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0화 전염병 같은 존재들
“쿨룩.”
멧 중장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렸다.
“내, 내가 살아있는 건가…….”
그가 지금 이 순간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자신의 몸을 매만졌다.
“어디 팔다리 떨어진 데 없으니 걱정 마시죠?”
“응?”
그런 그의 몸을 부축하며 일으키는 이의 목소리에 멧 중장의 고개가 저절로 돌아갔다.
“비, 빈?”
“헬로~!”
멧 중장이 반갑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리고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다시 자신이 날아왔던 방향을 바라보았다.
“제너럴 !”
찰나의 순간 보았던 그 널찍한 등. 그 등의 주인이 거대한 창날을 막고 버티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 새끼 막지도 못할 것을 버티고 서 있으면 어카는 거간?”
을지부루가 시선을 돌리며 그들을 바라보았다.
뒤이어 지축을 뒤흔드는 소리.
그 뒤를 따라 함성소리가 들려왔다.
“지원군이다!”
“웰컴 투 헬!”
“예에!”
화약연기에 찌든 군인들이 각자 무기를 흔들며 내달려오는 기마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그들이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 빈이 멧 중장의 손을 놓았다.
“빈?”
“가즈아아!”
빈이 그들의 뒤를 따라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빼어든 대부가 그의 손에 들려 있었다.
“빈!”
멧 중장이 놀라 외쳤다.
지금 그들이 달려가는 방향의 마물들은 지금까지 상대했던 것들과 달랐다.
강력하고도 또 강력했다.
그런 곳으로 빈이 달려 나가고 있는 것이다.
멧 중장이 놀라 몸을 일으키는 순간 빈이 뛰어올라 대형종 마물이 휘두르는 무기에 마주쳐갔다.
쩌걱!
대형종 마물이 휘두른 커다란 몽둥이가 잘려 나갔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그의 대부는 목덜미에 틀어박혔다.
쩌어억!
순간 대형종의 목이 갈라졌다.
“지저스…… 베, 베타급이 소환자 손에?”
C급 일부 마물까지 상대하던 빈이었다. 그런데 며칠사이에 그가 베타, 즉 B급이라 불리는 마물의 목을 친 것이었다.
마물의 목이 반쯤 갈라졌다.
“으라차차!”
대부를 뽑아든 빈이 다시 한 번 내려치는 순간 덜렁이던 목이 떨어져 나갔다.
그 순간 소환자들의 함성이 쏟아졌다.
빈은 그들에게 있어 목표였다. 가능성이었다.
그가 가는 행보를 따라 걷는 이들에게 있어 빈은 특별했다.
그렇게 강림자들과 함께 전투의 장으로 뛰어든 빈을 보며 멧 중장이 중얼거렸다.
“어쩌면 강림자는 우리가 부리는 존재가 아닐지도 몰라.”
그런 멧 중장의 곁으로 다가온 군인 출신 소환자가 답변하듯 입을 열었다.
“함께 싸우는 존재. 혹은 싸우는 법을 가르쳐 주는 인도자일지도요.”
“그래. 그럴 수도…….”
기마들이 마물들을 해치고 나아가기 시작했다.
창대가 막히는 순간 카르탈마니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막아? 감히 파편 따위가…….
순간 카르탈마니어의 얼굴이 환하게 변했다.
-너구나. 새로운 마수의 군주가.
“뭐라 지껄이는 거이네?”
기어이 창대를 퉁겨낸 부루의 말에 카르탈마니어가 크게 웃었다.
크롸카카카카카카!
카르탈마니어의 웃음소리가 세상을 쩌렁쩌렁하게 뒤흔들었다. 그 웃음소리에 마물들은 물론이고 말을 달리던 가우리의 기병들조차 움찔거릴 정도였다.
오직 하나.
부루만이 그 웃음소리 앞에서 기분 나쁜 듯 바라보며 불퉁거릴 뿐이었다.
“미친 거간? 와 갑자기 웃고 지랄이네?”
-그래 미치겠구나. 찾아갈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눈앞에 나타나 주니 즐거워 미치겠구나아!
“미친개에게는 몽둥이가 답이랬디. 어디 한 번 타작 좀 해 보자우. 아니디. 개가 아니라 뱀 대가리 닮았으니 뱀 새끼라 해야 하갔디?”
부루의 말에 카르탈마니어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대답했다.
-그 시끄러운 입까지 갈가리 찢어주지.
하늘로 튕겨 올랐던 카르탈마니어의 창대가 다시 부루를 향했다.
그 높이만 십오 미터에 달하는 카르탈마니어가 그의 키만 한 창대를 휘두르니 여기저기 불타고 있던 차량들이 마치 바람에 낙엽이 날리듯 날아갔다.
그럼에도 부루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 모습이 오히려 카르탈마니아의 심기를 건드렸는지 그의 얼굴이 더욱 흉포하게 변했다.
“달려!”
미군들은 갑자기 치고 나가는 차량들을 바라보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저들도 소환자야?”
“아니. 한국 레인저들. 아니 기동대원이라고 하나?”
“미친 거 아니야? 아니면 자살 특공대야? 저길 뛰어들었다고!”
그들이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방향에는 차량을 타고 내달리는 한국의 기동대원들이 있었다.
물론 그들의 뒤에는 강림자 궁수들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차량을 운용하는 이나 화기를 운용하는 이 역시 모두 소환자가 아닌 기동대원들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그 수가 많지는 않았다. 겨우 십여 대. 그러나 그 십여 대가 지금 수많은 마물들을 몰고 다니고 있었다.
“빨리 움직여! 빨리! 방어선을 다시 좁힌다!”
이미 사전에 이야기가 되었었는지 지휘관들의 외침에 병력들이 다시 전진하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일보 후퇴하였던 미국의 소환자와 강림자들 역시 전진을 해 나가기 시작했다.
덜커덩!
마치 건설현장의 크레인에서 목재가 추락하듯 잘려나간 창대가 떨어져 나뒹구는 소리가 요란했다.
그 목재토막 같은 창대는 하나가 아니었다.
반쯤 부러진 창날은 나머지 반쪽과 멀찍이 떨어져 뒹굴고 있었고, 어른 키보다도 긴 창대의 일부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이…….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주둥이가 와 이래 조용하네? 아! 미안하다야. 내래 조동아릴 조진 걸 깜빡했구만 기래.”
-크허어억!
비명인지 괴성인지 구분이 어려운 소리를 내뱉는 카르탈마니어의 입은 부루의 말마따나 걸레짝이 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그의 몸 여기저기에는 상처가 그득했다.
-네놈이…… 네놈이!
“이제 와서 내빼는 건 아니디? 날래 뎀비라우. 결착을 좀 지어야디 않갔어?”
그렇게 말을 하는 부루의 몸뚱 이도 성치는 않았다. 온몸에 상처가 또다시 늘어 있었다.
날아가고 스치고 베인 상처들이었다. 그러나 상처에 비해 부루의 모습은 쌩쌩하기만 했다.
'그 쿠리울인지 뭔지 조진 뒤에부터 더 강해진 느낌이구만.'
마계대공의 자리를 넘겨받은 이후 그가 더 강해졌음을 스스로 느꼈던 것이다.
카르탈마니어는 믿기지 못한다는 표정으로 부루를 바라보았다.
그를 처치하고 대공의 계승을 이루어 내리라 생각했었던 그였지만, 상황은 유리하지 못했다.
무기는 이미 사라진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주변에 끌고 왔던 수하들은 이미 주검이 되거나 뒤로 밀려나가고 있었다.
가우리의 기마들에 의해 당하거나 쫓기기 시작한 것이다.
-어찌 파편 따위가 이리 강하단 말인가. 크르륵…….
카르탈마니어의 전투 속에서 별의 파편과의 전투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른 차원의 침공에서 별의 파편과 싸워 본 경험도 많았다.
그러나 그 파편들과 지금 눈앞의 존재는 달랐다.
끊임없이 화를 돋우는 화술부터가 파편 따위가 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파편은 그저 해당 차원의 존재와 닮은 전투인형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싸우라면 싸우는 그런 존재.
부루처럼 입을 놀리더라도 마치 미리 주입해 놓은 대사를 뱉는 인형과 같은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 눈앞의 부루는 마치 독립된 인격체계를 가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지금 그런 느낌을 주는 이가 부루 하나뿐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주변에서 자신들의 수하를 물리쳐 내고 자신의 온몸에 화살을 박아 넣고 있거나 창을 던져 꽂아 넣고 있는 존재들 역시 같은 느낌을 주었다.
그 차이를 확연히 느끼던 카르탈마니어의 눈에 한쪽에서 대부를 휘두르며 마물들의 잔당을 처리하고 있는 인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침식 때에도 전투에 참여했었지만, 그때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유형이었다.
이것조차 이해가 되지 않았다. 별의 파편이 등장하는 차원은 싸우는 법을 잃어버린 이들이 사는 세상에서나 벌어지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저들은 형태는 다르지만 싸우는 법을 익혀 가고 있었던 것이다.
별의 파편이 등장했던 다른 차원의 세상에서는 볼 수 없었던 경험이었다.
더큰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전염병 같은 놈들…….
카르탈마니어가 시선을 돌리며 다른 쪽을 바라보았다.
지난 며칠간 그들에 대항하던 이곳 국가의 강림자들이었다.
어설프게나마 그쪽의 소환자도 직접 무기를 들어 싸워 왔었다. 그것만 해도 신기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뿐 아니라 일반적인 별의 파편들이 내뿜는 기운이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 중심에는 부루와 가우리 병사들이 있었다.
마치 그들에게서 영향을 받는 듯한 느낌이었다.
카르탈마니어의 전염병 같은 놈들이란 말은 그런 상황을 빗대어 표현한 것이었다.
카르탈마니어가 다시 포효했다.
-크롹아악! 크롹!
지금까지의 하울링과는 달랐다.
본능을 뒤흔드는 흉포한 외침이 아니었다.
절제된 느낌.
그와 동시에 카르탈마니어가 다리에 힘을 주어 뛰어 올랐다.
콰앙!
소리를 내지른 카르탈마니어가 몸을 띄운 곳의 땅바닥이 거칠게 패였다.
“응?”
부루는 카르탈마니어를 보며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튀는 거간?”
말 그대로였다.
카르탈마니어가 뒤로 몸을 날린 것이었다.
그 행동이 의미하는 건 단순했다. 전략적인 이탈이라 치장하는 말. 그냥 줄행랑이었다.
아까의 외침 역시 이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마물들이 썰물처럼 뒤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다시 돌아온다. 그때에는 대공의 자리와 네놈의 목을 함께 가져가도록 하지.
“자신 있음 지금 가져 가라우. 어딜 내빼는 거이네?”
-크륵 크륵 크륵!
멀어지는 카르탈마니어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흘렸다.
그 사이 입의 상처들과 온몸의 상처들은 조금씩 아물어 가고 있었다.
-기대하라. 나는 반드시 돌아온다.
“와, 영화나 소설이 꽤나 고증에 충실한 거였네?”
부루의 곁으로 다가온 빈이 멀어지는 카르탈마니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뭔 소리야?”
부루가 눈썹을 찡그리며 묻자 빈이 어깨위에 대부를 올려놓으며 대답했다.
“영화나 소설 속 악당들 보면 꼭 튈 때 쪽팔리니까 나 다시 돌아온다고 하고 도망치거든요.”
“푸흐흐흐!”
빈의 말에 부루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음을 터트렸다.
빈의 말이 왠지 그럴 듯했다.
그렇게 물러가는 마물들을 바라보는 가운데 기동대원들의 차량들이 빠르게 복귀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만신창이였지만,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전복된 차량 하나 없이 되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몰이꾼들이구만.”
부루의 중얼거림에 빈이 히죽 웃었다.
“그러게요. 이젠 미끼 팀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되겠어요.”
물론 몰이꾼은 말 그대로 대상을 몰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지금처럼 꽁무니에 매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젠 미끼라는 말이 무색했다.
자신만만하게 마물들을 끌고 다니며 아군에게 시간을 벌어 주는 모습이 이전과는 달랐다.
처절하기보다는 자신만만해 보였다.
뒤쪽에서 함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와아아아!
물러가는 마물들을 바라보며 외치는 승리의 함성, 그리고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의 함성인 것이었다.
“우리도 가자우. 배가 고파오는구만 기래. 여긴 뭐가 맛 좋은 거이간?”
“간만에 먹 방 찍으실래요? 어차피 청구는 미국 애들에게 하면 될 거 같은데. 이참에 전설 한번 쓰시지요?”
“기거이 듣던 중 반가운 소리구만. 모두 가자우! 잔치를 벌이는 거이야!”
와아아아!
그를 따라온 한국의 기동대원은 물론이고 가우리의 병사들과 강림자들까지도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전투에서 승리한 자들의 즐거움과 여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