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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08화 (108/305)

제108화 미국의 경우

미 정보국의 케인 스미스 국장은 착잡한 심정으로 공군의 활주로에 서 있었다.

“오긴 오는군.”

서서히 내려오는 공군기를 보며 중얼거리던 그는 주변으로 시선을 옮겼다.

주변에는 눈 밑이 퀭한 연구원들이 기대 반, 초조함 반인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뒤쪽에는 짐들 사이에 각종 기계들이 뒤죽박죽으로 놓여 있었다. 하지만, 그 주변으로 인부 복장을 한 이들이 수시로 다니는 것을 보니 사전에 준비된 것으로 보였다.

“쯧.”

케인은 그들을 보며 혀를 찼다.

이미 그가 호크아이가 아님이 밝혀졌음에도 무슨 미련이 있었던지 이곳까지 따라와 있었던 것이다.

도움을 요청한 쪽에서 몰래 장비까지 들여와 상대에 대한 파악을 하려는 것 자체가 무례함이고 무리수다.

그럼에도 지금 그들의 상황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 보니, 흔한 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준비한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미국은 초강국이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우월한 감정이 바닥에 깔려 있지 않으면 이런 행동을 시도조차 하기 힘들었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연구원이나 그 위쪽 책상물림들의 판단이다.

케인의 판단은 달랐다.

그들의 일은 정보를 획득하고 분석하는 일이다.

의외로 이들은 상황을 냉정하게 본다.

너무 냉정해서 한 국가를 이용해 자신의 이득을 얻기 위한 공작을 펼치는 데에 거리낌이 없기도 하지만, 반대로 위험하다는 판단이 서는 경우에는 확실하게 거리를 둔다.

그런 의미에서 케인은 지금 이 주변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의 한국은 건드릴 상대가 아니라는 판단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그의 판단을 존중해 주어야 할 윗선에서 오판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젠장. 항상 책상물림이 문제인 거지.”

케인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투덜거림이 끝나기가 무섭게 연구원이 밝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도착했군요. 드디어 샘플이…….”

“그가 호크아이였으면 벌써 화살이 날아와 그 아가리에 박혔을지 모르는 일이지.”

“그…….”

케인이 그 연구원을 슬쩍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부탁하건대 입 함부로 놀리지 않았으면 좋겠소. 내가 아는 그들이라면 이 정도 거리에서 우리가 떠드는 것 정도는 알 수 있으니까.”

“하, 농담도…….”

연구원이 어색하게 웃다가 말끝을 흐렸다.

케인의 얼굴 위에 떠올라 있는 표정은 농담과 거리가 멀어 보였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난 이 짓을 처음부터 반대했다는 것만 알길.”

케인은 그 말을 남기고 먼저 자리를 떴다.

비행기가 도착하고 군 장성과 정부의 요인이 나아가 그들을 맞이했다. 하지만, 요식행위는 그리 많지 않았다.

상황이 상황이었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침식지 인근에 연구소가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정확히 말하면 연구소 주변으로 침식지들이 생성되어 있었다.

마치 동심원을 그리듯 말이다.

그럼에도 연구소를 옮기지 않은 이유는 오히려 연구자료의 수급이 더 좋아졌다는 이유 하나와…….

만에 하나 연구소의 존재 때문에 이 침식지들이 집중 생성된 것이라면, 안전한 곳에 자리를 옮기는 순간 그곳 역시 지옥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이었기에 이곳은 항상 최고의 장비와 시설 그리고 첨단을 달리는 방어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문제는 그 방어태세가 지금은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그나마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저 통일 한국에서 훈련을 받고 온 이들 덕분이라는 점이었다.

사실 이번 지원요청도 그들의 의견이 십분 포함된 것이었다.

연구소야 당연히 납치라도 해서 데려오고 싶었던 을지부루를 제대로 된 핑계로 끌고 올 수 있었으니 위에다 징징댄 것이지만 말이다.

사실 이 부분도 그가 불안해하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공작을 알지도 못하는 아마추어들 혹은, 극동이 아닌 중동이나 중앙아시아 쪽에서나 작전을 펼쳐 봤던 얼뜨기들이 멍청하게 나서는 상황 말이다.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가능성 높은 시나리오 중 하나였다.

그렇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감시 인원을 내부로 돌려야 했다.

‘빌어먹을 저놈들이 쓸데없는 짓을 하지 못하게 감시를 해야 할 상황이라니.’

귀한 인력을 오히려 아군을 감시하는 데에 쓰이게 된 상황에 케인 국장은 한숨을 쉬었다.

* * *

김창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벌써부터 요란하다.

“이거 정보국 애들은 아닐 거 같은데요?”

도감청 혹은 유사 장비를 확인하는 장치들이 벌써부터 요란하게 경고음을 알리고 있었다.

“당연히 아니지. 안하무인인 것 같아도 오히려 상대방에 따라 바짝 엎드릴 줄 아는 이들이니까.”

“이거 참. 그쪽도 머리 아프겠는데요? 어쩔까요?”

“일단 알려야지.”

창진이 객실 안쪽으로 걸음을 옮기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

창진의 보고를 들은 유중렬 안보수석의 얼굴이 굳어졌다.

물론 미리 창진을 통해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들었다. 하지만, 도움 요청을 한 주제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이런 짓을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물론 말씀드린 대로, 정보국은 아닙니다. 그들은 프로니까요.”

“할 말이 없군.”

“우리나라도 가끔 그런 게 있잖습니까. 이쪽은 그게 가끔이 아니라는 정도로 해석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이해관계도 복잡한 곳이니까요.”

창진의 설명에 유 안보수석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 일은 먼저 엄중히 따진 후…….”

“치라우. 어디나 버러진 있는 법 아니간?”

을지부루는 별로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을 뱉었다. 그러자 유 안보수석이 오히려 송구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일단 해결을 먼저 제가 한 뒤에…….”

“어이 창진이.”

“예.”

“기러니까, 이거 대놓고 하는 거이 미틴짓이라는 거이디?”

부루의 질문에 창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예. 일반적인 상황에서도 충분히 문제가 될 수 있는 거지만, 지금은 저쪽의 요청을 받아서 온 것이니까요.”

“기럼 찍소리도 못 하겠구나야.”

“저기 일단은 참…….”

참으시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 조금을 넘지 못했다.

왠지 모를 기대감.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그들에게 눌려 있던 마음 한쪽이 왠지 이 상황을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다.

한번 니들도 당해 봐라.

예전 그때 그날처럼 말이다.

창진이 조심스럽게 의견을 내비쳤다.

“죽이지는 마십시오.”

“걱정 말라. 내래 우루 정돈 아니어도 열에 일고여덟은 정확히 맞추는 법이니까네.”

“…….”

그 말을 하는 순간 그의 손에 마상용 단궁이 생겨났다.

그걸 보며 창진은 부루의 말을 다시 한 번 상기했다.

일고여덟은 맞춘다.

창진은 나머지 두세 명의 행운을 빌어 주었다.

아예 빗나가면 다행인 거고, 그게 아니라면 국화꽃 정도는 준비해 줄 용의가 있었다.

어찌 되었든 원인 제공은 저쪽이니 말이다.

문이 열리고 활을 든 부루가 먼저 밖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 옆에는 요원 하나가 파악한 내용을 토대로 타깃을 알려 주기 위해 따라붙었다.

“응?”

이상하다는 조짐을 읽은 것은 역시나 케인 국장이었다.

“Shit!”

그가 욕설을 뱉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냥 눈으로 보기에도 허술한데 장비까지 가지고 와서 체크를 했을 것이니 숨겨질 리가 없었다.

문제는 지금 부루의 손에 활이 들려 있다는 점이었다.

순간 뒤따라 나온 창진과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어깨를 으쓱 하고 끌어 올리는 모습을 보며 확신할 수 있었다.

케인이 연구원을 보며 말했다.

“걸렸소.”

“예?”

“이미 저들에게 걸렸단 말이오.”

그의 말에 연구원이 눈에 띄게 당황하며 말을 이었다.

“그, 그게 단순한 계측장비랑…….”

“누가 그걸 허락해 준거요?”

“그건 아니지만…….”

연구원이 우물쭈물하는 사이 뭔가가 터져나갔다.

퍼엉!

폭발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떤 종류의 기계장치가 날아가는 소리로써는 이미 충분했다.

그런 소리가 연달아 울리기 시작했다.

펑! 퍼펑! 퍼엉! 펑!

“으음.”

항공기 계단 위에 서서 연달아 화살을 날리는 모습에도 그들은 당황하기보다는 약간 불쾌함을 담은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몇 번의 소리가 연달아 나더니 이제야 조용해졌다.

“유감입니다.”

이들을 마중 나온 제임스 코너 국방장관은 고개를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이건 우리가 의도한 바는 아니었습니다. 요청하셨으면 철수시켰을 텐데…….”

말을 하지 그랬냐는 질문에 창진이 뒤를 돌아보며 대답했다.

“우리 어르신의 행동을 제가 어찌 말리겠습니까. 다만 인명피해만은 최대한 피해 달라고 부탁은 드려 놨습니다.”

창진의 대답에 코너 국방장관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느새 주변의 골칫거리를 지워 버린 부루와 일행들이 천천히 비행기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그들뿐 아니라 뒤쪽에 도착한 다른 항공기에서도 가우리의 일원들이 속속들이 내려서고 있었다.

활을 역소환시켜 사라지게 만든 부루가 코너 국방장관의 앞에 와 서더니 입을 열었다.

“쓸데없는 짓거리 말라우. 다음엔 대가릴 날려 버릴 거이니까네. 알간?”

“으음.”

순간 무례함에 대해 따지려 했던 코너 국방장관의 입이 다물어졌다.

겉으로는 뚱한 표정이었지만, 이 비슷한 표정을 알고 있었다.

전장에 너무 익숙하다 못해 삶의 일부가 된 이들의 표정이 이와 비슷했다.

마치 생명의 경중이 사라진이 분법적인 사고관을 가진 이들이나 지을 수 있는 표정이었다.

그때 부루가 다시 말했다.

“고까우면 말라. 어이 중렬이 저거이 하늘 나는 거 돌리라우. 있을 필요없갔…….”

“단속하겠습니다.”

코너 국방장관이 고개를 숙이면서 부탁을 하자 그제야 부루가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앞장 서라우. 시간이 급박하디 않네.”

“예.”

코너 국방장관은 앞장서며 이를 악물었다.

그런 그의 시선이 울상을 짓고 있는 연구원들과 그들과 함께 있던 다른 부처의 인물들을 향해 쏘아졌다.

“하아. 생각보다 더하군.”

케인 국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서 계단을 내려서는 창진을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일단 감사 치레는 해야 할 것 같았다.

죽은 이들은 없었으니 말이다. 아마 창진이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이리라 생각한 것이다.

창진 역시 이쪽의 걱정거리를 안다는 의미인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 * *

퍼퍼펑!

“버, 버텨 냈습니다!”

“빌어먹을!”

마물들의 몸을 뒤덮고 있는 것들은 일종의 에너지막으로 보고 있었다.

화기를 퉁겨 내고 못해 내고의 차이는 그 에너지막의 유무 및 농도 차이였다.

그래서 해결방안으로 같은 에너지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용한 것이 레이저였다.

문제는 그 레이저 무기가 마물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 그래도 C급에는 충분히 통하는 것으로 파악이 되니…….”

“지금 우리가 소환자들 실업자 만들자고 이 짓 하는 줄 아는가!”

방어선을 담당하는 에덤 클로드 소장이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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