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100화 (100/305)

제100화 마수의 군주

내달리는 차량 위에서 몸집을 부풀리다가 공격을 받고 쓰러지는 마물들을 보며 빈이 중얼거렸다.

“어렸을 때 항상 논란이 되던 게 왜 악당들은 변신하거나 합체하고 있는 걸 구경만 할까였는데.”

“그러게. 이건 현실 버전이네.”

빈의 중얼거림에 대답한 것은 함께 타고 있던 중태였다.

변신하는 와중에 수십은 족히 되는 마물들이 쓰러져나갔던 것이다. 이게 현실이었다.

“정답은 개꿀 맛. 절대 안 기다려 준다네. 흐흐흐흐.”

운전대를 잡은 기동대원마저 끼어드는 사이 마물들이 눈앞에 다가왔다.

그들의 차량에 타고 있던 강림자가 활을 연신 쏘아 내었다.

대부분 덩치가 있는 중형 마물이었다.

그외에는 중태가 쏘아낸 유탄에 마물들이 뒷걸음질을 치거나 쓰러져 나갔다.

근접한 마물은 빈이 스스로 이름 지어 준 비니언월도로 휘둘러 쳐내었다.

그와 함께 차량에 기대어 버티던 동료들 앞에 당도할 수 있었다.

“괜찮아요?”

“가, 감사합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이곳 외에도 두어 곳에 전복된 차량이 있었고, 다른 차량들이 달려가 구하고 있었다.

빈은 그를 차에 태우며 시선을 돌렸다.

조금씩 전진해 오며 화력을 투사하는 모습이 보였다.

기동대원은 물론이고 강림자들 역시 대열에서 마물들을 향해 모든 화력을 투사해 내고 있었다.

그 덕에 마물들이 분산이 되어 이렇게 동료들을 구할 수 있는 틈도 벌수 있었다.

지금 마물들이 몰려 있는 곳은 두 곳이었다.

부루가 싸우고 있는 곳과 전열을 갖추고 나서며 화력을 투사하고 있는 방향.

“갑시다!”

빈이 모두 차에 올라탄 뒤에 다시 하얀 깃발을 흔들었다.

대열을 정비하라는 신호였다.

그러자 차량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이 모이자 빈이 외쳤다.

“자 달립니다!”

빈의 차량이 마물로 만들어진 띠가 있는 쪽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부루가 있는 쪽은 이들로써는 무리였다.

마물도 알짜 중에 알짜들만 몰려 있었다.

이들의 화력은 씨알도 안 먹히는 것들뿐이고, 나름 물이 올랐다고 생각하고 있는 빈도 무리였다.

달리는 빈의 시야에 장벽을 향해 몰려가는 마물들의 등짝들이 보였다.

“역시 뒤통수가 제일 만만한 법이지!”

차량들이 속도를 높여 갔다.

쿠리울의 얼굴이 구겨졌다.

게르그들이 변화하던 중에 집중 사격을 받고 쓰러지는 모습 때문이었다.

오히려 변신이 독이 되었는지 적지 않은 숫자의 게르그들이 죽어 나자빠진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광경이었다.

보통 저들이 변신을 하는 모습을 보면 두려워하거나 물러서서 대열을 갖추려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변신한 이후의 게르그들이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쪽 차원의 존재들은 오히려 이때를 노렸다는 듯 맹공을 가해 왔던 것이다.

-보잘 것 없는 별의 부스러기들 따위가!

쿠리울이 부루와 기마들을 바라보며 분노했다.

저들에 대해서는 들은 적이 있었다.

-저들이 바로 그자들인가?

-그러하옵니다.

쿠리울의 질문에 고위 마족 하나가 대답했다. 이어서 보충설명이라도 하듯 말을 이어 나갔다.

-저들이 바로 마켈그로이어가 데리고 있었다던 자들이옵니다. 그리고 저기 저자는…….

-포식자를 모를 수 없지.

쿠리울이 이를 갈았다.

세가 기울어 버린 탓에 세력의 확장에 목말라 있던 쿠리울이었다.

그 와중에 원했던 하나가 용병인 회유와 교언의 마족 마켈그로이언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가 바로 포식자라 불리는 무법자였고 말이다.

문제는 마켈그로이언은 이미 이 침식지의 주인이 채 갔고, 나머지 하난…….

-내가 아끼던 할라홀을 잡아먹은 놈!

아끼던 마족이자 전령으로 보내었던 할라홀을 잡아먹은 무지막지한 놈이었다.

할라홀을 통해 시야를 공유하던 쿠리울은 아직도 잊지 못했다.

‘간만에 새고기 좀 먹겠구나야!’

그 말과 함께 할라홀은 제대로 말도 꺼내지 못하고 통구이가 되어 버렸다.

마족이지만, 거조의 형상을 한 할라홀이었다.

그런 할라홀이 한 방에 통구이로 변한 건 쿠리울로서는 분통이 터질 일이었다.

할라홀은 전투력 그 자체는 그럭저럭이었지만, 결정적인 장점이 있었다.

그와 시야를 공유할 수 있다는 점과 그 어떤 마계의 마물이나 마족들을 포함해서 가장 빠른 존재라는 것 때문이었다.

물론 이젠 뼈만 남아 버린 과거였지만.

-저놈만큼은 내가 친히 뼈째 씹어 버리겠노라!

쿠리울의 분노가 퍼져 나갔다.

-저놈만큼은 내가 친히 뼈째 씹어 버리겠노라!

“으잉?”

“시선이 딱 장군을 향하는 거 같지 않습니까?”

유화의 말에 부루가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아무데나 가져다 붙이지 말라우.”

하지만 부루의 말에 유화는 히죽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 들끓는 게 전부 짐승들이라서 이제 기억 난 게 있는데, 마계에는 칠대공이라는 존재들이 있거든요.”

“기런데?”

“그중에 삼대공은 세력이 강력하고 나머지는 기를 좀체 못 피는데 그중에서도 바닥을 치는 세력 일이 위를 앞다투는 게 짐승들의 왕인지 뭔지 하는 마계 대공이 있어요.”

그래도 잠시 마계에서 나름 문화의 혜택을 받았던 탓에 유화의 입에서는 마계의 구도가 읊어지고 있었다.

“기런데 기거이 나랑 뭔 상관이 있는 거이간?”

여전히 궁금하다는 부루에게 유화가 입을 열었다.

“있을걸요? 그쪽이 우리 쪽 마족을 포섭하다 실패한 뒤에 퍼진 소문이 포식자를 영입하려다가 아끼던 마족 하나를 고대로 잡아먹혔다는 소문이 돌았죠.”

“…….”

“기억 안 나시죠?”

유화의 질문에 부루가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래 살며 먹은 밥그릇이 얼만데 그걸 일일이 세고 앉았갔네?”

부루의 대답에 유화가 실실 웃으며 답했다.

“원래 그런 거잖습니까. 때린 놈은 잊고 살아도 맞은 놈은 반드시 기억한다는 거.”

“일 없어야. 기럼 영원히 기억하게 해 줘야디. 생각만 떠올려도 오줌이 찔끔찔끔 새어나오게 말이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부루가 몸을 날렸다.

쿠우웅!

그의 앞에는 변신을 마친 게르크들이 서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모가지만 아프구만.”

게르그들을 올려다보던 부루가 갑자기 입맛을 다시며 중얼거렸다.

“길고 보니 항상 궁금했었더랬디. 니들은 무슨 맛인디 말이야.”

부루의 중얼거림에 게르그들은 잠시 자신들도 모르게 한 걸음 물러서고야 말았다.

“대가리가 두 개인 것 빼고는 비슷한 거 같으니 네들이라도 맛 봐야갔어.”

양손에 대부를 단단히 그러쥔 부루가 점점 발걸음을 빨리 하며 나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뒤를 따라 하마한 유화와 묵갑귀마대와 가우리 병사들이 일제히 내달렸다.

콰작!

쿠리울의 눈이 화등잔 만하게 커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게르그들의 우두머리인 게르하록은 으르렁거리며 분노하고 있었다.

-놀랍군. 저런 존재들이 있다는 것이.

게르그들의 변신 후 능력은 일반적인 마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나하나가 하급 전투마족을 상회하는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말 그대로 학살당하고 있었다.

특히 선두에 선 부루는 경이적이기까지 했다.

커다란 대부는 강철보다 질기다는 변신한 이후의 게르그의 몸뚱이를 양단하기 일쑤였다.

심지어 대부를 집어 던져 버린 뒤 잠시 비어 버린 맨손으로도 몸통을 찢어 버리는 괴력을 발휘하는 모습에는 전율이 일 정도였다.

-사자의 대공 게르하이오 펜 기오르그의 군단장이 실패를 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구나.

두 번의 실패에 대해 들은 게 있었다.

그중에 두 번째의 경우 그가 영입하려 했던 마켈그로이어도 있었다.

물론 두 번째의 경우는 주력 용병들이 계약이 해지되며 반대편에 서서 배신을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패배로 생각하지는 않았다.

첫 번째의 경우 군단장이지만, 그 자신의 전투력은 떨어지는 존재였다.

그래서 약간 폄하된 면이 있었지만, 그래도 그게 흔한 일은 아니었다.

심지어 지금 부루의 모습을 보니 당연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내게도 이런 기회가 왔으니 고맙다고 해야 하겠구나.

쿠리울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 사건들이 아니었다면 쿠리울에게 기회가 있을 리 없었다.

이런 차원의 정벌에 멀어지다 보니 점점 상위 대공들과의 간격은 멀어져만 갔었다.

기회의 독식이나 마찬가지였지만, 힘의 논리가 우선인 마계에서 그것을 부당하다고 따질 수 없는 법이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가 중요했던 것이다. 그녀가 직접 나선 이유이기도 했고 말이다.

물론 군단장의 두셋 정도의 존재력을 감당할 수 있는 침식지에 마계 대공인 그가 강림했다는 것 자체가 창피한 일이기는 했다.

그의 세력이 그만큼 위축되었다는 걸 의미하기도 했다.

그걸 그는 달리 변명하기는 했다. 그가 이끄는 마수들은 상대적으로 침식지에 부담을 덜 주는 편이었다.

말 그대로 태생이 짐승에 가까운 존재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 강력함에 반해 침식지에 부담을 덜 주기 때문에 직접 강림이 가능했던 것이다.

-내 저놈에게 상으로 생으로 씹어먹히는 진귀한 경험을 선사해 주겠노라.

쿠리울이 살기를 눈에 담아 게르하록의 가운데 머리를 쓰다듬으며 명령을 내렸다.

-가자꾸나. 애꿎은 아이들만 상하는 건 이제 그만 봐야겠다.

카우우우우우!

쿠리울의 명령에게르하록이 한달음에 날아올랐다.

거체가 하늘을 날아 떨어져 내린 곳은 바로 부루가 있는 곳이었다.

쿠우우웅!

“이거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거디?”

안 그래도 뚫고 가야 하는 수고를 덜게 해 주었으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포식자여. 그대의 이름은?

마치 작은 동산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여인이 던져오는 질문에 부루가 올려다보며 대꾸했다.

“니보라. 이름을 물으려거든 먼저 소개를 해야 하는 법이야. 기런 것도 안 배우고 살았네?”

부루의 대꾸에 상대는 크게 웃음을 흘렸다.

-호호호호호!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에 부루는 슬쩍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내 말이 그리 재미있는 거간?”

“재미라기보단 그냥 웃기는 거 같다고 판단한 거 같은데요?”

“…….”

유화의 말에 부루가 인상을 팍 구기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그때 그녀가 그를 내려다보며 말문을 열었다.

-카샨 프리포 쿠리울.

이름이 울려 퍼졌다.

“이름이 길구만.”

퉁명스럽게 대꾸하는 부루와 달리 뒤쪽에 있던 유화의 두 눈은 크게 확대되어 있었다.

“설마?”

“아는 이름이간?”

-마수의 군주이니라.

별칭까지 더해지자 유화가 경악한 얼굴로 외쳤다.

“어억! 저거 마계 칠대공 중 하납니다!”

유화의 외침에 부루가 그녀를 다시 바라보았다.

“대공?”

-오호호홋!

커다란 웃음소리가 사방으로 진동해 나가고 있었다.

-나 마계의 칠 대공이자 마수의 군주 쿠리울이 이 세상을 지배하리라! 오호호호호!

-나 마계의 칠 대공이자 마수의 군주 쿠리울이 이 세상을 지배하리라! 오호호호호!

쿠리울의 외침이 장벽 너머로까지 울려 퍼졌다. 당연히 방어를 하던 이들도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그 이름을 말이다.

“대공! 그 일곱뿐이라던 지배자가!”

이 소장이 창백한 얼굴로 외쳤다. 유화 등을 통해 수집한 정보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 막아 왔던 우두머리급의 마물이 바로 그 대공이 부리는 수하에 불과하다는 것에 다들 얼마나 심각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 대공 중 하나가 나타났다는 소리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