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7화 목숨으로 찰나의 시간을 버는 사람들
* * *
“영웅은 개뿔.”
고빈은 방금 전에 확인한 점심 식사 메뉴를 보며 구시렁거렸다.
“니보라. 다 뱉었음 다시 해야디.”
“잠만요. 제가 이렇게 적게 먹었을 리가 없어요. 좀 더 뱉어내고…….”
“맘대로 하라.”
“오!”
웬일로 농땡이를 받아주는 을지부루의 말에 빈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물론 이어지는 말을 듣기 전까지만 말이다.
“기래 농땡이 피다가 다음 전투에 괴물 배때기 속으로 들어가는 거이디 뭐.”
“……하아.”
뭔가 강압적인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 한마디로 빈은 입가를 닦고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외부에서는 이번 전투를 그저 일방적인 승리로 포장해서 알리고 있었다.
물론 침식균열이라는 대 사건 앞에 이런 결과는 그야말로 대승은 맞았다.
만약 빈이 텔레비전을 보며 이런 기사들을 보았다면 비슷하게 생각할 수 있었을 것이다.
죽은 이들은 운이 안 좋은 것이고, 또 그들은 죽어서 영웅이 되어 전 국민적인 분향을 받고 있으니 어쩌면 더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투를 참여했던 빈은 현실을 보았다.
텔레비전에 동료를 구하기 위해 다시 마물들에게 나아가는 자신과 또 다른 이들의 모습이 마치 영웅처럼 보여졌다.
거기에 마치 헐리웃 영화처럼 고립된 전우를 구하기 위해 나아가는 인류애적인 장면도 하루가 머다하고 각종 매체에서 흘러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멈추지 말아야 하는 상황속에서 전복되고 쓰러진 동료를 외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옆에서 차량이 뒤집어졌음에도 멈추지 못하던 심정은 아무도 알려 하지 않았다.
그저 승리의 화려함만 부각시킬 뿐.
물론 그런 언론의 형태에 불만은 없었다.
그들도 모르는 건 아니다.
마물과의 전쟁 중에 생겨나는 명과 암을.
만약 이 세상에서 타 국가와의 전쟁이었다면 이런 부분도 보도 되며 우려를 낳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전쟁은 같은 인류와의 분쟁이 아니었다.
국가 간의 이해가 걸려 있거나 원한이나 분노로 시작된 전쟁이 아닌 것이다.
잠시 쉬자고 합의할 수도, 또는 화해를 통해 평화를 향해 나아가자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인 것도 아니었다.
전쟁 혹은 평화가 누군가의 양보로 선택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멈출수 없는 전쟁인 것이다.
물론 초기에는 나름 유엔에서 대대적인 인원을 통해 군주급이라던 존재와 대화를 하기 위해 나아간 적이 있었다.
처음 말이 통하지 않던 마물과 달리 그들은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였기 때문이었다.
결론을 말하자면, 온 세계의 관심을 받은 세기의 협상장면은 스너프 필름이 되어 그 장면을 지켜보던 전 세계인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그 덕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이후 이 전쟁에 대해서 평화를 외쳐 부르는 반전주의자는 찾기 힘들어졌다.
이건 인류 혹은 지구의 생존 문제임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극히 소수의 종말론자들과 신흥 종교인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렇게 곁에서 갈가리 찢기는 강림자와 소환자.
통하지도 않는 소총을 눈앞에 다가온 마물에게 끝까지 연사하다가 사지가 뜯겨지던 기동대원들.
빈이 전투에 익숙해지면서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장면들이었다.
가끔 이런 광경을 보고 침울해하는 빈에게 밝은 얼굴의 기동대원들이 찾아와 어깨를 두들겨 주었다.
‘야! 니 덕에 산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똥 씹은 얼굴이냐?’
‘인상 펴라. 지금 이건 잔치를 벌여야 하는 수준인 거다. 옛날 생각하면…….’
안면을 익힌 기동대원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그저 빈을 위한 위로는 아니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빈은 더 서글펐다.
기동대 무용론.
무의미한 군대.
비효율의 극치.
그게 기동대원들을 지칭하는 말들이었다.
그런 소리를 듣고 사는 이들이 바로 이들이었다. 군 소속이 아닌 용병이나 마찬가지인 이들이다.
그러나 빈은 그들과 함께 하면서 알 수 있었다.
지금의 군은 군인들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는 것을. 그렇기라는 것을 말이다.
그들 사이에서 월급은 사망보험금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그런데 그들과 함께 하면서 그걸 듣고 웃을 수 없어졌다.
그게 농담이 아니란 걸 알았으니까.
그들은 생명을 바꾸어 시간을 버는 것을 택한 것이다.
그 비효율의 극치를 일반 병사들에게, 징집병에게 강요할 수 없기에 스스로 이 길을 선택한 이들이었다.
이번 전투에서도 똑똑히 보았다.
군이 비교적 안전한 후방에서 화력지원에 집중할 때, 그들은 그들의 한 걸음 앞에서 위험을 벗 삼았다.
의미 없어 보일 찰나의 시간이라도 벌기 위해 모든 것을 던진다는 것을 말이다.
빈이 고개를 돌려 보았다.
이미 체력이 방전되어 사방에 전을 부치며 나자빠져 있는 이들이 보였다.
절반 이상이 바로 기동대원들이었다.
대상자인 소환자들이 이런 저런 핑계로 뒷걸음질을 칠 때 그들은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내딛어 이곳으로 들어왔다.
부러지고 토하면서도 그들은 훈련을 받았다. 조금이라도 더 살 수 있을까 싶어서 말이다.
말로는 그냥 심심해서라는 둥의 핑계를 대고 있었지만, 이번에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들도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 인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어쩌다가…….”
빈이 쓴 웃음을 머금으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다시 도끼를 집어 들었다.
그때였다.
훈련장 안으로 구은태 박사와 강문호 대위 그리고 그 뒤로 정장을 입은 중년인들이 진땀을 흘리며 달려왔다.
달려오는 모습만 봐도 뭔가 다급함이 보였다.
“대, 대장군!”
“녕감, 숨 넘어가갔어. 천천히 오라우.”
“그, 그게 지금!”
“제가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님잔 처음 보는 얼굴인데?”
부루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중년인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을 열었다.
“청와대 외교 안보 수석 유중렬입니다.”
“관에서 나온 거이네?”
“예, 뭐 비슷합니다.”
외교안보 수석이라는 말에 널브러져 있던 기동대원들이 웅성거렸다.
평소 볼 일 없는 청와대 인사가 온 것이다.
심지어 부루 앞에서 저자세를 보이면서까지 말이다.
보통 정부인사라면 어느 정도 고개가 뻣뻣할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신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물론 그런 인사가 고개를 숙일 만도 했다.
지금 부루의 위상은 그 어떤 때보다도 높았기 때문이었다.
“그, 이분에게 설명을 드리면 되는 거지요?”
영 적응이 안 되는지 직접 설명하겠다고 나섰으면서도 구 박사에게 다시 질문을 하는 유 안보수석이었다.
“예. 그래도 일단 빈 군도 와서 듣지?”
빈까지 부르는 것으로 보아 부루가 필요한 일이 생겼다는 것을 의미했다.
빈도 대충 눈치를 챘는지 다가와 귀를 기울였다.
“사실 지금 미국쪽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잘 막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전에는 침식지를 계속 막으며 저절로 마무리되기까지 시간을 끌었는데 이번에는 도무지 확장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합니다. 거기에 미국 쪽은 강림자 수는 많지만, 영웅급 이상의 강림자가 워낙에 모자란지라…….”
이건 역사가 짧은 국가들의 특징이었다.
특히 미국의 경우 더욱 그랬다. 다민족 국가인 만큼 다양한 강림자들이 존재를 했다.
그러나 문제는 미 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수가 적어서인지 토종 강림자들의 수가 극히 적었다.
원주민들이 거의 학살되다시피 한 이유가 가장 큰 것으로 예상되었다.
어쩌면 지금에 와서야 과거의 잘못으로 인해 벌을 받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결론만 말하라.”
“지원 요청입니다.”
“지원이라…….”
지원요청이란 말에 부루가 미간을 찌푸렸다. 전투가 끝난 지 이제 겨우 이틀이었다.
“그 미국이란 나라랑 친하네?”
“일단 영구적인 동맹과 같은 상황입니다. 물론 우리 쪽 의무는 그리 크지는 않습니다만.”
동맹이란 말에 부루의 입이 바로 열렸다.
“기럼 도와야디. 힘들 때 동맹을 저버리면 영원히 내편은 없는 법이디.”
“그것도 있지만, 도움을 줌으로써 얻을 것도 사실 많습니다.”
“부자면 뜯어내야디. 저번에 듣다 보니 돈은 많은 것 같은데.”
“예, 뭐. 문제는 그쪽에서 요청한 인원이 대장군이신지라…….”
이제야 부루에게 직접 온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사실 이런 건 빈에게 위에서 온 명령문을 전달하면 되는 일이었다.
문제는 부루의 존재가 대한민국에서도 핵심이었고, 또 그는 다른 강림자와 달리 독립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싫으면 강제할 수 없다는 것을 짧은 시간이지만, 잘 파악했던 것이다.
빈이 물었다.
“어쩌실 거에요?”
빈의 질문에 부루가 머릴 긁적이더니 바로 답변을 내놓았다.
“기럼 가야디. 짧디만 내 새끼들이 있는데 말이디.”
바로 미군 출신 소환자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부루가 별다른 저항 없이 대답하자 유 안보수석의 얼굴이 밝아졌다.
“죄송합니다만, 가능한 한 빨리 이동해 주셔야 좋을 듯합니다. 그쪽 상황이 너무 좋지 못해서…….”
유 안보수석의 말에 부루가 고개를 돌렸다.
“가자우.”
“예?”
“급하다 하디 않네. 지금 출발해야디.”
“아놔…….”
빈이 울상을 지었다.
“다만 가는 건 빈 그리고 광호 정도까지.”
부루의 말에 한쪽에 시체처럼 누워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광호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 뿐 아니라 그 옆에 있던 임꺽정 역시 사탕을 빨다가 움찔했다.
“그럼 언제 준비를 하면…….”
“못 들었네? 지금 간다했디 않네.”
“아, 예! 그럼 바로 이동할 헬기와 군용기 준비하겠습니다.”
부루의 허락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 유 안보수석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그걸 보며 빈이 허탈한 표정을 짓다가 전화를 걸었다.
“오마니에게 연락하는 거간?”
“아뇨. 방송장비 부탁하려고요.”
“…….”
“해외진출 브이로그랑 찍어야죠. 흐흐흐.”
이 상황에서도 일인 미디어로써의 꿈을 아직 놓지 못한 빈이었다.
* * *
“뭐야! 난 왜 빼!”
헬기로 이동을 준비하는 인원들을 보고 나서야 상황을 알아챈 구도원이 벌떡 일어서며 항변했다.
그런 도원을 보며 신컨길드원들이 혀를 찼다.
언제는 부루의 부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던 그가 이젠 왜 자기를 빼고 가냐고 화를 내는 모습이 생소했던 것이다.
그러자 옆에 있던 강문호 대위가 웃으며 말했다.
“이곳도 지켜야지 않습니까. 지금은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상황이니까요.”
강 대위의 말에 도원은 여전히 마음에 안 든다는 듯 구시렁거렸다.
“그래도 그렇지…….”
“부루 장군께서도 믿을 만한 사람을 남겨야 하니 그리 결정하신 듯합니다.”
강 대위의 말에 순간 도원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큼. 뭐 그건 그렇지. 이번엔 어쩔 수 없네. 하긴 본진을 비울 수는 없는 일이고. 또 집단속이 잘 되어야 나가서 일도 잘 풀리는 법이니까.”
순간 변한 도원의 반응에 다들 고개를 내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