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3화 의혹
복잡한 마음이 들었는지 다들 침묵을 지켰다.
“이렇기에 대한민국 정부도 이들을 강압적인 방법보다는 회유를 통해 구슬리고 있습니다. 물론 다행히 그쪽은 이미 제어할 수 있는 수단이 있습니다. 강문호 대위와 구은태 박사입니다.”
“그게 멧 중장과의 연관성은?”
“함께 고생한 사이? 그게 더 중요해 보였습니다. 실제로도 그랬고 말입니다.”
“함께 싸우고 훈련을 받은 멧 중장이 그런 의미에서 효과적이라는 말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들 행보의 곁에는 멧 중장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회유를 실패하고도 그가 남았던 이유가 명확해졌다. 이제야 좀 이해가 간다는 표정들이었다.
이미 그들의 패밀리 취급을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의미는 알지만, 미래를 대비해야 합니다. 점점 더 거칠어질 지금의 상황에서 언제까지 대한민국의 파병을 바랄 수 있겠습니까. 이번만 해도 그들이 기적적으로 침식균열을 해소했기 때문 아닙니까? 그게 언제까지 기댈 수는 없습니다.”
이번에도 버튼 보좌관이었다.
“오히려 공작을 펼쳐 그들을 연구소로 보내는 것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주장에 다들 모호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언제까지 도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 발목을 잡았다. 그렇기 때문에 과감하게 연구를 하자는 말이 나온 것이다.
물론 그 방법 역시 거칠었지만 말이다.
문제는 위험부담이다.
버튼 보좌관의 말대로 하기에는 일이 잘못되었을 경우 당장의 도움조차도 얻지 못한다는 건 불 보듯 훤했다.
그럼에도 다들 고민하는 이유는 그의 발언에서 매력을 느낀다는 점이었다.
심지어 이 회의를 이끌며 강압적인 부분보다는 회유를 통해 동맹을 더 강화시키자는 발언을 하던 레너드 대통령마저도 곤혹스러운 표정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그들의 상황이 더 위험하다면 미국까지 날아올 리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번의 도움도 그들의 위협을 먼저 해소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때 스미스 국장이 입을 열었다.
“동일인은 아니지만, 십여 년 전의 사건에 대해 기억하시는 분들이 있으실 겁니다.”
“서울 테러?”
“예.”
서울 테러란 말에 다들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많은 숫자가 죽었지만, 사실 테러 피해치고는 적은 편에 속하는 일이었다.
9.11 사태까지 가지 않아도 말이다. 그러나 말은 테러라 했지만, 그 내막은 단순 테러가 아님을 다들 알고 있었다.
그건 전쟁이었다.
은퇴하거나 쫓겨난 미 특수부대 용병들까지 낀 전쟁.
그 수백의 희생이 일반인들이 아니라는 것이 중요했다. 그 차이가 테러가 아닌 전쟁으로 바라보는 결정적인 점이었다.
스미스 국장의 말이 이어졌다.
“당시에도 그들은 인간이라고 상상하기 힘든 능력을 보여줬습니다. 마치 쿵푸영화의 주인공처럼 말입니다.”
스미스 국장의 말에 몇몇 인사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머지는 그에 관해 아는 게 별로 없었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뿐이었다.
“이후 대침식이 벌어지고 강림자가 나타났습니다. 그때 우리는 다시 해당 사안에 관하여 연구를 재개했습니다. 당시 그들이 강림자들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물론 연구의 의도는 약간 달랐다. 하지만, 그 와중에 대침식이 벌어지고 그 원인이 이쪽에 있다는 것을 아는 연구원들은 그 사실을 철저하게 비밀로 붙였다.
이는 국무위원들도 모르는 사실들이었다.
아는 건 스미스 국장과 관련 연구원, 그리고 현 대통령인 레너드와 최측근 몇뿐이었다.
집중된 이목을 느끼며 스미스 국장이 쓴 웃음을 머금었다.
“결론적으로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는 한국과도 공조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만……. 문제는 지금의 강림자들은 살던 시대의 능력 이상의 강력함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스미스 국장의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는 어느 정도 정설이었다.
인지도라는 것이 높을수록 마치 게임 캐릭터가 버프를 받는 것과 같은 효과가 있었다.
아무리 보이지 않는 보호막을 가를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해도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부분이 모자라면 의미가 없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지금까지 능력에 대한 분석을 보았을 때 지금의 코드명, 아니 제너럴 을지는 아직도 텐션이 다 폭발하지 않았다는 분석입니다.”
“으음.”
“만에 하나 그들에 관한 우리들의 공작이 들통 난다면 그건 그야말로 최악의 경우가 될 것입니다.”
스미스 국장의 말에 다들 인상이 굳어졌다.
다른 강림자들과 그와의 차이점.
그건 바로 공격성이 살아 있다는 것이었다.
이번에 대원그룹 일로 이슈가 된 것이 그 공격성 때문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들은 이미 하나의 인격체적인 성향을 보여 줬다. 이는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 말은 테러가 무섭다고 테러와의 전쟁을 하지 말자는 것과 같소!”
버튼 보좌관의 강경한 어투에 스미스 국장이 한숨을 내쉬며 대답을 했다.
“그 비유는 틀렸습니다. 테러는 건드리지 않는다 해도 벌어진다는 겁니다. 그래서 전쟁을 불사하는 것이고 말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적 도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지금처럼 말입니다.”
“이거 다시 말이 꼬리를 물고 같은 방향을 맴도는 것 같군.”
레너드 대통령이 답답한 마음을 토로했다.
그러자 스미스 국장은 미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다만 현실을 제대로 파악할 필요가 있어 발언을 했습니다.”
“이해하네. 그 누구보다도 그들이 탐이 나는 사람이라는 건 이해하니까.”
“대체 무얼 숨기고 있는 겁니까?”
답답한 나머지 일부 국무위원들이 질문을 던졌다.
“그 부분은 탑 시크릿이네.”
답은 레너드 대통령이 내놓았다.
명확하게 선을 긋는 그의 답변에 일부 국무위원들이 한숨과 함께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하지만, 이 나라는 대통령도 모르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대통령이 이렇게까지 말을 한다는 것은 답을 줄 수 없다는 의미였다.
한마디로 알아내려 한다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
“투 트렉으로 진행하지. 멧 중장을 통해 그들과의 접점을 확대해 나가고, 기존 훈련을 이어 나가도록 하는 것이 첫 번째고, 두 번째는 외교부가 좀 움직여 줘야겠지. 이미 레일건까지 지원이 갔지만, 필요하다면 그 이상까지도 열어 줘야겠지.”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회의실을 나오던 스미스 국장을 붙잡은 건 바로 버튼 안보보좌관이었다.
“대체 어쩌자고 그러는 건가.”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대안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일만 해도 그렇습니다.”
“젠장!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불리하다는 건 모르는 건가?”
“압니다만…….”
“젠장! 젠자앙!”
버튼 보좌관이 분에 이기지 못한 욕설을 흘리며 먼저 떠나갔다.
그 모습을 보며 스미스 국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쓸데없는 짓만 안 하면 좋겠군.”
* * *
“이상하단 말이지.”
후발대로 도착한 구은태 박사와 일행들은 미국의 침식지들이 표기된 지도를 살피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미국의 경우 유독 한 지역에 침식지들이 발달되어 있었다.
통일 대한민국처럼 좁은 땅덩이를 가진 국가도 아닌데 이렇게 오밀조밀하게 침식지들이 몰려있다는 것 자체가 의혹의 대상인 것이다.
강문호 대위 역시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 부분은 이전부터도 말이 나왔었지요. 41구역 관한 농담도 있었고 말입니다.”
의혹은 단순했다.
41구역의 연구 때문에 이 사태가 벌어졌다는 음모론이었다. 하지만, 그걸 뒷받침하기에는 근거가 모호했다.
이 사태 자체가 거의 전 세계적으로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졌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물론 몇몇 이들은 최초 보고 자체가 미국이라는 말이 있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점은 그리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었다.
확산속도가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구 박사는 이것조차 걸리는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그거 정말일지 모른다는 생각은 안 해 봤나?”
구 박사의 질문에 강 대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심증이 있다고 해도 문제는 증명이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하긴. 불가능하겠지.”
만약 그렇다 해도 미국이 미치지 않은 이상 그걸 공개할 이유가 없었던 거다.
‘지옥문을 실수로 연 거 같은데?’
미국은 전세계적으로 회복불가의 집중타격을 받게 될 것이 불 보듯 훤했다.
“지금 분위기만 봐도 그렇지 않습니까?”
강 대위가 시선을 슬쩍 돌리자 구 박사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지. 환대를 하는 것치고는 과보호 느낌이 들 정도니까.”
이들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보안을 강화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시점을 조금만 달리한다면 반대로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시선으로 해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답답하군요.”
“그게 문제지.”
강 대위의 말에 구 박사 역시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
“와우. 이거 미국애들이 이렇게 협조적으로 나오는 건 처음 봅니다.”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가 쫑코를 줄 때마다 유감 어쩌고 하는 것만 봐도 말입니다.”
정보부 요원들의 말에 김창진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그렇긴 하지.”
“치사하긴 한데 미국 애들이 예전에 왜 얼굴에 철판 깔고 움직였는지 알 거 같습니다.”
“하핫!”
철판이라는 말에 창진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 그대로였다.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모든 것을 중심에 두고 움직이는 미 정보부였다.
그렇기에 그들의 문제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힘의 논리를 앞세워 뻔뻔하게 대응을 해 온 것이 바로 미 정보부였다.
그런데 반대로 이쪽에서 그런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반대라기보단, 본 걸 못 본 체 하던 예전과 달리 지금은 당당히 따질 수 있다는 점이 크게 달라진 점이었다.
“그런데 뭘 자꾸 보십니까?”
“아니, 그냥.”
정보부 요원이 다가오자 김장진이 고개를 내저었다.
“응? 아! 그거 때문입니까? 41구역 음모론?”
김창진이 펼쳐 놓은 화면은 바로 이번에 지원을 나갔던 지역을 인공위성으로 촬영해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 지역은 공교롭게도 41구역 괴담이 있었던 곳이고 말이다.
“음모론은 음모론이고. 그걸 따지려면 증거가 있어야지. 쓸데없는 소리 말고, 지금 자꾸 기어들어오는 애들 동선 파악해.”
“알겠습니다.”
이번 침식이 끝나고 또 부쩍 외국인의 방한이 이어졌다.
여러 이유가 있었다.
한국이 그나마 가장 안전하다는 생각에 외국의 부유층이 장기체류를 위해 날아왔다.
그와 비슷한 이유로 유학을 오는 이들도 있었고, 취업을 오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 인원들 사이에는 각국의 정보원들이 끼어들어왔다.
제대로 뭔가를 얻기 힘들다는 판단을 했는지 조금이라도 한국의 성과를 얻어 가려고 보내온 요원들이었다.
다시 다들 일에 몰두하는 사이 창진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확실히 좀 그런데.”
당시 그때의 일을 겪었던 당사자나 마찬가지인 창진이기에 많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당시에 일이 벌어진 뒤, 미국 측에서 뒷수습에 적극적으로 끼어들면서 많은 부분에서 획득한 것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창진도 아는 것도 있었고 말이다.
그게 신경 쓰이는 이유는 단순했다. 그들이 세상을 넘나들었을 거라는 확신.
넘어오기도 했으니 가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그 유류품을 확보하면서 그와 관련된 무언가를 획득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그리고 그걸 얻은 미국이 그냥 두고 보겠는가.
보나마나 각종 실험을 했을 것이 뻔했다.
이건 미국이 아닌 그 어떤 나라라도 마찬가지일 것 같았다.
“위에 한번 찔러 봐?”
창진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