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2화 복잡한 셈법
닉 레너드 미국 대통령은 보고 서를 앞에 두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정치 생명의 위기가 문제가 아니었다. 나라가 거덜 날 판이었다.
“문제는 항상 코리아 쪽의 상황이 우리보다 더 나쁘다는 점이오.”
“하지만, 이제 상황이 다르잖습니까. 코리아와 우리는 영구적인 동맹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도울 의무가 있습니다.”
한국 전쟁 이후 만들어진 협정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영구적인 군사동맹.
다른 국가와 달리 지정학적 위치와 당시 한국전쟁 때의 위기를 이용한 상호방위조약의 골자다.
물론 이후 그로 인한 문제점이 한둘은 아니었다.
때론 한국에 불리한 해석이 되기도 했었다.
“의무라.”
의무라는 말에 레너드 대통령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뇌리에 대침식 당시의 상황이 떠올랐다.
그때 미국은 자국의 안위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미군을 모두 철수시킨 전적이 있었다.
물론 그 부분에서 한국이 이해를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전세계적인 위기였고, 실제 각국이 패닉에 빠져든 상황이었으니까.
또 당시 철수하면서 주한미군은 한국에게 장비를 모두 무상증여 하고 떠났다.
물론 챙기기에는 시간적 여유도 없었고, 또 그 비용 등에서도 나을게 없었기에 한 행동이었다.
문제는 그 후에 벌어졌다.
“그 의무를 강조하기에는 대침식 당시 우리가 한 행동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소?”
레너드 대통령의 질문에 회의석상에 있던 이들 중 몇이 살짝 헛기침을 내뱉었다.
“그, 한인 방위대의 희생은 그들의 재산을 지키기 위한 자발적인…….”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고 싶소?”
“크음.”
국가 방위를 위한다는 명목 하에 한국인들로 민병대를 마물들 앞으로 밀어 넣은 사건이 있었다.
물론 그들을 강제적으로 소집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예전 흑인 폭동 때를 떠올리게 만드는 신속함과 과감한 움직임을 보였다.
아직 주 방위군이 전투준비도 되지 않았는데 그들은 대침식이 일어난 지 반나절도 안 되어 각지의 구심점으로 한인들이 모여서 이미 방어를 위한 편제까지 완료해 버렸던 것이다.
숫자가 모자란 한인들은 인근의 한인 타운으로 합류해 그 숫자를 불리기까지 했다.
이후에 주 방위군이 제대로 된 준비를 하기 전까지 지역을 방어하며 지휘한 것 역시 한국인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은 최악의 선택을 한 것이다.
그들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보다는 시간을 끄는 데에 써먹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초기 대침식 당시 오히려 한인들의 희생이 더 커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덕에 시간을 제대로 벌 수 있었기에 당시 미국 정치인들은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로 생각했다.
결국 대침식 이후에 이 일이 크게 대두 되었다. 그러나 미국은 상황의 특수성을 들어 이에 대해 변명으로 일관했었다.
물론 한국이 대침식 이후 크게 발전을 해 나가면서 미국은 이에 관한 보상을 해 주었지만, 이미 양국 관계는 이전과는 좀 달라져 있었다.
그랬던 상황에서 이번에 또 다시 빚을 진 것이다.
“아직도 그들을 한국전쟁 후의 가난한 나라 사람으로 생각하는 멍청이들은 없었으면 좋겠군.”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은 통일 대한민국이 세계 2위의 경제 대국이 되어 버렸다.
물론 대침식이 변수가 되기는 했지만, 통일이 되면서 그 시너지 효과가 많은 경제학자들의 예상을 이백프로 초과달성한 것도 있었다.
그리고 조만간 1위라는 자리도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거의 확실시 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번영에 우리의 지원과 피가 있습니다. 이건 변치 않는 사실입니다.”
“맞네. 그러나 대침식 때의 사건으로 한국인들은 그 핏값을 갚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지.”
“그건 그들만의 생각일 뿐입니다.”
“대침식 이전이라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군. 하지만, 지금 우리가 그들보다 나은 점은 핵무기가 더 많다는 것 하나뿐이네.”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몇몇 국무위원들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지금은 그들을 자극해선 좋을 게 없습니다.”
그때 케인 스미스 정보국장이 조심스럽게 운을 때었다.
정보국장의 말이 가진 무게를 알기에 반발은 없었다.
심지어 지금 스미스 국장의 말은 레너드 대통령의 말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부분을 인정하기에는 세계 정세가 너무도 빨리 변한 것도 사실입니다. 또…… 그 지독한 나라의 국민성도 컸지만 말입니다.”
스미스 국장의 말에 국무위원 중 누군가가 영어가 아닌 한국말을 중얼거렸다.
“빨리 빨리.”
“맞아. 그놈의 빨리 빨리.”
투덜대는 말이었지만, 그게 우스웠는지 몇몇은 실소를 머금었다.
지금 한국 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K팝을 선두로 한 K컬쳐와 대중화된 한국 말 등이었다.
그중에서도 유명한 건 먹방과 오빠 그리고 빨리빨리였다.
특히 빨리빨리에 대해서는 미국뿐 아니라 유럽 쪽에서도 다큐로도 몇 번씩 언급될 정도였다.
물론 한국의 빨리빨리라는 문화가 최근에 와서 두드러졌던 것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한국 문화의 단점으로 비추어졌던 것이 바로 빨리빨리였다.
그랬던 것이 이제는 긍정적이면서 연구까지 해야 할 장점으로 변화된 것이다.
오죽했으면 여기 있는 이들조차 대번에 떠올릴 정도였겠는가.
“그 빨리빨리가 단순한 빠름을 의미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님을 다들 아실 것입니다. 그랬다면 전 세계의 상품들이 한국으로 몰리지는 않았겠지요.”
“지독할 정도로 빠른 피드백…….”
“Shit! 그놈의 짤방도 피드백이 너무 빨라.”
한때 한국에서 인종차별적 단어 선택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존 버튼 안보 보좌관이 인상을 구기며 욕설을 뱉었다.
“방금 말 하신 짤방도 한국말입니다.”
스미스 국장의 말에 버튼 보좌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대체 어쩌자고 하는 것이오? 컨택 지점은 있어야 할 것 아니오!”
국무위원 중 하나가 스미스 국장에게 짜증 섞인 발언을 내뱉었다. 그러자 스미스 국장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멧 중장이 가장 적격이라 보입니다.”
“멧 중장? 군인을? 지금 농담하자는 거요?”
“군인에게 외교를? 맙소사! 지금이 증기선에 대포 가지고 가서 몇 방 쏴서 식민지 삼는 시대로 착각하는 건 아니요?”
적지 않은 국무위원들이 스미스 국장의 발언에 반발하고 나섰다.
그들의 반응은 대동소이했다.
군인은 군인의 일이 있는 법이라는 논조였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건 엄연히 외교에 속하는 문제였다.
그걸 군인에게 맡긴다는 건 거부감이 있을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레너드 대통령은 스미스 국장의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이유는?”
“그들이 전우이기 때문입니다.”
“하? 그럼 나도 당장 총 들고 나가서 싸우고 그들과 친해지면 되겠군.”
여전히 부정적인 말을 하는 이는 바로 버튼 보좌관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강경론자라 불리는 이였다.
대침식 이후 외부의 침략이 아직 이어지는 위기의 상황에서는 그와 같은 강경론자가 힘을 더 얻는 법이다.
이유는 단순했다.
침략자가 대화가 통하는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비꼬지 말게. 좀 더 듣지.”
이번에도 레너드 대통령은 신중론을 펼쳤다. 그쯤 되자 버튼 보좌관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되었든 그는 대침식을 잘 이겨내고 특수상황임을 들어 별다른 투표절차 없이 순조롭게 연임을 해 온 대통령이었기 때문이었다.
위기를 극복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는 정치 논리를 내세우기 힘든 부분이었다.
사실 이번 한국에 대한 지원요청 역시 그가 과감하게 선택한 부분도 있었다.
지금 이 자리의 절반이 반대를 했던 사안이기도 했다.
이미 멧 중장 등 군인 출신 소환자들을 보내는 것 자체도 반대 의견이 많았기도 했다.
“그 소환자는 통일 한국의 소환자이면서도 독립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독립적이다?”
“예. 그들 정부도 눈치를 보는 상대라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실제 그들의 반응도 비슷하고 말입니다.”
관련해서 많은 정보를 얻기는 했지만, 여전히 믿기 어려운 사실이 몇 있었다.
그중 하나가 코드명 토르의 독립인격체설이었다.
그건 기존 강림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형태였다.
그렇기 때문인지 아직도 이 안의 인원들은 반신반의한 상황이었다.
“증거자료 보시는 게 났겠습니다.”
그들의 반응에 스미스가 쓴웃음을 머금으며 영상을 재생했다.
한국 정보부의 눈칫밥을 먹어가며 억지로 찍어온 영상들이었다.
첫 장면부터가 파격이었다.
강림자가 소환자의 뒤통수를 후리는 장면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상식이라 생각했던 것들이 모조리 파괴되는 현실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던 것이다.
“저게 정말 그 강림자란 말이오? 한국 정보부의 공작이 아니고?”
“저도 믿지 못했던 사실이기에 멧 중장에게도 이 영상의 진위에 대해 묻긴 했습니다.”
“그럼?”
국무위원이 허탈한 표정으로 되묻자 스미스 국장이 쓴 웃음을 머금으며 대답했다.
“과장되지 않은 일상이라고 합니다. 이는 우리 정보부 요원들도 별도로 확인한 사실입니다.”
화면은 바뀌어 맞고 나뒹구는 고빈의 모습이 비춰지고 있었다.
“보충하자면 패는 쪽이 강림자고 맞는 쪽이 그의 소환자입니다.”
점점더 침묵이 길어졌다.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었지만 영상은 더 충격적이었다.
소환자가 강림자에게 짐승 학대당하듯 당하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저 정도로 당하면서도 멀쩡하게 일어서서 달려드는 소환자의 모습 역시도 충격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강림자의 에고가 강한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영상으로 눈치챈 이들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소환자인 그들의 마물 사냥 능력도 이미 들어서 아실 겁니다. 최근에는 C급까지도 무리 없이 상대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신기하게 느껴졌던 일이었지만, 눈앞의 훈련장면은 신기할게 없어 보였다.
저 정도로 학대당하며 얻은 결과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때 스미스 국장의 말이이었다.
“그런데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이가 바로 보시는 코드명 토르. 즉 을지부루라 불리는 강림자인 것입니다.”
“확실히 그 때문에 멧 중장이 움직인 거긴 하지.”
몇몇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덕분에 한국으로 훈련을 떠났다가 되돌아온 이들이 증거자료가 되었다.
실제로 이번 침식 균열 사태 때 유의미한 결과물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또 한 가지. 흔히들 재각성이라 불리는 상황과 무관하게 저 강림자에게는 별도의 무력집단이 있다는 점입니다.”
다음영상에는 말을 타고 돌파하는 강림자들의 무리가 보였다.
“바로 이들입니다. 숫자는 이백에 조금 넘습니다. 204개체. 그런데 이 강림자를 하나하나의 실력은 우리가 말하는 영웅급에 달했다는 점입니다.”
재각성이라 불리는 건 바로 강림자가 살아생전에 부렸던 휘하들을 소환해 내는 것을 의미했다.
그 수는 가지각색이었다.
심지어 힘도 달랐다.
그러나 이들은 누가 봐도 파괴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