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11화 (111/305)

제111화 한미동맹

환호하는 대한민국의 강림자와 소환자들을 보며 에덤 소장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순식간에…….”

“지금의 전투는 고대의 전쟁과 닮아 있지.”

에덤 소장의 중얼거림에 멧 중장이 전투를 마치고 되돌아오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멧 중장의 답에 에덤 소장이 다시 부루와 그 일행들에게 홀린 듯한 시선을 보내며 중얼거렸다.

“고대의 전투…….”

생각해 보니 정말 그 말이 잘 어울렸다.

미사일이 지구 반 바퀴를 돌고 우주로 사림이 향하는 세상이건만, 지금 이곳은 그 사실이 무색하게 칼과 창과 활로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단지 그것만이면 고대의 전투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대의 전투란 영웅 한 명의 존재가 승부를 내는 시대를 의미했다.

마치 지금의 전투는 그것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그 치열했던 전투의 끝을 낸 이는 바로 부루였다.

“쓰디쓴 현실이지만, 나머지 인원들은 그 대결을 위한 판을 만드는 역할까지가 전부라 봐야겠지.”

“우주를 날아다니는 시대에 이런 전투를 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수많은 인명을 학살할 수 있는 병기가 마물 하나를 감당하지 못하리라는 것 역시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지.”

“후우.”

에덤 소장의 한숨을 들으며 멧 중장이 고개를 내저었다.

“항공모함이든 스텔스기든 이 전장에선 다 부질없다는 것이 슬프군.”

“그보다 이 일로 인해 정부는 머리 아플 겁니다.”

“그야…… 당연하겠지. 자유시장이라지만, 항상 힘의 논리는 존재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힘의 논리는…….”

“강림자.”

에덤 소장의 답에 멧 중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려의 한마디를 남겼다.

“다만, 워싱턴의 멍청이들 중에 아직도 저들을 쉽게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놈들이 없길 바라야지.”

멧 중장의 말에 에덤 소장이 웃으며 대꾸했다.

“설마.”

“없다면 다행이지만, 알잖은가. 때론 정치하는 멍청이들 중에 아직도 세상을 자신들의 논리로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는 거.”

멧 중장의 말에 애써 웃던 에덤 소장의 표정이 확 구겨졌다.

“그런 멍청이들을 대비해서라도 우리라도 나서야지 않겠나?”

“우리가요? 우린 군인입니다만.”

“한국말 중에 애교란 단어가 있지.”

“애교? 아 너튜브에서 들어 본 적 있는 것 같습니다. 먹방 같이 한국에서나 있다는 단어죠?”

“맞아.”

“그런데 그게 의미가 뭡니까?”

에덤 소장의 질문에 멧 중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민하다가 한숨을 내쉬고는 양 볼에 주먹을 가져가 비비며 답했다.

“뿌잉뿌잉?”

“…….”

“그런 눈 하지 말게. 딱히 설명할 단어가 안 떠올라서 그런 거나.”

멧 중장의 변명에 에덤 소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걸 해야 합니까?”

“뭐, 비슷한 거?”

“Holy shit!”

에덤 소장의 얼굴이 똥 씹은 것처럼 변했다.

전투가 끝이 나고 전장 정리를 하는 중이었지만, 대한민국의 최초 미주 파병군은 바로 자리를 이동해서 휴식을 취했다.

단순 휴식을 취한 것만은 아니었다.

미국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음식들을 바리바리 싸 가지고 왔다.

그뿐 아니라 전투 후 멧 할러데이 중장에게 언질을 받아서인지 지금은 침식지 부근이라는 불행한 입지 때문에 폐쇄된 한 체육 시설에서 승전잔치가 벌어졌다.

나름 화려하고 좋은 장소도 있건만 굳이 이런 장소를 고집한 그들을 위해 미국 정부에서 급히 장소를 수배했던 것이다.

그 자리에는 그들뿐 아니라 미국측 강림자들과 소환자들도 함께 했다.

전투가 끝난 지 몇 시간 되지 않았지만, 우호를 위해 필요하다는 멧 중장의 의견에 따라 합류를 한 것이다.

그 외에 해당 지역의 지휘관들도 참여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반발이 없지 않아 있었다.

아무리 마물들을 격퇴한 기념비적인 전과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희생이 컸다.

군인들의 희생은 두말할 것 없었고, 소환자들의 희생도 적지 않았던 전투였던 것이다.

일부 기자들 역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낼 정도였다.

굳이 이렇게 인근에서 당일 날 파티를 벌이는 것이 과연 맞는 행위인가라는 시선이었다.

그럼에도 곳곳에 한인 타운 등에서 공수된 숯불과 불판 등이 자리를 잡았고, 한국 스타일의 구이용 고기들이 냉장트럭으로 도착해 있었다.

잠시 뒤 연기가 피어오르고 술잔이 돌기 시작했다.

그 즈음 단상위로을지부루가 올라섰다.

“잔들 채운 거이간?”

그의 질문에 가우리 병사들은 물론이고 소환자들과 기동대원들이 복명복창을 하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예!”

마찬가지로 미군쪽에서도 술을 들어 올렸다.

다만 그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만은 못했다.

“첫잔은 말이디. 오늘 떠나간 친구들을 위한 잔이야. 비록 이 자리에는 보이디는 아이하디만, 아직 떠나디는 않디 안갔어?”

부루의 말에 순간 미군들의 표정이 어리둥절해졌다.

“동맹이라 하디 않았네? 기럼 같은 편이디.”

그제야 미군들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마찬가지로 기동대원들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들도 사실 마음 한편이 무거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오늘 고생들 했어야. 나머진 산 사람들이 지켜 나갈 거이니까네, 편히들 쉬라우.”

그 말과 함께 부루가 술을 뿌렸다. 잔에 채워져 있던 위스키가 바닥으로 뿌려졌다.

그와 함께 가우리 병사들 역시 주변으로 술잔을 뿌렸다.

순간 사방으로 주향이 짙게 맴돌았다.

그들뿐 아니었다.

기동대원들과 그때까지 애써 밝은 표정을 짓던 미군들도 술을 뿌렸다.

비록 문화는 다르지만, 그 행동이 가진 의미를 알기 때문이었다.

“니보라. 웃으라우이겼디 않네? 이래 죽상을 하고 있으면 앞으로 어케 싸울라 하는 거이간?”

부루의 말이 미군과 기동대원들을 향하고 있었다.

“웃으며 기억하라우. 이건 우리 방식인데 먼저 간 친우들을 위한 잔치 같은 거이야. 울고 엄숙한 것보단 웃고 즐기라우그들이 얼마나 잘 싸웠는디 서로 이야기 나누라우.”

사방은 침묵하고 있었다.

오직 부루만이 이야기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다음 전투에 이중에 또 누군가가 없을 수도 있디. 그때 지금처럼 기억해 주갔어. 자랑스럽게 싸웠다고 떠들어 주갔단 말이야. 요상망측하다 생각 말라.”

부루가 다시 술잔에 술을 채우며 말을 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 아니간? 울며 불며 하디 말고 웃으라. 기억하는데 꼭 죽상일 필요는 없어야. 이래 술을 먹다가 슬프면 그때 울면 되는 거이야. 기럼 누군가는 토닥여 주디 않갔어?”

그 말과 함께 부루가 다시 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입가에 가져가며 말했다.

“잘들 싸웠어야. 이 잔은 살아남은 이들을 위한 잔이야. 기래도 술은 살아서 먹는 거이 좋디 않갔어?”

동시에 부루가 술을 입가에 가져가 벌컥벌컥 마셨다.

40도에 달하는 독주가 부루의 입속으로 넘어갔다.

“우리들은 이 자릴 이래 말하디. 죽은 자를 위한 잔치.”

잔을 비운 부루가 웃으며 말했다. 그때 천유화가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면 우린 죽어서 먹는 술이니 딱히 틀린 말도 아니잖습니까!”

“길티! 이거야말로 진정 죽은 자들을 위한 잔치 아니갔네!”

와하하 하고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 기묘하고 생소한 죽은 자들을 위한 잔치가 미국땅에서 벌어지기 시작했다.

“이거 꽤 위안이 되는데요?”

에덤 소장이 웃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이건 나도 생각 못 했군.”

멧 중장 역시 한결 편해진 얼굴이었다. 필요에 의해 참석하긴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던 것은 사실이었다.

기자들 역시 이 생소한 문화에 대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저들은 왜 안 먹…….”

에덤 소장이 한쪽에 있는 이들을 보며 말을 하다가 멈칫했다. 이내 그의 표정이 점점 하얗게 변했다.

급기야는 벌떡 일어선 에덤 소장이 당황한 얼굴로 사방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가우리 병사들이 있는 쪽이었다.

술을 큰 잔으로 마시고 구워진 고기를 입에 넣으며 떠드는 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을 보는 에덤 소장의 눈동자는 쉴 새 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어서 그의 고개가 다른 방향으로 돌아갔다.

저들과 대조적으로 술과 음식을 두고도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존재들을 보았다.

그들은 바로 강림자였다.

저들과 같은 존재들.

“어, 어떻게 음식을?”

지금에야 저들이 강림자라는 것이 생각난 에덤 소장은 음식을 먹고 즐기는 모습을 보며 당황한 것이었다.

그뿐 아니었다.

이 사실을 사전에 모르고 있던 이들도 뒤늦게 알아채고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멧 중장이 웃으며 말했다.

“먹는 것뿐인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 미묘하게 다르지 않나?”

“그, 그렇군요.”

차이점이 명확해졌다.

자연스러웠기에 느끼지 못했던 이질감들이 파도처럼 밀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지.”

“수단으로 생각했던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

“그렇지.”

멧 중장의 말에 에덤 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림자에 대한 의미가 그들을 기준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들 이전과 그들 이후.

에덤 소장과 멧 중장은 한결 편해진 마음으로 죽은 이들을 기리며 술잔을 기울였다.

“뭐! 벌써! 대체 그것들 위장은 어떻게 된 거야!”

“위장이 있는지조차 모르잖습니까! 빨리 수배해야 합니다. 이대로는 삼십 분도 버티지 못합니다!”

“일단 급한 대로 닭을 수배해서 이동 중입니다!”

“빌어먹을 냉동도 좋으니…… 아니지 헬기 지원 요청해!”

식자재를 조달하는 이들은 전쟁터를 연상케 만들고 있었다.

충분히 넉넉하다 생각했던 고기류 등의 식재료가 미친 듯이 빠르게 바닥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술! 술도 다 떨어져 갑니다!”

“술이! 그 정도면 먹고 뒤질 수도 있다고!”

“저, 강림자는 원래 죽었던 사람들 아닙니까?”

“셧 업!”

그렇게 전쟁터가 된 상황에서 그들은 새로운 기록과 역사를 술판에서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 * *

잔치판은 총 두 번에 걸쳐 벌어졌다. 이틀 후 다시 그들이 다른 침식지로 이동을 했던 것이다.

물론 이쪽의 경우는 처음 투입되었던 곳과 달리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진입해 있었기는 했다.

그럼에도 빠르게 마무리를 하는 게 최선이었기에 그들이 투입되었던 것이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는 그들의 도움을 최소화 하려 했었지만, 침식지의 확장만큼은 최대한 막아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다.

방어 구역이 계속 늘어나는 건 둘째 치고 침식지 규모에 준해서 침식균열을 통해 나타나는 마물의 숫자 혹은 질이 달라지는 것 같다는 추론이 연구원들 사이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이 문제가 아니다.

다음번은 또 어떻게 막아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결국 그들의 지원을 다시 요청해야 했다.

그렇다면 한 번이 두 번이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지속적인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상황이 만들어져 버린 것이다.

그 덕에 미 정부는 골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