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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98화 (98/305)

제98화 노병은 죽지 않는다

대원길드의 길드장인 오기원은 몇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하고 서 있었다.

구도원의 앞에서 뼈 위에 간신히 살점 일부들이 조금 남은 소환자의 시신.

오늘 출동을 하며 그린 그의 계획 속에 이런 건 없었다.

이번만큼은 지금까지 마물들의 형태와 달랐다.

마물 자체야 본능적으로 달려드는 모습은 이전과 비슷하지만, 그 과정이 마치 사람과 장기를 두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이쪽의 약점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서 마물들을 내보내는 것 같았다.

적재적소에 전술개념까지 가지고 있다는 의미였다.

다행히 지금까지 이런 개체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나마 위안을 삼을 만한 사실은 그런 개체들의 특징 중 하나가 자체 전투력과 내구력이 떨어 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도 이젠 위안삼을 수 없게 되었다.

아니 지금 저기 눈앞에 태산처럼 솟구쳐 오른 적의 군주급 마물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최소한 오십 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거구다.

심지어 번들거리는 검은 표피는 무언가 약해 보인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곤충의 껍데기 같은 표피가 갑주마냥 느껴졌다. 그리고 양쪽에 달린 팔 네 개에는 마치 사마귀를 연상하게 만드는 갈고리 들이 달려 있었다.

바닥을 지탱하는 다리는 여덟 개는 되어 보였다.

“뭐해! 대원길드 수습 안 해!”

그때 도원이 버럭 소리를 질러 왔다.

“큭!”

그제야 멍한 표정을 하고 있던 오기원이 조금이나마 정신을 차렸다.

물론 불쾌한 표정은 어쩔 수 없었다.

“대열 다시 짠다! 이탈자들은 제외하고 대열을 다시 짠다!”

기원의 외침에 살아남은 이들이 다시 대열을 갖추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기, 길드장님, 조장들에게 지휘권 양도하고 일단 빠지는 게 효율적으로 높지 않습니까?”

“마, 맞습니다!”

평소라면 보통 저렇게 한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는 조금이라도 운용이 원활해야 하기에 강림자의 지휘권 양도 같은 행동은 최대한으로 줄이는 편이 나았다.

그럼에도 동료의 희생을 목격해서인지 소환자들의 멘탈은 바람에 나부끼는 종잇장처럼 변해 있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대원길드는 그동안 안전우선주의로 마물과의 전투에 임해 왔으니 말이다.

물론 다른 길드도 비슷했지만, 대원길드는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소환자들에 대한 강림자 호위를 늘린다.”

기원의 명령에 의견을 내비쳤던 소환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지원팀에게 연락해서 시신과…… 표본을 수집하라고 하도록.”

침착하게 명령을 전달한 기원이 입술을 깨물며 다시 전장을 빙 돌아 달리며 전투에 돌입한 신컨길드를 바라보았다.

원래도 신컨길드의 전차는 꽤나 유명했다.

프로게이머 특유의 감각으로 전략 전투에 능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 핵심은 바로 전차다.

소환자가 옛 전차와 같은 것에 올라타 직접 따라 붙으며 전장의 변화에 맞춰 적재적소의 명령을 내리는 것.

그에 반해 대원길드의 전술은 너무 연구에 치우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할 수 없군.”

기원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동안 아껴 두었던 것들을 조금씩 풀어야겠다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 * *

사람들은 텔레비전을 보며 긴장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일부 모자이크된 전투 장면이 녹화된 채 나오기도 했다.

그 장면에 나오는 이들은 대부분 고빈과 전신, 신컨길드 등 훈련을 마친 이들이 주축이었다.

물론 그중에 가장 많은 지분을 가진 건 빈이었다.

당연했다.

다른 소환자들과 달리 그는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를 해 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해 텔레비전의 기자는 침을 튀어 가며 칭찬을 해대었다. 하지만 화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안색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이 좁은 땅덩이에 침식균열이 세 곳이 터져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악한 것이다.

비록 전 세계에서 가장 피해가 적은 나라라고는 하지만, 그건 표면적인 부분이었다.

나라가 좁은 만큼 소문도 빨랐고, 또 위기 상황에 스스로 몸을 던진 이들도 많았다.

그래서인지 이런 상황에 그 누구보다도 민감한 이들이 국민들이었다.

화면을 보던 중년남자가 중얼거렸다.

“이거 재소집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미쳤어요?”

중년남자의 대답에 부인으로 보이는 중년부인이 창백한 얼굴로 대꾸했다.

그러자 중년남자가 덤덤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미쳐서 이러는 거 같아?”

“아직 잘 막고 있다고 하잖아요!”

“그렇긴 한데. 저번에 한 번씩 터지던 게 세 번 터졌어. 다음은 몇 번이 터질지 몰라. 혹시 또 모르지. 옛날처럼 한데 몰아 한곳에서 크게 터질지.”

중년 남자는 군인 출신이었다. 대침식 당시에 누구보다도 전선에 나서서 싸웠던 사람이었다.

그 덕에 지금은 안전한 노후를 보내고 있었다.

그들이 사는 구역에는 기동대와 소환자 일부가 고정적으로 경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심지어 인근에는 대규모 벙커도 있었다.

대침식때 목숨을 내놓고 싸운 것에 대한 예우였다.

“애새끼들 저러고 싸우는데 이렇게 엉덩이 붙이고 있으면 욕먹는 법이야.”

“지금 나이가 몇인지나 알아요? 옛날에도 몇 번이나 죽을…….”

“그때와 지금은 좀 다르지. 그때는 앞에도 마물 뒤에도 마물이었으니까. 그리고 원래 전장이 제일 안전한 거야. 내가 나가야…….”

중년 남자가 뒤를 돌아보았다.

이제 갓 서너 살이 된 것 같은 손주가 커다란 블록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내 새끼들 좀 피신 시켜 달라고 하지.”

“하지만!”

“어차피 세상 망하면 저놈들 뛰어 놀 곳도 없어.”

중년 남자는 덤덤하게 말을 뱉고는 히죽 웃으며 중년여인에게 몇 마디 더 남겼다.

“이번에 전쟁 끝나면, 우리도 막내 하나 만들까? 손주보단 그게 좀 땡기네?”

“이 인간이?”

중년 여인은 중년 남자의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힘없이 웃었다.

중년 여인도 기왕 보내려면 웃으며 보내야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사지에 남편을 보내 본 적 있는 자들만의 이별법이었다.

“허리나 다치지 말고.”

“흐흐흐, 걱정 마.”

중년 남자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결정을 내렸으니 움직이려는 모양이었다.

남자가 사라지자 중년 여인이 입을 막았다.

지금까지 참았던 울음소리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을 틀어막은 것이다.

그때 뒤에서 놀던 손주가 다가와 할머니의 등에 매달리며 칭얼 대었다.

“할모니. 어버줘! 어버어!”

“그래…….”

중년 여인은 애써 참으며 손주를 등에 업고 일어섰다.

* * *

사방에서 울리는 전화기 소리가 병무청을 뒤흔들었다.

전화기를 받는 이들의 표정은 잔뜩 긴장으로 물들어 있었다.

때 아닌 전화기에 불이 난 이유는 단순했다.

“예, 선배님. 죄송합니다만, 연세가 너무 많으셔서…… 네? 아뇨 무시하는 건 아니고. 일단 군수 지원쪽으로 지원은 넣겠습니다만 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은 이해해 주시고요. 예, 예.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젊은 군인에게 한쪽에 있던 군무원 여직원이 질문을 했다.

“방금 그분 나이가 얼만데?”

“예순둘이요.”

“와…… 대침식때도 오십 중반이었네?”

“그때 동대장 하시던 분이라던데요.”

최근 들어 이전 대침식 때 싸웠던 퇴역군인들이 재입대 문의를 많이 해 오고 있었다.

그건 정의로움도 나라에 대한 충성 때문도 아니었다.

위기감 때문이었다.

본능적으로 지금이 위기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 나서는 것이 분명했다.

위기가 닥친 후에는 이미 늦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몸을 사린 이들이 어떤 결과를 맞이했는지 그들이 가장 잘 안다.

대침식이 가장 먼저 수습된 덕에 세계각지로 군사지원을 떠났던 우리나라다.

멀게는 한국 전쟁 때의 보답이기도 했고, 가까이는 국익을 위해서이기도 했다.

피해가 적었다뿐이지 없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위기는 기회였다.

그때 그들이 본 것은 국민이 나서지 않는 나라의 말로는 처참하다는 것이었다.

스스로 지킬 의지가 없는 나라는 이미 나라로써 존재하지를 못했다.

심지어 군사 대국이라 불리던 일본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더했다.

사람들은 관의 대피 명령 이후 마물들이 몰려오는 급박한 경우에도 관의 후속 명령을 기다렸다.

그렇게 끝까지 한데 모여서 관청의 후속 조치를 기다리다가 씨몰살을 당하는 건 예사였다.

관청 역시 알아서 하는 법이 없었다.

‘일단 대기.’

‘일단 대기.’

‘위에서 명령이 나오지 않았다. 일단 대기.’

일본 예능 프로그램에서 마물인형을 쓴 사람이 입을 쩍 벌리고 코앞에 있는 데에도 전화기를 들고 떠들어 대던 한 예능인의 패러디 장면이었다.

우습게도 이건 실제 있었던 일의 희화화였다.

그 결과 나라는 반 토막이 되어 버렸다.

그걸 눈으로 확인한 세대다.

그렇기에 이렇게 스스로 나서는 것이다.

그때 한 군인이 전화기를 들고 벌떡 일어서며 외쳤다.

“추, 충성!”

그 외침에 모두 이목이 집중되었다.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뻣뻣이 서서 외치는 군인의 모습에 다들 긴장을 했다.

“혹시 대통령?”

“에이 대통령이 이쪽으로 왜 전화해요.”

모두의 시선을 받고 있음에도 그 군인은 부동자세를 하고 서 있었다.

마치 옛날 임금이 전화를 하면 절부터 하고 받았다는 우스개가 생각 날 정도다.

“그, 화, 확인해 보겠습니다! 다만 지원 연령대가…… 예! 그럼 기동대 관련 부서에 문의 넣겠습니다! 충성!”

군인의 응대에 다들 전화기를 붙잡고 있음에도 의아한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구? 초기 기동대 출신?”

전화가 끊어지자 풀썩 주저앉은 군인에게 군무원이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예.”

“누군데 그래?”

“특수기동대 창설자요.”

순간 질문을 던졌던 군무원의 얼굴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주변 모두가 입을 떡 벌렸다.

“차, 차준우 소장?”

“예.”

모두가 할 말을 잃었다.

특수기동대를 창설한 입지전적인 똘아이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다.

평소 모습을 보면 전혀 그 별명과 매치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그의 행동이 만들어 낸 별명이 그거였다.

‘씨팔 이 거지새끼들아! 군인 때려칠 거니까! 무기만 내놔!’

당시 군의 지휘계통만으로는 작전 수행이 어렵다며 특수기동부대의 창설을 제의하던 자리에서 그가 견장 떼서 집어던지며 외친 말이었다.

당시 그의 앞에는 몇 안 남은 국회의원 국방연구원들과 대통령이 있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안 된다의 반복이었다.

당시 그는 작전판 위의 장기 말처럼 운용하는 상황에 대해 반발하고 나선 일선 지휘관이었다.

그래서 별도의 특수기동대 창설을 제의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그때 이 짓을 벌인 것이다.

다른 이였으면 영창이었다.

아니 전시니까 그보다 더한 징계도 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당시 그는 대 마물 교리를 만들어 낸 장성이었다.

심지어 그가 아니었으면 서울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런 초기의 영웅 중 하나였다.

그때 대통령의 말은 더 가관이었다.

‘그럼 사표 수리하겠습니다.’

덤덤하게 집어던진 견장을 주워 쓰레기통에 던지며 답한 대통령의 말 역시 역사에 회자되었다.

그 결과 지금의 민간 소속 기동부대가 창설되었던 것이다.

군인출신의 용병들.

목숨을 담보로 전선을 누비는 기동부대를 만든 것이다.

그런 그가 재입대를 요구해 왔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왜 기동부대로 안 가시고?”

“그쪽은 이미 잘 굴러 가니까 그러겠지?”

“나 싸인 받고 싶은데.”

“시끄러!”

잠시 일어났던 소란은 다시 울려오는 전화소리에 묻혀 갔다.

* * *

중년 남자.

차준우는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요즘 애들 참 군기가 잘 들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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