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화 뭐든지 써먹어야 한다
바아아아앙!
도원의 전차 주변으로 짚차들이 내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외곽으로는 기마를 탄 강림자들이 따르고 있었다.
중앙으로 나서자 마물들이 개떼 마냥 달려들기 시작했다.
“후우!”
도원이 전차 위에 새로 거치한 K-4 고속유탄발사기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투투퉁! 투투퉁! 투투투퉁!
일정한 운율로 날아가기 시작한 유탄이 달려드는 소형 마물들을 처리했다.
유탄사수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차량에 탄 소환자들도 유탄을 쏘아대기 시작했다.
유탄들이 쏟아지자 달려들던 소형 마물들은 더는 다가오지 못하고 갈가리 찢겨졌다.
그 와중에 폭발을 뚫고 뛰어나오는 마물들은 차량에 탑승한 강림자들이 활을 쏘아 잡았다.
“탄 아껴! 탄 아끼라고!”
어느 정도 되었다 싶은 도원이 붉은 깃발을 흔들며 소리쳤다.
폭음으로 인해 소리가 잘 들리지는 않았지만, 선두에서 달리던 도원이 붉은 기를 엑스 자 형태로 계속 휘두르자 빠르게 잦아들었다.
이때다 하며 달려드는 마물들이 있었지만 그 역시 강림자들의 원거리 공격으로 마무리 되었다.
“일단 여기까지는 어떻게 했는데…….”
도원이 이끄는 타격대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이자 중형마물들이 하나둘씩 이쪽을 응시하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형태가 기묘했다.
“아이씨, 운용까지 하면 우리는 어쩌라고!”
도원이 성질이 나는 듯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그동안 마물들을 처리하면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무언가 본능적인 부분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물론 무리사냥을 하듯 서로 협조하며 달려드는 경우가 없지는 않았지만, 그건 일부였다.
대다수는 본능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전략이라 할 만한 것을 쓰는 것은 소위 군주급이라 불리는 마물들의 주변에 있는 정예들 정도만이 조금 쓰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 모습을 보니 마치 마물들을 누군가가 지휘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하기사. 방패도 세우는 마당에…….”
한숨을 쉰 도원은 이내 포기하듯 중얼거렸다.
지금 그가 타격대를 이끌고 나온 이유가 뭐겠는가.
마법을 활용하여 마치 로마군단 코스프레라도 하듯이 방패를 촘촘히 세워서 전진해 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바아아아!
도원이 슬쩍 김경징을 바라보았다. 마차를 모는 김경징은 나름 차분했다.
별다른 위험이 없다는 신호나 마찬가지였다.
“좋아! 돌파부터!”
도원이 외치며 붉은 깃발을 열심히 빙빙 돌렸다. 그러자 일단의 기마들이 돌파대열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형 마물들을 향해 돌파를 시도했다.
콰콰콰쾅!
중형이라지만 기마를 탄 강림자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본적으로 강림자가 말을 탄다는 것은 최소 갑사급이라는 것을 의미했다.
잘 봐 줘야 D급에서 C급 언저리로 보이는 중형 마물들이 막을 수 있는 전력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비록 백여 기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 모습을 보며 도원이 입맛을 다셨다.
“전에는 참 이걸 보며 전신 못지않다 생각했었는데…….”
연구단지에서 훈련을 함께 받다 보니 그게 자신만의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심지어 하늘 위에 우주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말이다.
굳이 훈련이 아니더라도 이전 침식 균열 때 가우리 기병들의 돌파를 보고 난 뒤에 길드의 기병 전력이 참으로 보잘 것 없이 느껴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규모 때문만은 아니다.
확실히 단일 기마 병력으로 이백이 되는 길드는 전무했으니 말이다.
지금은 길드뿐 아니라 다른 강림자들의 기마까지 수렴했기에 백기에 가까운 숫자가 모인 것이긴 했다.
이건 중국 쪽 상황도 비슷했다.
예외를 따지면 몽골이다.
그쪽은 다르긴 했다.
몽골은 유목 민족답게 대부분이 기마 병력이었다.
그렇지만 제대로 된 기병과는 또 거리가 멀었다.
하나하나를 따지면 갑사 급에 한참 모자라는 전력이었다.
어찌 되었든 결론적으로 같은 숫자 혹은 그 이상의 숫자를 모은다 해도 그와 같은 파괴력을 얻을 수 없다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가우리 기병의 돌파는 전율이 일 정도였다.
나중에 놀랐던 사실은 그 중에서 진짜 개마기병의 숫자는 삼분지 일 정도라는 것이었다.
중형 마물들을 뚫어 내는 순간 틈이 생겨났다.
도원이 붉은 깃발을 하나 더 치켜 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아래로 휘둘러 내렸다.
“쏘라고! 쏴!”
도원의 외침이 닿았는지 화살들이 그 틈으로 날아들기 시작했다.
파삭 파사삭!
날아든 화살들이 스켈레톤 메이지들을 타격하기 시작했다.
일부는 몸통이 부서졌지만, 이내 떨어져 나갔던 뼈들이 들러붙는 것들도 있었다.
하지만 상당수는 머리통을 맞아 재생되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방패들이 빛을 잃었다.
그 틈을 기다리던 전차포 사수들이 빛이 사라진 곳을 표적 삼아 곧바로 쏘아대었다.
콰앙! 쾅!
그 작은 틈이 만들어 낸 결과가 눈앞에 펼쳐졌다.
방패는 물론이고 그것을 들고 있던 마물, 그리고 그 뒤에서 마법을 펼치던 스켈레톤 메이지들이 일제히 비산했다.
“조아쓰! 다 복귀! 빽! 빽!”
이번에는 하얀 깃발을 휘두르는 도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염병할, 모양새 참 안 난다.”
지휘의 필요성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도원 입장에서는 깃발이나 휘휘 휘두르는 모양새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이게 지금 상황에선 가장 효율적인 의사 전달 방법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었다.
* * *
화아아악!
짚차에 기본적으로 달려있는 화염방사기가 제대로 효력을 발휘했다.
포탄의 운동에너지를 흘려 내는 괴물이었지만, 본질은 어쩔 수 없었나 보다.
이동 중에 혹시나 싶어 화염방사기를 뿌렸는데 그게 제대로 유효했던 것이다.
께이이이이익!
꽃이 내는 소리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기괴한 비명이 길게 울려 퍼졌다.
그 주변으로 중형 마물들이 전신길드원을 쫓아 달렸지만, 함께 타고 있던 궁수들이 연달아 화살을 날리며 저지했다.
“퇴각하라!”
퇴각깃발이 올라오자 차량들이 일제히 반전하면서 빠르게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중형마물들이 계속 쫓았지만, 때마침 전차포 사격이 마물들을 저지하기 시작했다.
물론 포탄에 맞아 나뒹굴고, 튕겨나가고 했지만 죽은 개체는 없어 보였다.
간혹 일부 개체만이 죽었는지 아니면 충격에 의해 기절을 한 것인지 누워서 움찔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만 해도 이들이 몸을 빼는 데에는 충분했다.
“이대로 준비된 작전을 펼친다!”
병화의 외침과 동시에 주변에서 동시에 깃발들이 올라갔다.
선두인 임병화의 차량이 빠르게 방향을 틀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마물들이 차량의 행렬을 향해 빠르게 따라붙기 시작했다.
* * *
투투투투투투!
헬기 로터소리가 요란했다. 그 때문인지 불을 뿜고 있는 고속유탄발사기의 소음은 묻혀 버렸다. 그러나 상황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일부 비행형 마물이 얻어맞기는 했지만, 떨어져 내리다가도 다시 균형을 잡아 솟구쳐 오르기 일쑤였다.
마침 마물들이 침식지대를 벗어날 때를 대비해서 대기 중이던 공격헬기의 미사일 정도가 제대로 된 피해를 줄 수 있을 정도였다.
이 상황에서도 가장 큰 활약을 하는 것은 헬기에 동승한 강림자들이었다.
궁수들이 쏘아 낸 화살은 마물들에게 제대로 된 타격을 주었다.
다만 저지력이 떨어지는 탓에 위험한 상황이 계속 연출되고 있었다.
“어엇!”
고속유탄을 쏘던 사수가 본능적으로 얼굴을 가렸다. 동시에 커다란 그림자가 그를 덮쳤다.
콰아앙!
비틀거리던 비행형 마물과 부딪힌 헬기가 굉음을 내며 튕겨져 나갔다. 고속유탄을 쏘던 사수는 이미 정신을 잃은 건지 죽은 건지 힘없이 떨어져 내릴 뿐이었다.
차라리 나을 수도 있었다.
만약 그가 제정신이라면 추락하면서 수없는 공포를 맛봐야 했으니 말이다.
콰앙! 쾅!
비행형 마물들이 자유자재로 비행하며 공격을 가하는 가운데 분전하던 헬기들이 하나둘씩 떨어져 내렸다.
그때였다.
쉬이이익!
아래에서 솟구쳐 올라오는 작은 미사일이 있었다.
그건 마치 눈이라도 달린 듯 비행형 마수를 따라가 배를 맞추었다.
퍼어엉!
폭발과 함께 비행형 마수가 비명을 내지르더니 휘청이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머, 먹힌다!”
전자기기를 활용한 유도 미사일은 생물체의 구조를 가진 비행형 마물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그러나 만들어진 지 반세기가 지난 구닥다리 무기가 의외의 성과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다가 화승총까지 나오겠어.”
“아, 화승총 쓰는 강림자 있긴 하더라.”
“아……. 한 발 쏘고 난 뒤에는 마물과 육탄전을 벌인다는 그…….”
소위 조총이라는 병기를 다루는 강림자도 다수 존재했다.
그러나 진짜 화약을 사용하지도 않으면서 쓸데없이 고증이 투철했다.
사격 속도가 정말로 암울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총알을 쏴서 잡는 마물의 숫자보다 그 총을 거꾸로 잡고 때려죽이는 마물의 수가 더 많다는 웃지 못할 통계도 존재했다.
그때 옆에서 또다시 하늘로 미사일이 솟구쳐 올랐다.
그 미사일의 뒷 꽁무니에는 마치 연 마냥 줄이 뒤따라가며 풀리고 있었다.
“난 토우(TOW)가 먹힌다는 사실보다, 저게 아직 많이 있다는 게 더 신기하다.”
“싸니까.”
“아…….”
가성비라는 부분에 있어서 훌륭한 부분이 있기에 다수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남아 있던 구형의 무기들이 의외로 지금 잘 써먹히고 있는 것이다.
“잠깐 이거 차량에 실어도 되지 않나?”
“그러게?”
전자기기 방식이 아닌 토우는 침식지대 안쪽으로 들고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때 한 기동대원이 말했다.
“요술봉 있잖아.”
“아…….”
“그래도 건의는 해 볼 만하다. 이게 그래도 좀 더 파괴력이 있잖아.”
생각났을 때 바로 알려야 한다. 기동 대원 중 하나가 지휘부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어떤 놈이 이런 아이디어를 냈어!”
“닥치고 빨리 달아!”
장벽 밖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기동대원들의 바이크를 긴급 개조 중이었기 때문이다.
“독일군 같다야.”
“그러게.”
바이크의 옆에 독일군이 나오는 영화처럼 보조석을 달고 있었다.
상황에 따라 탈부착을 하게 만든 덕에 개조는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알라의 요술봉을 들고 탈 예정이었다.
“쟤들은 지금 뭐하냐?”
그때 그들의 시선에 신기한 게 목격되었다.
“저거 토우 아니냐?”
“허?”
소형 포크레인을 이용해 토우 발사대를 들어 올려 짚차에 올리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게 저렇게 쉽게 결합이 되는 무기냐?”
“모르지. 그런데 뭐, 어차피 우리나라 군대인데 뭐.”
“하긴.”
까라면 깐다.
그 밑도 끝도 없는 명령에 따르는 병사들과 기술자들은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예비차량에 설치를 하기 시작했다.
“저걸 가지고 뭘 얼마나 써먹을 수 있을까.”
누군가는 그걸 보며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사실 미사일이라 해도 일정 급수 이상의 마물에게는 먹통이다.
그나마 기대할 수 있는 건 저지력 정도다.
“뭐……. 옛날 대침식 때 하던 말 있잖냐.”
대화를 나누던 기동대원 둘이 서로를 향해 바라보며 동시에 입을 열었다.
“강림자 없으면 그냥 뒤질 거냐?”
“강림자 없으면 그냥 뒤질 거냐?”
대침식 당시 군을 이끌던 장군의 외침이었다.
서로 같은 말을 뱉은 대원들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그들은 싸워야 했다.
티끌만치의 도움밖에 되지 않더라도 말이다.