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쿠리울
카드드득!
회전하는 창날이 쿠리울의 어깨를 뚫었다. 그러나 창두의 삼분지 일쯤이 박혀 들어갈 즈음 유화는 반사적으로 상체를 뒤로 젖혔다.
“으헉!”
조금 늦었는지 그의 머리 가운데를 스치고 보랏빛 광선이 지나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쿠리울의 손에서 주먹만 한 보랏빛 기운이 맺히더니 그대로 유화의 복부를 후려갈긴 것이다.
“꾸웩!”
돼지 멱따는 소리와 함께 유화가 그대로 뒤로 퉁겨져 날아갔다.
그렇게 한 이십여 미터를 날아간 유화의 몸뚱이가 바닥에 퉁겨지고도, 힘을 못 이겨 열댓 바퀴를 더 굴러가고 나서야 창을 바닥에 찍어 멈출 수 있었다.
“크으으…….”
인상을 찌푸린 유화가 정면을 바라보았다.
언제 달려왔는지 부루가 다시 대부를 휘두르며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주변으로 말 위에 오른 묵갑귀마대원들이 교차하듯 스치며 견제공격을 넣고 있었다.
다시 몸을 일으키던 유화가 휘청였다.
“이거 장난 아닌데?”
유화는 덜덜 떨리는 다리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제대로 된 타격은 한 방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충격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풉!”
그때 빈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웃음이 나오…….”
발끈하며 화를 내려던 유화는 빈뿐만 아니라 그 주변의 가우리 병사들이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뭐, 뭔데?”
무언가 불안함을 느낀 유화의 질문에 빈이 자신의 팔뚝에 달린 패드를 유화에게 비춰 주었다.
그러자 패드에 자신의 얼굴이 비춰졌다.
“이런 썅!”
순간 유화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왔다.
얼굴이 붉게 타오르기 시작한 유화가 달려 나가면서 한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의 손에 투구가 생성되었다.
유화는 투구를 머리에 눌러쓰며 분노에 찬 외침을 터트렸다.
“똑같이 해 주겠드아아!”
아까 머리 가운데를 스쳐간 일격. 그 덕에 가운데 머리가 깔끔하게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으음.”
망원경으로 전투를 지켜보던 이원철 소장의 입가에서 침음성이 절로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마물을 상대로 절대 밀린 적이 없던 가우리의 병사들이 고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부는 부상이 중한 듯 뒤로 물러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부루와 유화 역시 몇 번이고 타격을 입고 뒤로 퉁겨져 나오기를 반복했다.
“지금까지와는 확실히 다릅니다.”
참모의 목소리에는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그때 일단의 병력들이 마물들을 쓰러트리고 전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소수의 훈련병 출신 소환자와 강림자들이었다.
그들이 자신의 강림자와 지휘권을 이양 받은 강림자들을 이끌고 전장에 합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전령이 다가와 TA-1유선전화기를 내밀었다.
“방어선에서 연락입니다.”
“아, 그래. 알아봤나?”
[그게 고빈 그 친구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다고 합니다!]
“그건 무슨 소린가?”
[말 그대로입니다. 아직 그 범위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고위 개체의 경우는 소환자인 고빈 씨가 강림자들과 가까이 왔을 때 비로소 공격이 먹히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뭐?”
[심지어 근접했을 때와 아닌 때의 공격력에도 차이가 있다고 합니다.]
“그럼 다른 소환자의 경우에도?”
[왜 그거 있잖습니까. 전신길드나 신컨길드의 경우 일부 특정 강림자들의 전투력이 더 발휘했던 것 말입니다.]
“음.”
[그게 원인 미상이었지만, 왠지 이번에 제대로 밝혀질 듯합니다.]
“지금 합류하는 병력들을 살피면 뭔가 답이 나오겠지. 알겠네.”
[예! 고생하십쇼!]
기동대원과의 통화를 마친 이 소장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중얼거렸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제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겠군.”
* * *
전신길드원들은 정신이 없었다.
오랜만의 단독작전이라서가 아니었다.
“젠장! 빨리 커버 들어가라고!”
투투투퉁! 투투퉁!
유탄이 쏘아져 나가는 소리가 고막을 뒤흔들었지만, 이제는 꽤나 익숙해진 느낌이었다.
문제는 쉴 틈 없이 몰려오는 마물들이었다.
예전 대침식 때야 전부들 라인을 맞춰 가며 전투를 했지만, 지금은 그들이 핵심이었다.
오히려 라인 안으로 들어가 이전 미끼팀마냥 마물들을 꼬리에 매달고 달리면서 숫자를 조금씩 줄여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름 전장을 제대로 누비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을지부루 일행들과 함께 하던 전투와 지금의 차이가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직접적으로 체감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목적이 오로지 시간 끌기였기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정신이 지쳐 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전투에 임할 때야 기회가 오면 직접 군주급이라 불리던 마물을 처리하겠다고 생각했었지만, 막상 전투에 들어가니 그런 생각은 쏙 들어가 버렸다.
버티는 것만 해도 진이 빠질 정도였다.
“교대한다!”
전신길드장 임병화의 명령이 떨어지자 퇴각 깃발이 선두 차량에서 올라와 휘둘러졌다.
그러자 차량들이 일제히 반전하기 시작했다. 마치 이 순간을 꼭 기다렸다는 것처럼 말이다.
칼퇴근을 기다리던 회사원들 마냥 말이다.
그때였다.
뒤쪽에서 무언가가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뭐, 뭐야!”
퉁! 투투퉁! 퉁!
마치 유탄을 쏘는 것 같은 소리가 울려 왔다.
“아까 그놈들인가?”
꽃 모양을 하고서는 포탄을 쏘아대던 마물이 떠올랐던 것이다.
“다, 다른 건데 사거리가 짧은데요?”
검은 씨앗 같은 것이 하늘로 산탄처럼 쏘아졌다가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빨리 이탈해!”
뭐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들이 이탈하면서 주변에 떨어진 검은 씨앗들을 보았다.
하나하나가 애기 머리통만 해 보였다.
“뭐지?”
그때 그들이 스치면서 본 것은 검은 씨앗에서 하얀 뿌리가 튀어나와 땅바닥에 파고드는 장면이었다.
병화도 퇴각을 지휘하면서 관찰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뿌리내리기를 얼마나 했을까. 갑자기 땅바닥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투화악!
거친 파열음과 함께 땅바닥을 뚫고 솟구쳐 오른 것은 보랏빛을 피는 녹색 넝쿨이었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 있는 것 마냥 주변의 것들을 끌어들였다.
마물이나 얼쩡거리던 강림자 할 것 없이 모두 잡아끌었다.
아니 마치 거미가 사냥감을 보관하듯 칭칭 감더니 넝쿨의 끝을 몸통에 박아 넣었다. 그러자 마물들이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뼈만 있는 해골형 마물들 역시 다를 바 없었다.
다른 개체마냥 쪼그라들 것은 없었지만, 빛깔이 점차 탁해지더니 마치 연탄재가 부서진 것마냥 흩어져 버렸다.
“허…….”
그러더니 넝쿨들의 굵기가 더욱 두터워졌다. 이어서 서로 싸우듯 엉키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 형태를 갖춰 가기 시작했다.
“하아. 저건 또 뭐라고 해야 하지?”
병화가 그걸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서로 엮이고 엮인 넝쿨들은 벽을 만들어 나갔다. 이어서 실시간으로 넝쿨로 만들어진 성벽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방어선 안쪽으로 들어왔을 때 이미 십 수 미터는 되어 보이는 높이의 성이 만들어져 있었다.
* * *
“방역을 불러 방역을!”
신컨길드장 구도원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주변에는 벌레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작은 거미 떼는 그렇다 쳐도 SF 영화에서나 구경하던 사마귀 형태의 마물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위협적이었다.
커다란 낫을 휘두르니 달려가던 차량은 물론이고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과 강림자들까지도 그대로 반쪽을 내 버렸다.
사방에서 총류탄이 쏟아졌다.
각종 화기류에 적중하며 비틀거리기는 했지만, 중요한 건 갑각을 제대로 뚫지는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나마 그게 통한다는 걸 알 수 있던 게, 같은 자리에 와 닿은 유탄 등 반복된 타격에는 단단한 갑각도 깨어지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깨어진 갑각으로는 어떤 공격도 다 먹히는 것 같았다.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심지어 전투의 한 축을 차지해야 할 대원길드가 수성에만 집중하고 있어 더욱 도원의 분통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때 바닥에 진동음이 크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설마 이거?”
왠지 이것만큼은 어떤 놈인지 알 것 같았다.
“퇴각해야 하오!”
그가 느끼는 것과 동시에 참고 참던 그의 강림자 김경징이 창백해진 얼굴로 외치고 있었다.
김경징의 위험알람에 도원이 외쳤다.
“퇴각! 방향 돌려!”
그의 외침에 차량들이 일제히 방향을 틀었다.
되돌아가며 도원이 다시 외쳤다.
“언더로드다아아아!”
B급으로 분류된 존재.
언더로드가 방금 도원이 스쳐지나간 곳을 뚫고 솟구치며 포효하고 있었다.
언더로드가 솟구치고 곤충형 마물들이 달려들자, 방어선의 강림자들의 표정이 굳어졌다.
지금까지 시간을 끌어 주던 신컨길드 또한 빠르게 퇴각 중이었기에 이목이 분산되었던 마물들이 그 뒤를 따라 몰려오고 있었다.
퇴각중인 신컨길드를 보호하기 위해 전차포나 여타 고정화포들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콰앙! 쾅! 쾅!
연달아 울리는 폭음에 곤충형 괴수들이 솟구쳐 올랐다.
그 모습을 보며 소환자들이 환한 얼굴을 하며 외쳤다.
“역시 포방부!”
대포 성애자 혹은 국방부 대신 포방부라 불리는 우리나라 군대 답게 동원되어 있는 포들의 숫자는 다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실질적으로 장벽의 협소함 때문에 더 많은 포를 배치하지 못하자, 다른 수단을 강구했다.
“내 살다 살다 박격포를 이렇게 무식하게 운용할 줄은 몰랐다.”
“내 말이.”
“우리 같은 예비군까지 동원할 정도잖아.”
장벽 밖에는 서 있는 이들은 대다수가 예비군들이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현역 중에는 운용병의 숫자가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박격포였다.
특히 편제가 바뀌며 KM181박격포 등의 60mm 박격포 등이 꽤 적극적으로 동원되었다.
그렇게 60mm와 81mm 박격포가 동원되어 있었는데 그 숫자가 열 포대 이상이 세로로 줄을 세운 뒤 장벽의 진입로를 제외한 모든 곳에 방열되어 있었다.
심지어 일부는 북한의 82mm도 있었다.
전부 하늘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이 장관이었다.
“조심해! 탄 하나 잘못 떨구면 뒈진다!”
“조심조심!”
포와 포 사이는 채 십 미터도 안 되었다.
그래서 만에 하나 사고라도 나면 큰일이기에 각 포진지는 생각보다 꽤 깊게 들어가 있었다.
만에 하나 폭발 사고가 난다 해도 다른 인근의 포에 파편이 튀지 않게 하기 위한 고육지책이었다.
다만 포진지의 인원이 탈출하기에는 꽤나 어렵긴 했다.
그럼에도 이게 최선이기에 어쩔 수는 없었다.
모든 포들은 이미 좌표를 고정하고 있었다.
형태는 진내사격에 가까운 운용이었다.
“대가리 올리지 마! 고막 나가! 고각이라 해도 귀청 떨어지니까 알아서들 조심해!”
“병신아! 이게 훈련인 줄 알아!”
예비군들이었지만, 그 군기는 엄정했다.
상당수는 대침식을 겪은 병사들 출신이었기에 그 이후 전역한 군인들은 신병 취급을 받을 정도였다.
“신호다!”
“각 기준포!”
백여 대의 박격포들 앞에는 각기 한 명씩 포반장이 제어를 하고 있었다.
그중에 가장 앞 열의 박격포들 중 다섯 대에 하나 정도만 장전을 마쳤다.
좌표를 미리 설정했다지만, 신중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포구 장전 끝!”
포구에 포탄을 잡고 서 있는 예비군들의 시선은 모두 각자의 포반장을 향하고 있었다.
“쏴!”
동시에 깃발이 크게 휘둘러지며 박격포들이 초탄을 쏘아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