소로 이동했다.
* * *
“정말 그렇게 보고해도 됩니까?”
“원하는 대로 소소한 것들 해 주었지 않나. 그리고 솔직히 이거 빼면 딱히 별다른 내용도 없고.”
“그건…… 그렇습니다.”
전투 후에 그들이 바라본 부루와 일행들은 놈팽이에 가까웠다. 놀고 먹고.
훈련을 안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건 마치 술 먹고 흥에 넘쳐서 치고받는 것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판단은 그쪽에서 하겠지.”
“그건 그런데. 괜찮습니까?”
에덤 소장이 묻자 멧 중장이 침대에 다시 등을 기대며 말했다.
“젠장. 난 아마 죽어서도 썩지 않을걸세. 온몸이 알코올에 절여졌으니까.”
“뭐, 그럴 것 같긴 합니다. 그래도 나름 명령에 충실한 덕에 지난 시간 동안 부루와 빠짐없이 술을 먹었던 멧 중장의 상태는 혈관에 피 대신 알코올이 흐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좀 쉬고 싶군.”
“속이 불편하시면 햄버거라도 드릴까요?”
“우웁!”
“죄송합니다. 그러고 보니 어제 안주? 그런 이유로 햄버거 파티를 하셨지요.”
“우웁! 해, 햄버거는 그만!”
“헛!”
“우웨에에엑!”
결국 멧 중장은 침대 옆의 쓰레기통에 다시 한번 전날 먹은 음식을 쏟아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