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4화 하늘로 솟구치는 보랏빛
씨이이잉!
하늘에서 뭔가가 빠르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철의 비다.
콰콰콰콰쾅! 콰쾅!
쏟아져 내린 포탄들이 합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건 시작이었다.
정말로 비처럼 박격포탄들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비처럼 쏟아지는 포탄들의 화력이 더해지자, 신컨길드를 따라 몰려들던 마물들도 본능적인 것인지 잠시 추격을 멈추었을 정도였다.
그 덕에 도원과 신컨길드 등을 태운 차량 행렬은 안전하게 방어선 안쪽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후욱! 훅!”
도원이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다시 마물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젠장, 시간을 너무 못 끌었어.”
몰려오는 마물들을 바라보던 도원이 대원길드가 몰려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젠장.”
그들의 적극적인 협조만 있었더라면 조금 더 시간을 끌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투닥거려도 저번이 나았지.”
전신길드와 함께했던 작전을 떠올렸다.
특히 가우리의 기마들과 함께하던 순간.
그때는 놀라기도 크게 놀랐지만, 더없이 든든하기도 했었다. 막상 부대끼던 그들 없이 싸우려니 그 빈자리가 새삼스럽게 크게 느껴졌다.
“온다!”
누군가의 외침에 도원이 자신의 무기를 잡아들었다.
“후우.”
이제부터는 버텨야 할 시간이었다.
* * *
“우와와왘!”
옆에서 마물의 머리통이 날아다녔다. 그뿐 아니라 바닥에는 마물들의 사체가 뒹굴었다.
“나는 왜!”
“나도오!”
광호가 울부짖었고, 옆에서는 이승배가 함께 울었다.
그들의 주변에는 강림자들과 훈련받은 소환자들이 악전고투를 하고 있었다.
물론 승배와 광호의 손에도 무기는 들려 있었다.
평소 그들이 들었던 가검 같은 게 아니라 진검 같은 것들이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이들이 이렇게 침식균열까지 끌려올 일은 없었다.
그러나 을지부루의 한마디에 끌려오게 된 것이다.
이들은 영광스럽게도 고진천과 연이 닿은 여인들을 호위해야 할 임무를 받고 강도 높은 실전을 겪고 있었다.
문제는 조금 전에 일어났다.
고빈의 경우처럼 강림자가 일정 수준 이상의 마물을 상대할 때 소환자가 곁에 있어야 그 위력을 제대로 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거기에 지금 마계군주를 상대하는 병력이 고전하고 있어, 특히 임꺽정이라는 강림자를 보유한 광호는 당연히 끌려와야만 했다.
승배 역시 그의 강림자가 지금 가우리군과 함께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끌려온 것이다.
지금 전투에서 그의 강림자의 공격이 일부 마물들에게 먹히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던 것이다.
“으하하하! 이놈드으을! 어디 맛 좀 보아라!”
검을 휘두르며 마물들을 물리쳐 가는 꺽정이의 모습은 곰방대를 물고 쭈그리고 앉아 있던 불량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격 일격에 마물들이 피를 뿌리며 나자빠지고 있어, 그 위력이 예상했던 이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진! 이동! 이동!”
기동대원의 외침에 지원을 온 강림자들이 일제히 전진해 나가기 시작했다. 당연히 이들도 함께 나아갔다.
여기서 멈추면 강림자들에게 보호받는 것조차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가우리의 병사들이 이리저리 튕겨나가는 것을 목격했다.
“허억!”
하나같이 괴물 같던 가우리의 강림자들이 튕겨나가는 모습에 광호는 물론이고 승배마저도 얼어붙었던 것이다.
이곳이 바로 마계의 대공 중 하나인 마수의 군주 카샨 프리포 쿠리울을 상대하고 있는 곳이었다.
가우리 병사들이 튕겨져 나온 방향에 부루와 대치중인 쿠리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간드아!”
“가지 마!”
그때 꺽정이 힘차게 달려 나갔고, 그 모습을 보며 광호가 울부짖었다.
“전진!”
동시에 광호도 강림자들에게 들려 앞으로 전진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이미 피칠갑을 하고 정신없이 싸우고 있던 빈의 옆이었다.
“형은 웬일이래요?”
이제는 조금 차분해진 빈의 질문에 광호가 울먹이며 답했다.
“저 새끼 때문에!”
“으하하하!”
꺽정이가 쿠리울을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웃음소리와 함께 튀어나온 꺽정이가 환도를 휘두르자 쿠리울이 인상을 찌푸리며 팔을 휘둘렀다.
그런데 험악한 인상과는 다르게 바닥을 굴러 다가오더니 그의 발등을 역수로 쥔 환도로 찍었다.
콰작!
-이건 또 뭐냐!
쿠리울이 발등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꺽정이의 머리통을 박살이라도 내려는 듯 갈퀴처럼 만든 손으로 내리찍었다.
순간 손톱이 십여 센티는 쭉 늘어나며 위협적으로 변했다. 그러나 그 공격은 갑자기 끼어든 창날에 막혔다.
카가가각!
동시에 부루의 대부가 쿠리울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콰작!
-캬아아아악!
마침내 쿠리울의 입에서 비명이 튀어나왔다.
부루가 휘두른 대부가 옆구리에 틀어박혔던 것이다.
물론 평소라면 양단을 하고도 남을 일격이었지만, 쿠리울 자체의 방어력이 높은지 일부만 박혀들었다.
그럼에도 쿠리울에게는 큰 정신적인 타격이었던 것이다.
순간 쿠리울의 몸에서 보랏빛 광원이 폭발하듯 퍼져 나갔다.
“우어!”
“어이쿠우!”
쿠리울의 손톱을 대신 막아 주었던 천유화나 발등을 찍어낸 뒤에 곰방대를 휘두르던 꺽정이가 저마다 놀라 비명을 터트리며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하지만 단 한 명.
부루만은 마치 태풍을 홀로 버티는 듯 멈추어 서 있었다.
마기의 폭풍이 사방으로 모든 것을 날려 보낼 때 부루는 뽑아 낸 대부를 뒤로 당겨 쥐고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그 반탄력에 버티고 섰던 것이다.
-너?
“시원하다 야.”
부루가 히죽 웃음을 머금더니 대부를 다시 휘둘렀다.
부와아악! 동시에 쿠리울이 대부를 향해 손을 휘둘렀다. 아까와 같이 손톱이 칼날처럼 자라났다.
콰차창!
휘둘러온 대부와 맞닿는 순간 손톱이 마치 유리 깨어지듯 깨져 나갔다. 이어 대부는 그대로 쿠리울의 손바닥을 가르며 나아갔다.
-키야악!
쿠리울의 비명성이 울려 퍼졌다.
부루의 대부가 하박까지 갈라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공격은 끝나지 않았다.
부루가 한 걸음 크게 내딛으며 몸을 반 바퀴 돌렸다.
이어 하박까지 가르고 들어갔던 부루의 대부가 뽑혀지며 부루의 회전을 따라 크게 반원을 그리더니 그대로 등짝을 후려쳤다.
쩌엉!
아까와는 달리 대부가 닿는 순간 쿠리울의 등짝에 보랏빛 기운이 뭉쳐지더니 대부를 막아 내었다.
그러나 그 충격력만큼은 해소하지 못했는지 앞으로 거세게 퉁겨져 날아갔다.
콰아앙!
쿠리울의 몸뚱이가 바닥을 파고들었다. 그러나 이 정도 충격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벌떡 일어나는 순간…….
쩌엉!
-캭!
쿠리울의 머리통을 뒤흔드는 충격이 울려퍼졌다.
“으하하하!”
꺽정이가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모를 방패로 몸을 일으키는 쿠리울의 머리통을 내리쳤던 것이다.
물론 그 덕에 방패는 마치 모자 마냥 가운데가 움푹 들어갔지만,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 버러지 같은 것들이…….
한쪽 무릎을 꿇었던 쿠리울이 몸을 일으키며 분노하다가 순간 말을 끊었다.
주변을 빙 둘러싸고 있는 것들.
“조지자아아!”
꺽정이의 외침에 그를 둘러싸고 있던 가우리 병력들이 일제히 가진 무기를 찔러 넣고 두드리기 시작했다.
퍼퍼퍼퍽! 푸푹! 핏!
일시에 쏟아진 다구리에 쿠리울이 순간적으로 팔을 휘둘러 보호막을 만들어 내었지만, 일부 무기는 그 보호막마저 찢어내며 몸통에 상체를 만들었다.
특히 유화의 창이나 꺽정이의 환도는 제대로 상처를 만들어 주었다.
그 순간 쿠리울이 다시 몸의 기운을 웅축했다.
“방패!”
동시에 유화의 외침이 터져나왔다. 그러자 뒤 열에 있던 방패들을 일제히 땅에 박아 넣으며 뉘이듯 기울였다.
동시에 쿠리울을 두들기던 이들 역시 방패 뒤에서 몸을 납작 엎드렸다.
푸화아아악!
아까와 같은 보랏빛 광원이 쿠리울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동시에 폭풍과 같은 충격이 주변을 휩쓸었다.
그러나 결과는 아까와 달랐다.
비스듬히 눕힌 방패들이 상당수의 충격을 위로 흘려내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런 빌어먹을 일이!
쿠리울이 당황하는 순간 호피 옷을 입고 있던 꺽정이가 다시 외쳤다.
“조지자아아아!”
동시에 공격아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
창을 찔러 넣던 유화가 황당한 표정으로 꺽정이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이건 어디서 나타난 물건이기에 자꾸 명령을 가로채!”
“꺽정이라 불러라.”
“시끄러!”
꺽정이의 태연한 대답에 유화가 발끈하면서도 창날을 찔러 넣었다.
그 순간 마물과 마수들이 쿠리울을 구하기 위해 사방에서 몰려들었다.
하지만 묵갑귀마대들이 주변을 맴돌기 시작하며 몰려드는 마물과 마수들을 쳐내기 시작했다.
두두두! 두두두!
원을 그리며 마물과 마수들을 쳐내는 그들의 틈에서는 궁수들이 외부를 향해 화살을 연신 쏘아내었다.
쿠리울을 쳐낸 뒤 잠시 마수와 마물들에 둘러싸였던 부루가 외쳤다.
“길 만들라우!”
둘러싸던 마수와 마물들을 적당히 처리한 부루가 몸을 띄우더니 다시 달려들던 마물의 머리통들을 징검다리 밟듯 밟으며 빠르게 나아왔다.
이어 몸을 띄운 부루가 원을 그리며 달리던 묵갑귀마대의 말 엉덩이를 밟고 안쪽으로 나아갔다.
그와 함께 병사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윗등을 내보였다.
터터터턱!
그들의 등을 밟으며 나아간 부루가 몸을 띄우며 대부를 위로 치켜 올렸다.
-크아!
웅크렸던 쿠리울이 몸을 뒤틀어 내며 양팔을 휘둘렀다.
그러자 주변에서 공격 중이던 강림자들이 일제히 뒤로 퉁겨져 날아갔다.
지금까지와 달리 다급한 움직임이었다.
머리위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쿠리울이 고개를 올려다보니 부루가 대부를 내리찍으며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감히 나를 이 꼴로 만들어!
쿠리울이 기운을 끌어올리자 마치 그의 주변으로 보랏빛 일렁임이 마치 불길처럼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이어 그의 한 손에 기운이 몰려들었다.
부와아악!
그때였다.
콰콱!
쿠리울의 얼굴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의 눈동자가 살짝 옆으로 돌아갔다.
“젠장!”
밀려났던 유화가 그의 옆구리에 창을 내질렀지만 표정은 좋지 못했다.
쿠리울이 끌어올린 기운이 일종의 방어막을 형성한 것 때문인지 창끝 정도만 거죽을 뚫고 들어간 정도에 그쳤다.
그때였다.
“단단히 잡아라아!”
뒤쪽에서 울려오는 외침에 유화가 순간 창을 고정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부와아악!
환도를 뒤집어 쥔 꺽정이 마치 타자가 투수의 공을 타격하듯, 그대로 유화의 창대 끝을 날이 없는 뒷부분을 이용해 사정없이 후려쳤다.
따아아앙!
쇳소리와 함께 창대에 짜르르 울려오는 진동.
효과는 있었다.
거죽정도만 찔러 넣었던 창날이 움푹하며 쿠리울의 옆구리를 놓고 들어간 것이다.
동시에 쿠리울의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럼에도 지체할 수 없다는 판단 때문인지 손으로 모았던 기운을 하늘로 쏘아 올렸다.
쿠와아앙!
동시에 쿠리울을 중심으로 보랏빛 기운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콰콰콰콰콰!
엄청난 기운에 유화는 창대를 놓치고 뒤로 나자빠졌다. 바로 뒤에 있던 꺽정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나자빠진 이들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날아 내려오던 부루의 몸뚱이는 이미 솟구쳐 오른 보랏빛 섬광에 삼켜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