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1화 구경꾼의 역할?
* * *
대 마물 비상대책 위원회장에서 보고를 받은 양현재 대통령은 당황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칠 대공 중 하나가! 그, 그럼 다른 곳 상황은 어떤가!”
“나오긴 했지만, 그 개체가 칠 대공이라 분류되는 존재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본인이 밝혀서 그나마 알게 된 사실입니다.”
청와대 비서실장의 답변에 양 대통령은 이마를 감싸 쥐었다.
전 세계를 통 틀어서 대한민국에서만 세 곳에서 침식 균열이 일어난 상황.
왜 유독 이 나라에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가 한탄을 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잘 이겨내 오고 있기에 최근에는 기대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대공이 나타났다는 말에 심각해지지 않는 게 이상했다.
“인천과 부산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방어계획안대로 나머지 두 지역은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계획대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후우.”
양 대통령이 다시 긴 한숨을 내 쉬었다.
“군은 어떻게 움직이고 있습니까.”
양 대통령의 질문에 국방장관이 대답했다.
“일단 육군 항공대의 공격헬기가 서울쪽으로 동원되어 공중으로 이탈하려는 마물들을 요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나마 요격이 가능한 것이 다행입니다.”
“예.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소형 다목적 헬기도 동원해서 원거리 타격이 가능한 강림자들과 함께 작전을 수행하는 중입니다.”
“이제는 하늘도 안심할 수 없군요.”
대통령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화기가 안 먹히는 개체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지옥이다.
국민의 안전을 더욱 보장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대공 능력이 있는 비호까지 동원해 놓은 상황입니다. 다른 두 곳의 침식지에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서 대공 능력을 강화해 놓았습니다.”
이후로도 대책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지만, 양 대통령을 비롯한 위원회 위원들의 표정은 여전히 펴질 줄을 몰랐다.
“그저 믿는 길밖에 없는가…….”
서울 테러의 용의자들과 연관이 있는 강림자. 지금은 그가 유일한 구원자일 뿐이다.
* * *
“지랄 말라. 듣기로는 허섭떼기라 하더만 여긴 뭐 먹을 게 있다고 쳐 기어 내려온 거간?”
천유화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을지부루가 팩트 폭력을 가하자 마수의 군주 카샨 포 쿠리울이 포효를 내질렀다.
-파편 따위가 감히!
“내레 허섭떼기에 들을 이야기는 아이디.”
그때 갑자기 쿠리울을 태우고 있던 게르하록이 앞발을 들어 부루를 향해 내리찍었다.
콰아앙!
거대한 덩치에 맞지 않는 민첩한 일격이었다.
그럼에도 부루는 멀찍이 뒤로 빠져나와 게르하록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이거이 이놈만 잡으면 잔치를 벌여도 되겠구나야.”
심지어 입맛까지 다시며 게르하록을 평했다. 그러자 게르하록이 알아들었는지, 왼쪽에 있는 머리가 입을 쩍 벌렸다.
화아아악!
“잉?”
순간 놀란 부루가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하지만 워낙 생각도 못 했던 탓인지 턱수염 일부와 머리카락 일부가 꼬불거리며 탄내를 풍기기 시작했다.
“불도 뿜는 거간? 꼬슬러야 할 건, 내 털이 아니라 니 털 아니네?”
기습에 털이 일부 꼬슬렀지만 부루는 여전히 여유가 넘쳤다.
그때 뒤쪽에서 갑자기 날아온 화살 한 대가 게르하록의 목젖을 강타했다.
태앵!
“응?”
“헐?”
순간 부루는 물론이고 유화까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뒤를 돌아보니 가우리의 궁수가 화살을 쏘았던 것이다.
문제는 그 화살이 마치 철벽이라도 두들긴 것 마냥 핑그르르 맴돌며 튕겨져 나온 것이다.
이어 두어발의 화살이 마치 확인이라도 하듯 날아들었다.
심지어 한 발은 눈알을 노리고 날아들었다.
태태탱! 탱!
역시나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화살들은 모조리 사방으로 튕겨 나갔다.
심지어 생물이라면 약점일 수밖에 없는 안구까지도 화살을 퉁겨 낸 것이었다.
“니보라.”
“예.”
“애들 일단 뒤로 빼라우.”
“장군님은요.”
조심해서 나쁠게 없기는 했다.
부루의 명령에 유화가 조심스럽게 되물었다.
“내 되끼 질도 튕겨 내는지 까내 봐야 하디 않았어?”
부루의 말에 유화는 군례를 올렸다.
“충!”
그와 동시에 뒤로 달리더니 한가롭게 서 있는 퓨마의 등 위로 올라탔다.
동시에 말머리를 꺾으며 외쳤다.
“안전거리를 확보하라! 적의 공격영역을 벗어난다! 안전거릴 확보하라!”
유화의 외침에 가우리 기마들이 일제히 뒤돌아 달렸다.
후퇴가 아님을 증명이라도 하듯 물러서는 행동에도 절도가 느껴졌다.
마치 썰물처럼 빠져 나간 장내에 오로지 부루만이 남았다.
“나머지 두 대가리도 재주 있음 함 부려 보라.”
그렇게 말을 뱉으며 대부로 남은 두 머리를 연이어 가리켰다.
그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번에는 오른쪽 머리가 입을 떡 벌렸다.
동시에 하얀 안개가 서렸다.
그것이 맺히자 좀 떨어져 있던 부루가 있는 곳까지 한기가 느껴졌다.
이 느낌만으로도 아까와 정반대 성격의 공격임을 알 수 있었다.
크허어엉!
포효소리와 함께 하얀색 입김이 쏘아져 나갔다.
아까와 달리 이번에는 미리 알고 있었기에 수월하게 피할 수는 있었다.
부루가 사라진 자리에 연신 폭음이 울려 퍼졌다.
콰콰콰쾅! 콰광!
“니런!”
미리 몸을 빼낸 부루를 향해 파편이 날아들었지만, 그는 거대한 대부를 마치 장난감 돌리듯 이리저리 휘둘러서 파편들을 막아내었다.
“이건 또 뭐이간?”
막기는 했지만 부루는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사방에 뿌려진 건 얼음조각들이었다.
부루가 있던 자리는 또 가관이었다.
직경 십미터는 되어 보이는 공간이 땡땡 얼어 있었다. 아니 마치 그 지역만 마치 북극을 연상시키듯 움푹 파인 주변으로 게르하록이 쏘아낸 것으로 추정되는 어른 몸통만 한 얼음덩어리들이 여기저기 땅을 파헤쳐 놓은 채, 처음부터 그런 것마냥 기둥처럼 서 있었다.
그 주변으로도 날아온 얼음덩어리들이 땅에 박히거나 퉁겨져 나와 뒹굴고 있을 정도였다.
부루에게 튄 파편 역시, 바닥에 부딪히며 깨어진 얼음의 일부들이었다.
“이거이 한 놈은 불이고 한놈은 얼음이간? 기럼 가운데 너는 무슨 재주를 가지고 있는 거이간? 불과 얼음 나왔으니 끓인 물이라도 뱉는 거간? 기건 좀 이상하디? 침뱉는 거도 아이고 말이야.”
부루답지 않게 격장기계를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이미 살아생전 낭패를 당해본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바로 마법이다.
처음 마법에 얼마나 골탕을 먹었었는지 모른다.
그런 경험 덕에 최대한 눈과 몸에 익히고 나서 싸우려 함이 분명했다.
그때 부루가 언급한 가운데 머리가 그를 향해 주둥이를 벌리고 덮쳐 왔다.
이번에도 부루는 마찬가지로 피해내었다.
그러나 부루가 있던 자리는 마치 포크레인으로 한 삽 뜬 것 마냥 이빨자국이 그대로 난 구덩이가 생겨져 있었다.
까드득! 까드득!
게르하록이 턱을 움직일 때마다 돌과 흙이 갈려나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고조 아무거나 집어먹으면 육질이 별로 좋디 않는 법이야. 잘 골라 먹으라우.”
여전히 태연했다.
이제 볼 건 다 봤다는 생각 때문인지 부루는 시선을 끌어올려 그 위에 두 발을 딛고 선 쿠리울을 바라보았다.
움직임이 상당했음에도 마치 접착제로 발을 붙여낸 것 마냥 가운데 머리위에 변함없이 버티고 서 있었다.
“니보라. 키우는 개새끼에 밥도 안 주는 거이간? 아가리도 세 개인데 잘 좀 멕이디 그랬어. 흙까지 씹어 먹는 거 안 보이는 거이네?”
-재미있구나. 그래 상대할 만해 보이더냐?
쿠리울의 말에 부루가 대부를 턱 하니 한쪽 어께에 올리더니 손에 침을 탁 뱉더니 비볐다.
그리고는 다시 대부를 단단히 그러쥐었다.
“안 그래도 껍데기가 얼마나 두터운지 벳겨 볼 생각이야. 걱정 말라우.”
말을 마치는 순간 부루의 몸이 쏘아진 화살처럼 나아갔다. 동시에 부루를 향해 게르하록의 앞발이 연이어 내리찍혔다.
물론 찍은 건 바닥 뿐.
부루는 오히려 두 번째 찍은 발등을 대부로 내리 찍었다.
으적!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가 울렸다.
크르륵!
게르하록이 재빨리 발을 빼내며 얼굴을 찡그렸다.
대부가 찍힌 발에는 피가 살짝 흐르고 있었다.
부루가 대부를 게르하록에게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잘리라고 깐 건데 튼튼하구나야! 기런데 꼴을 보니 아프긴 한가 보구만?”
크허어엉! 부루의 비아냥에 게르하록의 포효가 다시금 울려퍼졌다.
“단단하긴 한데요?”
“그러게.”
부루가 이리저리 몸을 피해가며 게르하록의 다리를 중심으로 도끼질을 연이었다.
여전히 자잘한 상처가 다였지만, 화살과 달리 부루의 도끼질은 통한다는 걸 의미했다.
다만 지금까지와 달리 그 효과가 경미하다는 사실에 다들 표정이 살짝 굳어져 있었다.
그때였다.
“엇!”
누군가 놀란 목소리를 터트렸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까지 다리만 가격하던 부루가 다리의 상처 틈으로 발을 쑤셔 박더니 위로 빠르게 올라간 것이다.
“와! 아저씨가 저 정도로 빨랐나?”
이번에도 튀어나온 목소리.
아저씨란 말에 다들 고개를 돌려보니 언제 왔는지 마물의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고빈이 함께 구경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주변을 돌아보니 강림자들과 기동대원들이 이쪽까지 진출해 주변의 마물들을 하나씩 제거하거나 유도해서 뒤로 빼돌리고 있었다.
“남들 싸우는데 뭐하냐?”
“조금 쉬는 중요.”
빈이 히죽 웃었다. 그리고는 다시 부루를 보며 감탄을 홀렸다.
“상처를 계단 삼아 올라가네? 와 기저귀 차고 올걸.”
빈의 말에 유화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질문했다.
“너 아직도 오줌을 못 가리는 거냐?”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거 왜 오줌 쌀 때도 몸을 부르르 떨잖아요. 전율이 와서 부르르 떠는 것처럼.”
“……그게 그거랑 같냐?”
유화의 말에 빈이 실실 웃으며 답했다.
“그냥 요즘 말이에요. 지리게 잘한다는 의미.”
“요즘 놈들은 알 수가 없네.”
그때였다.
카우웅!
게르하록이 지금과 달리 꽤 고통스럽단 비명을 터트렸다.
게르하록의 몸통에서 피가 길게 튄 것이다.
어깨 즈음까지 올라갔던 부루가 떨어지기 직전에 휘두른 대부에 살이 깊게 갈라지며 피가 뿜어져 나왔던 것이다.
“와! 이번엔 제대로 공격하셨나 봐요?”
빈의 말에 유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균형을 잃으셔서 특별히 힘이 크게 들어간 것 같지는 않은데?”
“그럼 몸통이 약점인가요?”
빈의 질문에 유화가 고개를 저었다.
“아까 화살을 쏘았을 때 몸통에 맞았지만, 흠 하나 나지 않았다.”
그때 옆에서 시윗 소리가 울려 퍼졌다.
“뭐해?”
“그냥 다시 쏴보면 알죠. 갑자기 약해진 건지 아닌지.”
“어? 맞았다!”
그때 날아가는 화살을 응시하던 또 다른 가우리의 병사가 화들짝 놀라 외친 것이다.
“응?”
유화도 이번에는 놀란 눈을 했다. 화살이 맞은 곳은 아까와 달리 튕겨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 조금 아까까지도…….”
이번에는 바닥에 내려온 부루가 다리를 후리자 마치 나무 찍는 것과 비슷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어서 게르하록 역시 비명을 터트렸다.
대부가 아까와 달리 박히기 시작한 것이다.
그걸 보며 놀란 눈을 하던 유화가 다시 빈을 바라보며 물었다.
“야.”
“예?”
“너 언제 왔냐?”
순간 빈은 불길한 기운을 느끼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