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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열제 부루강림기-95화 (95/305)

제95화 가슴이 설레일 때도 있다

두두두두!

기마가 내달리는 소리가 지축을 흔들었다.

선두는 언제나 그랬는 묵갑귀마대원. 그 뒤로 경기병 일부와 다양한 병종이 말을 몰며 나아가고 있었다.

부월수나 창수라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말을 모는 능력이 출중했기에 이런 때에는 기병처럼 운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장점이었다.

물론 묵갑귀마대에 비하면 손색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비교 대상의 수준이 너무 높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지금의 상황은 생전의 능력 이상을 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육체를 벗어나며 혼이나 정신적인 능력이 발휘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소위 강림자라 불리는 존재들 역시 비슷한 상황이었기에 이들이 생전보다 강한 것은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바람을 가르며 달렸다.

말을 달리던을지부루가 뒤를 돌아보았다.

홀로 지옥이라 생각했던 곳에서 버텨 왔던 나날들 중에 그립고 그리웠던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다시 함께 달린다는 것.

물론 지금은 볼 수 없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만 해도 어디인가.

새로운 세상에 대제국을 건설하고자 하는 목표도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나름의 이유는 생겼다.

이미 이쪽 역사에는 망국이 되어 흔적만 남은 나라였다. 그러나 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역사에 새겨 넣고 지켜 왔다.

타국이 자기 역사라 주장하는 일이 있어도, 국력이 모자람에도 지키고자 한 후손들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하늘이 내린 인연인지 우연인지 모르지만, 주군인 고진천과 함께했던 이들이 존재했다.

그를 연모했고, 아직도 그리워하는 여인이 둘이나 있었다.

이 정도면 이유로는 충분하다.

무엇보다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서로 간의 다툼을 멈추고 대항하는 공적이다.

이쯤 되면 그가 싸우는 이유로 충분하다 못해 넘친다.

“시간이 없어야. 빨리 처리하고 지원가야디?”

“예!”

천유화가 든든한 목소리라 화답해왔다.

그리고 기마 주변으로 내달려오는 차량들.

꽤 기특해 보였다.

모자람을 알면서도, 싸우는 전사들이 있었다.

거기에 버릇없지만, 나름 키우는 맛이 있는 그의 자칭 소환자도 눈에 들어왔다.

“가즈아!”

“아새끼 방정맞기는.”

방정맞은 모습이지만, 저게 반쯤은 의도란 것도 알았다.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그 두려움은 자신의 두려움이 아니라, 그의 뒤를 따르는 다른 소환자들의 것이다.

그들의 두려움을 마치 이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행동으로 지우는 것이 분명했다.

방송이란 것을 활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두려워해야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증명이다.

싸워서 이길 수 있다는 증명이다.

스스로 광대가 되어 그걸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부루가 다시 시선을 앞으로 돌렸다.

새까맣게 내달려오는 마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싸워야 할 시간이다.

대부는 안장에 걸쳐 두고 활을 들었다.

화살이 걸리고 시위가 당겨졌다.

투앙!

탄력 넘치는 시위가 내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쏘아져 날아가자, 그 뒤를 수많은 화살들이 뒤따랐다.

명령도 따로 필요 없었다.

첫발이 중간을 지나기도 전에 두 번째 세 번째가 연속으로 쏘아졌다.

마치 합이라도 맞춘 듯 똑같이 날아가는 화살들.

그 화살들이 나아가 마물들을 맞추는 순간 피가 튀고 비명이 쏟아졌다.

인간이 아닌 마물이었지만, 쏘면 맞고 맞으면 괴로워하는 건 매한가지였다.

퍼퍼퍽! 퍼퍼퍼퍽!

쏟아지는 화살들에 달려오던 선두의 마물들이 나자빠졌다.

그럼에도 마물들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다.

앞서 쓰러진 동족들을 그대로 밟고 짓이기며 내달려오는 모습이 보는 입장에서 질리게 만들 만했다.

그러나 부루는 미소를 머금었다.

“이 얼마나 됴아. 도망가는 걸 쫓을 필요도 없고 말이디.”

“흐흐흐! 맞습니다!”

유화가 동조하며 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몇 발의 화살을 더 날린 뒤 마지막을 장식한 건 손도끼였다.

돌입을 알리는 축포와 같이 손도끼들이 바람을 찢어발기며 맴돌아 나갔다.

쾌쾌쾌쾍!

내던지는 순간 삭(기병용 창)을 들어올렸다. 동시에 뒤따르던 기마들의 손에도 삭이 들려졌다.

그때 빈의 짚차가 근처로 붙더니 뭔가가 펄럭이기 시작했다.

붉은 바탕에 검은색 삼족오가 새겨져 있는 깃발이다.

“됴쿠만.”

부루가 빙긋이 웃으며 정면을 바라보았다.

삭의 끝에 마물들이 걸리는 순간이었다.

끼이이익!

내달리던 빈의 차량이 순간 브레이크를 밟으며 드리프트하듯 돌아서 기마 대열의 뒤로 이동했다.

“후아!”

운전대를 잡은 기동대원이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우워어어!”

급격한 회전에 타고 있던 빈과 중태의 얼굴이 헤쓱해져 있었다. 그 와중에 빈은 기동대원을 향해 엄지를 올리며 외쳤다.

“와! 역시 레이서 출신!”

“다신 이런 거 시키지 마! 장비 덕에 무게가 있어 다행이지 자칫 잘못했으면 뒤집혔어!”

“으흐흐흐!”

“아니 대체 왜 이렇게 무리한 거야!”

중태도 빈에게 항의를 했다.

기마돌격 직전 삼족오기를 필치더니 앞으로 나아가자고 종용했던 건 빈이었기 때문이었다.

“멋있잖아요. 그리고 항상 아저씨가 말할 때마다 빠지지 않고 하시던 말씀이 깃발 이야기예요.”

“그야…….”

“자 이쯤에서 우리도 국뽕 하나.”

“응?”

이번에는 또 다른 깃발을 꺼내었다. 하얀색 바탕에 붉고 푸른색의 태극이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태극기다.

그걸 삼족오기 반대편에 매달자 동시에 바람에 펄럭이며 넓게 펼쳐졌다.

그걸 본 중태가 순간 말문을 닫았다.

그걸 펼친 빈도 붉게 상기된 표정이었다. 그걸 말없이 바라보던 빈이 중얼거렸다.

“이거…… 아저씨가 왜 그리 깃발 타령했는지 좀 알겠네.”

빈이 미소를 머금었다.

가슴이 두방망이질 친다는 말이 있다.

지금 빈이 그랬고, 중태가 그랬다. 외국에 나가면 한국 사람은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있다.

그와는 상황이 다르지만 전장에 나서고 태극기를 펼쳐드는 순간 온몸에 흐르는 기묘한 전율은 말로 설명하기 힘들었다.

차량에 양쪽에 있는 등산용 로프 끝에 달린 고리 두 개를 빈의 양 허리에 매달았다.

차량에서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는 이미터는 족히 되어 보이는 월도를 집어 들었다.

“청룡언월도 비슷하네?”

그걸 본 중태의 감상평에 빈이 그걸 턱하니 세워 보이며 대답했다.

“비니언월돕니다.”

“작명이 좀…….”

“흐흐흐!”

빈이 웃으며 그대로 그걸 휘둘렀다.

부와아악!

거칠게 휘둘러진 언월도가 그대로 바람을 갈랐다. 그리고 다가오던 마물의 모가지마저 가르고 지나갔다.

“가즈아아아!”

타고 있는 건 말이 아니지만 빈도 마치 이 기마대의 일원이라고 선언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후우, 십년감수했네.”

“왜 저런 짓을…….”

촬영을 하던 국방부 소속 제작 PD 최윤성은 안도의 숨을 몰아쉬었다.

갑자기 고빈의 차량이 앞으로 튀어나가더니 깃발을 펼치는 것이 아닌가.

위험천만했다.

마물들의 무리가 코앞까지 다가온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 후 급격히 짚차로 드리프트를 하는 모습에 다시 기겁을 했다.

그나마 무거운 장비 덕인지 기우뚱하기는 했지만, 전복되는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차량 운전자의 실력이 좋은 덕도 있어 보였다.

그런데 그때 빈이 뭔가를 꺼내다는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태극기다.

따지면 흔한 거다.

월드컵 때면 흔히 볼 수 있고, 심지어 일부 시위에서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등장하니 뭔가가 또 느낌이 짜르르하게 다가왔다.

“이래서 국뽕국뽕 하나?”

“그런가 보네요.”

“참내. 처음엔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처음 이 촬영을 하면서도 꽤나 불편한 마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마치 세계대전 시기에 젊은 사람들에게 전쟁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선전영상을 찍는 느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게 보고 나니 기분이 또 달랐다.

마치 우린 이렇게 싸우고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빈이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언월도를 들고 휘둘렀다.

마물의 머리가 치솟는 모습이었다. 일부는 모자이크는 편집을 해야 하겠지만, 이 장면 또한 전율이 일었다.

강림자라는 존재를 활용하는 게 소환자이지만, 왠지 전투와 멀게 느껴지기는 했었다.

그런데 막상 이런 장면을 보니 뭔가 응원하게 만드는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한 것은 아니지만, 마치 인간으로써 뭔가 의미 있는 저항을 시작한 느낌도 든 것이다.

“잘 좀 찍어.”

“이미 찍고 있습니다.”

“하나도 놓치지 마.”

“왜 갑자기 적극적으로 변했습니까?”

“…….”

피식 웃으며 질문을 던져오는 촬영감독에게 그는 머리를 긁으며 대답했다.

“뭐, 저걸 보며 덤덤할 수 있겠냐?”

그의 답에 촬영감독이 카메라 액정에 시선을 다시 고정시키며 대답했다.

“아뇨.”

“그래서 그래.”

“이해합니다.”

“남기자. 이건 미래에게 남기는 지금의 역사다.”

촬영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를 보며 물었다.

“명언집이라도 외우고 왔습니까?”

“명언 같으면 적어라 새까.”

멋쩍은 듯 가벼운 욕설을 뱉어 내는 최 PD에게 촬영감독이 대답했다.

“자막에 씁시다. 죽이네 그거.”

“…….”

촬영감독의 말에 대답은 안 했지만, 최 PD는 왠지 조금 전에 자기가 한 말이 멋지다고 생각했는지 메모하고 있었다.

이원철 소장은 마물들의 벽을 돌파해 나가는 기마들을 보며 감 탄사를 터트렸다.

“저걸 저렇게 뚫는군.”

“정말이지 무시무시합니다.”

“그러게 말이지.”

“그리고 소환자들도 나름 역할을 잘 하는데요?”

기마의 뒤를 따르는 차량대열.

그들 역시 사방으로 활과 화약 병기를 이용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미끼팀과 소환자로 구성된 부대였다.

“이럴 때가 아니지. 명령을 내려. 화력 집중을 시작한다.”

“지금 말입니까?”

“그래. 놈들의 신경을 이쪽으로 유도해야지. 포위되면 곤란하니까.”

이 소장의 명령에 참모가 TA-1 전화기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잠시 후 장벽에 설치된 모든 화기가 불을 뿜기 시작했다.

콰콰콰콰쾅!

폭음이 침식지를 뒤흔들었다.

그 어떤 전쟁터보다도 치열해 보였다. 그때였다.

전방에서 무언가가 날아들었다.

“이런!”

이 소장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콰아앙!

장벽 한쪽에 날아가 박히더니 그대로 터져나갔다.

구형 전차를 거치해서 포대로 사용하던 곳이었다.

“피해 확인해! 빨리!”

이 소장이 피를 토하듯 소리쳤다.

콰앙! 쾅!

폭음이 연달아 울리기 시작했다.

부상자가 이리저리 나뒹굴며 신음성을 흘렸다.

“의무병! 빨리!”

다급한 목소리가 사방에서 울려 나왔다.

그동안 원거리 공격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렇게 파괴력이 큰 것은 드물었다.

초기에나 있었던 공격이었다.

“뭐야 대체?”

“보랏빛의 불덩이들이 또 날아들기 시작합니다!”

날아든 것은 마물들의 마법과 유사했는데 그 파괴력이 적지 않았다.

구형이지만 엄연히 전차라 불리던 물건이 종잇장처럼 구겨져 버렸던 것이다.

요격을 하기 위함인지 일부 유탄이 날아드는 보랏빛 화구를 맞췄지만 의미는 없었다.

콰아앙! 쾅!

연달아 울려 퍼지는 폭음.

“빌어먹을!”

전장을 지휘하던 장교들의 입에서 욕설이 흘러 나왔다. 하지만 물러설 수도 없었다.

“모래, 모래주머니라도 쌓아! 빨리! 여분 가져다 쌓으라고! 없으면 당장 만들어서라도 보내라고 해! 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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