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2화 빈의 존재이유?
부루는 순간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까도 도끼질이 안 먹힌 것은 아니었지만, 덩치를 생각한다면 그 피해가 큰 것은 아니었다.
그랬는데 방금 공격들은 이상하게도 아까와 달리 제대로 들어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상대방의 상황이 무언가 바뀐 것도 아닌데 갑자기 공격이 조금씩 먹히기 시작하니 말이다.
물론 여전히 성에 차는 타격은 주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기럼 이제부터는 제대로 해 보디.”
한쪽 입꼬릴 올린 부루가 다시금 대부를 휘둘렀다.
쯔컥!
“으잉?”
자신만만하게 휘두른 대부가 가죽을 뚫고 들어가다가 멈추었다.
처음과 같은 상황이 다시 벌어진 것이다.
어이가 없었던 부루가 머리 위에 드리워진 그늘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니엔장! 이 거이 왜이래 지랄 맞는 거이야!”
버럭 욕설을 내뱉은 부루가 몸을 날리는 순간 가운데 머리가 그가 있던 땅바닥을 물어뜯었다. 이어서 왼쪽머리가 불을 뿜었고 오른쪽머리가 냉기를 뿌렸다.
“캬악!”
수염의 일부는 끄슬렀고, 나머지 일부에는 허연 서리가 생겨 얼음 알갱이가 대롱거리며 매달렸다.
부루의 악전고투를 바라보던 유화가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뒤에다가 말을 했다.
방금 전 날린 화살도 거죽에 튕겨서 바닥에 떨어져 내렸다.
분명 몸통에 틀어박혔던 것을 기억하는데 말이다.
유화가 고개를 돌리며 힘주어 말했다.
“당장 데려와!”
유화의 말에 기마들이 일제히 뒤로 달려 나갔다.
잠시 뒤 얼떨떨한 표정의 빈이 다시 되돌아 왔다.
“아니 왜 사람을 자꾸 이리저리…….”
빈이 항변에도 이들의 이목은 부루를 향해 있었다.
“먹히네?”
부루가 휘두른 대부에 상처가 큼직하게 나더니 핏물이 뿌려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뿐이 아니었다.
화살을 날리니 날리는 족족 튕겨나가던 것들이 이제는 제대로 박혀 들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빈을 향했다. 무언가 불타오르는 듯한 눈동자들이었다.
“자, 잠깐. 왜 눈빛들이 그래요?”
그 모습을 본 빈은 순간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빈은 이내 뒷덜미를 잡혀 말 위로 끌려올라갔다.
“전진이다!”
“잠깐! 잠까아아안!”
순간 유화와 일행들이 빈을 들쳐 매고는 나아가기 시작했다.
부루는 황당했다.
도끼질이 다시 먹히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점점 제대로 힘을 준 만큼 상대에 타격이 제대로 먹히기 시작한 것이다.
부루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게르하록 역시 상처가 커지자 점차 당황한 것 같았다.
짐승의 얼굴이었지만, 고통에 찬 모습이 분명 당황한 것이 분명했다. 그때였다.
와아아아!
뒤쪽에서 웅성이는 음성이 점점 가까워져 왔다. 묵갑귀마대원들이었다.
“내래 오디 말라고…….”
“오지 말라 했다잖아요! 제발 놔 줘요! 으아악! 스, 스쳐도 죽는다니까요!”
그곳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부루가 뒤로 빠지며 돌아보자 유화의 말안장에 강제적으로 태워진 것 같은 빈이 울상을 짓고 있었다.
“알았습니다! 장군!”
“뭘 말하는 거이간?”
“빈이 가까이 오면 제대로 공격이 먹힌다고요!”
유화의 외침에 부루가 인상을 찌푸렸다.
“기거이 무슨 소리네? 일전에도 내래…….”
“그간 만만한 놈들이라 먹혔던 거고, 제대로 된 놈들이 나오면 이놈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한번 해 보십쇼!”
그때 부루를 향해 게르하록의 앞발이 내리찍혀 왔다. 동시에 부루는 피하기보다는 정면으로 받아치기로 했다.
부와아악!
내리찍어오는 게르하록의 앞발을 향해 부루가 대부를 횡으로 그었다.
쩌걱!
케애애애애앵!
동시에 울려 퍼지는 비명.
피가 사방으로 비산했고 부루가 대부를 휘두른 후에 그의 머리 뒤로 날아가 떨어지는 것이 있었다.
쿠웅!
“이거이…….”
대부를 휘두른 부루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게르하록의 발의 앞부분이 그대로 잘려서 부루의 머리 뒤쪽으로 떨어져 내린 것이다.
게르하록은 뒤꿈치 부분만 남은 발을 들고 연신 뒷걸음질을 치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거 보라고요! 모두 쏴!”
화살과 손도끼가 일제히 날아들었다. 그러자 화살은 족족 박혔고, 손도끼마저 몸통에 여기저기 틀어박히기 시작했다.
심지어 기율은 단창 하나를 들어 집어 던졌다. 그러자 허공을 가르며 날아간 창대가 절반가까이나 박혀 들어갔다.
크허어어엉!
또다시 울려 퍼지는 게르하록의 비명소리, 그때 부루의 시선이 울기 직전의 빈과 마주했다.
“이, 이건 우연이라고요오오!”
빈의 항변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부루는 그의 항변에 대답대신 입 꼬리를 천천히 끌어올렸다.
그 어떤 대답보다도 진실된 감정을 표현하는 미소였다.
-이게 대체?
게르하록의 비명에 쿠리울이 눈에 띄게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게르하록의 전투력은 상위 마족 이상이었다.
심지어 일부 최상급 마족보다도 강한 개체로 인정받는 게 바로 게르하록이었다.
쿠리울이 일곱 군주의 말석이라지만 게르하록 그 자체는 마계의 전투력 상위권에 놓여 있었다.
그런 게르하록이 갑자기 고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찌 된 거냐!
쿠리울이 노한 얼굴로 소리를 쳤다. 하지만 절뚝거리며 뒤로 물러나던 게르하록이 순간 다시 브레스를 뿜어내었다.
화염이 쏟아져 나갔다. 그 순간 다들 이리저리 물러섰다.
일부가 화염에 노출되어 이리저리 뒹굴었다. 그러나 그마저도 뒤쪽에서 달려온 동료들이 끌고 나가면서 이어진 얼음폭풍을 동반한 브레스가 쏘아질 때에는 피해가 더 줄었다.
-어찌…….
이 결과마저 쿠리울은 충격인 듯했다.
“괜찮냐?”
유화가 게르하록이 쏘아낸 불과 얼음의 공격에 다친 병력을 돌아보며 외쳤다.
가볍지는 않았지만, 또 그게 당장 죽을 정도로 위급하지도 않았다.
“버틸 만합니다!”
“걱정 마쇼!”
목소리들을 보니 우렁찬 것이 다들 살 만해 보였다.
“이것 역시…….”
유화는 다시 뒤쪽의 빈을 바라보았다.
왠지 이 피해도 그가 있어서 경감이 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체 이유가 뭘까요?”
유화의 곁에 있던 묵갑귀마대원의 질문에 그는 고개를 슬슬 내저었다.
“정확한 건 모르겠지만, 이후의 전투에 있어 빈이, 혹은 다른 소환자들의 전장에서의 존재 유무가 큰 차이를 가져오지 않을까 생각이 되네.”
“그렇겠네요. 만약 빈이나 우리 장군님만의 특징이 아니라는 것만 확인이 된다면…….”
왠지 희망의 싹이 좀 더 커질 것 같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채워졌다.
그때 부루가 대부를 고쳐 잡으며 말했다.
“뭐 떠들어 댈 일 있는 거간?”
부루의 말에 다들 각자 무기를 고쳐 잡았다.
“물들어오면 노저어야디?”
그 말과 함께 부루가 달리자 다들 일제히 내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이 파편 따위들이!
게르하록의 머리위에 있던 쿠리울의 몸이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가 내려서는 순간 게르하록이 구슬픈 소리를 내며 몸을 옆으로 누였다.
아우오오오.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다리 네 개 중에 두 개는 더는 성하지 않았다. 하나는 무릎 아래가 잘려나가 있었고, 나머지 하난 살이 다 발라진 것 마냥 허연 뼈가 드러나 있었다.
몸통이라고 나은 건 없었다.
이게 늑대형 마수인지 아니면 고슴도치형 마수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특히 머리통 세 개 중에 두 개는 이미 혀를 빼물고 축 쳐져 있는 게 마치 죽은 것 마냥 보였다.
나머지 하나도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지는 것 같이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 커다란 머리 통 위에 발 하나가 턱 하니 올라왔다.
“어데 가네? 이리 오라우.”
부루가 게르하록이 쓰러지기 직전 날아 내린 쿠리울을 향해 손짓을 했다.
도발하듯.
이어서 부루가 대부를 크게 들어올렸다. 그 순간 게르하록의 머리통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부루의 대부가 떨어져 내렸다.
콰자작!
머리통 한가운데가 쩍하니 갈라지며 허연 두부 같은 것이 튀었다.
쩌억! 쩍!
연달아 내리쳐지는 도끼질에 꿈틀거리던 게르하록의 몸뚱이는 점점 힘을 일어갔다.
콰작! 콱! 콱! 콱!
연신 내리쳐지는 도끼질. 하지만 게르하록은 비명도 몸부림도 없었다.
그저 쪼개진 머리통을 세상에 드러낸 채 싸늘하게 식어 갈 뿐이었다.
그런 부루의 도발에 쿠리울이 보랏빛 기운을 사방에 뿌리더니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
콰아아앙!
곧이어 굉음이 울려퍼지더니 부루의 몸뚱이가 한쪽으로 튕겨나갔다.
와장창!
전복되어 있던 차량을 몸뚱이로 부수고 지나간 부루가 바닥을 한 번 더 찍더니 튀어 올랐다가 떨어져 내렸다.
쿠우웅!
순간 시위에 정적이 돌았다.
부루가 이정도로 튕겨져 날아간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바닥에 널브러졌던 부루가 다시 몸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이 거이 기분 더럽구나 야.”
부루가 입가로 비어져 나온 핏물을 손등으로 쓰윽 닦아내었다.
그러자 핏물이 닦여나가다가 허공으로 흩어져 나갔다.
-그 입. 닥쳐라.
쿠리울이 으르렁거리며 부루를 노려보았다.
“아. 어디 함 붙어 보자우.”
부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쿠리울의 모습이 다시 잔상만을 남기고 사라졌다.
콰앙!
이번에도 다시 나타난 쿠리울은 팔을 휘두른 상태였다.
부루의 몸은 다시 한쪽으로 미끄러져 가다가 연이어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막았는지 대부의 날을 한 손으로 잡고 있었다.
그런 쿠리울을 향해 화살들이 쏟아져 나갔다. 하지만, 쿠리울이 쏟아지던 화살들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화살들이 전부 허공에 멈추었다.
“헐?”
“이런!”
순간 화살을 쏘아냈던 가우리의 병사들이 이를 악물더니 긴장하기 시작했다.
허공에 뜬 화살들을 향해 손을 뻗었던 쿠리울이 주먹을 움켜쥐며 당기자 화살들이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는 이내 마치 밥상 위를 쓸어내듯 팔을 휘둘러내자 멈추어 있던 화살들이 일제히 쏟아져 나갔다.
피피피픽!
바람소리와 함께 되돌아간 화살들은 가우리 병사들을 두들겼다. 반 정도는 막혔는지 사방으로 튀었지만, 일부는 그대로 병사들의 몸뚱이에 틀어박혔다.
화살에 맞은 이들이 부루와 마찬가지로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하지만 그 사이 내달려간 묵갑귀마대원들이 각자의 병장기를 쿠리울에게 휘둘렀다.
카가각! 카카캉! 캉!
쿠리울의 움직임은 그야말로 잔상만 보일 뿐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두들겨 대었던 무기들은 그대로 튕겨져 나갔다.
이어서 쿠리울이 다시 한 방향으로 손을 휘두르자 보랏빛기운이 초승달 모습으로 쏘아져 나갔다.
그 영역에 있던 가우리 병사들의 몸뚱이가 뒤로 튕겨져 날아갔다.
콰당탕탕탕!
이리저리 날아간 병사들이 마치 부채꼴로 나뒹굴고 있었다.
다들 안색이 별로 좋지는 못했다. 이어 유화의 창이 쿠리울을 노리고 쏘아졌지만 그마저도 손으로 잡아챘다.
그때였다.
“키야아아악!”
쿠리울에게 잡힌 창을 유화가 기괴한 기압성과 함께 빙그르르 돌리자, 쿠리울의 손에서 연기가 나면서 다시 움직여졌다.
투칵!
유화의 창끝이 그대로 자유를 얻으며 쿠리울의 어깨를 찍어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