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7화 전쟁은 놀이가 아니다
신컨길드는 파죽지세의 기세로 마물들을 정리해 나갔다.
얍삽하니 어쩌니 하지만, 합리적이면서도 조직적인 움직임이었다. 적의 약한 부분을 노리는 것은 사실 기본적인 전략이다.
다만 굳이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다는 점뿐이지 그들이 비난 받을 이유는 없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그들의 압도적인 전투 방식에 사람들은 항상 열렬한 호응을 보내었다.
그때였다.
토혹!
무언가가 쏘아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대원길드장인 오기원이 허공으로 시선을 보내었다.
“저건 뭐지?”
순간 하얀색의 반투명한 덩어리가 날아왔다.
생소한 것이 허공으로 날아오자 기원의 눈동자에 경계의 빛이 서렸다.
“뒤로 빠르게 빠진다!”
기원의 명령이 빠르게 전파되는 순간 대열이 뒤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허공으로 날아오던 하얀색 반투명한 덩어리가 넓게 퍼지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거미줄?”
기원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
갑자기 저것이 펼쳐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포옥! 토혹!
그것이 떨어지기도 전에 연달아 경망스런 발사음이 이어졌다. 그러나, 빠르게 후퇴 중이던 기원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그들이 뒤로 빠지는 방향을 노리고 또다시 똑같은 것들이 날아오다가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화라락! 화락!
펼쳐진 것이 바닥에 내려앉는 순간 강림자들의 반수 가까이가 거미줄 비슷한 것에 뒤덮였다.
거기에 소환자들일부와 호위로 끌고 온 강림자들도 미처 다 피해 내지 못했던 것이다.
“빨리 빠져나와!”
기원의 명령에 강림자들이 무기들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들이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뒤덮고 있던 거대한 거미줄이 몸에 엉키기 시작했다.
심지어 그건 질기면서도 탄력이 넘쳤고, 끈끈하기까지 해서 더욱 쉽게 달라붙은 것이다.
“자르고 빠져나와!”
소환자의 명령에 강림자가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검을 휘두르는 순간 끊어지기는커녕 그대로 휘감기며 날에 들러붙었던 것이다.
무기마저 붙어 버리자 소환자가 강림자에게 재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검 다시 소환!”
눈 깜짝할 사이에 강림자의 손에서 검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났다.
어찌할 바를 모르는 사이 마물들이 좌우로 갈라지더니 거미줄의 주인들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키익!
기다란 여덟 개의 다리에 난 털은 스치기만 해도 찔릴 것 같은 날가로운 가시들로 만들어져 있었다.
그리고 바닥을 찍으며 다가오는 거미의 발끝 역시 마치 갈고리를 연상케 했다.
거기에 어른 몸통은 그냥 부수어 버릴 것 같은 턱뼈가 좌우로 벌어져 있었다.
심지어 구부러진 채 솟아있는 다리들을 빼더라도 높이가 삼 미터는 되어 보였다.
심지어 다가오는 속도도 빨랐다.
“일단 이탈할 수 있는 대원들은 이탈하라!”
기원의 명령에 거미줄에 걸리지 않은 길드원들과 강림자들이 빠르게 이탈했다.
그들 중에는 기원도 있었다.
“다가오는 거미들을 막아!”
기원의 명령에 강림자들이 거미들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하다하다 이젠 버러지들까지?”
신컨길드장 구도원이 혀를 찼다. 곤충형 마물들은 처음이었던 것이다.
남 일이 아니다.
“이거 도와야 하는 거 같은데.”
아무리 독자작전을 펼친다고 했지만, 지금은 아군이었다.
“불이 좋을 거 같긴 한데.”
저 마물거미가 쏘아낸 것이 지구의 거미줄과 같을지는 모르겠지만, 불에 약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저 안에 강림자와 소환자들이 함께 갇혔다는 것이다. 잘못하면 소환자들도 통구이가 될 수 있었다.
소환자 특유의 회복력과 내구성을 믿고 불을 지르기에는 위험부담이 컸다.
그러나 신컨길드도 빠르게 대응을 해 나갔다. 빠져나온 강림자들이 달려드는 거미들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키에엑!
마물 거미가 달려드는 강림자들을 향해 무언가를 쏘아냈다.
투확!
아까와 달리 마치 소음기를 단 것과 같은 작은 소리가 울려 퍼졌다.
맨 앞을 달리던 강림자가 쏘아져 오는 것을 그대로 갈랐다. 그러나 가르는 순간 쏘아져 오던 것이 좌우로 펼쳐지더니 몸을 둘렀다.
“음!”
강림자의 얼굴이 굳어졌다.
힘을 쓰자 몸을 휘감은 거미줄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끊어질 듯 했지만, 이내 뒤이어 날아온 거미줄이 강림자의 몸을 연달아 휘감았다.
순식간에 머리만 남고 상체가 모두 거미줄에 휘감겨져 버렸다.
그사이 득달같이 달려온 거미가 강림자의 머리통을 그대로 집어 삼켰다.
콰드득! 콰득!
순식간에 상체까지 집어삼켜진 강림자의 다리가 바르르 떨다가 이내 축 늘어졌다.
그리고 먼지가 되어 흩날렸다.
끼우우?
입안에 넣었던 먹이가 사라진 탓인지 마물거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내 다른 먹잇감을 찾아 고개를 돌리는 순간 달려든 강림자의 창이 마물거미의 머리통을 뚫고 들어갔다.
콰두두둑!
일격이었다.
그토록 애를 먹이던 거미줄과는 달리 마물거미의 방호력은 약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기원이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원거리! 원거리!”
기원의 외침에 궁수들이 빠르게 화살을 쏘아 내었다.
날아간 화살은 너무도 쉽게 마물거미들의 몸뚱이를 뚫고 들어갔다.
키에에에!
몸뚱이에 화살이 꽁지깃까지 다 박힌 마물거미들의 비명이 연이었다.
결국 비척거리다가 머리통에 두어 개의 화살을 더 맞더니 이내 모로 자빠졌다.
다른 마물 거미들도 비슷했다.
“끝났나?”
마지막 마물거미가 쓰러졌다.
처음 애를 먹은 것 치고는 빠르게 소탕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강림자 하나를 잃긴 했지만, 시일이 지나면 다시 복구되는 법이다.
소환자를 잃는 것보다는 이게 나았다.
그러나 진정한 끝은 아니었다.
“엇!”
앞쪽에서 누군가가 소리를 내질렀다.
마물거미의 시체가 들썩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들썩이던 마물거미의 몸뚱이에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몸이 빠르게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마치 시체가 녹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소리를 내는 것들의 정체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구도원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새끼?”
어미였던 마물거미의 몸뚱이를 순식간에 갉아먹고 모습을 드러낸 새끼거미들이 일제히 앞으로 쏟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끼리리릭! 끼릭! 끼리릭!
듣기에는 귀엽기 그지없는 소리였지만, 바닥을 새까맣게 물들이며 몰려오는 모습은 충분히 괴기스러웠다.
화살들이 그 주변으로 날아들었지만, 화살에 맞아 봐야 티도 나지 않았다.
그 수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심지어 하나하나의 크기도 주먹만 했으니, 화살 수십 대가 날아들었다 해도 의미 없는 숫자만이 체액을 뿌리며 죽어 나자빠질 뿐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기어오는 속도가 빨랐다.
“히, 히이익!”
“막아!”
“어서 이거 찢어!”
그러자 강림자와 함께 갇혀 있던 소환자들이 아우성을 치기 시작했다.
뒤늦게 강림자들이 거미줄을 잡아당겼다.
콰드드득!
끈적이던 것과 달리 양쪽으로 잡아당기기 시작하자 오래 버티지 못하고 거미줄이 뜯어졌다.
그러나 그사이 도착한 마물거미새끼들이 작은 턱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각 사각 사각!
강림자의 발부터 갉아 대기 시작한 새끼거미들을 보며 강림자들은 발을 들어 내리 찍었다.
파삭! 파사삭!
껍데기가 연한지 밟을 때마다 마치 커다란 바퀴벌레라도 밟아 터트리는 것 같은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렇게 죽이는 사이에도 다가온 마물거미새끼들이 강림자들의 몸을 새까맣게 뒤덮었다.
이리저리 몸을 뒤틀던 강림자들이 풀썩하고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아니 먼지가 되어 사라지며 거미새끼들이 작은 동산을 만들었던 것이다.
이내 다음 먹잇감을 향해 빠르게 움직였다.
“아악! 아파아!”
“제, 젠장!”
“여기 열렸다아!”
소환자들 역시 마물 거미새끼들의 습격을 받았다.
튼튼한 방호복이 그대로 갉아지더니 이내 피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작은 턱으로 연신 깨물었다.
아무리 질긴 소환자의 피부라지만 그렇게 계속 시도를 하다 보니 이내 이빨이 박혀들기 시작했다.
소환자들의 비명이 연이었다.
마치 벌레 떼가 세상을 뒤덮는 내용의 옛날 B급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일부는 찢어진 거미줄 사이로 벗어나기 시작했다. 끝까지 끈끈하게 늘어지는 거미줄이 있었지만, 결국 뜯겨지며 자유를 얻을 수 있었다.
물론 그러는 이들의 몸에도 마물거미새끼들이 들러붙어 있었다.
하지만 벗어나는 순간 바로 바닥을 뒹굴자 파사삭하는 소리와 함께 체액을 뿌리며 터져 나갔다.
“허억! 헉!”
바닥을 한 차례 굴러 마물거미새끼들을 터트린 소환자가 허둥거리며 일어서다가 바닥으로 쓰러지는 동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사각사삭사각사삭사각!
한 사람에게 백이 넘어가는 마물새끼들이 갉아대는 소리만이 연이었다.
그 마물새끼거미들 사이사이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아, 아아아…….”
새까맣게 뒤덮인 소환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강림자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먼지로 변했지만, 소환자들은 그러지 않았다.
인간의 형상을 한 덩어리들에게서 쉬지 않고 사각거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그리고 이내 맨 처음 덮침을 당했던 소환자에게서 새끼거미들이 떨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어, 으으으…….”
말문이 막혀 버렸는지 바닥에 주저앉아 있던 소환자의 입에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대신 진득한 침이 주루륵 흘러내렸다.
오줌도 지렸다.
마물거미새끼들이 사라지고 남은 건 깨끗하게 발라진 하얀 인골만이 남았기 때문이었다.
그 인골의 팔뚝에 팔찌 형 패드만이 남아 있어 그 주인이 소환자였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마물거미새끼들을 화염이 뒤덮었다.
화그르륵! 화르르륵!
신컨길드장 구도원이 화염방사기를 매고 나타나 뿌려댄 것이었다.
퍽! 퍼퍽! 퍽!
끽! 끼엑!
마치 물이 든 주머니가 터지는 소리가 연달아 울리며 마물거미 새끼들의 단말마 비명들이 연이었다.
“이런 씨팔!”
도원이 욕설을 뱉으며 화염방사기를 이리저리 뿌렸다.
그리고 그 뒤로 달려온 신컨길드의 강림자들이 넓찍한 방패를 마치 파리채마냥 바닥으로 내리 쳤다.
방패로 내리지차 체액과 깨져나간 껍데기들만이 남았다.
퍼퍽! 퍽! 퍽!
방패로 두들기는 소리와 화염이 쏘아지는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
대원길드 역시 마찬가지로 방패를 들고 강림자들이 바닥을 내리쳤다.
그 와중에 일부는 이 틈을 타서 달려드는 마물들을 막아 냈다.
장벽에서도 이 위기를 목격하고 화기를 동원해 쏘아대었다.
그렇게 얼마쯤 했을까.
더는 꿈틀거리는 새끼거미들은 없었다.
군데군데 꺼지지 않은 불들이 티틱거리는 소리를 내며 마지막 생명을 다하고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구하기 위해 달려온 이들의 입에서는 잠깐의 승리를 자축하는 함성 따위는 없었다.
연기를 피워 올리는 소환자에게 다가간 도원이 손으로 털어내었다.
후두둑하는 소리와 함께 마물거미새끼들의 껍데기들이 떨어져 나갔다. 하지만, 그렇게 몇 번 털어 내던 도원은 이내 몸을 일으켜 세웠다.
마물거미새끼의 잔해를 털어 내고 목격한 것은 하얀 뼈 위에 조금 붙어 있는 붉은 살점 일부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