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화 카르탈마니어
에덤 소장은 답답한 마음으로 전선을 바라보았다.
마물들이 몰려들고 있는 전장은 한국과 달랐다. 마치 미래전장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거치된 무인 병기들은 쉴 새 없이 불을 뿜고 있었고, 마치 갑주와 같은 중장갑을 몸에 걸친 병사들은 한 눈에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무기를 들고 뛰어다녔다.
그럼에도 검보랏빛이 감도는 침식지 근처에 있던 병기들은 침묵하고 있었고, 미래군인과 같은 이들은 대여섯 명씩 매달려 끌어내기 바빴다.
첨단 병기라 해도 침식지에서는 힘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나 천조국이라 불리던 곳답게 침식지로 쏟아 넣고 있는 화력은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그럼에도 몰려들던 마물들을 막기에는 점점 힘에 부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그 최전선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활약하고 있는 이들 소환자와 강림자 덕에 한 숨을 돌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점점 힘에 부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전선이 한발자국 밀릴수록 지켜야 할 영역은 그만큼 늘어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밀리기 시작한 지 벌써 며칠 째다.
처음 하루 이틀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버텼었다.
그러나 삼일째 되던 날부터 줄어들기 시작했던 강림자들의 공백을 메우지 못하기 시작하며, 삐걱거렸다.
한 걸음이 두 걸음이 되는 순간 걷잡을 수 없이 방어선이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크워어억!
그때 마물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와아아아!”
구릿빛 피부의 인디언 하나가 말을 달리며 한 손에는 소총을 다른 한 손에는 도끼를 들고 내달렸다.
그의 뒤로는 대형종이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때 곁에서 마물들을 직접 맞이하고 있던 멧 할러데이 중장이 거칠게 숨을 내쉬며 방어선 뒤로 물러나왔다.
“후욱! 훅!”
“중장님!”
“다른 곳은 어떤가?”
“좋지 못합니다. 무인병기가 있던 곳까지 침식이 진행되어 이미 70% 가까이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빌어먹을! 차라리 한국군을 벤치마킹했어야 했다니까!”
멧 중장이 이를 갈았다.
그가 한국으로 파견가기 전부터 종종 했었던 주장이었다. 그러나 침식균열이 일어나기 전에는 그의 의견은 묵살되었었다.
최초의 침식균열 때에도 이 미래형 병기들을 바탕으로 최소한의 피해만으로 잘 막아내기도 했었다.
물론 한국에서 침식균열에 나타난 군주급을 무너트리기 이전까지는 그게 최선이라 믿기도 했었고 말이다.
비록 대침식때 한국에 비해 피해가 크고 수습이 늦었다고는 하지만 그건 광활한 땅덩이 때문이라고 판단 했었다.
그러나 이번 침식균열은 달랐다.
땅덩이와 상관없이 비슷한 조건으로 발생했었던 침식균열이었었다. 그런데 결과에서 차이가 생겼다.
그 이후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력을 다해 전 침식지 주변에 방어선을 제대로 확보했다.
그런데 이번은 달랐다.
지난 침식균열보다도 더 강한 개체가 많았고, 시일이 지났음에도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벌써 침식균열을 모두 방어한 것을 뛰어넘어 격퇴를 해 낸 것이다.
거기에 미국보다도 한 곳이 더 많았음에도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의 비밀 연구소 인근까지 침식지가 늘어날 상황이 되자 다급해진 것이었다.
그때 멧 중장이 한국에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고 외쳤다.
결국 미 정부에서는 어쩔 수 없이 한국 정부에 손을 내밀었던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지원이…….”
크워어어억! 쿼어엉!
에덤 소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물의 하울링이 퍼져왔다.
문제는 그것이 지금까지 있었던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뭐, 뭐야!”
거대한 하울링에 에덤 소장은 물론이고 멧 중장까지도 등줄기가 축축하게 젖을 정도였다.
“대, 대체 무슨 일이지?”
에덤 소장이 온몸을 떨었다.
그뿐 아니라 군인들까지 모두 일시적으로 충격이라도 입은 듯 몸을 떨었다.
그때 소환자 하나가 달려왔다. 그는 바로 멧 중장과 함께 한국에서 훈련을 받았던 군인 출신 소환자였던 것이다.
“무슨 일인가!”
멧 중장이 이를 악물며 물었다.
“구, 군주급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뭐? 뭐가 움직여?”
군주급이 움직였다는 말에 멧 중장은 물론이고 살짝 정신적인 타격을 입었던 에덤 소장까지도 놀라 벌떡 일어설 지경이었다.
“구, 군주급이 움직인다는게 대체 무슨 말인가!”
그의 질문에 소환자가 이를 악물며 답했다.
“중앙에서 벗어나 이쪽으로 이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이건, 보고되지 않았던 일이야……. 왜 갑자기 군주급이 움직인다는 거지?”
에덤 소장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대침식 때도 군주급은 중앙에서 움직이지 않았었다. 그 영역이 한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게 정설이었다. 그런데 그 정설이 무너진 것이었다.
“소장님! 북쪽 확장로가 결국……”
“그, 그럼 그쪽의 침식지와?”
“이미 침식지가 하나로 합쳐졌습니다.”
“이, 이럴 수가!”
몇 개의 침식지가 다닥 다닥 붙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침식의 확장으로 인해서 하나로 합쳐져 버린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마물이 급증하기 시작한 것도?”
에덤 소장의 얼굴이 곤혹스럽게 변했다. 충분히 가능한 추론이었다.
“그럼 군주급이 움직인 것도?”
에덤 소장과 생각이 비슷했는지 멧 중장 역시 이를 악물며 중얼거렸다.
그때 듣고 싶지 않던 보고가 들려왔다.
“대형종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방금 연결된 침식지에서 마물들이 폭증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어이!”
에덤 소장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지금도 겨우 막아내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마물이 폭증하기 시작했다는 말은 절망에 빠지기에 충분했다.
아아악! 뒤, 뒤로!
그때 멀리서 비명들과 함께 거대한 하울링이 다시 터져 나왔다.
-크뤄어어어!
“크윽!”
“저, 저건?”
다들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이족 보행을 하고 있었지만, 그 형태가 공룡과 같았다.
물론 공룡이 아니었다.
공룡의 등에는 저런 거대한 날개가 있을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몸통은 공룡이라기보다는 근육질의 보디빌더와 같았다.
무엇보다도 크기가 너무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쿠우웅!
크게 한발을 내딛는 순간 강림자 서넛이 그대로 소멸되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꼬리를 휘두르는 순간 무인포탑을 비롯해 전차들이 마치 장난감처럼 날아갔다.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저러다 침식지를 벗어날지도 모릅니다!”
경악에 찬 외침에 멧 중장이 몸을 일으켰다.
“막아야 해!”
“위, 위험합니다! 일단 방어선을 뒤로 더 물려서…….”
“여기서 더 물러서면 방법은 있는가?”
멧 중장의 질문에 에덤 소장은 입을 다물었다. 물러서면 설수록 더 좋지 못하다는 건 그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병사들의 목숨을 담보로 작전을 펼칠 수는 없습니다!”
그의 말에 멧 중장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해하네. 지금 이곳의 지휘관은 자네니까.”
멧 중장의 말에 에덤 소장이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자네 뜻대로 하게. 내가 너무 마음만 앞섰네.”
멧 중장이 착잡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때 다시 포효와 함께 마물들이 군주급 마물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없군. 빨리 병력을 물리게. 일단 시간이라도 끌어야겠네.”
“위험합니다! 멧 중장님과 군 소속 소환자들은 최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
“아니야. 보호할 대상이.”
에덤 소장의 말에 멧 중장이 도끼를 집어 들었다.
“우린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진 자들이지.”
“중장님.”
“에덤 소장. 병사들의 안위를 부탁하네. 각자의 전장이 따로 있는 법이니.”
“중장님…….”
에덤 소장은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이내 자신의 임무를 상기하고는 경례를 올렸다.
“부탁드립니다.”
“나도 부탁하네.”
그 말과 함께 멧 중장이 뒤를 돌아보았다.
만신창이가 된 군인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나와있던 이들이었다.
“뭣 하나! 이 똥멍청이들아! 덩치큰 파충류가 아가릴 벌리고 있지 않나!”
“옛써!”
“당장 달려!”
멧 중장의 명령에 군인들이 다시 달려 나가며 외쳤다.
“Move! Move!”
“Go! Go! Go! Go!”
-하찮은 미물들이…….
마룡의 일족인 카르탈마니어는 자신을 향해 무기를 세우고 달려오는 강림자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
-별의 파편 따위를 믿고 덤비는 꼴이 우습구나.
-만만치 않게 볼 이들이 아닙니다. 사자의 대공께서 초청을 한 마수의 군주가 자리를 내주었다고 하잖습니까.
검 보랏빛 로브를 입은 마족의 말에 카르탈마니어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마수의 군주라…… 허울뿐인 군주 아니었던가?
-허나 엄연히 마계의 일곱 군주 중 하나이옵니다.
-웃기는구나. 이딴 파편 따위들에게 당할 정도면 군주의 자격은 없는 것이다.
카르탈마니어가 강림자들을 향해 창을 내질렀다. 그럼에도 강림자들은 몸을 던져 창의 방향을 틀었다.
티칵!
조금이지만 창날이 틀어져 아래로 향하는 순간 굉음과 함께 그의 창이 바닥으로 박혀들었다.
콰콰콰쾅!
창날이 땅에 박히는 순간 카르탈마니어의 눈이 흉포하게 변했다.
-감히?
그때 말소리가 울려 퍼졌다. 동시에 그의 창대가 울려왔다.
창대를 타고 말을 탄 강림자가 질주해 오고 있었다.
카르탈마니어의 시선이 창대를 따라가는 순간 상체에 가벼운 가죽옷 하나를 입고 있던 강림자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타아앙!
굉음과 함께 총탄하나가 날아들었다.
동시에 카르탈마니어가 이를 악물며 고개를 틀었다.
피식!
볼을 찢으며 스쳐지나간 총탄에 카르탈마니어의 눈동자에 분노가 어렸다.
-감히 내 육신에!
하지만, 말을 달리던 크레이지 호스의 질주는 끝이 나지 않았다.
“호우우우우!”
손에 든 도끼를 뒤로 당기며 내달려간 그가 팔을 앞으로 휘둘렀다.
동시에 도끼가 맹렬하게 돌아가며 날아갔다. 그러자 카르탈마니어의 이마에 도끼가 틀어박혔다.
퍼어억!
그러나 그뿐이었다.
도끼는 자루까지 박혀들었지만, 거대한 카르탈마니어에 비하면 티클 같은 상처였던 것이다.
-쿠워어어어!
카르탈마니어가 창대를 흔들며 뽑아내자 땅거죽이 뒤집어졌다. 그리고 그 위를 내달리던 크레이지 호스가 떨어져 내렸다.
“호스!”
그 모습에 놀란 멧 중장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본 카르탈마니어의 시선이 돌아갔다.
-네놈이 이 파편조각의 주인이로구나.
카르탈마니어의 송곳니가 입가를 비집고 드러났다.
동시에 창대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 어떤 때보다도 빠르게 창을 내질렀다.
목표는 바로 멧 중장이었다.
“Shit!”
피해볼까도 생각했지만, 마물이 내지르는 창은 너무나도 빨랐다. 멧 중장은 꼴사나운 최후는 싫었다. 대신 대부를 들어올리며 중얼거렸다.
“제너럴 을지……”
순간 을지부루의 너른 등판이 눈앞에 떠올랐다.
콰아아앙!
이어 울려 퍼지는 굉음에 그의 몸뚱이가 낙엽마냥 날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